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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7화 (17/774)

17화. 탈출의 이유 (2)

마동필이 기양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조장님도 계셨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양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이군성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팔 개월 만에 보는 마동필의 모습.

무뚝뚝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좌측 눈가에 종(縱)으로 그어진 흉터가 있었다.

병장기에 베인 흉터가 아니었다. 날카로우면서도 뭉툭한 무언가에 깊게 파인 자국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눈은 다치지 않은 듯했지만…….

하지만 두 사람이 놀란 것은 단순히 흉터 때문이 아니었다.

스르륵.

방 안의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마동필의 몸에서 뿜어지는 위험한 기운에 두 사람은 흠칫 놀랐다.

‘……살기?’

흐르는 기도에 범상치 않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호법원 내, 원주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고수라는 두 사람이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독한 살기였다.

마동필이 이군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움찔.

이군성은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쥔 주먹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선만으로도 긴장해 버린 것이다.

마동필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혹, 몸이 안 좋으신지요?”

‘모른다?’

그렇다. 정작 마동필은 자신이 풍기고 있는 살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르고 있었다.

“삼 조장.”

“예.”

“자네,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만.”

“……그래.”

우물쭈물하는 이군성을 보는 마동필의 의아함은 짙어져만 갔다.

“…….”

“…….”

“…….”

알 수 없는 침묵.

마동필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때를 잘못 골라 온 것 같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군성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닐세. 오랜만에 봤는데 그래서야 쓰겠는가. 여기 앉게.”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네.”

“죄송하지만 저도 금방 가 봐야 해서 긴 시간 담소를 나누진 못할 것 같습니다. 조장님을 뵈러 온 것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탁이라니?”

“혹시 굴송차(窟松茶)의 찻잎을 갖고 계시는지요?”

이군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굴송차는 십만대산에서 재배되는 찻잎을 말려 우린 것으로 향이 너무 무거워서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갖고는 있네만.”

이군성이 바로 그 별로 없는 경우에 속한 사람이었다.

“하면 제가 조금 얻어 갈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만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자네, 굴송차 안 좋아하지 않나?”

“삼공자님께서 필요로 하십니다.”

“삼공자께서?”

“예.”

“……알았네. 잠시만 기다리게. 내 금방 가져오겠네.”

고개를 갸웃거린 이군성이 사라지자, 둘만 남은 집무실에 또다시 적막이 드리워졌다.

기양은 괜히 어색했다. 오랜만에 본 후배가 너무나 반가웠음에도 막상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왜?’

이 지독한 살기 때문에? 아니다. 섬뜩한 흉터? 마교 내에서 그 정도 흉터는 축에도 못 꼈다.

‘내가 아는 삼 조장이 아니야.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렸다.’

마동필이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

호법원의 삼 조장이 아닌, 별세계에 몸담은 듯 이질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고작 팔 개월 만에.

호법원 조장들끼리의 유대감, 호탕한 선배와 묵직한 후배가 나누는 교감이 뚝 끊어져 버렸다. 아예 처음부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기양이 마동필의 손을 바라보았다.

호법원 시절 때는 보지 못했던 자잘한 흉터가 그득했다. 얼핏 보이는 손바닥에도 터졌다가 낫길 반복한 흔적이 역력했다.

‘대체 어떤 생활을 했던 거지?’

임무 외의 시간에도 지독하게 수련했던 그다. 하지만 그때도 저런 상처를 달고 다닌 적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의아하고 안타까웠으며, 또한 어색했다.

그때, 침묵을 유지하던 마동필이 입을 열었다.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

“으응?”

“이 조 부조장이 혼인한다 들었습니다.”

“아!”

기양이 고개를 저었다.

“갈 때 되면 가야지. 그나저나 고죽림에서 바빴을 텐데 그 소문은 또 어디서 들었나?”

“물품을 가지러 한 달에 두어 번은 내전에 들어옵니다.”

“그랬나?”

“예.”

기양이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이 사람아. 그랬으면 진즉에 들러 얼굴 비출 것이지 이제야 오는가.”

“죄송합니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마동필.

한결 편해진 후배의 인상에 기양의 얼굴도 덩달아 풀어졌다.

“삼공자님 뫼시는 건 좀 어떤가? 힘들진 않나?”

“제가 힘들수록 공자님께선 편해지시겠지요. 당연히 힘들어야 합니다.”

기양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아까까지 느꼈던 낯선 모습은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외양이 달라지고 기질도 달라졌지만, 마동필은 마동필이었다.

“자네의 시간이 부족하다니 아쉽네. 조만간 꼭 한번 들르게나. 술 한잔하며 회포나 푸세.”

“알겠습니다. 부조장에겐 식에 참가하지 못해 미안하다 전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잠시 후, 이군성이 가지고 온 찻잎을 받아 든 마동필은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떠나가는 마동필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기양이 말했다.

“선배도 느끼셨습니까?”

“느꼈네.”

기양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살기는 정상이 아닙니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한 살인귀에게서도 저런 살기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는지.”

“저런 살기를 자연스레 풍길 만큼 위험천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물론 그렇습니다. 제 말은…….”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네. 삼 조장은 환경에 맞춰 달라졌지. 그리고 사지 멀쩡하게 살아도 있네.”

“…….”

“안타깝지만 몸이라도 건강해 보이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기양이 한숨을 쉬었다.

이군성의 얼굴에 문득 안타까움이 어렸다.

‘강해졌다.’

팔 개월 만에 보는 삼 조장 마동필의 무력.

일 년도 되지 않아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 어디서 영약이라도 취했는지 내공이 놀랍도록 증가했고, 그만큼 기도를 갈무리하는 것도 능수능란해졌다.

