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죽음의 땅, 메르시아
비록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넸던 제로스와 아리온은 무안함만 가득 돌려받아야 했다. 보로미스는 샤크론에게만 시선을 고정 시킨 채로 두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해봐요. 날 따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좋게 말하면 네 분신이 되어준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예지.”
“노, 노예!”
노.예. 샤크론의 두 귀를 통해 똑똑히 들려 온 단어였다. 샤크론이 원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과민반응 하지마.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노예는 아니야. 단, 네 말을 잘 듣도록 교육시켰어. 아마도 다크 엘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내 드래곤 하트를 뽑아내려 들겠지. 하하하하!”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운지 보로미스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리나의 긴 흑발을 쓰다듬었다. 예전 같으면 즉각적으로 단검을 휘둘렀을 그녀가 이제는 보로미스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 사람이… 내 친구?”
“그래. 친구지, 인간 친구. 앞으로 네가 지켜주어야 할 친구.”
“인간…?”
“보면 모르겠냐.”
보로미스와 리나의 무미건조한 문답이 오가는 동안, 샤크론은 제로스와 아리온을 격려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보로미스의 무시에 기운이 빠졌는지, 조용히 입을 꼭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서 있었다.
“둘 다 왜 그래요. 원래 저 드래곤은 성격이 저렇단 말이에요. 상심하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연합의 요원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마령의 검을 얻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겁부터 집어먹다니….”
아리온과 제로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보로미스는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두 인간은 꽤나 많은 상처를 받은 듯 했다.
“한번 만 더 앓는 소리를 지껄이면 브레스를 보여주겠다. 고개를 들고 내 앞으로 와라. 해치지 않을 테니까. 난 잘나빠진 이 샤크론을 도와주고 있단 말이다. 왜 날 무서워하지?”
“브레스!”
브레스라는 단어에 귀가 쫑긋한 두 사람이 재빨리 보로미스 앞으로 달려왔다. 그제서야 샤크론도 안심했는지 보로미스에게 하고자 했던 얘기를 꺼내려 했다. 리나도 확실히 달라진 것 같고, 걱정은 없었다.
“보로미스. 이제 우리는 메르시아로 가려 해요. 제로스는 연합으로 복귀하자고 했지만, 난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메르시아. 죽음의 땅을 말하는 것이로군.”
“비운의 대륙이죠. 지금은 서대륙 마법사와 기사들의 사냥터가 되기도 하는 곳이고…. 물론 거기서 죽은 서대륙 출신의 사람들이 꽤 된다죠.”
사실이었다.
북대륙의 몰락이 확인 된 직후, 서대륙의 마법사와 기사들이 대거 북대륙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 남은 채, 사람들만 죽어버린 북대륙.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도 없는 북대륙에서 마법서나 명검 등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1000명에 가까운 원정단으로 구성 된 서대륙의 마법사, 기사 연합은 흑해의 해류를 뚫고 기어이 북대륙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그들에게서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이후 그들을 찾기 위해 파견 된 원정대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곳. 마치 저승을 연상케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메르시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샤크론에게는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책이 있다는 점이었다.
“연합의 힘보다는 네 힘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난 맹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더 많은 힘을 키우고 싶을 뿐이니까요. 지금 이대로 맹주가 된다면 과연 연합의 사람들이 날 아무 말 없이 따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고….”
“흑마법사 연합은 맹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 힘을 믿을 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는 거에요. 난 그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메르시아로 온 거에요.”
보로미스와 샤크론, 제로스의 말이 오고 갔다. 샤크론은 더 큰 힘을 원했다. 테스타노에 대적할 정도의 힘도 없으면서 맹주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흑마법사 연합의 1대 맹주였던 카렌과 메르헨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도 테스타노를 상대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연합의 모든 세력이 지하로 숨어들었고, 발데스는 테스타노와의 전투에서 죽었다.
그래서 샤크론은 반드시 원하는 성취를 이루고 나서 연합으로 가리라 결심했다. 그래야 떳떳할 수 있고, 복수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체해서는 안 되겠지.”
“그런데 보로미스, 네 번째 성물에 대해 혹시 알아요? 도대체 네 번째 성물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요.”
“마왕을 만났던 모양이군. 네 번째 성물이 있긴 하지. 그러나 내가 말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해주면 그것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되니까.”
추천고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