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홀로서기
“귀찮게 하는 군.”
샤크론은 이번 기회에 라칸을 확실하게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놈 같은 생체병기가 또 살아남아, 다시 돌아온다면 수 많은 흑마법사들의 피해가 생겨날 것이다. 그 전에 싹을 제거해야 했다.
[사아악]
한쪽 팔이 잘려나가 거동이 불편해진 라칸의 왼쪽을 노리고 샤크론이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한 손이 없어진 만큼, 그것을 효과적으로 노릴 생각이었다.
이에 라칸은 바닥에 떨어진 시체를 활용했다. 흑철갑주를 걸친 채로 죽어 있는 교단의 흑기사를 오른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라칸은 샤크론의 공격을 시체로 막아냈다.
[파스스슥]
일회성 방편이었지만, 오러의 강한 힘이 쓸데 없는 공격에 소비되는 것은 샤크론도 지양해야 했다. 라칸은 인체를 가르고 일시적으로 위력이 약해지는 오러 블레이드의 약점을 노리고, 계속해서 시체를 이용한 방어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아르펜의 마인드 컨트롤이 끝났다. 정신을 지배당하기 전, 세르잔이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린 것이다. 의외의 행동에 아르펜은 마나 역류를 경험할 뻔 했지만, 다행히도 뒤탈은 없었다.
아르펜은 주저하지 않고, 라칸을 공격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샤크론의 측면을 마법으로 공격했다. 라이트닝 볼트를 계속 고수하는 것으로 보아, 모종의 계획이 있는 듯 했다.
“라이트닝 볼트!”
‘아, 이건 악순환이야.’
순간적으로 돌아 본 주변 상황은 심각했다. 카스크와 아리온을 비롯한 어쌔신들의 분전으로 통로에서의 전투는 연합측의 우세였다. 그러나 뒤에서 펼쳐지고 있는 교단 어쌔신의 기습은 그야말로 학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벌써 수 십 이 넘는 마법사가 목 없는 시체가 되었고, 몇몇 겁먹은 마법사들은 샤크론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통로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각 대피소를 연결하는 통로가 복잡하다는 것을 이용해, 어디라도 몸을 숨길 생각에서였다.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연합의 피해가 증가할 것이 분명했다. 단검으로 일격을 가했던 리나도 지금은 다른 어쌔신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샤크론이 결심을 굳히고는 라이트닝 볼트를 응시했다. 아르펜이 재차 캐스팅에서 시전 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호흡 한 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 시간 안에 라칸을 처리해야 했다.
“마나 쇼크!”
검을 이용해 마나 쇼크를 시전 한 샤크론이 그 자세 그대로 오러 블레이드의 힘을 극성으로 분출시켜, 라칸의 정면을 내리 찍었다. 엄청난 마나의 소비에 온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 찼지만, 이렇게 해야 두 거물을 상대할 수 있었다.
“크으윽!”
엄청난 기의 폭발에 아르펜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감았다기 보다 날아드는 먼지에 어쩔 수 없이 반사적으로 보인 행동이었다. 이것은 라칸도 마찬가지였고, 마나 쇼크로 인한 기의 제압에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파아아악]
뒤늦게 오러의 공격을 알아 차린 라칸이 반사적으로 오른 팔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극성으로 힘을 끌어 낸 오러는 팔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라칸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오러는 정확히 정수리를 반으로 쪼개며 들어오고 있었다.
“으와아악!”
머리가 반쯤 갈라진 라칸이 비명을 내질렀다. 숨통까지 끊기지는 않았는지, 괴로운 표정으로 잘린 두 팔을 흔들며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샤크론은 엄청난 마나 소비에 팔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주저하지 않고 한 번 더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라칸의 목을 가로로 베었다.
[뎅겅]
“…….”
미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라칸의 목이 바닥을 피로 물들이며 굴러 떨어졌다. 목을 잃은 몸통이 방향을 잃고 움직이다 이내 힘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라, 라칸!”
“드, 드디어 놈을 베었다. 드디어…!”
생체병기의 약점은 목이라는 사실에 입각해서 다시금 오러를 전개했던 샤크론이 먹혀 들어갔다. 전투병기 라칸의 죽음은 연합으로서나 교단이나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하나의 대장을 잃은 느낌이랄까? 순간 교단 흑기사들과 어쌔신들의 얼굴에 가득하던 기세가 사라지고, 절망적인 표정이 감돌았다.
아르펜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아끼고 아끼던 라칸을 잃자, 망연자실해졌다.
“아아아….”
“좋았어!”
이에 힘을 얻은 카스크와 연합 어쌔신, 흑기사들이 힘을 내서 반격하기 시작했다. 통로에서 무수히 죽어나가던 어쌔신들도 더 이상 용기를 내서 밀고 들어오지 못하고, 통로 밖에서 주춤거렸다.
그나마 분투하고 있는 건, 등 뒤의 어쌔신들이었다.
“카스크 장로님, 앞을 부탁드립니다. 샤크론, 내가 뒤를 맡는다!”
어쌔신들의 특징은 근접 공격에 강하지만, 간접 공격에는 약하다는 점이었다. 근접 공격은 바로 몸에 달라붙어 하는 공격을 의미하고, 간접 공격은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기사들이 어쌔신을 상대할 경우에는 마법사들의 보조를 받거나, 중무장으로 온 몸을 가린 채 상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리온은 그 점을 마령의 검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마령의 검은 자체적으로 약한 보호막을 주인 근처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종의 실드인 셈이다.
아리온이 마령의 검을 다루면서 여러 가지 기능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아르펜이라고 했나? 동료들을 무참히 죽인 이상, 살아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크으으.”
아르펜이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라칸을 잃은 상황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의지할 만한 흑기사들과 어쌔신들도 없었다.
절반의 병력들이 라칸의 종횡무진 활약으로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이내 칼날에 속절없이 쓰러졌고, 그나마 통로 밖의 병력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