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0화 (10/774)

10화. 교주 대면 (5)

“공자님.”

“…….”

“공자님?”

“…….”

“저기…… 고, 공자님?”

앵화는 안절부절못했다.

사흘 전, 교주님을 알현하고 돌아오신 후 공자님께서 뭔가 많이 바뀌셨다.

평소에는 심법 연공도 하시고 밥도 꾸역꾸역 잘 드셨으며 측간도 하루에 대여섯 번은 가셨다. 잠도 꼭 세 시진은 주무셨다.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주무셨다. 건강한 삶을 위한 이상적인 일정이었다.

근데 지금 공자님은 어떠신가?

침상에 앉아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는데 헤 벌린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감히 허락 없이 닦아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놔뒀는데, 가만두면 홍수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밥도 많이 안 드시고, 잠은 주무시는지도 모르겠다. 측간에 가시는 횟수도 두세 번밖에 안 된다. 잘 드시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나마 심법 연공은 절대 빼먹지 않으시는 게 다행이랄까.

하지만 연공이 끝나면 다시 또 멍하니 침을 흘리셨다. 이 정도면 심각한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닐까 염려될 정도였다.

앵화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천하진의 머릿속은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지? 뭐야? 뭘까? 뭘꼬? 무엇?’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도대체 교주의 말이 어떤 의미지?

일단 거처로 돌아가서 쉬라는 거야 말 그대로 쉬라는 거니까 이해하고 말 것도 없었다.

한데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 봐도 사흘 후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날 보내 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냥 갈 거면 가라, 말 거면 마라 확답을 주면 안 되는 거였어? 내 머리를 이렇게까지 괴롭힐 필요가 있었던 거냐고?

천하진이 눈알을 하염없이 굴렸다.

보내 주겠지? 보내 줄 거지? 보내 줄 테지?

‘당연히 보낼 거야. 봤잖아? 마교주 그 곰탱이 같은 양반의 실망한 얼굴.’

장담하는데 그거 절대로 연기 아니다.

무공의 경지가 연기력까지 성장시키진 않는다. 오히려 약자들이야말로 연기에 능하다. 눈치를 보며 살아남아야 하니까.

결과적으로 교주는 연기를 잘할 인간이 아닐뿐더러, 연기를 할 필요도 없는 위치다.

천하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갈 수 있을 거야.’

한때나마 사랑스러웠던 제자 먼 길 가는데 옷이라도 좋은 놈 맞춰 주려고 하는지 누가 아나.

사흘 만에 명품 비단옷이 만들어질 것 같진 않지만, 그에 준하는 선물일는지도 모르지.

어차피 돈이 썩어 나는 인간인데 뭔들 못 해 주겠어?

그래, 그럴 거야. 교주도 사람인데 일말의 정은 있겠지.

합리화에 열을 올리던 천하진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맞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근데 난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지?

천하진이 한참 앞니로 손톱을 씹어 댈 때였다.

“공자님!”

깜짝 놀란 천하진이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용기를 내어 소릴 지른 앵화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혹시 사람 왔어?”

“네? 아, 아니요?”

“그럼 왜?”

“식사……하셔야지요. 아침도 거르셨는데.”

천하진이 배를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머리를 하도 치열하게 굴려 대는 통에 밥 먹을 생각도 못 했다.

“어, 먹자.”

“넵! 가지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 소박한 식사가 차려졌다.

굵고 긴 젓가락이 밥과 반찬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양 볼이 가득 부풀도록 음식을 쑤셔 넣은 천하진이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돌아오기 전, 주변 호위무사들도 싹 정리가 됐어.’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명령은 분명 교주를 통해서 내려온 것일 게다.

왜 호위무사들을 정리했을까? 그래도 나름 삼공자씩이나 되는 제잔데?

‘보내 주겠다는 거지.’

게다가 이틀에 한 번씩 꼬박꼬박 오던 의원도 안 온다. 이 역시 상부에서 개입한 게 틀림없다.

