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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화 (4/774)

4화. 웃기 어려운 날벼락 (3)

석 달 후.

“이상하군.”

창가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말하는 청년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흘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야. 석 달이 지났는데도 별 이상이 없단 말이지?”

“…….”

“심지어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가 있나?”

“…….”

“마공의 흔적이 강한 사람일수록 치명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그러하옵니다.”

“내력을 상실하고 단전이 날아가도 놈은 마인이야. 마기의 흔적이 몸에 확실히 남았을 거라고. 그럼 피폐해져야 정상 아닌가?”

“…….”

“하여간 신기한 놈일세그려. 그 지경이 되고도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군.”

“……공자님.”

“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하하, 얼마든지.”

“삼공자를 왜 그리 신경 쓰시는 겁니까?”

꽤나 위험한 질문이다. 적어도 모시는 입장에서 쉽게 물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청년이 피식 웃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 다 잊었나?”

“예?”

“그놈이 주화입마에 걸렸을 때 혈혼각주(血魂閣主)가 직접 말했어.

회생할 확률이 무(無)에 가깝다고. 운 좋게 깨어나도 반신불수 혹은 광증에 시달릴 거라 하였지. 하지만 놈은 지금 어떻지?”

“…….”

“항상 그랬지. 그놈은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났어. 막말로 일 년 뒤에 놈이 또 이전만큼 성장해 있을지 어찌 알겠나.”

“그럴 순 없을 겁니다.”

“알아, 나도. 그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 아는데…… 자꾸 날 불안하게 만드는군.”

“…….”

“나뿐만이 아니야. 아마 놈과 척을 진 사람들 대부분이 불안해하고 있을 거다. 그놈, 예전부터 워낙 운이 좋았거든.”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청년.

그러나 그의 눈빛은 조금씩, 조금씩 서늘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린이가 언제 오지?”

“오늘 아침 광동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내일 정오쯤 본산에 도착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반년 만의 귀교인가?”

“그렇습니다.”

“오면 내 방에 한번 들르라고 전해.”

청년의 미소가 짙어졌다.

“한때나마 명성 자자했던 보검에 녹이 슬었는지, 아니면 부러졌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 * *

파앙!

훅 밀려드는 바람에 하녀, 앵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천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이것밖에 안 되나.”

허공에 지른 주먹의 풍압이 만족스럽지 않다. 아직 원하는 만큼 근육과 관절을 풀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뭐, 그래도 봐 줄 만은 하네.”

지난 석 달 동안 이 거지 같은 몸뚱이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오만 애를 썼다.

정말이지 무애공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덕분에 체내의 탁기는 물론 잔존했던 마기의 흔적까지도 몽땅 날려 버리지 않았나. 십 년 묵은 때를 싹 밀어 버린 기분이었다.

‘전강탕이라고 했지? 그 덕도 많이 봤지.’

수뇌부한테만 허용되는 탕약이라더니 확실히 약발 하난 최고다.

상당량의 탁기와 대량의 마기를 씻어 내고 나선, 작정이라도 한 듯 원기를 빵빵하게 살려 주지 않았나.

처음에 인지하지 못했던 약력(藥力)도 두어 달 전부턴 느낄 수 있었다.

농축된 약력으로 근질(筋質)도 살리고 오장육부의 기능도 활발하게 만들었다.

가장 고무적인 건 내상을 대부분 치료한 것이다. 이제야 제 나이에 걸맞은 몸 상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 다 좋아. 다 좋은데…….’

천하진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으아아아!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어!’

석 달 동안 몸만 고쳐 놓은 게 아니다.

이 불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잠도 줄여 가며 머리를 굴렸다.

서량이란 놈의 성격을 듣고 나선 과감하게 앞뜰로 나가 이리저리 거닐기도 했다. 덕분에 주변 지형을 확실히 머리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얻은 결론은?

‘이 상태론 절대로 못 나간다.’

상부에서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거처 밖에 삼십여 명이나 되는 마인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놈들은 단순한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을 철저하게 가렸으며, 동시에 삼공자인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두 달 전, 굳게 마음을 먹고 나가려던 천하진을 막아선 호위무사는 이런 말을 했다.

- 완쾌하시기 전까지 공자님의 외출을 금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송구하오나 이 이상 나가실 수 없습니다.

