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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1화 (11/774)

11화. 인외마경(人外魔境) 고죽림(孤竹林) (1)

그동안은 생각할 여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새삼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마교의 거처인 십만대산(十萬大山)의 경치가 천하일품이라는 것이다.

탁 트인 시야에 우거진 나무들, 웅장한 산마루와 그 위를 덮은 나무들이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공기도 기가 막히게 맑다. 흉악하기 짝이 없는 마귀 놈들의 터전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황홀한 곳에서 사는 놈들 인성이 왜 그 모양들인지 알 수가 없다.

“후! 좋구나!”

진심이다. 살면서 한 번도 오지 못할 곳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코를 벌름거리던 천하진이 활짝 웃었다.

“대나무 향도 좋아.”

몸을 돌린 그의 시야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대나무 하나하나가 하늘이라도 찌를 것처럼 굵고 길다. 어떤 놈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굵어서 거의 통나무를 연상케 했다.

‘절경이네.’

꼿꼿한 대나무는 충절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과연 선현들께서 대나무를 사랑했던 이유를 알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전신의 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너무 뜨거워서 이거 다 불 질러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개새끼.”

주르륵.

턱 밑으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술을 하도 깨물었더니 상처가 잔뜩이었다.

“외출 좀 부탁한다니까 오히려 좌천을 보내? 니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이 망할 놈아!!”

천하진의 절규가 대숲 안을 뱅뱅 돌았다.

아니, 누가 연 끊는다고 했냐? 그냥 외출해서 바깥바람이나 쐬겠다고 한 거잖아!

도대체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런 곳에다가 짱박아 두는 거냐고오!!

머리를 움켜쥐며 절망에 빠진 천하진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슥 나타났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공자님. 위험한 발언이십니다.”

천하진이 고개를 돌렸다. 살기등등한 눈빛이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 저리 가라였다.

하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장년의 사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너 뭐라고 했냐?”

사내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을 향한 욕설 및 폭언은 그 자체로 즉참감입니다. 그것은 공자님과 공녀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야, 인마!”

“말씀하십시오.”

연신 씩씩거리던 천하진.

이윽고 조금씩 줄어드는 숨소리와 함께 그가 고개를 돌렸다.

“교주님께 욕한 건 아니었어.”

“…….”

“오해하지 마라.”

“그렇습니까?”

빌어먹을! 빌어먹을!

없는 자리에선 황제……까진 아니어도 왕……까지도 힘들지만 높으신 분 욕을 해도 잘못이 아니라 했다.

생각해 보니까 더 열 받네. 지가 무슨 황족이라도 돼? 뒤에서 욕도 하면 안 되는 거냐고!

‘시벌, 이 어두침침한 새끼들한텐 황제보다도 위긴 하지.’

황족 정도가 아니라 신(神)의 현신이라잖아.

이해는 한다만 솔직히 알 바 아니다. 너네한테나 신이지 나한테는 그냥 덩치 오지게 큰 무인 일(一)일 뿐이니까.

물론 그 덩치 큰 무인이 전무후무한 괴수급 강자라는 게 문제지만.

한창 투덜거리던 천하진이 마동필(馬凍筆)을 힐끔거렸다.

무뚝뚝하기가 천년거암에 준하는 놈이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는다.

가면 아냐, 저거? 그게 아니면 사람 새끼가 저럴 수 있나?

“호법원에서 오신 분이라고?”

마동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臣), 천마신교 호법원(護法院)의 삼 조장 마동필이라 합니다.”

“호법원의 조장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내 개인 호위무사가 되어 준다고?”

“받잡기 어렵습니다, 공자님. 본교의 존귀하신 분의 호위를 맡게 되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천하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삼생이니 영광이니 찬란한 단어들 집어치워!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그는 마동필의 눈을 보았다.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눈빛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럽다.

“목숨을 바쳐 삼공자님을 지켜 드릴 것을 파순(波旬)께 맹세하나이다.”

바치지 마…… 제발…….

‘이 징글징글한 것들!’

마교 싫다. 정말 너무 싫다. 도대체 너희가 절망 말고 나한테 준 게 뭐냐?

