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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4화 (14/774)

14화. 인외마경(人外魔境) 고죽림(孤竹林) (4)

콰득!

부서진 창틀이 애처롭게 땅을 나뒹굴었다.

파바바박!

본능적으로 침상 아래로 구른 서량의 눈에 붉은 듯, 푸른 듯 묘한 색깔의 깃털이 보였다.

‘깃털이라고?!’

까가가가각!!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검 끝으로 철판을 긁을 때 나는 기괴한 소리에 서량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억!’

푸드드득!

과격한 날갯짓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쭉 뻗은 다리와 그 끝의 발톱이 몹시 다부졌다. 펄럭이는 날개도 무척이나 커서 하나하나가 어린아이 몸통만 했다.

서량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뭔 놈의 새…….’

……가 아니다!

“저거?!”

서량의 눈이 소처럼 툭 불거졌다.

그렇다. 느닷없이 창틀을 부수고 뛰어 들어와 그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든 존재는 새가 아니었다.

“……닭?”

그것도 엄청나게 큰 닭이다. 하나 평범한 닭이 아니었다.

평범한 닭은 죽었다 깨나도 이런 박력을 풍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아아아악.

짧은 거리를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이쪽을 쏘아보는 눈길.

처음 새를 본 아이에게 조류 공포증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안광이다. 광폭하게 일렁이는 푸른 눈빛은 맹수의 그것에 비견될 만했다.

서량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지금 닭한테 공격을 받…….”

순간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다다다다닥.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하는데 바닥을 딛는 소리가 여러 번 난다.

파라라라락!

위협적으로 펄럭이는 날갯짓의 소리도 풍부하다. 한 쌍의 날개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소리요, 풍압이었다.

결정적으로…….

덜렁덜렁.

꼿꼿하게 목을 세우고 자신을 노려보는 닭대가리.

그 대가리의 좌우로 축 늘어진 또 다른 두 개의 대가리가 있었다.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 보고 있자면 ‘숙면’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의 대가리가.

그 말도 안 되는 생물체를 멍하니 응시하던 서량이 입을 헤 벌렸다.

‘다리가 여섯 개고, 날개랑 대가리는 세 개…….’

뭐야, 이 염라대왕 앞잡이나 할 법한 변종 대계(大鷄)는?

풍부한 깃털에는 윤기가 좔좔 흘렀고 바닥을 찍은 발톱은 철판도 찢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고개를 까딱이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눈을 보면 이게 사람 눈알인지 짐승 눈알인지 판단이 안 선다.

도저히 신성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너무나도 기괴하고 거대한 변종 닭에 서량은 정신이 다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이게 다 무슨…… 설마 꿈이냐?’

그럴 리가 없다. 천하제일살수라 불리며 온갖 전설을 찍은 몸이시다. 현실과 꿈을 혼동할 실력이 아니다.

다다닥.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바닥을 살살 긁으며 고개를 낮추는 닭. 그 흉포한 눈빛에 너무나도 솔직한 공격 의사가 어려 있었다.

‘빌어먹을!’

서량은 다급히 침상 위로 손을 뻗어 부서진 창틀 조각을 움켜쥐었다.

꽤애애애액!

동시에 닭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닭이 아니라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표범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천라육통식!’

지이이이잉!!

그를 둘러싼 세상이 느려졌다.

* * *

철컹!

마동필이 힐끔 어깨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자루에 담긴 십여 개의 병장기. 신병이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실력의 장인이 만든 물건들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는 내심 의아했다.

‘한데 왜 이리 많은 병장기를 필요로 하시는 거지?’

삼공자에 대한 신상 명세는 진즉에 파악해 둔 그였다.

원래 삼공자께선 검(劍)을 주로 다루셨다고 했다. 패도적인 강검(强劍)이 장기이며, 그 와중에 섬세함과 쾌속함을 잃지 않아 검법가로서 이미 일가(一家)를 이룬 실력자라고.

‘혹시 모르지. 병장기를 쥐시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그래서 검은 특별히 길이별로 네 자루를 넣었다. 흉포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공자님께서 기억을 되찾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냐. 그런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저 삼공자님의 호위무사일 뿐이다.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돼.’

