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42화 (142/166)

# 004. 경쟁자들의 도전

에슈는 속이 탔다. 전체 장로를 소집한 회의에 그들 둘이 오지 않으면, 이 회의는 있으나 마나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푸하하하하! 저게 3대 맹주님의 모습인가! 정말 비교되는 군! 메르헨 맹주님의 위엄은 어디가고 말이야? 사자 부모에 강아지 새끼인가?”

“크하하하하! 웃기는 군.”

요란스러운 등장. 바로 카스크와 메츠였다. 이들의 행실을 보면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분명 저들은 얼마 전까지 에슈의 말을 충실히 따랐던 연합의 유망주였다. 저런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스크! 메츠! 맹주님 앞에서 그게 무슨 폭언이냐?”

“에슈 장로! 저 사람이 맹주님의 후손인지 어떻게 압니까? 무슨 근거로?”

에슈의 호통에 카스크가 질세라 답했다. 지극히 도발적인 카스크의 말투는 샤크론의 비위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찢어진 두 눈,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 새하얀 피부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짙은 흑로브. 모자에 박힌 보석도 검게 물들은 흑보석이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푸하하, 반가울 게 뭐가 있나? 난 무능한 장로들이나 맹주는 딱 질색이야. 당신이 맹주라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난 당신을 맹주로서 대우할 수 없어. 고로 존대도 없지.”

“예의라는 것을 모르느냐! 카스크, 무례하게 굴지 마라!” “시끄럽소, 에슈 장로. 저 사람이 정말 메르헨 맹주님의 후계자가 맞다면 그 실력을 보여주면 될 거 아니요? 그렇게 간단한 것을 저 사람은 할 줄 모른단 말이오?”

“맹주님을 시험하겠다는 것이냐!”

“그만 하세요. 제가 이야기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갑작스럽게 제가 등장한 것이 이상했던 겁니까?”

샤크론이 명랑함과 발랄함(?)으로 무장(?)한 얼굴로 카스크에게 말을 건넸다. 샤크론이 보기에 카스크는 꽤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비록 예의도 모르고, 안하무인격으로 날뛰는 사람 같긴 했지만 그 혼자만의 독특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던 것이다. 이건 직감이었다.

“이상하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당신 같으면 갑자기 나타난 소년 하나를 두고, 이 사람이 맹주다! 그러면 믿겠소? 당신이 테스타노의 첩자이면 어쩔 건데?”

“그 놈의 이름을 언급하지 마라!”

“당신은 가만히 있으시오. 지금 카스크는 맹주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에슈의 신경질에 메츠가 손을 뻗으며 그를 앉혔다. 예절이나 예법으로 보면 분명한 하극상이지만, 연합은 개개인의 힘을 정도로 서열을 매기는 곳이다. 나이 차이가 아닌, 실력 차이로 계급이 갈리기 때문에 제재할 사람은 없었다.

카스크와 메츠는 적어도 에슈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저를 맹주라고 믿겠습니까? 어차피 다 각오하고 이 곳에 왔으니 말해보시지요.”

“맹주란 연합의 중심이자, 모두를 능가하는 힘을 가진 존재. 그 힘을 보여줄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게 믿음이 되겠지.”

“호오, 맹주님. 마치 대련 신청인 것 같습니다만?”

제로스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카스크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카스크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의도적인 도발을 걸고 있는 것이다.

“후훗, 알고 있어요.”

샤크론도 그런 카스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카스크! 아무리 힘이 있다 한들, 맹주님에게 네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꾸 말하게 하지 마시오. 에슈 장로는 이 대화의 주체가 아니오. 자, 내가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한, 맹주는 없소.”

“정확히 뭘 원하는 건지 말해보세요.”

[스릉]

카스크가 허리에서 검을 꺼내들며 로브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흑색 바탕에 흰 줄을 십자 모양으로 그은 흑철갑주가 드러났다.

“힘으로 납득시키기 전까지 맹주라는 자리는 인정하지 않겠어.”

“그럼 제가 카스크 장로를 납득시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후후, 연합에서 나보다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지. 만약 내가 진다면 조용히 장로의 직위를 반납하고, 목숨을 끊겠어. 어때? 대신! 나도 조건이 있지!”

“말해보세요.”

“내가 이기면, 맹주 자리는 내가 가진다.”

순간 장내에 고요가 일었다. 맹주에 대한 엄청난 도전. 어느 누구도 맹주의 자리에 도전하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없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 자리에 카스크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오로지 힘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곳. 그 힘의 정점에 자신이 서겠다는 의미였다.

“하하하, 좋습니다. 먼저 당신에게 인정을 받도록 하지요.”

“맹주님! 무모한 결정이십니다! 저 놈은 맹주가 되고 싶어 저러는 것입니다. 무시하십시오!”

“한 사람의 의심이라도 받는 지도자는 어딘가에 결함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결함은 반드시 또 다른 의심을 불러오고, 그것은 일파만파로 퍼지기 마련이지요. 여기서 문제를 매듭지어 놓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을 다시 꿈꾸지 못할 것입니다.”

“샤크론, 가지마. 위험해.”

리나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샤크론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샤크론은 살며시 리나의 손을 내려놓았다.

“리나, 죽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 힘내라고 말해주면 라비트 하나 먹게 해 줄게.”

“으응? 힘내. 힘내.”

“좋아.”

샤크론이 나이블로의 소드를 꺼내들었다. 카스크가 갑주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흑기사인 듯 싶었다.

“발데스 맹주님이 쓰시던 검이다!”

장로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샤크론의 반지.

“오오… 맹주님의 반지까지! 카스크, 이래도 의심하겠느냐?”

“반지나 검이나 가짜는 항상 존재하는 법. 모처럼의 결투를 어색하게 만들지 마시오, 에슈 장로.”

“크흐흐흐흠….”

“자,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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