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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2화 (32/774)

32화. 우연이란 이름의 필연 (4)

“원하는 게 있긴 했습니다.”

묘한 말이었다. 소연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마음이 달라지셨단 뜻인지요?”

“으음.”

잠시 턱을 쓰다듬던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민이 되긴 합니다만, 그냥 접으렵니다.”

“그렇다면 공자님 말씀은 제게 신비한 무공 구결을 건네주는 대신에 무언가를 얻으려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겠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공짜로 이 귀한 구결을 주시겠단 말씀인가요?”

“예.”

소연심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왜 제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거죠?”

“음…… 이것 참 말씀드리기 복잡합니다만.”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난감함과 후련함, 그리고 약간의 미련이 남은 얼굴이었다.

놀란 와중에도 소연심은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표정이 담은 진심까지도.

잠시 고민하던 서량이 물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사람 말입니다.”

“네.”

“원주한테 소중한 사람이니 청구사엽초를 구하려 하셨겠지요?”

소연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뭐, 저한테 해를 입혔다거나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다면 이러진 않았겠지만, 원주가 그런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그게 무슨…….”

“몰랐다면 모르되, 알아 버린 이상 사람 목숨 갖고 거래를 하고 싶진 않아서요.”

“……!”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이긴 합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핵심 구결은 빼놓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서량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뭐, 소중한 분의 쾌유를 빌게요.”

“…….”

소연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금 이게 신교의 삼공자와 대화하는 건지 마음 약한 초짜 상인과 대화하는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서량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젠장,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한 것이다. 이성이 그래선 안 된다고 해도 마음이 찝찝하면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이번 일도 그렇다.

평생을 살수로 지내다가 남긴 것도 없이 죽어 버린 인생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직업을 뼛속 깊이 증오했다.

누구보다도 내 삶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삶을 박살 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개인주의를 추구하되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살수라는 직업을 싫어한 결정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원한 관계는커녕 이름도 몰랐던 사람을 해하면서까지 내 생명을 연장해야 했으니까.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당장 내가 위험하다면 몰라도 굳이 이름 모를 남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 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찝찝해서 마음에 남을 거야.’

자꾸 마음에 걸려서 불쑥불쑥 괴로워지는 것보다 당장은 아쉬워도 가슴이 시킨 대로 가자.

“공자님.”

“말씀하십쇼.”

“진심이신가요?”

“달 좋은 밤에 술까지 깔아 뒀는데 어차피 걸릴 거짓말을 지껄이겠습니까, 그럼.”

소연심이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마음이 좋지 않아서 제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고요?”

“거참, 그렇다니까요.”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거래 자체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

순간 서량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 얼굴을 본 소연심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어…… 그, 그렇긴 한데…….”

“…….”

“맞네. 그러네요.”

떨떠름한 얼굴로 술잔을 내려다보던 서량이 에잇! 하는 소리와 함께 비워 버렸다.

“크, 됐으니까 가져가십쇼.”

“마음이 좋지 않아서요? 공자님께선 그 사람을 본 적도 없는데요?”

“본 적 없는 사람도 죽이는 세상인데 살리면 또 어떻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설마하니 폭군이라 불리던 삼공자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서량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뭐, 원주 덕분에 기분도 제법 좋아졌고요.”

“기분이 좋아지셨다니요?”

“설마 그 녀석과 자리를 하고 계실 줄 몰랐거든요. 뒤에서 비수 갈고 있던 놈 면상에 한 방 날려 줬으니 시원할 수밖에요.”

소연심의 얼굴이 굳어졌다.

후계 후보들끼리 암중에 혈투를 벌이는 것은 마도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세상 어디라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그걸 대놓고 말하는 후보도 없을 것이다. 자칫 그 말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

이전의 자리에서야 후보들끼리의 신경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은 같은 후보도 없지 않은가.

‘도대체가…….’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함정이라도 되는 것일까.

‘함정? 고도로 계산된?’

소연심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뭔가 노리는 것이 따로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람이 변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사적인 자리를 가진 적은 없지만, 그녀는 삼공자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냉혹하고 흉악하며 용서를 모르는 성정. 일등이 아니면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지독한 욕망의 소유자.

그런 사람이 지금은 허점이란 허점은 다 보여 주고 있다. 계기만 있으면 사람은 언제든 변한다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불안하십니까?”

느닷없는 물음에 소연심이 움찔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조건 없는 호의를 받아 보신 적이 없는 모양입니다.”

“……없진 않지만 이렇게 뜬금없었던 적은 없어서요.”

“하긴 저라도 그러겠군요.”

서량이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정 찝찝하시면 내원 식당에 담백한 반찬들이나 자주 깔아 주십쇼. 식자재 관리도 환희원 쪽에서 하지 않습니까?”

“…….”

“맛은 있는데 향이 너무 강하더라고요. 담백하게 먹는 사람들 생각도 좀 해 주십쇼.”

소연심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잔을 비우는 서량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기도도 잠잠했고 눈빛도 맑았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던 소연심이 한숨을 쉬었다.

“불편하군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불편하지 않기 위해선 제 쪽에서도 뭔가를 건네야겠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받기 싫어집니다만.”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찝찝한 건 딱 질색이라서.”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말투는 가벼운데 표정엔 진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교주의 제자나 되는 사람이 이유 없이 이런 호의를 베풀 것 같진 않았다.