그는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식수는 충분하고, 건량 등의 식료품도 한 달 치는 구비되어 있다. 의복도 넉넉하군.”

그래도 삼공자라고 환희원(歡喜院)에서 상당히 신경을 써 주어서 다행이다. 맨몸으로 살기에 고죽림은 너무 살벌한 곳이니까.

‘생필품 걱정이라도 없는 게 다행이지.’

마동필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역시 단순 호위무사는 아니로군.’

무공 약한 시녀를 데려올 수도 없다. 자칫하다간 죽어 버릴 테니까. 다른 걸 떠나 고죽림에 들어올 자격도 되지 않는다.

결국, 삼공자님의 수발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오히려 나 혼자가 나을 수도 있어. 남한테 맡기느니 내가 도맡아 하는 것이 신경도 덜 쓰…….’

우뚝.

마동필의 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

바람이 불었다.

짙은 혈향(血香)을 머금고, 고죽림 안쪽에서부터.

그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파아아앙!

급박하기 짝이 없는 몸놀림에 주변 대나무들이 휙휙 지나쳤다.

마동필이 외쳤다.

“공자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고죽림의 위험도를 생각하면 이렇게 소리쳐서도 안 된다. 단순 육성이라면 모를까 내공이 실린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동필은 그마저도 잊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공자님! 공자님!!”

파아앙! 파아아앙!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그의 눈에 고죽림의 거처로 쓰이는 성죽원(城竹院)이 보였다.

박살 난 성죽원의 돌벽과, 마찬가지로 산산조각 난 공자님의 방 창틀도.

‘이!’

파아아악!

순식간에 돌벽을 뛰어넘은 마동필의 눈에 잔뜩 핏발이 섰다.

“공자님! 어디에…….”

“서 공자라고 부르라 했잖아.”

파바박!

한가로운 목소리에 마동필이 짧게 공중을 밟아 가며 감속했다.

“오? 실력 좋은데?”

촤르르륵!

재빨리 병장기들을 내던진 그가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서량이 평상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왔냐.”

“고,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서 공자라고.”

서량의 얼굴은 극도로 피로해 보였다.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려던 마동필이 멈칫했다.

평상 옆에 피투성이가 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너부러져 있었다. 새의 몸통에는 부서진 창틀은 물론 찻잔 조각, 곡괭이 등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창부(蒼芙).”

“그게 이 닭대가리의 이름인가 보지?”

“아, 예. 그나저나 상처부터…….”

“내 피 아냐.”

“예?”

당황한 마동필이 안력을 돋웠다.

‘…….’

정말이다. 서량의 몸은 피로 물들기는 했지만, 긁힌 생채기 몇 개 빼고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체력 소모가 심했는지 안색이 창백하긴 했어도, 저 괴조(怪鳥)를 상대로 그 정도면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마동필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서량이 무척이나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양민, 즉 범부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내공이 조금 있기야 하지만 그거야 없느니만 못한 양이지 않나.

“……설마 혼자서 잡으신 겁니까?”

“그럼 여기에 나 말고 누가 있냐.”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창부의 위험도는 표범에 준한다. 그런 맹금을 고작 몸 좀 건강한 사람이 때려잡았단다.

흔적을 보니 창부가 기습까지 한 모양인데, 그럼 더더욱 말이 안 되지 않나.

“마 씨.”

마동필이 서량을 보았다.

움찔!

순간 등허리가 축축해지고 오금이 저려 왔다.

이틀 만에 말을 걸었던 그때의 안광과 비슷하다. 아니, 혈향을 맡아 더욱 음산해진 서량의 눈빛은 당시보다 더 지독했다.

투명한 안광 속에 드리워진 은은한 살의(殺意).

마동필이 침을 삼켰다.

‘저 눈은…….’

시선만으로 압도되는 이 느낌은 호법원주님, 대호법을 뵈었을 때와 비슷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했다. 호법원주님에게서는 위엄이 느껴졌지만 삼공자님에게서는 그보다 원초적인 흉악함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제 목에 칼을 박아 넣을 듯한 흉흉함.

