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20화 (120/166)

# 010. 카다르 제국을 떠나다.

“이, 이런… 제로스. 아무거나 던져 봐요. 책에 보니 올라온 이상 내려가지 못한다고….”

“뭐라고? 못 내려가?”

“으응….”

아리온의 놀란 물음에 샤크론이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뭐 이런 가죽은 필요 없으니까요.”

때마침 가죽 조각이 있었던 제로스가 샤크론에게 그것을 던져 주었다. 이에 샤크론은 밖을 훑어보고 아래를 쓱 본 다음, 가죽을 힘껏 던졌다.

[빠지지직! 화르륵]

5m 정도 내려갔을 때, 갑자기 뭔가가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가죽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순식간이었고, 결과는 가죽 자체의 소멸이었다.

“오오오!”

마치 결계가 생겨난 것처럼 제단을 둘러싸버린 괴상한 보호막.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샤크론 일행이 제단의 꼭대기로 올라오면서 이런 보호막을 발동시키는 스위치를 건드린 듯 했다. 의도적으로 구슬을 이용한 대화를 나누게 하기 위한, 메르헨과 카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샤크론은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다시 내용을 되새겼다.

‘마왕과의 대화라….’

마왕과는 예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야기라기보다 일방적인 말에 가까웠지만, 안토니오에 의해 마인드 컨트롤을 당할 뻔 했을 때 마왕을 어렴풋이 보았었다.

그런 마왕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샤크론이 마왕으로부터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터였다.

테스타노에 관한 이야기? 흑마법사의 성물에 관한 것?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강제적으로 시킬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제로스. 아리온.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

“무슨 이야기? 우리와 해야 되는 이야기야?”

“아니, 나에게 마나를 공급해 주고 있는 마왕과 이야기를 해야 해.”

“역시….”

제로스가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역시’라는 것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을 때 꺼내는 말이다.

“역시? 제로스는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다기보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면, 왜 이런 공간이 만들어져야 했는지, 또 신전과 제단을 만들어 샤크론님을 오게 했는지 쉽게 의문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제로스의 말에 샤크론의 궁금증은 오히려 더해져 갔다. 왜 마왕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신전과 제단을 만든 이유와 연결이 되는 것일까?

“부모님이 의도한 대로 된 것은 알겠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이 신전과 제단은 연합을 위한 것도 아니고, 매드노스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 곳은 마왕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것입니다.”

“마왕을 위해?”

제로스의 예리한 추측이 또 한번 이어졌다. 요원 출신이다 보니, 여러 가지 정보를 분석해 결론을 내리기가 수월했던 탓이다. 물론 타고난 천성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이계의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특별한 매개체나 강력한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차원과 공간이 다른 만큼, 그 사이의 연결고리는 찾아내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로스의 이야기는… 마왕과의 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신전을 만들고, 문자를 새겨 넣었으며 제단을 쌓았다는 건가요?”

“정말 맹주님의 선견지명은… 샤크론 님의 말이 맞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 문자는 이계의 문자, 혹은 마왕과의 대화를 위한 마법진으로 보입니다. 아이고, 기사 주제에 마법을 이야기하자니 좀 어색하군요.”

이야기를 늘어놓던 제로스가 마법 이야기까지 꺼내게 된 자신의 모습에 어색해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정도만 얘기해도 샤크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그런 기회를 나에게…?”

“모든 걸 알고 계셨던 겁니다. 샤크론 님이 이 곳으로 오게 될 것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기 힘든 제로스의 말에 어지간해서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샤크론도 기어코 짜증을 냈다.

여차하면 수도에서 테스타노에게 발각 되어 죽었을 수도 있는 샤크론이다. 그런데 이 아공간은 도대체 뭔가. 마치 샤크론이 살아서 올 것임 미리 알아채고 만든 것 같았다.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만약 내가 수도에서 죽어버렸다면, 이런 것들은 다 쓸모없게 되잖아요!”

“샤크론, 그것은 잘못 생각한 거야. 네가 무슨 일을 벌일 때, 최악의 경우만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항상 두 가지 경우를 놓고 생각하지 않아? 성공할 때, 그리고 실패할 때.”

아리온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할 말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으음….”

듣고 보니 아리온의 말이 옳았다. 최상의 수와 최악의 수를 놓고 상황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님께서는 네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로스 교관님을 미리 수도에 보내신 거야.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셨겠지.

그래서 결과는 어때, 살아남았잖아. 그리고 부모님의 의도대로 이 곳에 왔으며, 테스타노는 네가 어디있는지도 이젠 모르잖아? 그렇다면 부모님이 생각했던 최상의 수를 잡게 된 거야.

이 제단은 네가 최상의 수를 잡게 되었을 때, 더 큰 기회를 주기 위해서 거쳐가야 하는 몇 가지 경우 중에 하나일 거라고.”

“하하하. 굳이 제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요. 아리온의 말 그대로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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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회 정도 더 연재하면 2권이 끝납니다. 거의 끝나가네요.

추천 고기 행진은 계속 됩니다. 많이 던져주셔야 백호가 발톱으로 열심히 글을 쓸 겁니다.

학원 다니랴, 복습 하랴, 도서실 다니랴, 글 쓰랴 바쁘군요. 학교도 안가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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