경치라도 좋지 않으냐고? 개소리 마라! 경치가 좋아서 더 농락당하는 것 같다!

“공자님, 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이만 안으로 들어가셔서 몸을 녹이는 것은 어떠신지요?”

“대나무 구경 중이니 방해하지 마쇼.”

“명을 받듭니다!”

새끼, 쓸데없이 진지하네.

콧방귀를 연거푸 세 번이나 뀌어 주고는 다시 대숲을 바라보는 천하진의 표정에 문득 허망함이 담겼다.

‘그나저나 시바, 이거 어떻게 하냐?’

고죽림이라고 했던가.

마교에게 이곳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멀쩡한 거처를 두고 이곳으로 자신을 보낸 교주 놈의 의도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다.

심지어 고죽림은 교주의 제자들이 거하는 교룡전(蛟龍殿)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숲이었다.

이 정도면 오히려 뇌옥에 갇히는 게 더 마음이 편할 지경이었다.

‘진짜 확 불이라도 질러 버려?’

살 곳이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주지 않을까? 날도 좀 건조한 것 같은데 불씨 하나만 떨어트리면 순식간에 타 버릴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진짜 나쁘지 않은데?

천하진의 얼굴이 음험한 빛을 띠었다.

‘심지어 매혹적이기까지 하군.’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아주 그냥 마교의 건물이란 건물은 죄다 불태우고 싶다.

‘…….’

천하진은 긴 한숨을 토했다.

‘정신 차려, 미친놈아. 불 지르면 뭐라고 변명할래?’

고기 구워 먹으려다가 싹 태웠다거나 느닷없는 벼락에 불탔다거나 하는 변명이 통할 놈들이 아니다.

‘좀 생산적인 생각 좀 해 보자.’

흔들리던 동공이 멈추고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삽시간에 태도를 바꿔 진지하게 고심하는 그의 얼굴은 구도자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그래, 난 시작부터 실수했던 건지도 몰라.’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이곳의 분위기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일단 그것부터가 기가 막힌다. 도망칠 거라면 당연히 그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부터 해야 했다.

‘너무 쉽게 본 거지.’

뼈저리게 후회가 됐다. 살수 시절엔 그리도 철두철미했던 놈이 바보가 되어 버린 건지.

마교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 준 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강호에서도 흉악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니, 무의식적으로 그런 놈들이라고 판단을 해 버렸을 수도 있다.

‘삼공자란 위치에 대한 자각도, 삼공자라는 직위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랐어.’

어쩌면 마교도 다른 문파처럼 사람 사는 동네일는지도 모른다. 앵화처럼 소심하고 선한 사람도 많을 수 있다.

정말 많이 봐줘서, 살기에 나쁘지 않은 동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래도 난 여기서 살 수 없어.’

네 발 달린 동물이 육지에서 사는 이유가 있듯, 물고기도 바다에 사는 이유가 있다. 이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요놈이라지만 그래도 마교는 아닌 것 같다.

결정적으로, 희대의 천운 덕에 두 번째 삶을 얻었는데도 굳이 조직이라는 것에 얽매여야 하나 싶었다.

천하진이 눈알을 굴려 댔다.

‘이렇게 된 이상 외출이니 뭐니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은 하지 말자.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 뭘.’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 정도는 해 볼까?

“이봐, 마 씨.”

마동필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마 씨? 생소한 부름이다. 윗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불렸던 기억이 없다.

그는 혹시라도 당혹스러운 표정이 들킬세라 평소보다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공자님.”

천하진의 표정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근데 부를 때마다 그렇게 고개를 조아릴 건가?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잖아.”

“송구하옵니다, 공자님. 존귀하신 분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옵니다.”

“…….”

“…….”

“좋아. 그거야 뭐 그렇다 치고.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하문하시옵소서.”

“댁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내가 주화입마에 걸렸다가 기사회생한 지 석 달이 좀 지났거든.”

“예.”

“답답해. 상당히 답답하고 깝깝한 상태야. 그래서 교외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은데 말이지.”

“…….”

“이거 뭐, 외출증 같은 거라도 끊어야 하는 건가?”

마동필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가면처럼 딱딱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누가 봐도 의아하단 기색을 품고 있었다.