이후로 열 번이 넘도록 외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놈들의 완강함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돌산을 방불케 했다.

어설픈 뇌물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세상 싸늘한 놈들.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천하진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몸부터 고치자.’

몸이 완쾌하기 전까지 외출을 못 한다며? 그럼 완쾌를 시키면 되잖아?

어차피 이 몸뚱이로는 살아갈 수도 없다. 그럴 바에야 이 기회에 몸을 고치면 된다.

확실한 목표가 생기자 회복에도 탄력이 붙었다. 역시 사람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교훈도 얻었다.

……이번에도 그 지랄들 떨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줘야지.

‘어쨌든 이 정도면 몸은 거의 다 고쳤어. 바깥 공기 좀 맡고 싶다 하고 슥 나가면 되겠지.’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진다.

‘나가는 즉시 남부에서 가장 가까운 안가(安家)로 들어간다.’

중원 곳곳에는 천하제일살수를 위한 안가들이 수십 개나 있었다.

그중 절반은 의천맹에서 만들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비밀리에 그가 직접 만들었다.

의천맹에서 도주한 이후의 사태를 대비해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근차근 만들어 둔 것이다.

영약이며 약초며, 온갖 비품들을 빼돌려 놨다. 거기만 가면 옛날 무위를 찾는 것도 시간문제다.

‘귀물들을 싹 정리해서 한밑천 마련해야지. 그리곤 중원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튀는 거다.’

용 꼬랑지보다는 뱀 대가리가 나은 법이다. 지긋지긋한 무림에서 벗어나, 왕 부럽지 않게 땅땅거리면서 살 것이다.

물론 마교에서 추적자들을 붙이겠지만 그거야 상관없지.

안가의 존재는 누구도 모를뿐더러, 예전 무위만 되찾으면 추적자의 눈에서 벗어나는 거야 식은 죽 먹기다.

안가에만 들어가면 돼. 내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인 거야.

“좋아. 괜히 시간 끌 것 없지.”

비장하게 중얼거린 천하진이 옷을 홀라당 벗었다.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것이었다.

“헉!”

얼굴이 빨개진 앵화가 후다닥 방을 나섰다.

‘왜 저래?’

석 달 넘게 인이 박이도록 봤으면서 새삼스레? 혹시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나간 건가?

뭐, 그럴 수 있지.

이곳을 나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사소한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된다.

천하진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평범한 무복으로 갈아입고는,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자, 합법적으로 나가는 거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고쳐 놨는데 또 잡지는 않겠지.’

천하진이 문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움찔!

‘……?’

천하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탁기를 잔뜩 걷어 내고 내상까지 치료했지만 그래 봤자 평범한 몸이다.

단전도 새로 만들긴 했지만 내력은 콩알만큼도 쌓아 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감각은 이전보다 무섭도록 날카로워져 있었다.

천하제일살수의 능력이 어디로 가진 않는다. 아직 초감각을 쓰진 못해도 여느 범부들보다는 훨씬 예민했다.

잠시 후 들려오는 목소리.

“안에 있지?”

“네? 아, 네! 계, 계시기는 한데…….”

“비켜.”

“그것이…… 일단 공자님께 말씀을 드려야…….”

짜아아악!

“악!”

천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앵화 쟤 지금 뺨 맞은 거야?

드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고 한 명의 여인이 등장했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남녀노소 누구라도 감탄을 금치 못할 미모다.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디찬 인상조차 흠이라기보다는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느껴졌다.

다소 권위적이고 나른해 보이는 분위기.

그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이에요.”

누구니, 넌?

천하진은 여인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기억에도 없는 사람에게 반갑다고 하기도 뭣하고, 나가라고 하기는 더 뭣하다.

여인의 눈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군요.”

“……아, 뭐.”

“…….”

“…….”

“계속 이렇게 세워 두실 건가요?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뭐야, 이 날강도 심보는? 허락도 없이 들어왔으면서 차까지 달라네.

천하진이 손을 저었다.

“미안한데 나중에 오쇼. 내가 지금 갈 데가 있어서.”

“……?”

“일단 좀 비켜 주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노닥거릴 때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신교에서 탈출하는 것, 그 하나에 맞춰져 있었다.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날 앞에 두고 비켜 달라고?

