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머리는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굴리는 거야 (1)
“이, 이게……?!”
우당탕탕!
탁자가 부서지고 온갖 집기들이 하늘을 날았다.
사람이 감당치 못할 현실에 직면했을 때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도위경은 기절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점소이들은 어마 뜨거라, 하며 뒷문으로 나갔고 숙수들도 황급히 주방으로 숨어들었다.
문제는 이 층과 삼 층을 꽉 채운 광마대원들이었다.
“뭐, 뭐야? 진짜 싸움이야?”
“으아아아! 지금 대주님 삼공자님이랑 한판 붙은 겨?!”
“좆 됐다!”
좀 거칠긴 해도 평소엔 상당히 자애로운 대주가 한번 눈 돌아가면 천하제일의 미친년이 된다는 걸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역대 광마대주 중 부대명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 위홍련이라고 자신할 정도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주의 제자이자 차기 대권을 거머쥘 후보 중 하나와 싸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구대마존한테도 이 새끼, 저 새끼 하던 성질 어디 안 간 것이다.
“크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위홍련의 얼굴은 실로 볼만했다.
퉁퉁 부은 한쪽 눈에 산발이 된 머리카락까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미친년 맞네.”
퍼어어엉!
위홍련이 돌진했다.
자미루가 넓다지만 그래도 주루다. 이런 장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돌진해 오다니, 진짜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이다.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빨라.’
몇 대 두들겨 맞은 이전까지와는 다르다. 청현마공(靑玹魔功)을 극성까지 끌어올려 달리는데 부서진 집기들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퍼어어억!
위홍련의 눈이 번뜩였다.
작정하고 휘두른 주먹이 서량의 손에 막혔다. 그것도 제법 간단하게.
“타격감 좋고.”
파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리가 올라왔다. 우측 상단, 턱을 노린 일격이었다.
무거움보다 속도와 예리함에 중점을 둔 각법이다. 일타의 위력이 출중하면서도 후속타까지 상정한 절묘한 일격이었다.
‘요것 봐라?’
분노에 눈이 뒤집혔는데도 이런 일격을 구사한다. 연마된 무(武)가 본능까지 땅땅 박혀 있다는 소리다.
그 말인즉,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년이란 것.
두 사람의 주먹과 발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파파파파팡!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돌벽도 부숴 버릴 일타일격을 수십 번이나 내지른다. 치열한 공방에 바닥에 금이 가고 벽이 퍼석퍼석 부서졌다.
우우우웅!
위홍련의 주먹에 고운 청색 광채가 일었다.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빠각!
“크윽!”
위홍련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턱과 귀까지 충격을 준 각법에, 손에서 피어오르던 마기가 쑥 들어가 버렸다.
“이 좁은 공간에서 권기(拳氣)를 피워? 미쳐 가지고, 이게.”
“크아아악!”
퍼어억!
서량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위홍련의 막강한 일격은 그를 세 걸음만 물러나게 했을 뿐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확실히.’
사자후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릴 지르며 장(掌)을 치고 오는 모습이 미친 맹수와도 같았다.
‘쓸 만한 녀석이란 말이야.’
홍위문이 왜 이년한테 돈을 찔러줬는지 알겠다.
다른 건 몰라도 전투 하나만큼은 믿고 맡길 만하다. 친분을 쌓기까지가 어렵지, 쌓기만 하면 여러모로 써먹을 데가 많은 녀석이었다.
‘홍위문, 그놈 낚을 미끼로 쓰려 했더니만 볼수록 탐이 나네그려.’
우우우웅!
위홍련의 손에서 다시 한번 청색 광채가 피어올랐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도를 모르는 것만 빼면 말이지.’
빠가각!
“으드드득!”
청색 광채가 재차 사라졌다.
이 정도 절정고수가 타격을 받았다고 진기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리가 없다. 서량의 각법이 상단전부터 중단전까지 흔들어 버렸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 말인즉, 원한다면 언제든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
분노로 반쯤 미쳐 버리긴 했지만 그녀라고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이 새끼가!”
퍼엉!
