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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5화 (35/774)

35화. 최악이지 최강은 아니잖아 (3)

마도 무림은 강자존(强者存)의 세계다.

강하면 대우받고 약하면 잡아먹힌다. 강자와 약자, 양측 모두 그것을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의리와 협(俠) 등 단순 무력보다 도리를 더 중요시하는 정파 무림과는 다르다.

하지만 마도 무림, 정확히는 천마신교의 강자존에는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강자의 혈육이어도 약자라면 도태되는 세상. 뒤집어 말하면 능력만 된다면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대접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남성의 무가(武家) 중 마지막까지 천마신교를 괴롭히다 멸문한 위씨세가의 핏줄인 위홍련이 내전 최악의 전투 부대인 광마대의 대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서량은 소연심이 준 서류를 떠올렸다.

‘위홍련. 나이 삼십이 세. 구 세에 입교하여 오 년 만에 두각을 보여 내전으로 편입. 놀라운 재능과 독한 성정으로 이십 세에 광마대원으로 차출. 이후 전임 대주와 합의하에 생사결을 벌임. 삼백여 초간의 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 이십팔 세에 대주로 승격.’

몇 가지 간단한 정보만 추려 봐도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알 수 있겠다. 무공 이전에 어지간한 배짱과 추진력 없이는 이리 화려한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재미있는 녀석이야.’

위홍련이 도위경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하지.”

도위경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근데 루주가 이 녀석을 아는 눈치던데?”

“예! 한 번씩 본루에 들러 식사를 하곤 하십니다.”

“이번 달에도 왔었나?”

도위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달에는…….”

순간 부대주, 차광(車珖)이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도위경의 얼굴이 재차 창백해졌다.

위홍련의 눈이 깊어졌다.

빠각!

“컥!”

차광이 개구리처럼 엎어졌다.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부라려?”

“쿨럭! 대, 대주님! 그게 아니라…….”

“이 새끼 이거 왔네. 그렇지?”

“그게…….”

“이번 달은 회식 전까지 거처에서 무조건 대기라고 했어, 안 했어? 네가 감히 대기 명령을 씹어?”

“제, 제 말을 좀…….”

우두둑.

위홍련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여인의 주먹에서 금강역사에 필적하는 위압감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근래 매타작이 좀 뜸하긴 했지? 회식 날이라고 봐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그녀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버버버벅!

쏟아지는 주먹질에 차광의 몸이 연신 들썩였다.

비명은 없었다. 아프기도 아프거니와 소리를 꽥꽥 질러 대면 더 맞을 걸 차광도 알기 때문이었다.

위홍련의 동공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혀로 입술을 쓰는 모습이 독사가 혀를 날름대는 것 같았다.

“부대주씩이나 돼서 잘하는 짓이다. 그 삼류 파락호 같은 기질 언제 내다 버릴래!”

콰드득!

도위경이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누가 들어도 뼈 부러지는 소린데? 진짜로 뼈를 분질러 버린 거야? 그래도 회식 날인데?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기상.”

파아아악!

차광이 냅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쓰러져 나 죽겠다며 뒹굴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과하다고 생각하냐?”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구경하던 서량은 차광의 대답에서 진심을 읽었다.

‘당연한가.’

어느 조직이든 명령 불복종은 즉참감이다. 팔 하나 부러진 걸로 대체된 거면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오히려 저 정도로 끝내는 위홍련의 아량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애들 분위기 조지기 싫어서 이걸로 마무리한다. 앞으로 또 그 지랄 떨면 그땐 진짜 모가지 따 버릴 거야.”

차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금껏 위홍련은 제 입으로 내뱉은 말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위홍련의 얼굴이 풀어졌다.

“애들 들여라.”

차광이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나갔다.

“이놈들아! 들어와라!”

동시에 광마대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밖에서도 구타 소리가 들렸는지 이 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모두가 감히 입 한 번 떼지 못했다.

위홍련이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어디 초상났어? 좋은 회식 날에 왜 어깨가 축 처졌어? 얼른 술부터 시켜!”

광마대원들은 제법 단순한 성격임이 분명했다. 위홍련의 외침에 순식간에 자미루가 시끌벅적해졌다.

“크, 이게 얼마 만이냐?!”

“나 반년 만에 술 구경해 봐…….”

“으아아! 오늘 목젖까지 처넣을 거야!”

그야말로 봉인 해제.

오만 웃음소리와 함께 이 층부터 사 층까지 광마대원들로 점거됐다.

위홍련이 도위경에게 말했다.

“회식비는 선불로 받았지? 애들 원하는 거 다 해 줘. 만족스러우면 이백 냥 정도 더 얹어 줄 테니까.”

주인장으로선 큰절을 해도 모자랄 만큼 감사한 말이었지만 도위경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위홍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장.”

“…….”

“어이! 주인장!”

“헉! 예?!”

“왜 넋을 놓고 앉았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한옆에서는 차광이 눈을 부라렸다. 어서 대주님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고 뭐 하냐는 눈빛이었다.

그때, 주방에서 숙수들이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점소이가 아니라 숙수가 음식을 갖고 나온다. 이 기묘한 상황에 위홍련과 차광이 눈을 끔뻑였다.

도위경이 재빠르게 눈짓했다.

“어서, 어서 가져다드리게!”

어…… 이런 저자세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두 사람이 떨떠름해하는 사이 잔뜩 긴장한 숙수들이 일 층 창가로 향했다. 위홍련과 차광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도 숙수들을 따라 이동했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뭘 이렇게까지.”

