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홀로서기
“그래. 샤크론, 그런데 내 생각이지만… 샤크론, 너에게서는 아직도 부모님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아. 너무 부모님의 그림자가 널 집어 삼켜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리온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샤크론에게 부모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해야 할 행동이었다.
“맞는 말이야. 어떤 행동을 해도 그림자 안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아 불만이 많았지. 내가 메르시아로 가는 것도, 내가 이렇게 힘을 얻은 것도 다 부모님의 의도였잖아? 내 의지가 반영되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심지어 마법학교의 교육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스타노에 의해 도망쳐야 했잖아.”
“으음….”
“평범하게 살았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았을 것들이 부모님으로 인해 문제가 됐어. 부딪혀도 되지 않을 수 있었던 많은 운명들이 나에게 다가왔지. 그래서 많이 짜증이 났었어. 많이….”
“났었어 라는건?”
“그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지. 연합에 내가 오고 나서부터는 그 그림자에 대한 압박이 완전히 사라졌어. 물론 연합에 오기 까지는 부모님의 여러 가지 의도가 섞여 있었을지 모르지만, 연합으로 온 이후의 문제는 더 이상 돌아가신 부모님이 어찌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이젠 모든 것이 나에게 달린 일이 된 거지.”
“흠….”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잖아. 물론 테스타노와의 복수나 연합의 지휘 등, 이미 내게 짐이 된 운명은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밖의 일들은 내게 자유야.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이젠 과거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그래, 그래야지 샤크론 너 답지.”
샤크론의 얼굴에 강하게 내비쳐진 의지에 아리온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미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그늘에 가려진 상황에서 저런 의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치 앞날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데,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것에 사로잡혀 매번 허덕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리온, 오늘 대련은 즐거웠어. 이제부터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볼까 해.”
“그래, 나도 즐거웠다. 카스크 장로님에게 가서 마저 수련을 해야겠다.”
“아참, 리나랑 제로스는?”
“리나는 요즘 어쌔신 부대에서 기술을 배운답시고 얼쩡거리는데, 거기서도 잘 받아주는 것 같아. 그리고 제로스는 공국 주변의 동태를 알아본다면서 잠시 연합을 떠났어.”
“그래, 수고했어. 그럼 마중은 나가지 않을게.”
“응.”
[드르르륵, 끼이이이]
철문이 열리고, 한 줄기 햇살이 대련장을 싹 비춘 다음 이내 닫히는 철문에 가려졌다. 내부에 놓인 열 개의 촛불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조명시설도 없는 개인실은 혼자서 수련하기에 매우 최적인 곳이었다.
“하앗!”
샤크론이 몸을 재빠르게 굴리며 가로베기로 검을 긋자, 일렬로 늘어서 있던 촛불이 일제히 꺼졌다. 칼날도 닿지 않게, 검 끝으로 성공시킨 것이었다.
이내 장내가 어두워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찾아들었다. 샤크론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카스크가 주고 간 스크롤을 한 장 찢었다.
‘맹주님, 이 스크롤은 환영을 만들어내는 스크롤입니다. 물리적인 공격력은 전혀 없으나, 연합 소속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힘겹게 만들어 낸 최적의 흑기사지요. 지속 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보통 인간보다 두 배 이상 빠릅니다. 맹주님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찌익]
[펑]
스크롤을 찢자, 아주 약한 폭발음(?)과 함께 환영이 생겨났다. 환영의 모습은 샤크론이 그토록 증오하는 테스타노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스크롤을 만들던 마법사들의 공통 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덤벼라… 라… 애송이는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마….”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냉소적인 목소리. 테스타노와 쏙 빼닮은 목소리였다. 샤크론에게는 이렇게 실감나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의지를 돋우는 목소리였다.
“좋다! 어디 한 시간 동안 네가 죽는 지 내가 죽는 지 해보자!”
[스르르르]
샤크론이 바닥에 대고 검을 끌며 기회를 노렸다. 로브를 입은 테스타노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환영의 검을 든 채로 샤크론을 노려보았다.
저 환영의 검은 물리적인 타격은 주지 않지만, 샤크론의 몸에 닿았을 경우 색깔이 변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색깔의 변화를 보고 자신이 얼마나 공격에 노출 당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타앗!”
샤크론의 인형이 재빠르게 환영 사이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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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혹은 일요일 연참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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