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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5화 (15/774)

15화. 인외마경(人外魔境) 고죽림(孤竹林) (5)

“……이상이 고죽림에 대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쩝쩝, 그렇단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응? 뭐 해? 마 씨도 먹어. 다리 많아서 좋네.”

“저는 괜찮습니다. 서 공자님께서 많이 드십시오.”

“그래도 하나 하지 그래? 다리 하나만 먹어도 엄청 배불러. 육질도 연하고 잡내도 안 나. 별미다, 별미.”

마동필의 얼굴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손과 입에 기름을 잔뜩 묻혀 가며 고기를 씹어 대는 서량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고죽림을 오가며 대숲을 관리했다. 그런 그에게 창부는 경계하고 죽여야 할 대상이었지, 절대 식료품은 아니었다.

‘설마 삶아 드실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본인을 죽이려던 맹금 아닌가.

섬세하게 쭉쭉 찢어 낸 살코기를 씹어 삼키는 서량의 모습은 엄청 행복해 보였다. 하긴 요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드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우웁!’

귀물 몇 마리를 뿌리치고 도망치다 어이없이 창부의 발톱에 긁힌 상처가 아직도 허리에 남아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솔솔 올라오는 백숙 냄새가 역하기만 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 표정은? 역겹냐?”

“아, 아닙니다!”

“너희는 이렇게 안 해 먹었어?”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다. 어떻게 저 흉악한 귀물을 삶아 먹을 생각까지 하셨습니까?

“저희는 딱히…….”

“하긴, 임무 끝나고 돌아가면 맛난 요리 잔뜩 해서 먹을 텐데 쓸데없이 직접 손질까지 해서 먹을 필요는 없었겠지.”

“그, 그렇습니다.”

“쯧쯧, 그래도 몸보신용으로 딱 좋은데 시도라도 해 보지. 바보도 아니고.”

마동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보라뇨? 굳이 귀물이 아니어도 몸보신할 요리는 많습니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귀물이 몸보신이 될 리가 없잖아요?!

숫제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그는 겨우겨우 삼켰다. 생각은 생각으로 놔두어야 한다. 이 불경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 입으로 나오는 순간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서량이 그들을 바보 취급한 건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농축된 영기 때문에 대나무가 영죽이 되었다며? 영약의 주재료가 될 만큼 엄청난 약재라며?”

“그렇습니다.”

“그럼 이놈들도 비슷하지 않겠냐?”

“……?”

“이놈 몸뚱이 봐라. 상식과는 구만리 떨어진 모양새잖아. 왜 이렇게 변했겠어? 여기 대나무들처럼 다 농축된 영기 때문 아니겠냐고.”

“……?!”

“즉 이놈들 몸에도 영기가 꽉꽉 들어차 있다는 뜻 아니겠어? 먹으면 내공 증진에 효험이 있을 줄 누가 아냐? 혹시 그게 아니더라도 원기 정도는 살려 줄지도 모르고.”

마동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하지만 듣다 보니 그럴싸하지 않은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말이야.”

“…….”

“마 씨?”

“예? 아, 예! 서 공자님. 하문하시옵소서.”

“이 닭대가리 이름이 왜 창부냐?”

마동필이 머리를 긁적였다. 무뚝뚝한 군인 같던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선배들이 그렇게 불러서 저도 잘은…….”

“그래? 뭐, 그럼 그런가 보지.”

서량이 옷에 손을 슥슥 닦았다. 질퍽한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앞섶을 본 마동필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저 옷, 내가 빨아야 하는데.

안 그래도 피범벅이 된 터라 고생깨나 해야 할 듯한데 거기에 기름이라니. 그는 환희원에 새 의복을 달라고 요청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공자님 방도 보수해야 하고, 숲 내 방진(防陣)도 다시 만들어야겠지. 혹시 또 창부가 나타날지 모르니 놈들이 싫어하는 초향(醋香)도 좀 뿌려 두는 것이…….’

이런저런 고민에 한숨을 푹푹 쉬던 마동필은 순간 서량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곤 깜짝 놀랐다.

“고…… 아니, 서 공자님?!”

그때, 마당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기 있어. 물 마시러 나왔으니까.”

“아, 예.”

우물쭈물 쪼그려 앉은 마동필의 눈에 문득 솥이 보였다.

‘…….’

양이 많긴 많다.

