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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7화 (27/774)

27화. 고죽림이나 여기나 (2)

“숨이 턱턱 막힌다, 턱턱 막혀!”

거처로 가는 마차에 오른 서량은 연신 투덜거렸다.

마동필이 어색하게 말했다.

“교주님을 향한 불손한…….”

“이게 뭐가 불손해? 내가 내 주둥이로 숨 막힌단 말도 못 하냐?”

“그래도…….”

“그리고 교주님이 숨 막히는 사람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그 상황이 숨 막힌다니까? 너도 한 번 마주 앉아 봐라, 이런 소리가 안 나오나.”

알 것 같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맞장구쳐 줄 내용은 아니지만.

“쳇, 술이라도 얻어서 다행이군.”

“술이요?”

“어.”

서량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참나! 이것도 웃긴다니까. 드럽게 쪼깐한 건 둘째 치고, 아니 주려면 새걸로 주지 뭔 선물이랍시고 마시던 걸…….”

탁!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마동필이 냉큼 술병을 빼앗아서 심각한 눈으로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과할 정도로 깍듯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병을 바라보는 마동필의 눈이 점점 충혈되었다.

끔뻑이며 그를 보던 서량은 괜스레 손을 어루만졌다.

“어우, 손 맵네.”

“…….”

“아프다.”

“…….”

“크흠! 동필아?”

마동필의 얼굴은 이제 거의 목각 인형처럼 변해 있었다. 정말이지 속눈썹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량이 그를 걷어찼다.

“이놈아, 그게 뭔데 그래?”

“……육천심주.”

“뭔 심주?”

“이, 이거 육천심주입니다!”

“아는 술이냐? 맛은 참 좋더라만.”

마동필이 입을 쩍 벌렸다.

“육천심주 모르십니까? 육천심주를요? 육천심준데요? 육천심주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교주님께서 직접 하사하시는 육천심주요!”

“그니까 뭐냐고!”

“명예로운 술이잖습니까?!”

서량은 기가 찼다.

“명예롭고 맛 좋은 술, 뭐 그게 전부야?”

마동필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표정이 얼마나 극적인지 미안한 마음이 다 들 정도였다.

“육천심주! 역대 교주님들께서만 즐겨 드셨던 본교 최상급 명주입니다! 대공(大功)을 세운 마인들에게나 특별히 하사하시는 술로, 이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삼생의 영광이란 말입니다!”

“술 한잔 빠는데 뭔 삼생의 영광까지야…….”

“누가 주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게다가 이건 교주님께서 직접 담그신 신주(神酒)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환산해서도 안 되고요!”

“그래 봤자 술 아녀?”

마동필이 거품을 물었다.

“공자님! 본교 마인들이 교에서 하사하는 영약을 바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신께서 주시는 육천심주를 바랄 것 같습니까?!”

“영약.”

“끄으으윽.”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동필은 하필이면 교내에서도 충성심과 신심이 가장 깊은 호법원 소속이었다. 반면 서량은 애초에 마인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신심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서량이 마동필에게서 술병을 빼앗았다.

“뭐든 간에 맛만 좋으면 됐지. 어쨌든 괜찮은 술 하나 구해서 다행이다.”

이단이다! 이단이야!

마동필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만약 상대가 삼공자가 아니었다면 진짜로 외쳤을 것이다.

“공자님,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뭘.”

“주화입마에 드시고 난 뒤에 기억을 잃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근데 어째 본교에 관한 일들만 전부 잊으신 겁니까? 무공도 대단하시고 경험도 충만하신데 왜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거처에 가서 술이나 한잔 빨자.”

“안 됩니다. 공자님을 모셔다드리고 나서까지가 제 임무의 끝입니다. 저는 호법원으로 돌아가야지요.”

서량이 육천심주를 흔들었다.

“이거 안 마셔?”

“……!”

“그럼 그러든가. 맛이 예술이던데.”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그, 그 귀한 것을…… 저랑 마시겠다 하셨습니까?”

“그동안 함께 한 정이 있는데 일 끝났다고 냅다 보내냐? 사람 정이 그게 아냐, 인마.”

“……!”

“정 뭐하면 어쩔 수 없고. 하긴 조직에는 규율이라는 게 있으니까.”