‘그래서 걱정이야.’

기도를 갈무리했는데도 저런 살기가 흘러나온다. 작정하고 전투에 임할 시 마동필이 뿜어내는 살기가 얼마나 지독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해 왔기에.’

귀물들과의 전투가 빈번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귀물들과 싸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년간 고죽림을 관리해 오던 호법들도 고죽림의 중심부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건 이군성도 마찬가지였다.

‘삼공자님의 개인 호위란 직책.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공자님을 지키기 위해 온갖 사선을 넘나들었겠지.’

기양이 나지막이 물었다.

“앞으로도 잘 헤쳐 나가겠지요?”

“당연히.”

이군성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한층 강해져서 돌아올 걸세. 난 그렇게 믿네.”

* * *

스르륵.

고죽림의 입구.

마동필은 한 번 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챙길 것도 다 챙겼군.’

새 병장기들도 챙겼고, 혈혼각 동기에게서 약초도 얻었고, 일 조장님께 굴송차의 찻잎도 얻었다.

‘가 볼까.’

파아악!

마동필의 몸이 한 줄기 백선(白線)이 되어 쏘아졌다.

신법을 극성으로 펼친 것도 아닌데 팔 개월 전보다 배는 빨라진 것 같다. 절도 넘치던 자세는 제법 자유분방해졌고 전방만 주시했던 시야도 좌우로 활짝 트였다.

구사하는 무공에 여유가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무공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난 팔 개월간의 지독한 경험이 그의 무도(武道)를 가일층 성장시켜 준 것이다.

호위무사가 아닌 한 사람의 당당한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마동필은 가히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고수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아아아아!

숲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진짜 여인은 아니다. 숲의 바깥쪽까지 기어 나온 귀물 중 하나가 내는 소리였다.

묘한 섬뜩함을 자아내는 미성(美聲).

‘주(鴸)로군.’

크게 위험한 귀물은 아니다. 내공이 약한 사람이 저 소리를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지만, 마동필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마동필은 그 소리를 익숙하게 지나쳤다.

숲에 적응하기 전엔 기어이 찾아내서 잡았다.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작 저 정도 귀물에게 당할 만큼 마동필도, 서량도 약하지 않다. 굳이 체력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파아아앙!

그렇게 일각을 더 달리니 마침내 거처인 성죽원이 보였다.

까가각!

걸음을 멈춘 그가 기감을 틔웠다.

우우우웅!

확산되는 마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질적 향상을 이룬 기였다.

주위를 살피던 마동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마실을 나가셨나?”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혼자서 움직이셨구나.”

위험한 지역으론 가시지 않을 것이다. 함께가 아니면 절대 그러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으니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을 순 없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기야 더 이상 귀물들에게 당하실 분은 아니지만.”

마동필의 눈이 일렁였다.

무뚝뚝한 얼굴에 떠오른 것은 숨길 수 없는 감탄과 존중을 넘어선 존경이었다.

마동필은 강해졌다. 운 좋게 채취한 영죽들이 서량의 무애공으로 다듬어져 질 좋은 영약이 되었고, 그중 몇 개가 마동필의 배 속으로 들어간 덕이었다.

약력이 너무 대단해서 아직 절반도 녹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단전의 크기가 이전보다 배는 넓어졌다.

단전이 커졌다고 무공이 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의 발전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은 주지의 사실.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운이요, 엄청난 성장이었다.

와중에 서량은 그런 수준마저 넘어섰다.

‘아무리 깨달음이 있으셨다고 해도.’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에 대한 것은 모든 것이 불가해(不可解)다.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돌아오실 때까지 청소라도 해 놔야겠군.”

성죽원 안으로 들어온 마동필이 물품을 정리하곤 싸리비를 들었다.

사아아악! 사아아악!

비질 한 번에 댓잎들이 우수수 날아갔다. 더러워진 마당이 깔끔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손쉽게 마당을 청소한 그는 서량의 방부터 자신의 방, 창고는 물론 주방까지 싹 정리했다.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비질, 걸레질에서 거의 장인의 숨결이 묻어 나왔다.

“이 정도면 됐군.”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모든 청소를 마친 그가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인데.”

푸스스스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저 멀리 대나무들이 흔들렸다. 귀물들이 대나무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 가까워졌다.’

이곳 성죽원은 고죽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었다. 지금의 성죽원은 고죽림의 중간 지역과 비슷할 정도로 귀물의 출현이 잦았고, 앞으로 더 잦아질 예정이었다.

‘점점 더 고달파지겠구나.’

그때였다.

끼아아악!

대나무들이 흔들렸던 곳에서 귀물들의 비명이 들렸다.

담담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던 마동필이 요대의 장검(長劍)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여차하면 뽑을 기세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푸스슥. 푸스스슥.

서서히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

마동필의 눈에 긴장이 차올랐다. 고죽림의 영기는 곧 귀물들의 영기와 같아서, 일정 거리로 좁혀지지 않으면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걸음걸이가 무겁고 일정해. 성성(猩猩)은 아니고…… 한데 뭔가를 끌고 있는데?’

우우우웅.

마동필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가까워지는 미지의 존재.

꾸욱.

검병(劍柄)을 쥔 그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너 벌써 다녀왔냐? 동료들이랑 회포 좀 풀고 오라니까.”

익숙한 얼굴에 긴장을 푼 마동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셨…….”

순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타난 청년의 몸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고, 청년이 질질 끌고 온 귀물의 몸은 살벌하게 난자되어 있었다.

“……녹촉(鹿蜀)?!”

“기어이 잡았다. 시벌, 겁나 힘들더라고.”

청년, 서량이 씨익 웃었다.

“솥에 물 올려라. 말고기 한번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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