‘내공 증진이라?’

솔깃하기 그지없는 가능성에 마동필이 코를 벌름거렸다.

왜일까? 진한 백숙 향이 아까와는 달리 그리 역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가슴살을 뜯었다. 워낙 큰 놈이다 보니 얇게 뜯었는데도 국수 면발처럼 길었다.

마동필이 살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퍽퍽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기름기는 없지만 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마냥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마동필은 가슴살을 몇 번 더 찢어 먹었다. 어째 먹으면 먹을수록 혀에 착착 감기는 것 같다.

‘편견만 버리면 제법 요리다운 맛…….’

다시 길쭉한 살점을 찢어 내던 마동필은, 한 줄기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곤 움찔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주방으로 들어온 서량이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맛이 어때?”

마동필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일품입니다.”

“그러게 먹으라니까, 짜식이.”

“송구하옵니다.”

“그만 좀 송구하고 본격적으로 씹어 보자. 다리 하나 뜯어.”

“저는 이제 괜찮…….”

“뜯어, 인마.”

“예.”

그렇게 두 사람은 주방에 쪼그려 앉아 엄청나게 큰 백숙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천하의 이천상도 본인 제자가 고죽림에서 귀물을 잡아먹으며 살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으으, 배 터지겠다.”

“후루룩.”

“너 국물도 마시냐?”

“…….”

“많이 먹어라.”

“후루룩.”

* * *

두 사람은 거처 주변 대숲으로 들어갔다.

“이 주변에 설치해 두었다고?”

“그렇습니다. 총 여덟 방위를 점한 진법으로, 지형지물에만 능통하면 나뭇가지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는 기초적인…….”

“팔각진(八角陣)이네.”

“아, 진법도 공부하셨습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나저나 잘 지어 놨네. 변칙적으로 개량했는데도 용케 제 역할을 하고 있어.”

“알아봐 주시는군요.”

“알아보고 말 것도 없어. 그냥 보면 보이는 걸 뭐.”

마동필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진법은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공부다. 단순히 지식 좀 있다고 해서 척 보고 알 만큼 가벼운 공부가 아니었다.

‘대단하시구나.’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교주님의 제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무공만이 아니라 다방면에도 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눈빛.’

유심히 대숲을 둘러보는 서량.

그런 서량을 보는 마동필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도대체 삼공자님은 어떤 분이실까.’

한없이 가볍게 보이다가도, 한 번씩 진지해질 땐 감히 범접기 힘든 존재감을 풍겼다.

눈빛만 보면 이미 천하 정점에 도달한 초고수라 해도 믿을 정도로 인상적인 눈빛. 하물며 주화입마로 무공을 상실했음에도 딱히 좌절하는 기색이 없다. 아마 자신이 그랬다면 극도의 우울감에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못 꿨겠지.

게다가 평범한 사람은 입문(入門)에만 이삼 년은 걸린다는 진법 지식도 놀랍다. 신교에 대한 여러 기억은 잃으셨으면서 정작 흉흉한 강호에 필요한 기억은 잃지 않으셨다.

알면 알수록 의아함만 쌓이게 하는 분.

“마 씨.”

“예, 서 공자님.”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

“공자님께선 생각이 없으신지요?”

“저녁 생각은 없는데 다른 생각이 너무 많네. 정리 좀 해야 할 것 같아. 보수는 대충 하고 너도 좀 쉬어.”

“아, 알겠습니다.”

서량은 휘적거리며 침소로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진마공의 비급을 들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정독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게 맞겠어.’

이제 와서 다시 마공을 익힌다?

그렇다. 할 수는 있다. 비록 살수질을 했지만 암영기를 고안하는 과정에까지 참여했던 그다. 무공을 보는 안목만큼은 다른 십대고수들보다도 한 수 위였다.

하지만 그런 안목으로도 고차원적인 마공을 속성으로 연성하긴 힘들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가장 빠르게, 가장 강하게, 가장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무공.

“역시 암영기를 포기할 순 없어. 무조건 암영기로 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마공을 익히지 않는가?

아니다.

서량이 비급을 흔들었다.

“이리저리 요모조모 따져 봐도 이만한 게 없네.”

진마공(眞魔功).

마환공(魔煥功)과 함께 신교를 지탱하는 두 가지 기초공 중 하나.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저 두 개의 무공은 십대마공에 비하면 보름달 앞에 반딧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마공과 마환공엔 십대마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었다.

