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웃기 어려운 날벼락 (2)
“잠시 존체에 손을 대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아…….”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어…….”
“삼가 공자님의 말씀을 듣사옵니다.”
“그러니까 그게…….”
“…….”
“……하던 거 하쇼.”
“예, 그럼.”
사내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얌전히 누운 천하진의 맥문을 잡았다.
움찔!
‘차갑다.’
체온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손가락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한기가 손에 박인 굳은살까지 뚫고 들어온 덕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염병, 시체가 만져도 이보다는 따스하겠구먼.
사내가 눈을 감았다.
우우우웅.
기묘한 공진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미약한 기(氣).
천하진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맥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흉흉한 기운.
‘진짜 마기(魔氣)다!’
마기.
그것도 어느 잡스러운 무공을 익히다 변질된 마기 따위가 아니다.
완벽하게 정립된 무공에서 뽑아낼 수 있는, 소위 정통 마공이라 불리는 무공을 익혀야만 피울 수 있는 진짜 마기였다.
정신이 확 들었다.
‘비, 빌어먹을! 그럼 여기가 정말로…… 우웁!’
갑자기 구토감이 올라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을 게워 내고 싶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희는 안 꿉꿉한 거냐? 이 역겨운 기운을 담고 있으면 막 우울해지거나 토악질 나오지 않아?
사내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혈도가 상했지만 꼬인 기경팔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기셨습니다.”
나도 알아.
“근육도 많이 퇴화하기는 했습니다만 원기가 살고 생기가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거동하시는 데에 불편함이 없는 이유입니다.”
안다고, 인마.
“단전이 사라진 것이 의문입니다만……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탁기만 생성시키는 단전은 없느니만 못하지요.”
알았으니까 제발 이 역겨운 마기 좀 치워!
사내가 맥문에서 손을 떼었다. 천하진은 그제야 숨통이 트인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 사내와 의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의 치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천하진이 눈알을 굴렸다.
‘염병! 썩을!’
몸이 낫는 거야 기정사실이다. 나름 의술에 조예도 깊었고 무애공의 요상결 자체가 워낙 신통방통하니까.
진짜 문제는 여기가 마교라는 데에 있다.
‘으아아아! 미쳐 버리겠네, 진짜!!’
천마신교(天魔神敎).
소위 천년마교라 불리는 천마신교는 수천 년 무림사가 낳은 이 시대 최고(最古), 최악의 마도 세력이었다.
단일 무력에선 단연 최강이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 무림을 긴장케 하는 혼돈의 상징과도 같았다.
단순 숫자로만 놓고 보자면 연합체인 의천맹과 철혈성이 압도적임에도 강호는 의천과 철혈, 천마를 두고 강호삼세라 불렀다.
단일 무력 집단이 연합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천마신교의 위험도가 설명된다.
마도칠가라는 명문가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 역시 신교의 분파나 마찬가지였다.
마교, 그리고 칠가.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병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사상 최악의 마귀 집단.
한마디로…….
‘튀어야 돼!’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한다. 육지로 올라가는 순간 어종에 상관없이 뒈지기 마련이다.
칠가의 핏줄이라고만 해도 난리가 났을 판에 마교의 공자님이란다. 적당히 좆 된 줄 알았는데 제대로 좆 됐다.
뭐가 됐든 도주가 답인 상황. 신분이고 나발이고 따질 때가 아니다.
튀지 않으면 죽는다!
“호전되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하나 아직은 안정을 취하셔야 할 때라고 생각되는바,
아침저녁으로 탕약과 침술을 병행할 테니 당분간은 누워 계시는 것이 옳을 줄 아옵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무뚝뚝했고 딱딱 끊어지기까지 했다. 돌멩이를 우르르 쏟아 내는 느낌이랄까? 상당히 거슬리는 말투요, 목소리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넌 입 닫고 있는 게 좋겠다.
“장 의원.”
“예, 방주님.”
“앞으로 전강탕(全康湯)을 올리시오. 침은 금정침(錦晶針)으로. 식사는 일반식으로 바꾸시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방주라 불린 사내가 천하진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틀에 한 번씩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옥체 보중하시옵소서.”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방을 나섰다.
하녀는 덜덜 떨며 한옆에 서 있었고 장 의원은 헛기침을 하며 천하진의 맥을 짚었다.
천하진은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위험해. 진짜 위험해.’
