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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7화 (7/774)

7화. 교주 대면 (2)

스르륵. 스르르륵.

탄탄하고 굴강한 어깨 위로 화려한 곤포(袞袍)가 조심스레 걸쳐졌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떡 벌어진 체격에서 풍겨 나오는 야성이 호화스러운 곤포가 자아내는 고귀함과 절묘하게 섞여 들었다.

무표정한 미녀가 그의 맵시를 만져 주었고, 다른 여인들은 그의 발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한참이나 떨어진 뒤편에서 한 중년 사내가 오체투지를 했다.

“교주님의 대공을 경하드리옵니다.”

꾸욱.

어느새 차림이 완성되었다.

사삭.

여인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지만 무척이나 빨랐다.

곤포 사내가 한옆에 놓인 큼직한 술잔을 들었다.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은 드러나지 않은 채였다.

꿀꺽꿀꺽.

천천히, 그러나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술잔을 비워 낸 그가 물었다.

“셋째는?”

오체투지를 한 중년 사내가 답했다.

“현재 마차를 타고 이동 중입니다. 일각 내로 궁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런가?”

“예, 교주님.”

곤포 사내가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콸콸 쏟아지는 투명한 술은 사천의 명주 검남춘(劍南春)이었다.

그리고 곧장 다시 비워지는 잔.

결코 급하지 않은 속도다. 황금으로 치장된 큼직한 술잔을 연거푸 세 번이나 비울 때까지 거의 반 각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중원의 여느 술이 그렇듯 검남춘도 상당히 독한 술이다.

그런 술을 물 마시듯 비워 버리고도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대호법.”

“예, 교주님.”

“셋째를 판마정(判魔亭)으로 안내하게.”

순간 중년 사내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명을 받듭니다.”

중년 사내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후 나갔다.

곤포의 사내는 나른한 얼굴로 길게 하품했다.

“겨울인가.”

* * *

두두두.

마차가 달리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마차 안은 무척이나 안락했다.

천하진은 의자를 쓸어 보았다.

‘어마어마하구만.’

평범한 마차가 아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내부에 금도금을 한 것은 물론 푹신한 방석까지 깔아 놓았다.

앉아서 눈만 감아도 곯아떨어질 만한 안락함이다. 여기서 반나절만 자고 일어나도 오만 피로가 다 가실 듯했다.

확실히 권력이 좋기는 좋다. 제자들이 타는 마차가 이 정돈데 교주가 타는 건 어떻겠어?

‘교주라.’

천하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짜 보긴 보는구나.’

강호를 살아가며 한 번은 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의천맹주,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늙은이가 언제고 자신을 마교로 보낼 것 같았으니까.

전생한 후에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어떤 사람일까.’

강호 무림에 적을 둔 사람치고 당대 천마(天魔)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끝없이 펼쳐진 구주천하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제대로 된 무력을 보여 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천하제일(天下第一)의 후보에 항상 거론되었던, 지금도 거론되는 사람.

그 긴장감 넘치는 신비는 지독한 호기심을 유발했다.

‘아니지. 중요한 건 그가 얼마나 강하냐가 아니야.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느냐지.’

당연히 착할 리는 없다. 강호 최악의 집단이라는 마교의 수장인데 착한 놈일 수가 없다.

분명 나쁜 놈이긴 할 텐데 얼마나 나쁜 놈일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만약 말도 섞기 싫을 만큼 나쁜 놈이라면…… 사실 지금 가서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통하는 최악까진 아닐 거야.’

의천맹주의 밑에 있으면서 천하진은 정사마(正邪魔)에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그들 모두 멍청한 수장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교주가 소문처럼 악(惡)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면 천마신교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단순한 인간이라면 천마신교란 초거대 집단을 다스릴 수 없었을 테니까.

당연히 엄청나게 똑똑할 것이며, 자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줄도 알 것이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선과 악, 둘 중 어느 곳에도 심취할 수가 없다. 각각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하진은 마교주가 그렇게까지 악랄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혼자서 마교주에 대한 공상의 나래를 펼치던 천하진은 이내 벌러덩 누워 버렸다.

“됐다, 됐어. 고민한다고 일이 좋게 풀리겠냐. 이미 저질러 버린 거, 일단 만나나 보는 거지.”

그는 푹신한 방석 위에서 한참이나 뒹굴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에이씨!”

벌떡 일어난 천하진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젠장! 빌어먹을! 조금만 더 신중할 걸 그랬나?”

그래도 마교주잖아? 당대 천마(天魔)잖아?

역대 천마신교의 교주를 지낸 자들 중 오롯이 천마(天魔)의 칭호를 받은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열 명도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가 당대 교주였다.

얼마나 끝장나게 강하면 제 입으로 당당하게 천마라고 칭하겠어?

‘응?’

천하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마교에서 일부러 소문을 조장한 걸 수도 있지 않아?

사실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은데 쪽팔리니까 체면 좀 세우자고 소문을 막 조장해서…….

“……시벌.”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등신아!

천마라는 단어는 마도 무림에서 신명(神名)과 동급이다. 고작 체면 살리자고 그 고귀한 명칭을 가져다 붙일 리가 없다.

결국 아까 생각한 대로 중요한 건 그의 무위가 아니라 성정이다.

‘그래도…… 약하면 마음의 위안이나마 될 텐데.’

불안감에 손톱을 뜯어 대던 천하진의 눈빛이 일순 싹 바뀌었다.

‘아니지? 그래도 내가 뭐, 어디 가서 꿀릴 만큼 약한 놈은 아니잖아?’

그 역시 전생에선 천하십대고수 중 하나로 손꼽혔던 몸 아닌가.