“확실해. 마환공은 모르겠지만 십대마공 중 몇몇 개는 진마공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야.”

천하진이 독파한 세 가지의 십대마공 중 두 가지에 진마공의 구결이 팔 할 이상 녹아 있었다.

알아볼 수 없게 꼬아 놓긴 했지만 그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분명 혈화마공(血禍魔功)과 포천금마공(捕天禁魔功)은 진마공의 개량형이었다.

특히나 포천금마공의 경우 다른 열네 개의 비급 중 몇몇 마공들도 조합된 무공이었다.

사이함으론 혈화마공이 한 수 위지만 위력 면에서는 포천금마공이 앞선다. 수준 낮은 마공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훨씬 더 고차원적인 마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암영기도 같다.

‘암영기는 세대를 이어 보완한 끝에 완성에 이른 구파의 절학들과는 달라. 아직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어린 무공이다.’

그 자체로 뛰어난 기공이지만 미완성인 무공. 즉 어떻게 손보느냐에 따라서 기공의 성질, 성격, 수준이 전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각으로 서량은 진마공을 선택했다.

그렇게 되면?

“……마공(魔功)이 되겠지.”

깨끗한 물에 먹 한 방울 떨어트리면 그릇 전체가 오염된다.

마공이 바로 그와 같다. 특히 진마공은 원초적인 마기의 운용에 있어 십대마공을 한참 앞섰다. 말 그대로 천마신교가 보유한 수많은 마학(魔學)들의 부모라 할 만했다.

서량은 망설였다.

개량하는 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결합이 너무 쉬워서 문제다. 암영기 자체가 개선의 여지가 있는 무공이었고 그 조각으로 진마공은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마공이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비록 양극에 선 무공들이지만, 작정하고 몰두하면 열흘 안에 구결까지 몽땅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무공은 상성이 좋았다.

아마 새로이 탄생한 무공은 적어도 암영기보다 파괴적일 것이고, 진마공보다 안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서량이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별수 없어. 이미 마음먹었잖아? 여기서 어물쩍거렸다가는 평생 못 벗어난다고.’

단순히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다. 능력 없는 삼공자로 살다가 정쟁에 휘말려 애먼 놈 칼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이곳 고죽림.

위험천만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잘만 하면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영약까지 뽑아 먹을 수도 있다.

영죽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헛소리!

공기 중의 탁기까지 정화하는 무애공이 있다. 시간은 좀 필요하겠지만 온전한 영약으로 바꾸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모든 상황이 내 선택을 하나로 종용하고 있잖아.”

서량의 눈에 결심의 빛이 어렸다.

“그렇다면 해 보는 거지, 뭐. 어차피 다른 수도 없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복잡한 생각으로 시간을 죽이는 게 더 아까운 짓이다.

“시작해 보자.”

서량은 본격적으로 본인의 암영기와 진마공, 그리고 주춧돌이 될 몇 개의 마공들을 추려 무공 개량에 들어갔다.

짐작대로 무공의 개량은 어렵지 않았다. 마치 암영기를 들고 천마신교로 들어온 것 자체가 운명이라 느껴질 만큼 순조로웠다.

그렇게 열흘하고도 이틀이 지나 그는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다.

새로운 무공은 일말의 씁쓸함마저 날려 버릴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스스로 체계를 정립해 놓고도 대성(大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고차원적인 무공이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이 만든 새 무공을 연성하며 천천히 고죽림에 적응해 갔다.

새 무공을 연성한 지 보름.

그는 귀물들의 습격을 받았고,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시 한 달 후.

본격적인 고죽림 탐방을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 그는 또 다른 귀물들과 만났다. 그 전투에서 그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석 달이 지나고 무공의 탄력을 받은 그는 고죽림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영죽 하나를 발견했다.

그 지역을 지키는 귀물과 피 터지도록 싸우고 나서 겨우 얻은 영죽은 천만다행으로 무애공의 정화진기로 독을 제거할 수 있었다.

더 깊숙한 지역을 향한 모험, 빠르게 몸에 붙는 무공, 그리고 헤아리기 어려운 생사의 경험까지.

한 달, 한 달, 그리고 또 한 달.

서량이 고죽림에 들어온 지 어언 팔 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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