여기가 마교인 걸 안 이상, 적당히 몸 좀 추스르고 떠날 생각은 버려야 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야 한다. 아니, 불가능해도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확고한 목표 의식으로 활활 불타는 전직 천하제일살수의 눈빛은…….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일단 나가고 보자!’
* * *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긴 했다.
여기가 마교란 것도 알고, 이 몸뚱이의 신분이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몰래 나가든 대놓고 나가든, 그만한 실력과 명분이 있어야 나갈 것 아닌가.
실력이야 의심할 나위 없는 강호 최정상급이지만 옛날 일이다. 명분? 명분은 더 없다.
몸도 피폐한 환자 놈을 미쳤다고 교외로 내보내겠나.
즉, 천하진이 이곳에서 도주할 방법은 전무(全無)했다.
어떻게 해야 여길 뜰 수 있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도망칠 방법이 있긴 한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천하진은 일단 간부터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틀 전에 비해 생기가 무척이나 강해졌습니다. 이는 실로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이유인즉, 생기란 내력의 축기(畜氣)와 비슷해서 탄력을 받으면 받을수록 쌓이는 속도 또한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
“내상이 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닷새만 지나도 공자님의 육체는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러니…….”
“…….”
“바라옵건대 거처에서 몸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충고 고맙소.”
“송구하옵니다.”
송구는 이 새끼야, 그게 뒷목 잡아다가 침상에 내던진 놈이 할 말이야?
천하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걸릴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저질러 본 건 근처 지형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얻고자 함이었다.
어디가 뚫렸는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부터 알아야 첫발이라도 떼 보지 않겠는가.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눈만큼은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정말 한 길만, 딱 한구석만 둘러보면 머리로 지도까지 그릴 능력이 되는 사람이 살왕, 자신이었다.
근데 그걸 못 했다.
하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문을 열고 앞뜰로 나가려는 바로 그 순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시기적절하게 사내가 등장했다.
결과는…… 보는 대로다.
“소인이 한 번 더 맥을 짚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짚지 말라면 안 짚을 거…… 아, 차가워!
천하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물어보지나 말든가.’
싸늘한 새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새끼.
잠시 후, 사내가 눈을 떴다.
여전히 딱딱한 인상이지만 두 눈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맺혀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손상된 혈도들이 한층 더 회복되었습니다.”
“…….”
“혈도만이 아닙니다. 내상이 전반적으로 빠르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약재와 침술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지만, 실로 놀라운 회복력입니다.”
사내는 말을 멈추고 묘한 눈길로 천하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그 눈은?
천하진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자 사내도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워낙 출중한 회복력이라 소인이 다소 놀란 모양입니다. 헤아려 주시길.”
“…….”
“더 이상 침술은 불필요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대신 영양 높은 식사와 전강탕으로 회복을 보하겠습니다.”
“알겠소. 아!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하문하시옵소서.”
“전강탕이란 게 뭐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생존을 위해 부득불 의술까지 익혀야 했던 그였다.
명의(名醫)라 불릴 만한 수준은 못 되고, 오히려 독술(毒術)에 더 조예가 깊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의원 찜 쪄 먹을 실력은 된다.
그런 그의 기억에 전강탕이란 탕약은 없었다. 뭐, 약이라는 게 저마다 이름 붙이기 나름이라지만…….
사내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응?’
천하진의 눈이 번뜩였다.
그전까지 딱딱한 모습만 봐서일까? 상대가 조금은 당황했다는 느낌이었다.
“전강탕은 원기를 살리는 데에 능한 보양 탕약입니다. 본각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약으로 본교 최고위 수뇌부들께만 올리는 약이지요.”
“그렇소?”
“예.”
천하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기를 살리는 데에 능하다고?’
보양이든 뭐든 약은 약이다. 나름의 약력(藥力)을 느꼈다면 그 힘까지 끌어와서 회복 속도를 올렸을 텐데?
‘……뭐, 내 감각 문제일 수도 있지.’
단순히 오감이 아니라 기감까지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다. 신경 쓰지 않았다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 그럴 수는 있는데 말이지.
“이틀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속히 쾌유하시기를.”
사내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녀가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 바람이 찹니다. 창을 닫…….”
“아이야.”
“네, 네?!”
“내 이름이 뭐지?”
“무, 무슨 말씀이시온지…….”
“내 이름이 뭐고 신분이 어떻게 돼? 신상 명세 좀 읊어 봐.”
