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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6화 (26/774)

26화. 고죽림이나 여기나 (1)

대전의 공기가 화탕처럼 들끓었다. 신의 면전이라 감히 웅성거리는 자들은 없었지만 풍겨 나오는 마기만으로도 그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흥분, 당황, 감격, 분노, 아연함 등등,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특히나 제자들은 더했다.

서량은 주서윤보다도 더한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교주는 지금껏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휘하 어떤 마인들에게도 훌륭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천상이 손을 저었다.

“대전 회의는 이만 마치겠다. 셋째는 날 따라오도록.”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좌측 회랑으로 걸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께서 퇴장하시는 길을 서서 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한 명.

서량만이 이천상의 뒤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갔다.

교주와 더불어 마인들의 인사를 받는 듯한 모양새에 홍위문의 눈꺼풀이 사정없이 떨려 왔다.

스윽.

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서량의 뒷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저놈.’

당당하기 짝이 없는 체격이었다.

키가 몇 치는 더 큰 것 같고, 골격도 이전보다 훨씬 탄탄해진 것 같다. 주화입마에 걸렸던 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고죽림에서 살아남았지? 설마하니 사부가 뒤를 봐주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저 압도적인 마기는 도대체 어떻게 연성한 걸까?

혼란에 빠진 홍위문이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슥.

서량이 고개를 돌려 홍위문을 바라보았다.

‘……!!’

홍위문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서량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그렇게 이천상과 서량이 회랑으로 사라진 뒤, 무담이 낭랑하게 외쳤다.

“관료들은 이만 퇴전하여 주십시오.”

웅성웅성.

그제야 마인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예산을 다시 잡아야 한다니, 원주께서도 피곤하시겠군.”

“아니에요. 저야 그렇다 쳐도 신장부(神將府)가 바빠지겠네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외다. 그나저나 총군사는 오늘 불참했군. 혹 아는 바가 있으시오?”

“모르겠네요. 그쪽이야 워낙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요.”

“허허.”

“파순제 때문은 아닐 거예요. 근래 북부 놈들이 재미난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정파라 자처하는 놈들치고 미치지 않은 놈들을 못 봤소. 되도 않는 선동질이나 하려 들겠지. 어쨌든 총군사도 힘들겠군.”

수뇌부들은 저마다 회의 내용을 토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조금 전,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던 광경은 머리에서 지워 버린 듯했다.

한차례 수뇌들을 훑어본 관평이 홍위문과 주서윤, 채여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모이는 건 오랜만이구나.”

목소리에서 절로 느껴지는 싸늘함.

딱히 심성이 냉혹해서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익힌 무공 때문에 유독 분위기가 차가워 보일 뿐이었다.

홍위문과 주서윤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관평이 채여민에게 물었다.

“막내는 괜찮은 것이냐?”

“네에, 오라버니.”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 아니냐?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채여민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는 먼저 물러나 볼게요.”

“……그래.”

총총걸음으로 대전을 나서는 자그마한 뒷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무담이 주서윤에게 다가갔다.

“오공녀는 날 따라오시오. 서고로 안내하겠소.”

주서윤이 관평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럼 이만.”

“그래.”

그렇게 관평과 홍위문만이 남았다.

관평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사형제지간이라고 가끔은 모여서 차라도 한 잔씩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조만간 한번 보도록 하자. 나도 이만 들어가마.”

“조심히 가십시오.”

관평이 대전을 나섰다.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뒤를 따르던 홍위문은 문득 드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다.

회랑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

드디어 주화입마에 걸려 죽겠구나 싶었더니, 기어이 기사회생한 끈질긴 놈.

그래도 무인으로서의 삶은 끝장났다고 생각했는데, 팔 개월 동안 고죽림에서 버틴 것도 모자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홍위문은 서량의 눈빛을 떠올렸다.

투명한 안광 속, 형용할 수 없는 흉포함과 지독한 사기(死氣)가 번갈아 명멸하던 기괴한 눈을.

‘…….’

홍위문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량은 강해졌다.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과거보다 못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막상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몸을 회복한 그놈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가가 문제였다.

주화입마에 들기 전, 서량은 탐욕스럽게 세력을 불리던 놈이었다. 기기묘묘한 계책을 쓴다거나 유연하게 상황을 이끌 능력은 없었지만 의외로 그를 따르던 놈들이 꽤 있었다.

그런 그놈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부의 극찬까지 받았다. 놈에게 등을 돌렸던 놈들이 다시 흥미를 가지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대전을 나서는 홍위문의 얼굴에 모종의 결심이 드리워졌다.

‘역시 그냥 둬선 안 될 놈이야.’

살아서 돌아와 봤자 얼마나 성장했을까 싶었다. 어쩌면 들어갔을 때보다 더 약해져서 돌아올 수도 있겠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번에도 자신의 예상을 보기 좋게 벗어나 버렸다.

‘어설프게 건드려선 안 되겠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 * *

서량은 심상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정자냐?’

대전의 뒤뜰에는 작은 인공 연못과 조촐한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작지만 고즈넉한 것이 운치 하나는 좋다. 대륙 최악의 마인이라는 마교주 전용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미리 말을 해 두었는지 정자 위에는 작은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올라오라.”

아, 옙.

서량이 정자 위로 올랐다.

스르륵.

이천상이 어깨에 걸쳐져 있던 곤룡포를 집어 들고는 그대로 정자 난간에 던졌다.

얼핏 보아도 장인의 손을 탄 예술품이 분명하다. 그런 옷을 빨랫감 던지듯 던져 버리다니 역시 보통 배포가 아니었다.

“앉아라.”

