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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28화 (28/774)

28화. 고죽림이나 여기나 (3)

“이상, 호법원 삼 조장 마동필이 임무 보고를 마칩니다.”

“고생했네.”

이군성이 미소 띤 얼굴로 마동필을 치하했다.

“팔 개월이 넘도록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정말 수고했어.”

“아닙니다. 오히려 공자님을 모실 수 있어서 제가 영광이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기양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사내에게 기특하단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두 사람에게 마동필은 동생 같은 후배였다. 누구라도 완수하기 힘들었을 임무를 당당하게 마치고 돌아왔으니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살기도 수습했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며칠 전에 보았던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반면에 느껴지는 내력은 상상 이상.

“달리 기연이라도 있었는가?”

“예?”

“내공이 그때보다 훨씬 더 증가했네. 아직은 잠재력 수준이라지만 차후 자네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이군성의 얼굴에는 순수한 감탄이 어려 있었다.

마동필이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죽을 가공, 섭취하여 순수 영약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았기에 둘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조장급 인사에게는 불필요한 정보를 누락시킬 권한이 있었다.

처음엔 이 부분을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는 결국 그 정보를 누락시켰다.

비밀로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삼공자님의 무공에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차기 교주 후보들에 관한 사항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떤 조직이든 빈틈은 있기 마련이니까.

생활 전반에 관한 사안이라면 모를까, 이런 부분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나름의 기연이 있었습니다. 모두 삼공자님 덕분이지요.”

“삼공자님 덕분이라고?”

“예. 이 부분은 삼공자님과 관계된 사항이라 말씀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군성이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거라면 자네만 알고 있는 게 맞네. 중요한 것은 자네가 임무를 잘 마쳤다는 사실 아니겠나. 개의치 말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양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선배. 삼 조장이 그간 고생이 많았는데 얼마라도 휴가를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아예 한 달 정도 푹 쉬는 것도 괜찮겠어.”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나눌 수 있는 임무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 고생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아니야, 쉴 때는 쉬어야지. 이번 자네 임무는 누구도 나눌 수 없는 것이었어. 자넨 쉴 자격이 있네.”

“그럼 사흘만 쉬도록 하겠습니다.”

“고집 센 건 여전하군. 좋네, 열흘 동안 몸을 추스르고 다시 복귀하게. 더 이상의 양보는 없네.”

“예, 알겠습니다.”

기양이 혀를 찼다.

“남들은 쉬면 좋아라 하는데 자넨 어째 불만 가득한 얼굴인가? 설마 선배의 배려가 싫은가?”

“아, 아닙니다.”

마동필이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두 사람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군성이 유쾌하게 외치며 일어났다.

“자! 오랜만에 우리 술이나 한잔하세. 자네가 거기서 어찌 지냈는지 직접 듣고 싶어.”

“아…….”

“왜? 달리 할 일이라도 있나? 있어도 오늘은 참지?”

“죄송합니다. 삼공자님께서 마지막으로 술 한잔하자고 하셔서…….”

이군성과 기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삼공자님이?’

주화입마에서 깨어난 후, 조금 유해지셨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흉험한 본성이 어디 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삼공자님과 많이 돈독해진 모양이군.”

“부족한 저의 호위에 고생만 많으셨지요.”

기양의 눈이 반짝였다.

마동필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은 감사와 미안함이었다. 이 우직한 후배가 진심으로 삼공자를 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이군성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공자님께서 그러자 하셨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잠시만 기다리게.”

잠시 후, 그가 굴송차의 찻잎을 가져왔다.

“그 거친 곳에서 찾으실 정도라면 무척 좋아하시는 모양인데 이것 좀 가져다드리게. 마침 질 좋은 찻잎을 구했거든.”

“아…….”

“아마 공자님께서도 흡족해하실 게야.”

마동필이 어색한 얼굴로 찻잎을 받았다.

저 뿌듯해하는 면전에 대고 차마 공자님께서 즐기지 않으시는 걸 넘어서 싫어하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자, 어서 가 보게.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찻잎을 구하면 드리겠노라 말씀도 드리고, 허허.”

마동필은 속으로 이군성에게 사죄를 건네며 찻잎을 품에 소중히 넣었다.

‘죄송합니다, 조장님.’