서량의 몸이 들썩였다. 이번 일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내가 우습냐, 이 개자식아!!”
콰르릉!
서량의 몸이 탁자 세 개를 부수고 벽면까지 밀려났다.
지금까지 받아 낸 무공 중 가장 강력했다.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상대한다면 모를까, 그냥 받아만 주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격이었다.
‘과연.’
뭐든 최고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무력이 아닌 악명이었지만 그것도 힘없는 조직 따위가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좋아.”
자세를 풀고 다시 한번 받아 내려던 서량이 멈칫했다.
물끄러미 그를 노려보던 위홍련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했다.
‘완전히 꼭지 돌았군.’
그때, 서량의 눈에 창가에 앉아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금호가 보였다.
이 난리가 났는데도 새끼 여우는 도망가지 않고 몸통만 한 꼬리를 살랑이며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자식, 저거?’
뭐야?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어? 나는 왜 저 녀석을 잊고 있었지?
위홍련의 시선도 서량을 따라 창가로 향했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건.’
버젓이 서량 옆에 있었지만 느닷없는 삼공자의 출현에 너무 놀라서 인지도 못 했다. 그녀가 이제 와 금호를 보고 놀란 이유였다.
후웅.
그녀가 손을 휘둘렀다.
부드러운 장력을 이용해 창가 밖으로 쫓으려는 것이다. 꼭지가 돌아 버린 상황에서도 의미 없는 살생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야말로 참다운 상식인이다. 세상에 악명을 떨친 조직의 좌장이지만 최소한의 생명 존중은 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녀의 ‘행위’가 서량의 눈에 어떻게 보였냐는 것인데…….
번쩍!
위홍련의 장력이 뿜어지자마자 서량의 육신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퍼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창틀이 그대로 박살 났다. 단단한 주루의 벽에도 구멍이 뻥 뚫려 버렸다.
느닷없는 충격파에 위홍련조차 깜짝 놀랐다. 내 장력이 저렇게 강했단 말이야?
푸스스스스.
부서진 천장에서 나무 잔해와 먼지가 마구 떨어졌다.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 운 없는 광마대원 서너 명은 일 층으로 몸을 날려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모두의 시선이 창가 쪽으로 향했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이 먼지를 걷어 내자 그곳에 웅크리고 선 서량이 보였다.
등을 돌린 채라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위홍련의 입가가 씰룩였다.
“발재간 하나는 좋군.”
서량이 천천히 일어났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위홍련과 비슷해 보였다. 등을 돌렸지만 꽤 험한 꼴이 되었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겠다.
위홍련이 허공에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외쳤다.
“이 자식아! 몸 돌려! 또 어설프게 상대하면 죽여…….”
그때였다.
콰직!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공자님! 공…….”
얼마나 다급했는지 일 층 문을 부수며 뛰어 들어온 마동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어?’
난장판이 된 일 층. 절반이 넘는 탁자들이 부서졌고 바닥 곳곳엔 금이 갔다. 심지어 분위기는 눈앞의 광경보다 몇 배는 더 흉흉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그곳엔 광기를 뿜어내는 한 여자와 몇몇 사내들, 마지막으로 박살 난 창가 앞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서량이 있었다.
위홍련의 눈이 위로 쭉 찢어졌다.
“넌 또 뭐야?!”
마동필은 그녀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공자님! 괜찮으신지요?!”
“…….”
서량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가만히 마동필을 노려보던 위홍련이 버럭 소리쳤다.
“넌 뭐냐고, 이 새끼야!”
“닥치시오!”
“뭐?”
“저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요? 본교의 삼공자님이시란 말이오!”
“어쩌라고?!”
“……아?”
너야말로 그러다 어쩌려고?
마동필은 상대의 무식한 반응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삼공자님이신 줄 알면서도 그런 거요?!”
“시끄러워! 상관없는 새끼는 빠져 있어!”
이런 미친년을 봤나.
마동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광마대주! 당신, 불경죄로 즉참되고 싶은 거요?”
사아아악!
