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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39화 (39/774)

39화. 머리는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굴리는 거야 (3)

덜컥!

“공자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동시에 방 안에 흐르고 있던 연초 연기가 훅 빠져나갔다.

신회는 자신의 무례도, 연초가 유독 독해졌다는 사실도 신경 쓰지 못했다.

“들으셨습니까? 자미루에서…….”

“들었어.”

후우.

가볍게 뱉어 낸 숨결에 짙은 연기가 섞여 나왔다.

신회가 다급하게 말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로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곳에 삼공자가 갔다는 사실 자체가…….”

“날 노린 거야.”

“예?”

“확실해. 놈이 날 노리고 수작질을 부리려 하는 거다.”

“그것을 어찌…….”

홍위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나른한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신회가 마른침을 삼켰다.

‘달라지셨다.’

언제부터일까?

눈앞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공자님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나른한 자세는 위험한 독사를 연상케 했고, 흐릿한 눈빛은 모호함으로 그득했다.

“……조치를 취할까요?”

“조치? 어떤?”

“…….”

“광마대주의 입은 그리 싼 편이 아니야. 오히려 무력 충돌이 있었다면 더더욱 입을 닫을 거다. 그이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확신할 수 없다, 장담할 수 없다, 내 예상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소를 잃은 홍위문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무엇 하나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도…….”

“나는 오히려 광마대주가 자수했으면 좋겠다.”

“예?!”

이건 또 예상을 벗어난 말이다.

홍위문이 곰방대를 털며 말했다.

“진실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알아?”

“…….”

“소문이다.”

“……!”

“만약 내가 그놈이었다면 난리만 치고 빠졌을 것이다. 광마대주에게 어떠한 권유도 하지 않았을 것이야. 그리고 나선…….”

홍위문의 눈이 번뜩였다.

“대중들의 궁금증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소문을 퍼트릴 거다.”

“소문…….”

“사공자와 광마대주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알고 보니 광마대주가 사공자의 손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였다더라 등등의 소문을 냈겠지.”

“……!”

“대중들은 시시한 결말을 원하지 않아. 공인된 진실이 나와도 그들은 긴가민가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 진실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하지. 온갖 추문들이 불붙은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번질 것이다.”

신회의 눈이 흔들렸다.

대중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명성을 추락시키는 일은 정쟁(政爭)을 벌이는 이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막상 당하기 전까지 당사자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더더욱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홍위문이 고개를 저었다.

“나라면 그랬다는 거다. 그놈은 또 다를 수 있겠지.”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사안이…….”

“걱정 마.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다면 이쪽에서도 소문을 덮긴 쉬워.”

“…….”

“오히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파악해서 터트리면 그쪽에 모두 떠넘길 수 있다. 우리는 분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만 살펴보면 돼.”

신회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대단하시다.’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많아 보이는 와중에도 한 수 앞, 두 수 앞을 내다보는 홍위문의 능력이 존경스럽다.

“그렇다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뜻인지요?”

“그건 또 아니지.”

“예?”

홍위문이 보랏빛 연초를 곰방대에 구겨 넣곤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였다.

후욱.

몽환적으로 퍼지는 연기에선 이전 연초와 달리 제법 향긋한 향이 났다.

“공격 일변도의 무공은 언젠가 파탄이 나는 법. 공격과 수비는 언제나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정치도 마찬가지야. 대비와 동시에 적을 공략해야 이쪽의 빈틈을 내보이지 않는다.”

“…….”

“하지만 내 고민은 그게 아냐.”

홍위문이 눈을 감았다.

“그놈이 어찌 알았을까?”

“……!”

“광마대주에게 뒷돈을 건네준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안이야. 세상사 비밀은 없다지만 이렇게 빨리 밝혀질 사실도 아니지.”

“……설마 진마대주가?”

“그쪽은 확실히 아냐. 자신이 책잡힐 일은 죽어도 발설치 않는 인간이니까.”

홍위문이 눈을 감았다.

‘소 원주인가?’

군사부에서 흘렸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정보 출처는 환희원이다.

‘그때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나.’

그건 그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었다. 환희원은 대대로 후계 쟁투에 끼어들지 않는 조직이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 원주는 바보가 아니야. 절대로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거다.’

그런 소연심이 서량에게 정보를 주었다면?

‘살려야 할 환자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군.’

그 이전에 소연심이 자신과 광마대주 사이의 거래 사실을 알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절대 소연심을 건드려선 안 된다.

‘여우 같은 년.’

그때였다.

“공자님!”

문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신회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광마대주가 형법당으로 가고 있다 합니다!”

깜짝 놀란 신회가 홍위문을 바라보았다.

홍위문이 피식 웃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유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 * *

“아, 그래?”

“예. 현재 광마대주는 형법당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액수가 제법 크지만 아마 사나흘 뒤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광마대주라는 이름값도 보통은 아니니까.”

마동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대중은 사공자에게 실망할 겁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까진 가지 않겠지요.”

“그렇겠지.”

“아마 사공자 측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쪽에서도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도 그렇겠지.”

마동필과는 달리 서량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턱을 괴곤 금호의 볼을 긁어 주는 표정에 나른함이 가득했다.

“공자님께선 걱정이 안 되시나 봅니다.”

“걱정? 뭐…… 걱정한다고 일이 잘 풀릴 거면 잠도 안 자고 걱정만 하겠지.”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냐. 당장 목이 날아갈 만큼 위험한 상황 아니면 고민은 나중에 해도 괜찮아.”