천하진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왜? 절차가 좀 복잡한가?”

“그…….”

“아, 조심스러울 필요 없어. 그냥 시원시원하게 말해 봐.”

기대감 넘치는 얼굴을 들이밀자 마동필이 움찔했다.

의아함 이후 찾아온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신교에서 십 년이 넘도록 생활하신 분께서 그걸 모르실 수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높으신 분께서 하문하시니 아랫사람으로서 성심을 다해 답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리 말씀하시니 소신이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옳지, 옳지.”

“기본적으로 출교(出敎)는 상부의 정식 명령서가 발부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정식 명령서? 그게 어디서 떨어지는 건데?”

“내성 군사부(軍師府)에서 발부됩니다.”

“응? 군사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군사부로 가면 되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뭐야? 군사부에서 발부된다며? 가서 허가만 받으면 될 것 아냐.”

“일반적으론 그렇습니다.”

“빨랑빨랑 설명해 봐.”

“군사부보다도 우선되는 것이 바로 마신궁에서 하달된 명령입니다. 관습상, 제자분들은 교주님께 허락을 받지 않으면 교외 지역으로의 출타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고 있습니다.”

“…….”

“삼공자님께서 출교를 하시려면 군사부가 아니라 마신궁으로 가셔야 할 것입니다. 교주님을 알현하고 허락을 득하신다면 굳이 군사부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렇사옵니다.”

“응…… 설명 고마워.”

“그 말씀은 받잡기 어렵사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든 마동필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천하진을 바라보았다.

잠깐 새에 천하진의 얼굴이 십 년은 족히 늙어 보인 탓이었다.

심중에 무언가 우환이라도 있으신 건가? 잠시 망설이던 마동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송구하옵니다만, 공자님.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옥체에 해라도 갈까 심히 염려가…….”

“오냐 그래, 들어가자.”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천하진은 마동필의 안내를 받으며 고죽림 안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려서일까.

천하진은 보지 못했다. 무뚝뚝한 마동필의 얼굴에 한 줄기 긴장의 빛이 스치는 것을.

그가 자꾸 날씨를 들먹이며 속히 들어가자고 한 이유를 알게 되는 날.

바로 그때, 천하진은 이천상의 멱살을 잡아야 할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었다.

사아아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댓잎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음산함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 * *

그날 밤, 마동필은 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상, 삼공자님에 대한 보고를 마칩니다.”

“고생했다.”

창가 앞에 선 무담의 얼굴에 음영이 졌다.

“네 임무가 막중하다. 앞으로도 성심을 다해서 모시도록 하라.”

“예.”

“이만 가 보도록.”

“…….”

“달리 할 말이라도 있나?”

잠시 망설이던 마동필이 용기를 내 물었다.

“원주님.”

“그래.”

“불경한 질문을 드리는 점, 미리 사죄드립니다. 하나 호위무사로서 호위 대상에 대한 기초 정보는 필수이기에 감히 여쭙니다.”

“말해 보라.”

“혹, 공자님께서 입마에 드신 후 기억에 손상을 입으셨는지요?”

무담의 얼굴에 의아함이 맺혔다.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는가?”

마동필은 고죽림에서의 대화를 상세히 고했다.

묵묵히 그의 말을 듣던 무담이 답했다.

“삼 조장, 네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이해했다.”

“…….”

“허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말라. 지금 네가 모시는 분은 평범한 수뇌부가 아니라, 차후 본교의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있는 일곱 분 중 한 분이시다.”

“…….”

“그저 농담 상대가 필요하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기억을 잃으셨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의문은 품지 말라.”

무담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후계분들의 호위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지. 그래서 내 특별히 널 파견한 것이다.”

“……예.”

“이만 돌아가라.”

짧게 읍한 마동필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미소 짓던 무담의 얼굴 위로 한 줄기 싸늘한 기색이 흘렀다.

‘기억이라…….’

그는 책장 한 편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들었다.

내성의 의방인 혈혼각에서 지난 석 달간 교내 환자들에게 처방한 약재 목록이었다.

꾸욱.

차분한 눈길로 목록을 살피던 무담의 턱에 일순 굵은 힘줄이 돋았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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