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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6화 (36/774)

36화. 최악이지 최강은 아니잖아 (4)

차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공자? 본교에 그런 직책이 있었나?’

그런 직책은 없다. 다만 공자님, 공녀님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있다.

- 교, 교주님의 제자시라고요!

철컹!

‘엥?’

차광이 눈을 끔뻑였다. 어느새 자신의 박도가 땅을 구르고 있었다.

뭐야? 손에 힘이 빠졌나? 다 죽어 갈 때도 칼은 놔 본 적이 없는데 웬일이래?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지금 차광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허둥대던 차광을 단번에 현실로 끌어내렸다.

“네가 왜 내 말을 들어야 되냐고?”

턱을 쓰다듬던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네. 다만 권고 정도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뽕!

그가 술병의 마개를 뽑았다.

“내가 너희들 모가지를 이렇게 따 버리고 싶을 수도 있잖아. 그럼 서로 재미없어질 거 아니냐고. 안 그래?”

위홍련의 안색이 돌변했다.

천하의 광마대주 앞에서 저리 말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하필 그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람 중 하나와 시비가 붙어 버린 것이다.

서량이 차광을 바라보았다.

“뭐랬더라? 좋은 날이니까 한 번 봐준다고?”

“어…… 어버…….”

“하하, 자식. 괜찮아, 인마! 굳이 없는 인내심 발휘할 필요 있나, 시원시원 살아도 아쉬운 세상에 말이야. 안 그래?”

“그, 그게…….”

“결정적으로 나도 봐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거든. 칼질도 합이 맞아야 그림이 나오는 법이지. 자, 들어와 봐.”

차광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 이 미친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했나!

- ……이 개자식이!

상대가 삼공자인 줄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폭언을 뱉었다. 그 욕설의 백 배는 더 심한 욕을 스스로에게 쏘아붙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위홍련이 무릎을 꿇었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광마대주 위홍련이 삼공자님을 뵙습니다.”

충격과 공포에 얼어 버린 차광과 달리 위홍련은 침착한 기색이었다. 목덜미가 제법 발갛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던 서량이 목을 흔들었다.

우두둑. 우두두둑.

“어우, 이제 좀 편하네.”

“…….”

“내가 누구한테 과잉 대접받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부끄럽게 시선만 끄는 데다가 시끄럽긴 또 오죽 시끄럽냐고. 근데 오늘은 꽤 달달하네.”

위홍련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눈앞의 청년이 삼공자인 줄 몰랐다 하더라도 죄는 죄다. 당장 땅에 이마를 처박고 죽여 달라 사죄를 올려도 모자랄 판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사는 그게 끝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광마대주.”

“예, 공자님.”

“내가 당신 시간을 좀 뺏어도 되겠어?”

“……무슨 말씀이온지.”

“애들은 회식하라 하고, 둘이서 술이나 잠깐 하지? 오래는 안 걸릴 것 같은데.”

순간 위홍련은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이 광마대의 회식 날이라는 것도, 그 회식을 자미루에서 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대사가 나올 리 없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투명하기 짝이 없는 안광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년.

위홍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광.”

“…….”

“차광!”

“예? 아, 예!”

“애들 챙겨서 한잔하고 있어. 공자님이 계시다고 굳이 얌전하게 놀 필요는 없다.”

삼공자를 앞에 두고 쉽게 하기 힘든 말이었다.

차광이 불안한 시선으로 서량을 바라보자 서량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안 그러면 내가 더 불편해.”

차광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며, 명을 받듭니다.”

그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이 층을 향해 걸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서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차광의 걸음이 멈추었다. 자신을 부르는 성의 없는 한마디에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부르셨사옵니까.”

서량이 씨익 웃었다.

“앞으로는 좀 더 시원시원하게 살아.”

차광이 냅다 허리를 접었다.

“송구하옵니다!”

서량이 위홍련에게 시선을 돌렸다.

“앉지?”

“……예.”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괜히 어설프게 서성이던 차광이 도망치듯 이 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이 층에서부터 웅성거림이 번져 나왔다. 그들 역시 일 층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들었던 것인지 감히 크게 떠들지는 못했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난 담백한 걸 선호하는 편이라.”