아무렴요.

서량이 이천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릎도 꿇지 않고 당당하게 앉는다. 건방져 보일 만도 한데 이천상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서량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히 그러셔야지. 강해졌건 말건 갓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제자를 그 개 같은 위험 지대에다 던져둔 게 이 양반이다. 심지어 강해진 것도 내 노력이지 이 양반 노력이 아니었다.

나, 오늘은 꿀릴 것 없어.

“받아라.”

공손하게 들어 올린 잔을 바라보는 서량의 눈에 탐욕의 빛이 어렸다.

이게 얼마만의 술이냐.

쪼르르르.

천천히 따라지는 영롱한 액체.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 한 방울의 술도 잔 바깥으로 튀지 않는다. 너무 느리게 따라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전히 예술적으로 따라 주는구만.

서량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까지 채운 이천상이 잔을 들었다.

“한잔하지.”

“예.”

째앵!

잔과 잔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서량이 그대로 잔을 비웠다.

‘크!’

아…… 너무 좋아.

코끝에 달콤한 주향이 감돌았다. 입이 텁텁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시원해졌다. 퐁퐁 쏟아지는 침이 이 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무려 팔 개월 만에 마시는 술이라면 싸구려 백주라도 대환영일 텐데 심지어 천하 명주이기까지 했다. 황홀함에 넋이 나가 기절해 버릴 것만 같았다.

“한 잔 더 하겠느냐.”

서량은 대답 없이 잔을 들이밀었다. 내미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쾌검술의 고수를 보는 듯했다.

이천상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여전히 느릿한 속도라 감질이 났다.

그냥 마시려던 서량이 주춤하다가 잔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천상은 잔을 부딪치지 않고 마셨다. 무안해진 서량이 헛기침을 하며 술을 들이켰다.

“여룡을 익히지 않았구나.”

느닷없는 말에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룡? 그게 뭐지?

이천상이 재차 잔을 채우며 말했다.

“진마공(眞魔功)에 뭔가를 섞었군.”

“……!”

“불가 쪽 무공인가.”

서량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걸 알아?’

시파,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강해도 그게 한눈에 보인단 말이야?

‘하긴…….’

비요왕도 암영기에서 구파 무공의 냄새를 맡았다. 비요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하며, 심지어 마공까지 익혔으니 몰라보기가 더 어렵겠다.

그나저나 이거 어쩐다?

‘설마 열 받은 건 아니겠지? 아닌가? 열 받을 만한가?’

열 받을 만하다.

스승이 애써 가르쳐 준 무공은 안 익히고 저 혼자 뚝딱대며 만든 무공을 익혀 버렸다. 대단한 잘못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서운해할 만하다.

문제는 이 인간이 서운해하는 걸 넘어 분노할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시벌! 이 상황도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서량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야 했다.

그때, 이천상이 말했다.

“훌륭하군.”

……네?

“십대마공보다 고차원적인 무공을 창조해 내기란 쉽지 않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 어렵지 않아? 나야 뭐 운이 좋았다지만……이 아니라!

“아, 예. 머리 좀 굴렸습니다.”

“그래서 찾은 게 불가 무공이었느냐.”

“…….”

“굳이?”

서량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것저것 가져다 붙여 봤는데 불가 무공만 한 게 없었습니다. 더 강해지려면요.”

“그랬느냐.”

“예에. 확실히 괜찮아지더라고요.”

“고민이 짧았군.”

“……?”

“진마(眞魔)는 위력과 축기의 수준이 낮을지언정, 바탕으론 본교 제일이다. 보다 더 고민했다면 불가 쪽 무공을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천상이 잔을 들었다.

“나무 심을 자리에다 꽃밭을 만들어 놨군.”

……하나만 해, 이 양반아.

훌륭하다며?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냐? 왜 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성취를 보았으니 되었다. 이만 돌아가라.”

서량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젠장, 이럴 거면 왜 불렀대?’

술 두 잔 따라 주고 무공이 이러니, 창조가 저러니 흰소리만 해 댔다. 뭔가 건설적인 대화를 바란 건 아니지만, 이럴 거면 서신으로 보내지 왜?

심지어 그 위험한 데서 고생 많았다는 말도 없다. 무뚝뚝한 건 알았지만 참 매정한 인간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다.’

불가 무공 운운했을 땐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막말로 그걸 어디서 구했냐고 따져 물으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윽.’

차라리 잘됐네. 계속 어기적거리고 있으면 그걸 물어볼지도 몰라. 후딱 사라지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 술은 가져가도록.”

“예?”

이천상이 손가락으로 술병을 두들겼다.

“잘했다고 주는 상이다. 받아 가라.”

먹다 마신 술이 상이라고? 이왕이면 새걸로 주지 그래?

물론 서량은 그 무시무시한 질문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술병을 들곤 총총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서량은 모르고 있었다. 이 술이 어떤 술인지.

그리고 이천상이 무담을 제외한 타인과 이리도 많은 대화를 나눈 게 오랜만이라는 사실도.

서량이 사라지자 이천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정자에 서서 인공 연못을 응시했다.

“불가의 무공이라…….”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극마(極魔)의 난관을 알 리는 없을 테니,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이천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상관없겠지.”

무의미하고 무감한 일상에 셋째가 이런 흥미를 안겨 줄 줄은 몰랐다.

다음에도 저 발칙한 셋째가 굳어 버린 이 마음에 한 줄기 파랑을 일으켜 줄 수 있을까?

휘잉!

불어오는 바람에서 한기가 묻어 나왔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그 싸늘한 바람이 한풍(寒風)이 될지 혈풍(血風)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겨울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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