‘교주 정도의 고수라면 내 몸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것도 가능하니까.’

굳이 교주가 아니라 어지간한 절정고수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몸은 더 이상의 치료가 불필요하다.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충당될 정도다.

호위무사도 치워 주고 의원도 막았다. 말하자면 인력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그 의도가 가리키는 답은 하나!

“나강 수 이따…….”

“네? 공자님, 하명하실 것이 있으신지요?”

“엉? 앙이…… 꿀꺽! 아니, 없어.”

“아, 네!”

그는 다시 와구와구 밥을 욱여넣었다.

희망차고 긍정적인 해석에 힘이 났다. 앞으로도 힘낼 일이 많을 테니 밥부터 잘 먹어야 한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식사를 마친 천하진이 가부좌를 틀었다.

“꺼억! 시작해 볼까.”

식사는 곧 영양이고, 영양이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체외에서 얻을 수 있는 성분이다.

위장으로 음식물이 들어오는 즉시 오장육부는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 활발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 작용을 보다 가속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공, 그리고 심법이었다.

일단 몸이나 다듬자. 사람이 골골대면 할 일도 못 한다.

천하진이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츠츠츠츠.

그의 어깨 위로 은은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한옆에 서 있던 앵화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텁텁해지겠다.’

천하진이 심법을 운용하면 항상 공기가 텁텁해졌다. 딱히 냄새가 나는 건 아니지만 숨쉬기가 불편해질 만큼 공기가 습하고 무거웠다.

‘탁기(濁氣)를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지?’

앵화의 얼굴에 경외감이 감돌았다.

호신(護身)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녀 역시 심법을 수련한 마인이다.

내공도 거의 없는 몸으로 대량의 탁기를 몰아내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공자님의 상태가 양호해진 것은 침과 약 때문이 아니라 공자님 개인의 노력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응?’

앵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공기가 축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 상쾌해라.’

앵화는 저도 모르게 코를 벌렁거렸다. 어찌나 공기가 맑은지 연신 심호흡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뜻밖의 상쾌함에 앵화가 헤벌쭉 웃을 때.

‘어?!’

천하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무애공의 운기가 평소와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갑자기 경지가 껑충 뛰어 버렸다.

‘삼단공(三段功)?!’

무애공은 일단공부터 오단공까지의 단계로 나뉜다.

그중 삼단공까지는 꾸준히만 하면 도달하기 어렵지 않았으나 사단공부터는 무애공 자체의 깨달음이 남달라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전 생, 그가 살왕으로 한창 날뛰었을 적 도달했던 경지가 바로 사단공의 끝자락이었다.

천하십대고수로 꼽혔던 그의 실력을 생각하면 무애공이 얼마나 골치 아픈 무공인지 알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삼단공의 끝에 도달해 있다. 두어 번만 더 운기하면 대번에 사단공에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삼단공까지 도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지, 쉽다고는 안 했다.

깨달음이 있어도 족히 오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한 경지다.

이유인즉, 깨달음 이상으로 무공과 신체의 결합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석 달 내내 무애공만 붙잡았다고 해도 그렇지, 벌써 사단공을 넘보려 해?

‘설마…….’

천하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가 천재라서?’

농담할 때가 아냐, 인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위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기분 좋은 울림이 퍼져 나왔다.

그가 들숨을 마실 때면 방 안을 떠도는 미세한 탁기가 몸으로 스며들었고,

날숨을 내뱉을 때면 깨끗해진 기(氣)가 방 안의 공기를 청정하게 바꾸었다.

천하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화진결(淨化眞訣)까지 저절로 사용된다.’

무애공의 정화결.

체내의 탁기를 배출하고 치상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애공의 본질이다.

하지만 무애공에는 정화결이라는 독특한 공부가 있는데, 말 그대로 주변 공기를 정화하는 진결이었다.

탁기를 배출했던 것과 반대로 탁기를 끌어모은다. 당연히 잡스러운 기운이 사라진 공기는 깨끗해질 수밖에 없었다.