“아닙니다!”

“술은?”

도위경이 재빨리 숙수들 옆으로 다가와 품에서 술병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사천의 오량액(五梁液)입니다. 이번에 공수한 것으로 진한 향이 일품이지요.”

사천에서 이곳까지 오량액을 운반하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위경은 꽁꽁 꿍쳐 놓은 자신의 보물까지 꺼내 든 것이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이옵…….”

“담백한 음식에 향이 센 술은 어울리지 않을 거고.”

“컥!”

도위경이 넙죽 엎드렸다.

“주, 죽여 주시옵소서!”

“어? 아니 그냥 그렇다는 말인데…… 어서 일어나시오. 성의만 받겠소. 향이 약한 술로 부탁하오.”

“예, 옙!”

도위경이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위홍련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놈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차광이 씨근거리며 서량에게 다가갔다. 당당한 팔자걸음이었지만 부러진 왼팔이 달랑거려서 상당히 애처로워 보였다.

“어이, 거기!”

서량이 힐끔 차광을 바라보았다.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새꺄!”

순간 숙수들과 점소이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위홍련은 일 층 분위기가 서늘해지다 못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나 왜?”

“너 내전 소속이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새끼, 오늘 여기 광마대가 통째로 빌린 거 몰라?”

“빌린 거야, 아니면 루주가 지레 겁먹어서 사람들 내쫓은 거야?”

“뭣이!?”

“정식으로 여기 빌린 거 맞아? 공문이라도 남겨 놨어?”

“……요놈 봐라?”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너네는 너네대로 회식해, 난 나대로 즐길 테니까. 문제라도 있냐?”

“이 새끼가 정말!”

치이이이익!

차광의 몸에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분노로 마기가 치솟는 것이다.

서량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상당한데.’

이 정도면 가히 절정고수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물론 서량의 눈에 찰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천하십대고수로 꼽혔던 초고수의 눈엔 이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요놈이다.

요(要)는 기백에 있었다.

다혈질에 섣부르기 짝이 없는 성정이지만, 막상 전투에 돌입하면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낼 녀석이 분명했다.

그건 차광만이 아닐 것이다. 광마대의 대부분이 그러한 질기고 독한 기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차광이 으르렁거렸다.

“좋은 날이니 한 번은 봐주마. 당장 꺼져!”

광마대의 악명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다. 차광 나름대로 아량을 베풀었다고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서량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도 쌈박질에 취미 없으니까 한 번만 봐주마.”

“뭐?!”

“난장을 치든 말든 너희는 너희끼리 놀아. 알간?”

“……이 개자식이!”

철컥!

차광의 손이 허리춤에 닿았다. 당장이라도 박도(朴刀)를 뽑아 휘두를 기세였다.

그때였다.

“물러나라.”

“대주님?”

“경거망동하지 말고 물러나.”

차광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늘 같은 대주님이 물러나라 하시니 별수 있나.

위홍련이 서량 앞으로 다가왔다.

서량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꾸욱.

소맷자락 안으로 숨은 위홍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상대의 눈빛은 무색투명한 얼음과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무력은……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아.’

언뜻 보기에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그것도 체격 때문이지 얼굴만 보면 약관(弱冠)이라고 해도 믿겠다.

‘보통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루주부터 숙수들까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 청년을 신경 쓰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제법 한 수가 있는 인간일 것이다.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는 위홍련. 그리고 위홍련을 올려다보는 서량.

서량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고개 아프다. 할 말 있으면 앉아.”

위홍련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차광의 입이 반사적으로 열렸다.

“이 미친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했나!”

서량과 위홍련은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차광의 호흡이 점차 격해졌다. 역시나 상관 앞이라 그 이상 경거망동하진 않았지만.

위홍련의 입이 열렸다.

“넌 누구지?”

“통성명이나 하자고?”

“우리가 광마대라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모르기가 더 어렵지. 하나같이 미쳐 보이더만.”

사아아악.

차광의 몸에서 살기가 일었다.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위홍련의 눈이 깊어졌다.

“먼저 시비를 걸 만큼 무모해 보이지 않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웃기고 있네. 먼저 시비 건 게 너희지 나냐?”

“…….”

“그리고 말했지? 할 말 있으면 앉아서 하라고.”

“내가 왜 네놈 말을 들어야 하지?”

“내 목이 아프니까?”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는 위홍련의 동공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재미없는 선택을 하는군.”

그에 맞추어 서량의 미소도 짙어졌다.

“누구한테 재미없을지는 두고 봐야지?”

그때, 주방에서 나온 도위경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대주님!”

위홍련이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눈을 내리깔았겠지만, 지금은 도위경도 급했다. 분위기가 워낙 들쭉날쭉해서 저분이 누군지 설명도 못 드렸다는 걸 지금 깨달은 것이다.

“그, 그분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차아앙!

차광이 냅다 칼을 뽑아 도위경의 어깨에 얹었다.

“헉!”

“너 뭐라고 했냐?”

도위경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차광이 차갑게 웃었다.

“그러면 안 될 이유 서른 개만 대 봐. 그럼 살려 주마.”

허튼소리를 하면 당장에라도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도위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본교의 삼공자님이십니다!”

“……?”

“교, 교주님의 제자시라고요!”

“……!”

위홍련과 차광이 깜짝 놀라서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스물아홉 개 남았어,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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