서량이 다시 병을 품에 넣었다.

마동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앞으로 오십 년은 남았을 신교 인생 중 최고의 영광일지도 모르는 순간인데, 그걸 그냥 넘겨야 하는가?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

“……임무 종료 보고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기분 내는 시간은 따로 있는 법이야. 허락받고 오면 이미 내 뱃속에 싹 들어가 있겠지.”

“…….”

“괜찮아. 이거 말고도 세상에 좋은 술이 얼마나 많은데.”

마동필이 고개를 들었다.

실실 웃으며 그를 놀려 주려던 서량의 표정에 측은함이 담겼다.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십 년은 족히 늙어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한 잔만 받아도 되겠습니까.”

서량이 피식 웃었다.

“됐으니까 쉬겠다고 말하고 와. 음식 준비도 해 놔야 하니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감사한 사람한테 좀 전부터 말을 너무 막 하시던데?”

“아……!”

마동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제가 지나치게 흥분하여 공자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새끼,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단 말이야.

서량이 껄껄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기려는데, 마동필이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죽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얘한테 농담 같은 거 하면 안 되겠다.

한참을 달래 겨우 그를 진정시킨 서량이 문득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얘는 참 속도 좋다.”

서량 옆에는 새끼 여우가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 마신궁의 대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지 않은 채였다.

‘코가 감촉이 좋단 말이지.’

콧잔등을 쓸다가 코를 톡톡 건드리니 앞발을 들어 막는다.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마차가 서량의 거처 앞까지 도달했다.

“읏차.”

마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광경에 서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네.”

주변이 무척이나 황량하다. 이 몸의 원주인은 외따로 떨어져 살고 싶었는지 오밀조밀 모인 다른 집들과는 달리 내전에서도 꽤나 떨어진 지역에 있었다.

고죽림에 있을 때 참 돌아오고 싶었던, 하지만 그만큼이나 보기 싫었던 광경이었다.

함께 마차에서 내린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가 제 공식적인 임무의 종료입니다.”

“어, 그래.”

“그간 제 부족한 호위로 말미암아 공자님께서 고생하신 점, 지금을 빌어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리고 넓으신 아량으로 제 잘잘못을 덮어 주신 점, 각골난망이옵니다.”

서량이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적당히 해. 이따 술 안 마실 거야?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그러지 말자고.”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예. 하면 전 호법원을 들렀다가 오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오냐. 조심히 갔다 와라.”

다시 마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서량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앙!」

깜찍한 외마디에 고개를 숙이니 어느새 잠에서 깬 새끼 여우가 그의 발치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귀여운 자식. 오냐, 어찌 됐든 내가 거뒀으니 책임도 내가 지마.”

「앙!」

“너, 내 말 알아들을 수 있는 거 아니지?”

「…….」

“역시 아니네.”

그가 새끼 여우를 들어 품에 안았다.

“자, 들어가자. 깔끔하게 씻고 뜨끈한 침대에 누워 보자고!”

끼이이익.

대문을 열고 한 발을 안으로 들인 서량.

그때였다.

움찔!

우뚝 멈춘 서량이 열린 문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응?’

고요한 내부.

아직 유시(酉時)라 어둡지는 않았지만 묘하다.

집은 너무나도 멀쩡한데 마치 불에 눌어붙은 자국이라도 새겨진 것 같았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오랜만에 들린 집이라고 이질감을 느끼는 건 아닐 테고.

사아아악.

그의 기감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한 명. 딱 한 명이다. 무공은 보잘것없고 내력도 미비해. 앵화로군.’

이곳 전체에 느껴지는 인기척이 앵화 하나다. 천라육통식의 일 식(一式), 초신관(超身觀)의 심안으로 보았으니 틀림없다.

근데 왜 꼭 누가 더 있는 것 같지?

‘……확실히 누가 있진 않아.’

‘있었던’ 것이지.

인기척도 없고, 보이거나 들리지도 않지만 과거의 흔적을 읽어 낼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냄새였다. 이곳에서 날 리 없는 낯선 체취가 방과 창고 등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초신관. 신체의 오감을 급격하게 끌어 올려 짐승 이상의 수준으로 발동시키는 기공(奇功). 그 앞에선 얼마 되지 않은 냄새를 알아채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냄새가 제법 남은 걸 보면 반나절도 되지 않았어.’