마치 이것이야말로 나의 진짜 모습이라는 듯, 무서운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설명 좀 들어야겠어. 네가 이 닭대가리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 고죽림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전부.”

마동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공자님을 뵐 낯이 없었다.

“이곳은…….”

어렵사리 입을 뗀 마동필의 간략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고죽림.

천마신교가 터를 잡기 전부터 존재해 온 천연의 마림(魔林).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목기(木氣)를 가진 대나무들이 자라나는 곳이며, 그만큼 공기도 좋다. 이곳에 집약된 영기(靈氣)가 천하 어떤 명산보다 짙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그 영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지 않고, 정확히 이 대숲을 이루는 영역 안에서만 돌고 돈다는 것이다.

대숲 내부에서 순환하는 영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농축되고, 농축된 영기는 청정한 자연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까마득한 세월 대숲 안을 휘돌며 세를 키운 영기는 단순히 기(氣)로만 머물지 않았다.

“농축된 영기 덕에 목기(木氣)만이 아닌 지기(地氣)까지도 증폭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대나무들은 유독 굵고 튼튼합니다.”

“수명이 아주 짧아 보이던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만큼 평범한 대나무들보다 죽순(竹筍)의 성장 속도 역시 몇 배는 더 빠르지요. 해서 숲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중 몇몇 대나무들은, 그저 굵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 이상의 힘을 품기도 합니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진귀한 약초가 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정확히는 독약(毒藥)이자 영약(靈藥)이지요. 영기가 너무 짙어서 수십 번의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가 없으니까요.”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본교가 만드는 마단(魔丹)의 절반 이상이 이곳, 고죽림에서 채취하는 대나무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서량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뭐야? 그러면 영약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거야?”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마동필이 피투성이가 된 창부를 내려다보았다.

서량의 시선도 그를 따라 이동했다.

“약으로 쓸 만한 대나무들 대다수가 안쪽에 몰려 있습니다. 문제는 그곳을 지키는 영물이자 귀물들의 존재이지요.”

“……그게 요놈들이라고?”

“그렇습니다. 가장 약한 개체이긴 하지만.”

“약한 개체? 더 강한 놈들도 있다는 거야?”

“창부는 가장 하위의 개체입니다. 또한 확인된 개체 중 중급(中級) 정도의 귀물만 되어도 능히 절정고수를 상대할 만큼 강합니다.”

“……!”

마동필이 한숨을 쉬었다.

“해서, 한 해에 두 번, 영죽(靈竹)을 채취하러 대호법을 비롯한 본교의 최고위 인사들께서 들르십니다. 고죽림의 최심부는 그분들도 긴장해야 할 만큼 위험하지요.”

“그렇구만.”

“물론 지금 이곳도 아주 안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고죽림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이지요. 지금은 창부가 날뛸 때가 아닌데, 저의 오만함으로 공자님을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침중하게 말을 맺은 마동필이 무릎을 꿇었다.

“죽여 주시옵소서.”

“괜찮으니까 일어나. 앞으로 잘하면 됐지, 인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여기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란 말이지?”

고개를 주억거리던 서량은 문득 무엇을 깨달았는지 눈을 끔뻑였다.

잠깐만?

“그럼 교주……님께서는 왜 이런 곳에다가 나를?”

“…….”

“……시발?”

마동필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교주님께 불손한…….”

“시끄러!”

“예에.”

서량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게졌다.

이런 오체분시를 해도 모자랄 곰탱이 같으니! 그냥 안에다 박아 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지(死地)로 내몰았단 말이야?!

누가 반역이라도 저지른다디?!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을 했냐, 이 미친 마귀 놈아!!

꼬르르르륵.

“…….”

순간 묘한 정적이 일었다.

서량과 마동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마 씨.”

“예, 서 공자님.”

“솥 있냐.”

“물론입니다. 한데 갑자기 솥은 왜……?”

서량이 죽은 창부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동필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물 올리고 죽순 몇 개 뽑아 와. 손질은 내가 하지.”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남은 얘기는 먹으면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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