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4. 경쟁자들의 도전
“문을 열어라.”
에슈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흑갑주를 걸친 병사에게 명령하자, 살짝 고개를 숙인 병사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샤크론, 내가 가도 되는 자리야?”
아리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샤크론을 위한 자리로 가는 것 같은데, 괜히 자신이 갈 필요까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리나와 제로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물론이야. 앞으로는 여기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될 텐데 부담 갖지마. 무엇보다 넌 나를 지켜줄 동료잖아. 안 그래?”
“으음….”
“맹주님, 이 쪽입니다. 뒤의 두 분의 자리도 미리 마련해두었습니다. 제로스, 미안하지만 서 있어도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제로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에슈가 끄덕임으로 고마움의 답변을 대신 하고는 장로들에게 외쳤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상황이 상황이기에 맹주님의 귀환으로 북받쳐 오르는 기쁨은 잠시 접은 채, 긴급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소. 맹주님 께서도 별다른 환영행사 없이 급하게 이쪽으로 모신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연합의 전부를 불러들여 크게 잔치를 벌이고,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준 전시상황, 에슈의 말대로 기쁨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처음 오는 곳이라 상.당.히 어색하기는 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샤크론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이런 딱딱한 자리에선 웃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샤크론은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그토록 맹주님의 귀환을 원했던 것은 내분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같은 1세대 장로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실질적인 연합의 관리를 2세대 장로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2세대 장로들 사이에서 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럼 한 쪽을 죽여 버리면 되잖아.”
“리나! 조용히 해!”
“으읍… 우물우물.”
리나의 파격적인 한 마디에 아리온이 기겁을 하며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엄숙한 자리에서 저런 말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닙니다. 사실 그래서 저희 장로들도 한 쪽의 힘을 약화시켜, 파벌을 막고 중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2세대 장로 전체의 반발을 받게 되면서, 내부가 삼분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1세대 장로들과 2세대 장로의 파벌 둘, 이렇게 셋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샤크론의 날카로운 눈빛에 장로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제로스는 매우 태연해 보이는 샤크론의 표정과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의연함과 날카로움을 바라보며, 그가 독한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맹주의 힘이 아니고서는 장로분들의 타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까?”
“장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세력을 이끌고 있을 뿐,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맹주님이 필요합니다. 이 분란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쉽게 벌일 수가 없을 겁니다.”
“환영행사를 안하시길 잘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그런 경거망동을 했다가는 기름을 붓는 격이 되겠지요. 아직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는 게 사실이지만….”
“…….”
“전 장로들을 소집하고, 부서나 관리하는 단체가 있거든 그 대표들을 모두 불러주세요. 제가 그들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 하겠습니다. 어차피 새로운 맹주의 등장으로서, 신고식은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나이가 어린 저를 얕볼지도 모릅니다. 허나 장로들은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오오오.”
장로들은 하나같이 빠르고 신속하고 적극적인 샤크론의 명령에 감탄을 잊지 않았다. 역시 맹주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그들이 원했던 전 맹주의 모습을 샤크론에게서 다시 보는 듯 했다. 알 수 없는 무한한 신뢰감, 그리고 저 자신감! 그것은 메르헨이 보였던 냉정함과 자신감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어서요. 괜찮다면 아까 그 곳으로 갑시다. 자리도 넓고 이야기 하기도 좋겠던데.”
“알겠습니다. 그럼 모든 장로들을 부르겠습니다. 맹주님의 힘을 믿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샤크론의 자신감에 1세대 장로들은 힘을 얻은 모양인지, 신이 나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이 나서 그랬다기 보다,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샤크론 님, 아니 맹주님. 자신은 있으신 겁니다. 무엇보다 달라지신 맹주님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러게 말야. 샤크론 같지 않아서 너무 슬퍼.”
“이게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거야. 어깨에 힘을 좀 더 주고….”
“후우! 너무 무리했나. 이런 건 익숙치가 않아서.”
샤크론이 한숨을 내쉬며 온 몸 가득 주었던 힘을 뺐다. 그러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 몸이 축 늘어졌다.
“잘 하셨습니다. 메르헨 맹주님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셨죠. 그런 강인함과 결단력으로 나가셔야, 연합의 미래를 밝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어떤 위험에도 굴복하지 마시고, 나아가십시오.”
“후우. 제로스의 말처럼 되어야 할 텐데. 다시 힘을 내고… 자, 나가 볼까요!”
샤크론이 심호흡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흩날리는 흑발, 의지에 가득 찬 눈!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지만, 그에게서는 다시 한번 강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왕의 귀환이라… 샤크론 맹주님을 두고서 한 말인가. 지금 만큼은 맹주님에게 왕의 귀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맹주님, 연합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