이 찻잎은…… 내가 써야겠다.

* * *

“후우우.”

훅 번져 나오는 연기가 창가를 통해 빠져나갔다.

신회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공자님.”

“음?”

“이런 말씀, 드리기에는 송구하오나…….”

“뭔데? 말해 봐.”

“옥체를 위해서라도 연초는 그만 태우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홍위문이 피식 웃으며 곰방대를 털었다.

“근래 좀 잦기는 하지?”

“내력으로 탁기를 몰아낼 수 있다지만, 그래도 몸에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끊을 때 되면 내가 알아서 끊을 거야. 걱정은 고맙게 받지.”

“……예.”

홍위문이 다시 뻑뻑 곰방대를 빨았다. 자욱한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망설이던 신회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말해.”

“‘그들’을 다시 물리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홍위문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한 점 구름 없이 푸르던 하늘이 어느새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흐릿한 연기 너머, 몽환적인 일몰의 광경을 음미하던 그가 말했다.

“신회.”

“예, 공자님.”

“그놈 많이 달라졌더군.”

신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는 다소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엄청나게 좋아졌어.”

“…….”

“키도 더 커진 것 같고 골격도 이전보다 탄탄해진 것 같아. 고죽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무공도 되찾은 것 같았다.”

“……!”

“뭐, 어떤 방법인지는 궁금하지 않아. 그놈이 회생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홍위문이 곰방대를 털며 말했다.

“모호해졌어.”

“…….”

“분명 같은 놈인데……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이다. 그리고 이 불쾌한 감을 끌어낸 것은 당시 서량이 보여 주었던 눈빛이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마인 특유의 흉악함과 허깨비 같은 투명함, 감정 없는 인형 같은 무심함이 고루 섞인 그 독특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홍위문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실 그놈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큰 관심사가 아냐.”

거짓말.

신회는 알고 있었다. 방금 그 말이 공자님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홍위문이 상당히 혼란스러워한다는 것 역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을 보냈을 때, 놈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른다는 거지.”

신회가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께선 이미 삼공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알고 계셨지 않습니까?”

“알았지, 어제까지는.”

“…….”

“하지만 오늘은 달라졌어. 놈에게서 어떤 식의 반응이 올지 확신이 안 서.”

지금껏 공자님은 결과로 자신의 통찰력을 증명하신 분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궁금했다. 왜 공자님께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신 것인지.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신회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반발이 다소 거셀 것으로 예상됩니다. 처리를 어떻게 할까요.”

“적당히 돈으로 달래. 원한만큼이나 돈에 집착하는 놈들이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지.”

“공자님 말씀대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놈들에게 굳이 돈을 쥐여 준다는 것은 다소…….”

“신경 써야 할 대상이라면 돈 위에 뭔가를 더 얹었겠지.”

“…….”

“서량의 서 자만 들어도 거품을 무는 놈들이다. 언제고 적당히 쓸 데가 있겠지만 결국 그 정도가 전부야. 정 뭣하면 괜찮은 기루에 데려가서 기분이나 풀어 줘.”

“알겠습니다.”

그 정도로 풀릴지 모르겠다. 며칠 동안 와신상담의 결의로 기다리다가 삼공자가 들어오기 직전에 명을 받고 돌아왔다. 그 분노와 허탈함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후우!

대량의 연기가 창문 너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내일 저녁 식사 대접하겠다고 서신 한 장 보내도록 하지.”

“예? 누구에게……?”

“환희원주(歡喜院主).”

“……!”

신회의 얼굴이 굳어졌다.

“공자님, 환희원주는 위험…….”

“신회.”

“…….”

“…….”

“……명을 받듭니다.”

허리를 깊이 숙인 신회가 방을 나서자 홍위문이 곰방대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항상 짓고 있던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진 굳은 얼굴 위로 서늘한 살의가 맴돌았다.

“살쾡이가 독사로 변했다면 이쪽도 활시위를 바꿔야겠지.”

* * *

“왔냐?”

“예, 공자님.”

“새꺄, 일찍 좀 다녀. 배고파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네. 후딱 앉아.”

“죄송합니다.”

황급히 사죄한 마동필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진수성찬이 깔린 탁자와, 그 양옆에 앉은 서량과 앵화.

