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51화 (151/166)

# 005. 홀로서기

[쿵! 쿵!]

아니나 다를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벽을 보면서도 연합의 흑마법사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섣불리 마법을 시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저마다 각각의 마법을 캐스팅 한 채 공격 기회만 잡고 있었다.

“어느 정도면 뚫릴 것 같습니까?”

샤크론의 질문에 책임자로 보이는 흑마법사 하나가 답했다.

“이대로라면 30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흙벽으로 통로를 봉쇄했기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샤크론이 통로의 높이와 폭을 짐작해보니, 한번에 10명 정도의 상대가 밀고 들어올 수 있는 폭이었다. 크기는 3m가 훨씬 넘어, 라칸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높이였다.

“만약 지원이 없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습니까?”

“그거야… 파이어 계열의 마법을 위주로 집중 공격을 펼치면….”

책임자의 말에는 자신이 없었다.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차라리 가능하다면 마물을 소환해 내거나, 장애물을 설치해서 상대의 이동을 차단해야 합니다. 어쌔신이 수두룩한 놈들인데, 마법 한 두 방으로 몇 명이 죽은다 한들 꿈쩍 하겠습니까? 그 사이에 당신들의 목숨이 날아갈 것입니다.”

샤크론의 냉정하고도 차가운 말에 흑마법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마법으로 달려드는 어쌔신을 제압하기는 했으나, 연타로 이어지는 후속 병력의 공격에 노출 되어 난도질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침입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겁니까? 지금 이 모습들은 대체 뭘 바라고 있는 모습입니까?”

샤크론이 보다 못해 짜증이 나자, 화를 버럭 냈다. 샤크론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악화되어 피해가 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애초에 전투의지가 부족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 모르는 흑마법사들에게서 샤크론은 느슨해진 연합의 결속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카스크의 돌발 행동이 필요 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어쌔신들은 통로 양 옆의 길을 차단하고, 아리온과 카스크 장로는 저와 함께 정면을 지키도록 합시다. 흑마법사에서는 수적으로 우리가 앞서는 만큼, 실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세요. 입구에서 확실히 막아 낸다면, 적들은 쉽사리 밀고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쿠쿵! 쿵!]

“크흐흐… 어디까지 견뎌내나 한 번 보자.”

라칸의 음침한 목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져왔다. 그와 동시에 아르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샤크론이 왔으려나? 보나마나 놈들은 입구를 기사들과 어쌔신으로 에워싸 놓고, 실드를 펼쳐 우릴 막을 속셈이겠지. 미안하지만 우리 어쌔신들은 머리까지 좋다는 걸 잊지 마라. 하하하.”

아르펜의 목소리를 듣고, 샤크론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보니, 안면이 있을 법도 한데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라칸이 아니라면, 어둠의 아들들?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정면에서 필사적으로 막아내면, 충분한 승산이 있을 테니까!”

10여 분이 흘렀다. 흙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라칸의 엄청난 육탄공세가 흙벽의 나머지를 통해 충격으로 전달되었고, 통로가 들썩이며 모래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풍전등화. 흙벽의 방어기능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라칸의 마지막 부딪힘에 흙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교단 흑마법사들의 크로스 파이어가 어지러이 통로를 따라 내부로 파고들었다.

“마나 실드!”

“마나 실드!”

예상했던대로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법공격이 시작 되자, 연합 측 흑마법사들도 제정신을 차리고 마나 실드를 시전 했다. 그러자 통로에 두꺼운 보호막이 생기며, 크로스 파이어를 모두 튕겨냈다.

“죽어라, 연합의 조무래기들아!”

“저 놈이 라칸입니다! 모두 집중적으로 놈을 공격하십시오! 마법사들은 마나 실드와 함께 반격 마법을 시전 하세요!”

“오호라! 샤크론이 아니냐!”

라칸이 연합 어쌔신 하나의 목을 꺾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샤크론의 얼굴을 발견하자,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덕분에 라칸은 테스타노에게 혼이 났었다.

“라칸, 피의 잔치는 거기서 멈추는 게 좋아.”

“크크큭.”

[채채챙, 챙. 까깡, 깡! 사악!]

수 십 개의 검날이 라칸의 살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라칸은 그런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흑기사 둘의 목을 잡아 비틀어버렸다.

[빠가각, 빠각]

“물러서지 마세요! 여기서 밀리면 뒤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위험해질 겁니다!”

“하하하하! 샤크론이 네 놈이구나! 물러서지 않아도 이미 뒤의 흑마법사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통로 저편에서 아르펜이 비웃음을 흘리며 샤크론을 쳐다보았다.

“으응?”

라칸의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 샤크론이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 십의 어쌔신들이 흑마법사들을 도륙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천정에 크게 뚫린 검은 구멍과 함께.

“후후후, 우리 어쌔신들은 신속함 만큼이나 흙을 파서 은신하는 데에도 능숙하지. 활용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제기랄!”

입구에서의 분전으로 난입하던 교단의 흑기사와 어쌔신 상당수를 처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라칸의 난투로 인해서 스물 다섯의 흑기사가 목숨을 잃었고, 어쌔신 열여덟이 전사했다.

카스크도 나름대로 아리온과 함께 라칸을 상대했으나, 두 사람의 힘으로 라칸은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그나마 마령의 검이 라칸의 생명력을 폭발적으로 빨아들이는 바람에, 라칸이 잠시 물러섰다는 게 다행이었다.

“으으으윽! 크윽!”

“아아악!”

“킬킬킬… 피다… 킬킬킬.”

교단 어쌔신들이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예리한 단검으로 흑마법사들의 경동맥을 그었다. 단 한번의 칼놀림. 사악. 그리고 고개의 꺾임.

일련의 동작 한 번에 흑마법사 한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입구에서의 분전은 연합의 우세였지만, 뒤통수를 치인 흑마법사들은 계속해서 도륙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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