“어딜 가려고 그러시죠?”

“그냥 좀 갈 데가 있소. 길 막지 말고 비키시오.”

“설마 교주님께라도 가시려고요?”

천하진은 저도 모르게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교주라니. 차라리 칼 물고 엎어지는 게 낫지 교주한테 내가 왜 가냐!

“아니오.”

“그럼 됐네요. 얘기 좀 해요, 우리.”

“갈 데가 있다고 하잖소.”

“교주님을 뵙는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랑 대화부터 하는 게 우선이죠.”

“이보쇼.”

“차가 좀 그렇다면 술도 괜찮은데. 아! 몸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술은 무리일까요?”

천하진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진정한 인생 이 회차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어디서 이런 요물이 나타났담?

“거 말귀 못 알아듣네.”

“……?”

“차든 술이든 댁 거처에서 드쇼. 사람 속 시끄럽게 뭐 하는 거요?”

“……뭐라고요?”

“긴말하기 싫소. 나오시오. 정 뭐라도 드시고 싶으면 하녀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자시고 가셔.”

뭘까?

그녀는 지금 눈앞의 삼공자가 정말 본인이 알던 그 사람인지 헷갈렸다.

‘주화입마에 걸리고 나서 정신이 이상해지기라도 했나?’

그녀는 이전의 서량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 위, 숨길 수 없는 야망으로 이글거리던 눈빛.

근거 없는 여유와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투는 물론이요,

아닌 척하면서도 욕정 가득한 시선으로 훑어보던 짐승의 면모에 불편했던 적도 많았다.

그 모든 걸 애써 ‘냉혹함’이란 감정으로 포장하던, 지나칠 정도로 욕망에 충실했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거지?

‘저 바보처럼 다급한 눈은 또 뭐야?’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여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천하진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열린 문 너머로 들려오는 또 다른 발소리들.

곧이어 덩치 좋은 무사 두 명이 나타났다. 언뜻 보아도 일류에 이른 실력자들이었다.

여인이 끝까지 천하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삼공자님과 깊은 얘기를 나눌 거야. 얼마가 걸릴지 모르니 접근하는 사람들 전부 막아.”

두 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드르륵.

문이 닫혔다.

여인은 제 방이라도 된 듯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턱까지 괸 그녀의 자태는 몹시 매혹적이었다. 사내라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풍겼다.

“차를 마시는 건 나중으로 하죠.”

“…….”

“앉으세요.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나요?”

그때였다.

천하진이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관계에서 우위에 선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미소였다.

“나랑 대화하기 싫은가요?”

“…….”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당신이 계약을 어겼으니까. 지금까지 당신에게 투자한…….”

“너 이름이 뭐냐?”

“……?”

“이름이 뭐냐고 묻잖아.”

“……혹시 모를까 봐 말하는 건데, 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에요.”

“묻는 말에나 빨랑빨랑 대답해. 이름이 뭐야?”

여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장난은 아닌 것 같지만 제정신도 아닌 것 같네요. 이게 무슨 무례죠?”

“무례?”

“아무리 삼공자라도 내게 그런 언사는…….”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 천하진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드르륵!

무사들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비켜.”

“……?!”

“교주님의 제자를 억압했단 죄로 참수당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후딱후딱 비키는 게 좋을 거야.”

무사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여인의 눈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이봐요, 삼공…….”

“빨랑 비켜.”

“…….”

“안 비켜?”

천하진이 코웃음을 쳤다.

“충성심 봐라? 좋아, 내가 또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주의지. 그 충심에 걸맞은 대가는 섭섭지 않게 드릴게. 앵화야!”

“네, 공자님!”

한옆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앵화가 후다닥 뛰어왔다. 어찌나 호되게 맞았는지 뺨이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천하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삼공자를 억압, 구류하고 협박까지 하는 개종자들이 계시다고 밖에 전해라.”

“아, 네!”

“추가로 허락 없이 삼공자의 하녀한테 손찌검한 이름 모를 강도 년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 알겠지?”

“며, 명을 받듭니다!”

천하진이 사악하게 웃었다.

“충심의 대가로 목숨값 정도면 적당하지 싶은데, 어떻게 좀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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