하녀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시는 걸까?
그때, 천하진이 하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하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난 열흘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흔들림 없는 눈과 가면 같은 표정이 무색투명한 차가움을 선사했다.
반문을 허용치 않는 분위기.
“공자님께서는…….”
“옳지, 옳지. 말해 봐.”
고개를 푹 숙인 하녀의 입에서 이 몸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이름 서량(徐亮). 나이는 스물셋으로, 마교주의 일곱 제자 중 셋째.
교주가 직접 거둔 제자인 만큼 무재(武才)가 출중하고 감각이 빼어났다.
몸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는 제자들 사이에서 수위를 다투었을 만큼의 강자이기도 했다.
차기 교주의 위(位)에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한 명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주화입마에 걸려 모든 무공을 상실하고 반년 동안 의식을 잃었다.
‘마교의 삼공자라?’
강호삼세 중 천마신교에 대한 정보는 유독 강호에 잘 새어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그중 후보들에 대한 정보는 특히 비밀스러운 감이 있었다.
의천맹과 철혈성, 두 집단과는 달리 신교는 후보들을 철저하게 숨기는 노선을 택했다.
미지의 영역이 주는 공포. 그것은 곧 신교의 공포 정치의 연장이었다.
“성격은?”
“네?”
“성격은 어땠냐고.”
교주의 제자인 건 어느 정도 유추하긴 했다. 마교에서 공자님이라 불릴 만한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서량이란 놈에 대한 평판이었다.
이놈이 어떤 놈인지, 그간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야 혹시 모를 상황에 자연스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하녀가 우물쭈물했다.
천하진이 좋은 말로 그녀를 달랬다.
“알지. 내 다 알아. 당사자를 앞에 두고 꺼내기 힘든 말이라는 거 다 알지.”
“……네에.”
“하지만 말이야. 솔직하게, 가감 없이 듣고 싶어서 그래. 내가 몸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 좀 혼란스럽거든.
기억도 많은 부분이 사라진 것 같고.”
“앗! 그, 그러시군요.”
“응. 그러니까 말해 봐. 상세하고 확실하게.”
“그, 그래도…….”
“정 말하기 싫으면 별수 없지. 내가 뭐 명령을 내릴 처지도…….”
순간 하녀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명을 받듭니다! 냉혹무비한 성정으로 교내에서는 공포스러운 분으로 악명이 자자하셨습니다!
특히 일 처리에 예민하셔서 사소한 잘못도 그냥 넘기지 않으셨고! 그 때문에 불구가 되거나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으, 응?”
“필요하다면 어떠한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른 분이시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도살자! 악질! 개자식! 교내에서 암묵적으로 공자님을 가리키는 수식어입니다!”
하녀가 씩씩대며 숨을 골랐다.
천하진이 눈을 끔뻑였다.
도살자? 악질? 개자식?
“……진짜야?”
“네?”
“진짜냐고.”
“헙!”
하녀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명령’이란 단어에 자동으로 반응해 줄줄 읊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도저히 면전에다 뱉을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하진의 얼굴이 허탈해졌다.
“이건 뭐 음식물 찌꺼기급 쓰레기였잖아?”
“아, 아닙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오라…….”
“아니긴.”
“소녀를 죽여 주시옵소서!”
하녀가 납죽 엎드렸다.
천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의 삼공자씩이나 되는 놈한테 뭐 깨끗한 인성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수틀리면 불구를 만들거나 죽인다고? 진짜 도살자야 뭐야?
‘아냐. 어차피 여기서 살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찝찝함을 감출 수는 없다.
복잡한 눈으로 하녀를 내려다보던 천하진이 툭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왜 그러고 있냐.”
“죽여 주시옵소서!”
“뭘 틈만 나면 죽여 달래니. 일어나, 인마.”
“……네?”
“아오! 답답해!”
천하진이 그녀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자 하녀는 깜짝 놀라서 후다닥 일어났다.
“아이야.”
“넵!”
“마실 준비 좀 해라.”
“네?”
천하진의 눈이 반짝였다.
이전보다 한층 깊어진 안광에 하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쨌든 소심한 쪽은 아니었다는 거지?’
그렇다면?
‘어차피 흉포한 놈이었던 거, 조금 더 화끈하게 움직여도 의심은 안 사겠지.’
마실 좀 나갔다고 설마 삼공자씩이나 되는 사람을 구박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