순간 사방팔방에서 살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홍련의 살기가 아닌 광마대원들의 살기였다.
상대가 삼공자라 참고 있었지만 이름 모를 떠버리는 인내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존경하는 대주에게 불경죄에 즉참이라니?
“저놈 지금 뭐라는 거야?”
“저 새끼 죽여! 혓바닥부터 뽑아 버려!”
콰르르릉!
몰아치는 살기가 천둥소리 비슷한 환청을 유발한다. 아무리 마동필이라도 이백 명이 쏟아 내는 살기를 버티긴 버거웠다.
평소라면 잔뜩 긴장해서 후퇴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마동필이 소리쳤다.
“이놈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살기를 피우느냐!”
쩌어엉!
내공이 잔뜩 실린 외침.
이곳에 있는 어떤 대원들보다도 막강한 기파였다. 지금의 마동필은 거의 내전 전투 부대의 부대장들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충분히 놀랄 만한 내공, 그리고 기파.
하지만 그의 외침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너는 어느 안전이라고 지랄이야?!”
“죽여! 죽여!”
“토막을 내 버려, 개놈 새끼!”
쿠구구구궁!
잠잠해져야 했을 살기가 이전보다 더 지독해졌다.
이 정도가 되니 마동필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친!’
광마대, 광마대 하더니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본 상식만 있어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이놈들은 그런 자리에서 더 난리를 치고 있었다.
위홍련이 서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애들아. 새로 오신 머저리 좀 안 보이게 치워라.”
“명을 받듭니다!”
파바바박!
쏟아지는 광마대원들.
회식이고 뭐고 이미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각자 병장기를 꺼내 들며 마동필을 향해 달리는데, 두 눈 가득 진심 어린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동필이 이를 갈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차차차창!
깔끔한 발검(拔劍)에서 이어지는 신속한 검식의 흐름.
실로 감탄이 나올 만한 검예(劍藝)였지만 정작 감탄을 터트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쩌저저정!
병장기와 함께 광마대원 서너 명이 뒤로 튕겨 나갔다.
한 자루 검으로 다수의 고수를 물러서게 만든다. 마동필의 무공이 실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수만에 보여 준 무력의 격차.
당연하게도, 광마대원들에겐 손톱만큼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
“죽여어어!”
그야말로 개떼가 따로 없다.
불그죽죽한 안광을 번뜩이며 파도처럼 몰아쳐 오는 짐승들. 숫자보다 일심(一心)으로 합쳐진 광기가 더 무서웠다.
마동필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광마대주! 정녕 끝을 보자는 거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이미 그는 위홍련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이상 공자님이라도…….’
힐끔 서량에게 고개를 돌린 마동필.
순간 그가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떴다.
츠츠츠츠.
등을 돌린 서량의 몸에서 은은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평소 불꽃을 연상시키던 홍색 마기가 아닌, 피처럼 진득한 마기였다.
위홍련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새끼, 이제야 제대로 해 보려고…….”
“피해!”
이번 외침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외면하기엔 목소리에 실린 다급함과 공포가 엄청났다.
위홍련이 눈살을 찌푸렸다.
“쟤 입 좀 어떻게…….”
“피하라고! 죽는다!”
“뭐?”
퍼버버벅!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둘러 광마대원 두 명을 날려 버린 마동필이 서량을 향해 다급하게 달렸다.
“공자님! 공자니임! 그래도 살인은 안……!”
그때, 서량의 몸이 번쩍였다.
퍼어어어억!
광마대원들의 악다구니를 완전히 잠재워 버릴 만큼 강렬한 소리.
피를 토하며 훨훨 날아간 위홍련의 몸뚱이가 주방을 부수고 들어갔다. 어찌나 호되게 맞았는지 비명조차 없었다.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부글부글!
전신 가득 뿜어지는 암영마기가 들끓는 핏물처럼 일렁였다.
한 손에 너무나도 멀쩡한 금호를 안은 서량이 상처 입은 어미 범처럼 포효했다.
“감히 금호를 건드려어!!”
퍼어엉!
서량이 주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버버벅! 퍼버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