“일단 들어 보고 싶어요. 공자님께서 제게 요구하려 했었던 게 뭔지를요.”

“이미 장사 접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재료가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교내 조직도와 인물 관계도 정도를 얻어 보려 했습니다.”

“……?”

소연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직도와 인물 관계도…… 말씀이신가요?”

“예.”

“그것을 왜……?”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소연심은 질문을 달리했다.

“물론 필요가 있으니 거래하고자 하셨겠지만…… 왜 하필 제게 그것을 요구하실 생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군사부로 갈 순 없잖습니까.”

그 한마디에 소연심은 수긍했다.

그리고 왜 삼공자가 그것을 원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눈이 아닌 타인의 눈에 이 신교가 어떻게 보이는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이는 정보를 얻고자 하려는 것이었다.

“됐으니까 지필묵 준비나 해 주십쇼. 아니면 그냥 외우실 겁니까? 전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소연심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한 명의 복면 사내가 나타났다. 소연심의 제일 심복인 연일(蓮一)이었다.

“지필묵을 준비해 줘.”

“예.”

스르륵.

연일이 연기처럼 사라지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상당한 경지의 은신술이로군요.”

“운이 좋아 괜찮은 은신술을 얻었어요.”

“소 원주께서도 익히고 계십니까?”

“아뇨. 저는 굳이…….”

“잘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북부에서 흘러들어 온 은신술 같은데 당장에야 쓸모가 많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기를 탁하게 만들 겁니다.”

“……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본시 은신술이라는 것 자체가 마공과 어울리는 무공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은신술은 수축의 무학이고 마공은 팽창의 무학이니까요.”

“……!”

“수준 높은 은신술은 진기를 굉장히 섬세하게 수축시킵니다. 당연히 팽창하고 발산시키는 데에 혈안이 된 마공을 억누르게 되지요. 꽉 끼는 요대 차고 밥 먹으면 소화가 되겠습니까?”

“그런…….”

“부하를 아끼신다면 당장 버리라고 하십쇼. 그 시간에 마공을 연성하는 게 백배는 더 낫습니다.”

소연심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녀는 지금껏 저런 무리(武理)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서량이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놓았다.

“거참, 취하지도 않는데 위장만 찔러 대는 느낌일세그려. 이젠 백주도 못 마시겠구만.”

연신 투덜거리는 서량.

멍하니 그를 보던 소연심의 몸에서 미세한 마기가 치솟았다.

한 수, 아니 두 수 위의 고수조차 읽어 내지 못할 마기. 하지만 서량은 그녀가 흘린 마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전음을 보내는군.’

잠시 후, 연일이 지필묵과 두툼한 서류 뭉치를 가져왔다.

소연심이 서량 앞에 종이를 깔아 주고 먹을 갈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하사하시는 무공에 어찌 흠이 있겠습니까마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저 역시 확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거야 뭐 당연한 걸.”

“그리고 제가 보기에, 공자님 말씀대로 치상에 극대화된 무공이 맞다면…….”

스르륵.

그녀가 종이 옆에 벼루를 놓곤 한옆에 쌓인 서류 뭉치를 짚었다.

“본교의 조직도, 관계도에 대한 분류 서류들을 드리겠습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보통 양이 아니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인즉, 환희원 측에서 조사한 각 인물에 대한 특성과 비밀들을 항목별로 상세하게 정리했기 때문이지요.”

서량은 깜짝 놀랐다.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셨다고?”

“네.”

“매번 비밀리에 하셨을 리는 없고…… 사람들이 그걸 허락해 주더이까?”

“집안 살림을 하려면 어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제가 유추한 것, 떠도는 소문에 불과한 것 등 허황된 정보들도 제법 기재되어 있습니다. 보시는 데에 불편함이 크실 수도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하의 환희원주가 작정하고 기재한 내용이다. 상당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

‘살리려는 사람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만한 자라는 뜻이겠지.’

좋은 마음으로 끝내려고 했더니 이런 보물을 받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가만히 소연심을 바라보던 서량이 붓을 들었다.

“공갈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 * *

멀어져 가는 서량과 마동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연심.

연일이 나지막이 우려를 표했다.

“원주님.”

“응.”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저 정보가 타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공격까진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압박 정도는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훨씬 큰 선물을 받았어. 이쪽에서도 성의는 보여야지.”

“…….”

“그리고…….”

몇 번 입을 달싹이던 소연심이 이내 몸을 돌렸다.

“피곤하구나.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예.”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툼한 보름달이 평소보다 훨씬 밝은 것 같았다.

그 빛이 시려서일까. 그녀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아졌다.

“과연 어찌 움직이실까?”

교내 주요 인물들에 대해선 모조리 꿰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신감을 무너트린 사람을 만났다.

어지간해선 뭔가를 알아보기도 힘든 사람. 그래서 그녀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이 정도 패는 보여 줘야 삼공자에 대해서도 파악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저 서류에 적힌 삼공자에 대한 내용이 전면 수정될 것이다.

“아, 그리고 연일.”

“하명하십시오.”

“지금 익히고 있는 은신술은 버리는 게 좋겠어.”

“예?”

“어차피 누구 놀라게 만드는 것 외에 쓸 일이 없잖아.”

“……명을 받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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