배출해도 모자랄 탁기를 외려 빨아들이면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느냐?

‘전혀!’

그의 몸에 남은 탁기의 찌꺼기는 무애공의 공능으로 쪼그라들어 내력화(內力化)가 된다.

물론 참새 눈곱보다도 작은 극소량에 불과했고, 평범하게 무애공을 운기해 얻는 내력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정화진결이 중요한 이유는 선순환(善循環)에 있었다.

영역 일대의 공기를 청정하게 만들고, 이후 다른 내공심법으로 진기를 쌓으면 평소보다 질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당연히 신공의 성취 역시 빠르고 신체도 더 강건해진다.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아도 일 년, 십 년이 지나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차이가 생긴다.

‘이게 웬 횡재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석 달 동안 피 토하는 심정으로 무애공만 붙들고 늘어졌더니 이런 복이 오는구나!

‘이제 됐어! 훨씬 빨리 되찾을 수 있다.’

그는 예전의 무력을 되찾는 데 걸릴 시간을 얼추 삼 년에서 오 년 안쪽으로 보았다.

물론 안가에서 영약을 취하는 걸 전제로 한 기간이었다.

하지만 정화진결까지 쓸 수 있다면 그 기간은 더 줄어들 터.

‘이 몸뚱이 나이가 스물셋이라고 했지?’

넉넉잡아 삼 년 만에 되찾는다고 하면, 스물여섯의 나이로 천하십대고수급의 무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와…… 이 정도면 진짜 고금제일의 천재 소리도 듣겠는데?’

천하진의 표정이 탐욕스럽게 변했다.

강호에 학을 뗐다지만 그라고 어찌 명예욕이 없겠는가?

게다가 이 젊은 몸에 초절정고수급의 무공을 쥐고 강호를 흔들어 대면 실로 세상 살맛 날 것이다.

무림은 한 천재의 등장에 환호하겠지? 살인마 아닌 여자들도 날 한 번쯤 눈여겨봐 주겠지?

명예가 올라갈 테니 돈도 알아서 딸려 들어오겠지?

‘……꿀꺽.’

혼자서 공상의 나래를 펼치던 천하진은 이내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멍청한 새끼.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냐? 무림은 사람 살 곳이 아냐.’

천재의 등장에 환호한다고?

하겠지. 환호하면서 뒷짐 진 손에 비수를 쥐고 있겠지.

여자들도 등골 빼먹을 놈 생겼다고 좋아하지, 진심으로 날 이해해 주진 않을 거야.

명예? 그거 먹을 순 있는 건가? 돈이야 안가에도 많다.

결정적으로 삼 년이든 오 년이든 젊은 놈인 건 똑같지 않나. 연성 기간이 조금 짧아졌다고 혹하다니, 너도 참 쉬운 놈이다.

‘주제를 알고 살자.’

잠깐의 욕망으로 삶을 망치진 말자고.

반나절 후.

“끄으으응!”

천하진이 기지개를 켰다.

앵화가 넙죽 엎드렸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응? 뭐가?”

“네? 아니…… 그냥…….”

느낌상 뭔가를 이루신 것 같아서 이런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천하진이 앵화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하하!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어쨌든 고맙다.”

앵화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공자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엄청나게 황송하다.

동시에 좀 시무룩해진다.

‘오늘 신경 써서 만진 건데…….’

이 머리 하려고 반 시진이 넘도록 공을 들였는데.

그래도 뭐, 공자님께서 좋아하니 됐다. 머리야 다시 만지면 되니까.

그렇게 한 청년은 기쁨에 울고 한 소녀는 복잡한 심경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쿵!

천하진의 고개가 창가로 홱 돌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거처의 대문.

“마신궁에서의 전언이오! 삼공자 서량은 속히 문을 열고 교주님의 성명(聖命)을 받드시오!”

천하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들어오세요! 어여 들어오세요!!”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