“…….”

“입에 안 맞으면 따로 시키든가.”

가만히 서량을 바라보던 위홍련이 점소이를 불렀다.

“동과충(冬瓜盅) 하나 가져와.”

“……예에.”

점소이가 헐레벌떡 사라지자 서량이 술을 들었다.

“한 잔?”

“영광입니다.”

그가 위홍련의 잔을 채워 주곤 자신의 잔도 채웠다.

“들지.”

“예.”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너무 맹맹한 술을 가져왔구만.”

도위경이 들었다면 그대로 기절할 말이었다. 위홍련이 물었다.

“다른 술을 대령하라 하겠습니다.”

“됐네. 그 술이 그 술이지.”

연신 술을 홀짝대는 서량을 보며 위홍련이 물었다.

“제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음?”

“금일 본대가 회식이라는 걸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모르기가 더 힘들지 않나? 내성 안에 소문이 싹 퍼졌더구만.”

이렇게 솔직하게 나와 주니 말하기가 더 편하다. 위홍련이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목적이었습니까?”

상당히 딱딱한 말투여서일까, 유독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뭐, 그렇지?”

“제게 하실 말씀이 있었다면 굳이 회식 때까지 기다리시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미안하군. 하필이면 오늘 자네에게 볼일이 생각나서.”

“회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실 만큼 여유로운 사안은 아니었군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대놓고 불편한 기색이다. 구대마존에게도 버럭버럭 대들었다더니만 허황된 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상대가 삼공자인데도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과연 보통 성질머리가 아니라 하겠다.

“생각이 나면 바로 움직여야 하는 지랄 맞은 성격이라서 말이지. 실례가 됐다면 사과하겠어.”

위홍련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는 삼공자를 이번에 처음 보았다. 워낙 작전이 많아 내전에 묶여 있는 시간도 적거니와 굳이 신분 높은 사람과 얽히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은 소문은 있었다.

‘희대의 폭군. 출중한 재능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지만 그만큼 난폭하고 냉혹하다.’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기 힘든 성정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주화입마에 걸리기 전, 은근히 삼공자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것보다 난폭한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마도에서 난폭함은 때론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하니까.

그런 사람이 형식상으로나마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사과’라는 단어까지 쓴다.

‘내게 뭔가 얻으려 하는 게 있군.’

위홍련이 잔을 비웠다.

“제게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요?”

“얘기가 빨라서 좋네. 나도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거 질색이라.”

서량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자수해라.”

순간 위홍련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수하라고. 어차피 경범(輕犯)이라 자숙이나 감봉 정도로 끝날 거 아냐?”

“저는 지은 죄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잔을 비운 서량이 고기를 쩝쩝대며 말했다.

“광마대는 부대 경비로 달에 천 냥씩 받나?”

“……!”

“너희가 최악이지 최강은 아니잖아? 천마일군(天魔一軍)도 달의 부대 경비가 팔백 냥밖에 안 되는데 너희가 천 냥 넘게 챙긴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아아악.

위홍련의 몸에서 마기가 치솟았다.

마기에 실린 감정은 당황이었다. 너무 놀라서 완벽하게 갈무리했던 마기의 제어가 풀린 것이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형법당(刑法堂)에 가서 자수해라. 자수하면 감형되잖아? 공금을 훔친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어쩌다가 슥 받은 것 같은데. 그 정도 죄목이면 아무리 형법당이라도 광마대주 감금 못 시켜.”

“…….”

“아, 그리고 그때 네 손에 돈 쥐여 준 놈 이름 꼭 밝히고. 알았지?”

푸스스.

위홍련의 술잔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격정을 참지 못하고 마기가 자꾸만 날뛰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백한 시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른 척 의뭉을 떠는 건 성격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가 들었어.”

“…….”

“어쨌든 난 할 말 다 했다. 회식 대충 마무리되면 가서 자수하는 걸로 하자. 알겠지?”

드드드드.