특히 앵화의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다. 감히 공자님과 겸상을 해도 되는 건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하지.’

신교 마인들을 통틀어서 삼공자님만큼 격식을 안 따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처음 자신을 부른 호칭도 ‘마 씨’ 아니었나.

이런 광경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걸 보면 그도 어지간히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안 앉아? 먹기 싫어?”

“아, 아닙니다!”

황급히 자리에 앉은 마동필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의 손엔 이미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일단 맛이나 좀 보자.”

팔 개월 넘도록 짐승 고기만 씹어 대다 보니 고급스러운 음식 향에 눈이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마동필과의 찐한 의리로도 기다리기 힘들었다.

이윽고 세 사람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서량은 시작부터 전투적이었고, 마동필은 격식 있게 시작했으나 점점 속도가 붙었다.

한 덩치 하는 장정들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먹는 고급 음식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오늘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두 사람은 신들린 듯 접시들을 비워 갔다.

앵화는 두 사람 눈치를 보며 깨작여 댔다. 허기고 뭐고 도무지 불편해서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크헙! 이거지! 이게 사람이 사는 거 아니겠냐, 동필아.”

“굉장한 요립니다, 공자님.”

“근데 이거, 다 좋은데 양이 좀 부족할 것 같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앵화가 속으로 기함을 터트렸다. 장정 서너 명이 먹어도 남을 양을 깔았는데 부족하단다. 두 사람의 무시무시한 식욕에 정신이 다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제, 제가 더 가져오겠습니다.”

“어? 아니 뭐…… 그럴래?”

“네!”

“고마워.”

폭풍 같은 식사는 반 시진 동안 이어졌다.

서량은 만족스러운 듯 배를 쓰다듬었고 마동필은 입맛을 쩍쩍 다셨다. 음식 가져오랴, 접시 치우랴 바삐 움직였던 앵화만이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소면을 먹고 있었다.

“배도 채웠으니 한잔 빨아야지.”

퐁!

서량이 육천심주를 개봉했다.

순간 마동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앵화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다시 소면을 호로록거리며 먹었다.

“받아.”

“여, 영광이옵니다.”

“지랄.”

쪼르르 따라지는 술. 향긋한 주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

앵화도 눈을 부릅떴고 침상에 드러누워 자고 있던 새끼 여우조차 코를 씰룩였다. 음주 무경험자와 짐승조차 반응할 만큼 향이 예술이었다.

“고생했다, 그동안.”

“아닙니다. 공자님을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새끼, 말은.”

“정말입니다.”

“오냐, 고맙다.”

두 사람이 시원하게 술을 비웠다.

서량의 얼굴에 감탄이 어리고 마동필은 숫제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육천심주가 주는 상상 초월의 맛에 둘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크, 좋다. 야! 그나저나 너 앞으로 뭐 할 거냐? 또 누구 호위하러 다니고 막 그러냐?”

“…….”

“마!”

“헉! 아, 예!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이거 아주 정신을 놨네. 그렇게 좋냐?”

“물론입니다!”

“그런 것 같더라. 칼침 맞아도 안 아플 것 같은 표정이었어.”

“아…… 한데 제게 하문하셨던 말씀이 어떤……?”

“됐다. 한 잔 더 받아라.”

“옙!”

두 사람은 순식간에 육천심주를 동냈다.

마동필은 허망한 눈으로 빈 병과 빈 잔을 바라보았다. 공자님이 안 계셨다면 번갈아 가며 핥을 기세였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앵화야, 술 좀 몇 병 가져와 줄래? 주종은 아무거나 상관없어.”

“넵!”

앵화가 후다닥 움직였다.

서량이 마동필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정신 차려. 그러다 눈알 빠지겠다.”

“아, 예.”

“오늘은 혀가 돌아가도록 마셔 보는 거다? 네발로 기어 보자고, 어디.”

“영광이옵니다, 공자님.”

“넌 진짜 여러모로 영광스러워한다. 사람이 참 찬란해.”

마동필이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술 오기 전에 뭣 좀 물어보자. 혀 꼬이면 못 물어볼 것 같아.”

“하문하시옵소서.”

서량이 눈을 빛냈다.

“교내 조직도와 인물 관계도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 아니, 누굴 만나야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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