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38화 (138/166)

# 003. 테스타노의 약점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힘들게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지켜내려 했던 연합의 흑마법사들을 자신의 꿈 하나만으로 소홀히 하게 되면, 언제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테스타노의 발악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맹주를 중심으로 단결되지 않은 연합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면… 부모와 흑마법사들이 꿈꾸어 왔던 새 세상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개인의 작은 꿈과 단체의 커다란 소망. 이 사이에서 샤크론은 갈등했다. 운명이라는 고리가 무엇이길래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부모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마나 체인지를 시전 한건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이룰 수 없을 운명의 고리를 샤크론에게 넘겨주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 것이다.

이젠 샤크론이 원하지 않아도 흑마법사로 살아가야 하며, 또한 테스타노의 집요한 추적을 받아야 한다. 곁에 제로스와 아리온과 리나가 있지만, 이 세 사람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보장은 절대 없다.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연합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해주어야 개인의 꿈은 물론이고 연합의 소망을 이룰 수도 있다.

그들을 하나의 울타리로 생각하여 똘똘 뭉쳐 단결하면, 기회를 만들어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생각 후에 드는 저 생각, 저 생각 후에 드는 이 생각에 고민한 지 사흘. 그래서 내린 결정의 위의 대답이었다.

아크론은 샤크론이 만나러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지, 주변의 동료가 이웃 신전과의 만남을 핑계로 하루 전에 나갔으며 편지만을 남겨놓았다고 전했다. 더불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겠다는 말 까지도.

샤크론은 자신으로 하여금 마음 약해지지 않게 하려는 아크론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고 조용히 신전을 빠져 나왔다. 아니, 신전의 앞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편지는 열어보지 않았다.

“좀 더 일정을 당겨, 연합으로 들어가겠어. 연합이라고 해서 내 힘을 키우지 못하는 건 아닐테니까. 오히려 아리온, 너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줄 곳이 될 지도 몰라.”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주제넘게 나설 수 없는 일이라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연합 내에도 유능한 검사와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아리온에게도 충분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로스는 나에게 책을 건네 주었었죠? 그 책은 뭔가요?”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소위 흑기사들의 검술이라 말하는 흑검술입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마법과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기 위해, 동작을 간소화시킨 검술이라고 할까요? 제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죠.”

“그렇군요. 그 책을 준건 제로스 혼자만의 생각이었겠죠?”

“물론입니다. 그 책은 초보 교본인 만큼, 연합으로 가시면 더 많은 검술을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거점이 세 군데가 적혀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군요.”

샤크론이 책을 펴고는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거점은 세 곳, 별다른 정보가 적혀있지 않아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 제로스가 곁에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중심 거점으로 가셔야 합니다. 지라노 공국이 맞겠군요. 엔트라 공국은 활동하기에는 편하지만, 규모가 가장 작은 곳입니다. 연합의 핵심 인물들을 만나시기 위해서는 지라노 공국으로 가셔야 합니다.”

“지라노 공국이라면… 카다르 제국 남쪽의 그 변방 소국?”

“변방 소국이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죠. 겉으로만 공국이지, 흑마법사 연합의 제국 아니겠습니까?”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리온이 머리를 긁적였다.

[촤르륵]

샤크론이 책장을 넘기자, 지라노 공국으로 가는 공간이동 좌표와 주문이 적힌 쪽이 펼쳐졌다. 주문을 외우는 즉시 지라노 공국, 지하 연합의 어딘가로 몸이 이동 될 것이다.

“내가 이 곳으로 가는 주문을 외우면,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이 바빠지게 될 거야. 제로스, 분명 갑자기 등장한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들도 생기겠죠?”

“갑작스런 실력자의 등장은 혼란을 불러오는 법, 그 혼란은 샤크론 님이 잠재우셔야 하겠지요. 저는 믿습니다.”

“샤크론, 자꾸 운명이라는 말을 써서 미안한데, 이 모든 게 운명이라면 그런 작은 소란쯤은 잠재울 수 있겠지? 네 마지막 운명은 테스타노의 목숨을 끊는 거잖아.”

“그렇지. 작은 혼란에는 흔들리지 않아. 오늘 이후로, 아니 연합에 복귀하는 이후로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여주겠어. 평소의 나 같지 않은 모습이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랄게. 리나, 날 지켜줘. 알았지?”

“알았어. 라비트만 하루에 하나 씩 준다면.”

“후훗, 알았어. 자, 가자! ‘대지의 힘은 우리를 희망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니, 그 첫 번째 땅으로 모두를 인도하라.’”

[슈르르르]

책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기운이 네 사람을 감쌌다.

이내 시야는 어둠으로 가려지고, 암흑의 공간 속에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눈 앞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연합의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왕의 귀환’. 샤크론의 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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