탁자가 진동하고, 그 위에 놓인 접시들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동시에 웅성거리던 이 층, 삼 층도 조용해졌다. 아닌 척해도 그들 역시 이쪽 얘기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우우웅.

위홍련의 동공이 파랗게 물들었다. 본격적으로 마공이 개방되려는 것이다.

“그렇군요. 목적이 제가 아니었군요.”

“음?”

“사공자가 목적이었습니까?”

돈을 준 사람이 사공자라는 걸 입증하는 말이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정답이야.”

너무나도 쉽게 인정해 버린다. 위홍련은 상대의 솔직함에 어이가 없었다.

“저를 통해서 사공자를 압박해 보겠다는 것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뭐 다른 자잘한 이유도 있고.”

“도대체 왜…….”

“너한테 말해 줘야 할 이유 없네요.”

그때, 점소이가 동과충을 가져왔다.

살벌한 분위기에 점소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최대한 공손하게 동과충을 놓은 점소이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도 너 의리는 있다. 나 같았으면 홀랑 내 주머니나 챙겼을 텐데 부하들이랑 나눠 가졌네?”

“…….”

“뭐 해? 네가 시킨 음식 왔다. 먹어.”

“증거가 없습니다.”

“응?”

위홍련이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 흉포함으로 가득한 눈빛은 덤이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저를 압박하러 오셨다면 최소한 증거라도 들고 오셨어야지요.”

한층 무례한 언사였다. 그만큼 그녀의 마음이 조급해졌다는 뜻이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증거 없는 죄는 죄가 아니다, 이거냐?”

“물론이지요.”

“일 복잡하게 만드는 게 취미인가?”

“일을 복잡하게 만드신 건 삼공자님이십니다. 왜 좋은 회식 날 찾아오셔서 굳이 죄 같지도 않은 죄를 들먹이며 자수를 권유하시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군요.”

위홍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마셨습니다. 그럼…….”

“차광이라고 했던가?”

“……?”

“상황 대기 명령을 내린 거, 돈 받은 거 외부로 유출하지 않기 위해 부하들 입단속 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

“……!”

“진짜로 복잡하게 가 볼래? 저 사고뭉치가 여기서 얼마나 처먹었는지 장부 한번 뒤져 보자고 할까?”

부르르!

위홍련의 몸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진실이 뭐고를 떠나, 자꾸만 자신을 궁지로 모는 삼공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겁니까.”

“어허, 이 친구 말버릇 보게.”

“이만 가십시오. 저를 더 이상 자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서량이 재미있다는 듯 되물었다.

“더 하면 어쩌시게? 칼이라도 뽑으시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두둑.

위홍련이 웃으며 주먹을 들었다.

“높으신 분 몸에 칼자국 내 드릴 순 없지요.”

“호오? 멍 자국은 내도 된다 이거야?”

“삼공자나 되시는 분이 일개 대주한테 얻어맞았다는 사실, 부끄러워서 어디에다 말도 못 하실 텐데.”

강함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것은 마도 무림의 상식이다. 특히나 차기 대권을 노리는 후계자가 대주한테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문제는 서량이란 인간이 그 가치를 길가에 돌멩이보다 못하게 여기는 사람이란 것.

“괜찮아. 사람이 싸우다 보면 멍도 들고 피도 터지고 하는 거지 뭘.”

“……당신!”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여린 주먹으로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있겠어?”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서량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눈 돌아갔다.’

우우우웅!!

그녀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청색 마기.

“칼은 안 뽑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

퍼어어억!

“커억!”

옴팡지게 얻어맞은 위홍련이 탁자 하나를 부수고 나뒹굴었다.

이 무지막지한 사태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냅다 발길질을 날린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

“…….”

“염병, 광마대주라길래 끗발 좀 있나 싶었더니만 뭐 이렇게 허술해?”

부스스스.

부서진 탁자 잔해 속에서 위홍련이 일어났다.

살기와 광기로 물든 그녀의 얼굴은 나찰이나 다름없었다.

“넌 죽었어.”

서량이 피식 웃었다.

“죽여 봐, 이년아.”

광마대의 역사적인 회식 날.

최악의 미친 연놈이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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