실제로 서량은 그쪽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광마대주가 제 발로 형법당을 찾아간 건 놀라웠지만 애초에 놓친 고기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뜻밖의 수확일 뿐이었다.

그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바로 금호였다.

‘요것 봐라.’

삭삭.

손가락으로 볼을 긁어 주니 크게 하품을 하곤 몸을 뒤척인다. 눈을 감고 벌러덩 누운 채 콧바람을 뿜어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조금 독특한 생김새이긴 하지만 그저 새끼 여우일 뿐이다. 고죽림의 귀물들처럼 기괴하게 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짐승이다.

‘그런데 그땐 왜 그리 흥분했지?’

내가 키우는 짐승이 다칠 뻔했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꼭지가 돌 줄은 몰랐는데.

‘잠깐 새에 이 녀석이 내게 그리 큰 존재가 되었나?’

사람이든 짐승이든 정(情)이 오가는 데에 시간은 그리 중요치 않은 법이라지만…….

‘그리고 그때의 기(氣)는?’

극도로 민감한 서량조차 긴가민가할 정도로 미세한 울림.

‘마치 나와 연결이라도 된 것 같은…….’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기(氣)는 유동적이고, 그런 기를 인위적으로 신체와 알맞은 진기(眞氣)로 가공하여 붙잡아 두는 게 내공심법이란 것이다.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사람들끼리도 기를 공유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사람의 심신(心身)에 따라 기의 성질도 바뀌니까.

그런데 사람도 아니고 짐승과 기를 공유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깜빡깜빡.

금호가 눈을 떴다.

흑요석처럼 맑은 눈에 자신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쳤다.

‘하지만…… 확실히 평범한 짐승은 아니지.’

고죽림, 그것도 영기의 농도가 가장 짙은 심층부에서 머물고 있었다. 아직 여물지 못한 몸으로 그만한 영기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몇 번씩 인지하지 못한 새에 사라지곤 했지.’

극도로 단련된 살수의 은신술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은신술은 기척까지 지우지만 금호는 기척을 느끼는 와중에도 신경을 안 쓰게 되니까.

서량이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금호의 코앞에 대고 흔들었다.

냠!

금호가 냉큼 고기를 씹었다.

팔뚝 크기밖에 안 되는 놈이 고기는 한 접시를 다 먹는다. 식탐이 많은 것 같진 않은데 주는 건 죄다 처먹는 게 신기했다.

“이놈 새끼 배가 아주 빵빵해서는.”

금호의 코를 툭 친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언제까지 잡아 둘 순 없다.

그 시간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내 보자.

“그나저나 동필이 너, 실력 좀 늘었더라?”

“예?”

“검식(劍式)이 상당히 세련되어졌던데? 그 미친개들 뿌리칠 때 말이야.”

“아, 보셨습니까?”

“안 봐도 느낄 수 있지. 호마검식(護魔劍式)이었지?”

“그렇습니다.”

“속도를 줄이는 대신 빈틈을 없애고 중검(重劍)의 묘리를 섞었다……. 잘했어. 무공도 사람 따라가는 법이야. 너와 잘 어울리게 변형했다. 좋은 깨달음이야.”

마동필의 얼굴에 솔직한 기쁨이 어렸다. 무공 관련으론 어지간해선 말을 보태지 않는 공자님께서 저리 말씀하셨다. 꽤나 인상적으로 보셨던 게 분명하다.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제가 감히 질문 하나 드려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

“과연 이것이 옳은 길일까요?”

“그건 또 뭔 소리래?”

마동필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무공은 필경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성장했다곤 해도 이 방향이 진정 옳은가 생각해 보면…….”

“뭘 물어보려고 밑밥을 깔아 두시나 했더니만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있네, 이게.”

“예?”

서량이 콧방귀를 퍽퍽 뀌었다.

“마공은 한쪽으로 치우친 무공이 아니야?”

“……?”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은 균형을 잃었음을 뜻하지. 동시에 확실한 장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리고 마공도 결국 장점을 극대화한 무공인데 왜 너의 검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

“덧붙이자면 넌 지금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야.”

“고민할 때가 아니라 하심은……?”

“변화는 곧 생산을 의미한다. 성장하든 퇴보하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법이지. 변화하는 스스로를 믿고 거침없이 나아가도 모자랄 때 왜 그따위 걸 고민하고 있어?”

“그, 그렇군요.”

“너 자신을 믿어. 고민할 시간에 겁먹지 말고 달려 봐라. 지금의 그 고민은 네가 한계에 달했을 때 해도 늦지 않아.”

어떻게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서량의 말은 마동필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적절한 때에 들은 적절한 조언이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 주니 일말의 불안감도 남지 않았다.

서량이 턱으로 창가를 가리켰다. 창가 너머에 널찍한 연무장이 보였다.

“하지만 뭐, 네 마음은 이해해. 이왕 얘기 나온 김에 네 무공 좀 보자. 교정할 구석이 보이면 조이든 풀든 해 보자고.”

“여, 영광입니다.”

불감청이이언정 고소원이다. 마동필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일어났다.

그때였다.

쿵! 쿵!

대문을 두들기는 소리.

“형법당에서 왔습니다! 삼공자님께선 문을 열어 주십시오!”

마동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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