비록 정면 승부보다는 암살에 특화가 되긴 했지만, 그거야 배운 게 배운 거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게다가 나도 싸울 땐 나름 당당하게 싸웠다고.’

어디 가서 흰소리 취급이나 당할지 몰라도 사실이었다.

숨어서 사람 목 따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하다 하다 지겨워서 나중엔 복면 하나 뒤집어쓰고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 목표물만 죽이고 유유히 나오곤 했다.

심지어 그가 다루는 병장기도 한두 종류가 아니었다.

암살자라 하면 비수나 암기, 숯을 칠한 검 정도를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 실제로 그런 놈들이 대다수다 -

그는 창, 도끼, 채찍, 원앙월(鴛鴦鉞) 등은 물론 짱돌에 창틀까지 떼다가 무기로 쓴 기발한 인간이었다.

다루지 못하는 병기가 없고,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역사상 최강의 살수.

그게 바로 천하진, 암살의 대가 살왕(殺王)이었다.

“그래, 그렇지. 상대가 천마든 뭐든 나도 나름 한 끗발 날렸던 인간이다, 이거야.”

천하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로까지 불렸던 암살계의 신화!

암살자 출신이면서 최초로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으로 꼽혔던 강호 최악의 사신!

이 정도면 방귀는 못 뀌어도 콧바람 정도는 뿜을 수준이 되지 않나. 게다가 자신은 마교주의 제자 몸뚱이로 들어왔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쫄 필요 없다, 천하진. 당당하게 네 요구를 피력해!”

어느새 넘치는 자신감에 얼굴까지 붉게 달아오른 천하진.

하지만 그 자신감도 느려지는 마차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

천하진의 왼 다리가 부지불식간에 달달 떨리고, 검지는 허벅다리를 미친 듯이 두들겨 댔다.

“커험! 얼추 도착했나? 거참 생각보다 너무 빠른 거 아닌…… 흡!”

순간 천하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

뭐지? 뭐야?

‘감각이…….’

시야에 문제가 없는데도 사방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윙윙 이명이 들리는 것 같고 꿉꿉한 냄새가 코를 간질이는 것 같다.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고수?!’

그때, 저 멀리 마부석 쪽에서 무뚝뚝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서량 삼공자님이십니다.”

“입궁 허가서를 주시오.”

“여기 있습니다.”

“확인되었소. 들어가시오.”

또각또각.

마차를 모는 말발굽 소리.

뚝. 뚝.

천하진의 턱 밑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빌어먹을.’

마차가 멈추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시파, 괴물 새끼 아가리로 들어왔네.’

위이이이이잉!

그렇게 용을 써도 발동이 안 걸리던 초감각이 저도 모르게 발현되는 것 같았다.

본능이 감각의 예민함을 강제로 끌어 올릴 정도로, 이곳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무슨 고수들이 이렇게 많냐?’

그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알겠다.

이곳은 용담호혈(龍潭虎穴)이다.

강호의 십대고수급은 아니지만, 백대고수에는 충분히 낄 만한 초고수들이 못해도 다섯 이상은 은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열 배는 많은 수의 고수가 주위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마치 의천맹과 철혈성의 천라지망에 갇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숫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지만, 막막함은 그때 이상이다. 숨통이 턱턱 막혀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마신궁이라고 했나?’

교주전에 도착한 게 맞긴 맞는 모양인데.

‘호위가 엄청나. 절대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의천맹주의 호위도 굉장했다.

설령 혈고에 중독되지 않았어도 의천맹주를 잡으려면 석 달 정돈 사전 작업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러고도 성공 확률이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이쪽은 더하다.

숫자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호위에 극도로 특화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무위는 강호 정상급이다.

사람인 이상 이곳을 몰래 침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전 생의 살왕보다 두 배 이상 강해도 어림없다.

‘미친 것들! 교주가 그렇게 중요해? 뭐 소중한 놈이라고 이만한 병력을 때려 박는 거냐?!’

천하진은 내심 투덜댔지만, 그건 그가 천마신교의 생리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천마신교는 무파(武派)이자 종교. 즉 마신궁은 교주의 거처인 동시에 신전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마신궁을 지키는 것은 신전을 수호하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무공에 입문할 때부터 호위에 특화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고르고 고른 신교 최정예 호위무사들.

살왕이 아니라 사신이라도 침투하기 힘들다.

쿠구구궁!

언제 열렸는지도 몰랐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이만 내리시지요.”

“아, 알겠소.”

천하진은 긴장을 최대한 숨기며 마차에서 내렸다.

“교주님께서 공자를 판마정으로 부르셨습니다. 수행원과 함께 가시지요.”

“알겠소.”

판마정은 또 뭐야.

‘모르는 것 천지다, 천지.’

금방 뜰 곳이라 생각해서 굳이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그거 알아볼 시간에 몸이나 고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에 와선 그게 참 후회가 되었다. 이곳의 살벌한 분위기가 그런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았다.

천하진은 수행원의 안내를 받아 묵묵히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윽고 어둡고 칙칙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한 크기의 작은 문 앞에 도착하자 수행원이 고개를 숙였다.

“드시지요.”

천하진의 고개가 살짝 모로 기울었다.

‘판마정이라며? 정자 아니었어?’

아니야, 아니지. 다 안다는 듯이 행동하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괜한 의심 사지 말고.

몸을 바로 세운 수행원이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이이익.

마교 아니랄까 봐 문 열리는 소리도 음산하기 짝이 없군.

천하진이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후우우우웅!

눈을 뜨기도 힘들 만큼 강한 빛이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억?!’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조심스레 뜨인 천하진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그의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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