서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군가가 이곳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사라졌다? 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자신이니 숨어서 기다린 이유 역시 자신에게 있을 텐데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지?

‘……흠.’

곰곰이 생각해 보던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라져 버린 사람의 체취 맡으면서 고민이나 하는 취미 따위 키운 적 없다. 심지어 여자도 아니고 남자‘들’ 아닌가.

팔 개월 만에 돌아온 집에서 읽힌 낯선 흔적 때문에 기분 좀 잡쳤지만, 그거야 뭐 나중에 생각하자.

상념을 지운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앵화야!”

순간 정방 문이 활짝 열리고 앵화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고, 공자님?!”

“오냐. 나 돌아왔다.”

앵화가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했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앵화가 삼공자님께 인사드립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야, 꼭 그렇게 인사해야 되냐? 하도 거창해서 받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공자님…….”

“클클. 일어나. 반갑다, 인마.”

앵화가 공손하게 일어났다.

서량의 낯빛이 푸근하게 풀어졌다. 정신없이 보낸 석 달이지만 일수로 계산하면 거의 백 일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하게 수발을 들어 준 아이 아닌가.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어? 뭐야? 못 본 새에 좀 수척해진 것 같은데?”

“송구하옵니다.”

“또 송구하대네. 밥은 먹고 다니는 거냐?”

“네에.”

앵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야 반가울 수 있다지만 앵화의 이런 반응은 또 의외였다. 거의 제정신도 아닌 사람 수발들어 주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가 앵화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자식, 머리를 또 예술로 꼬아 놨네.”

“고, 공자님.”

“적당히 헝클어지고 그래야 인간미 있지. 앞으로는 편안하게 다녀, 편안하게. 알간?”

“네, 네!”

순식간에 밝아진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고, 공자님께서도 신수가 번듯해지셨어요!”

그녀로서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서 한 말이었다. 교주님의 제자께 언감생심 어찌 저런 말을 하겠는가.

다만 팔 개월 전의 기억으로 미루어 공자님께선 과다한 예의보다 적당히 친근감 있는 태도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과연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지? 이야, 이 몸 만드느라고 진짜 개고생이란 개고생을 다 했다니까. 알아봐 주는구나.”

“너무 많이 바뀌셨어요.”

“좀 훤하고 그르냐?”

“네! 멋지세요!”

“으하하하! 고맙다!”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팔 개월 동안 주인 없는 집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깔끔하네?”

“네! 제가 이틀에 한 번씩 들러서 청소해 놓았습니다. 언제라도 돌아오셔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요.”

서량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그러냐.”

그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마동필도 마동필이지만 팔 개월 동안이나 자신과 떨어져 있었던 앵화 아닌가. 그 긴 기간 동안 자신을 잊지 않아 주기만 해도 고마울 텐데, 틈틈이 청소까지 해 주었단다.

누군가에게 이런 식의 챙김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 노력이 고마웠고 마음에 감격했다.

“일단 대문을 닫겠습니다.”

“어? 아, 내가 해도 되는데.”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이미 앵화는 대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서두르는 뒷모습에 활기가 가득했다.

서량의 얼굴 위로 다시 한번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녀석, 참 열심이란 말이야.

쿵!

대문을 닫은 앵화가 다시 빠르게 달려왔다.

“공자님, 전달을 늦게 받아서 아직 따뜻한 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니, 목욕부터.”

“아,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물을 데워 두겠습니다.”

“그럴까?”

“네!”

“좋아. 일단 들어가자.”

앞서 걷는 서량의 뒤를 앵화가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앵화는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서량 쪽을 연신 힐끔거렸다.

정확히는 서량이 아니라 그의 품에 안긴 새끼 여우를.

‘귀엽다.’

공자님께서 어디서 저 여우를 데려왔는지 묻고 싶지만 지금은 참자. 어서 온수를 받아 놔야지.

건물로 들어온 앵화가 후다닥 물을 데우러 갔다.

서량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게 얼마만의 여유인지 모르겠다.

“으라차차!”

생각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아무 걱정 없이 먹고 마시고 늘어지게 곯아떨어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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