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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0화 (40/774)

40화. 머리는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굴리는 거야 (4)

“…….”

“…….”

“야.”

“…….”

“야!”

“귀 아픕니다.”

“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뭐가 말입니까.”

“자수하든 말든 상관 않겠다고 했잖아.”

“그랬지요.”

“그때 한 방 날린 걸로 그냥 묻겠다고도 했잖아.”

“그랬었지요.”

“근데 왜 이 난리를 쳐서 사람 고달프게 만들고 지랄이냐?”

“그냥요.”

서량은 기가 찼다.

“이게 네 선택이냐?”

“그러니까 이러고 앉아 있지요.”

“참 병신 같은 선택도 다 있구만. 그렇게 세상 살기 싫었으면 그때 말하지 그랬냐? 손수 모가지 따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제 선택입니다.”

이건 뭐 대화가 안 된다.

독방에 둘만 남은 서량과 위홍련. 서량의 차림새는 평소와 같았지만 위홍련은 달랐다.

그녀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금해철(禁海鐵)로 제조된 수갑에 손목과 발목이 묶여서 내공조차 쓸 수 없다. 독방에 감도는 한기(寒氣) 때문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고도 서량에게 따박따박 할 말은 해 대는 걸 보면 확실히 마공 때문에 미친 건 아닌 듯했다.

그나마 존대라도 하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삼공자와 다퉜다고 직접 자수를 해? 너 내 입에서 사실 인정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바로 모가지 날아가. 직장을 잃는 게 아니라 목숨을 잃는다고.”

“원하신다면 그리하시지요.”

“와, 살다 살다 이런 미친년은 처음 보네.”

“……저 미친년 아닙니다.”

“니가 미친 게 아니면 대체 누가 미친 거냐!”

슬쩍 서량을 노려보던 위홍련이 고개를 돌렸다. 붓기는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알록달록한 얼굴이 자못 웃겼다.

“삼공자 살인 미수, 그리고 불경죄. 불경죄는 경우에 따라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살인 미수는 얄짤없어. 알기는 아냐?”

“압니다.”

물끄러미 그녀를 보던 서량이 문득 깍지를 꼈다.

한층 진지해진 기색에 위홍련의 얼굴에도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말장난은 이쯤 하면 됐으니까 네 속마음을 말해 봐.”

“…….”

“왜 이러는 거야?”

“그런 거 없습니다.”

“있어.”

“없다니까요.”

“편견 없이 보면 사람들 결국 다 거기서 거기야. 나나 너나, 널 잡아 가둔 형법당 당원들이나 똑같은 사람이지.”

위홍련의 눈빛이 흔들렸다.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의 입에서 다 똑같은 사람이라니. 다소 뜬금없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너, 책임감 없는 놈 아니잖아? 보아하니 대원들도 널 잘 따르는 것 같은데 걔네들 놔두고 느닷없이 폭탄을 터트려?”

“…….”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다 해도 공자님께 말할 의무는 없잖아요.”

“있어.”

“왜죠? 저도 저만의 자유 의지라는 게 있는데요?”

지랄 났다, 정말.

위홍련이 서량에게 놀란 것처럼 서량도 그녀에게 놀랐다. 정확히는 그녀의 사상에 놀랐다.

어릴 때부터 천마신교에서 생활해 온 주제에 제법 트인 생각을 할 줄 아네.

‘하물며 흥분한 것도 아닌데.’

서량이 입을 열었다.

“네가 날 걸고넘어졌으니까.”

“걸고넘어진 거 아닙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요.”

역시나 단호하다. 그녀의 굳은 성정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서량은 그녀의 눈빛이 예전처럼 딱딱하기만 하진 않다는 걸 깨달았다.

“넷째 때문이냐?”

“……!”

“그놈과의 약속 지키려고 돈 받은 거 말 안 하는 거냐?”

“…….”

“하긴 네 대원들도 연루되어 있으니까 쉽게 입을 열긴 힘들겠지.”

위홍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건 왜 날 걸고 자수를…… 아!”

순간 번쩍 든 깨달음.

서량이 묘한 눈으로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위홍련은 당연히 기분이 찝찝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리 보시는 겁니까.”

“…….”

“왜 그리 보시냐고요.”

“너도 이유를 말 안 하는데 나라고 해야 되냐?”

“…….”

“새끼, 의리 있는 미친년 정도로만 봤는데 나름 대가리 굴릴 줄도 안다 이거냐?”

“…….”

가만히 그녀를 보던 서량이 천장의 줄을 당겼다.

잠시 후, 독방의 문이 열리고 형법당원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이년 석방하시오.”

“예?”

“석방하시라고.”

당황한 당원이 표정을 굳히며, 그러나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살인 미수, 그리고 불경죄에 대한 명백한 시시비비를…….”

“간만에 마음에 드는 마인에게 내 직접 가르침을 내린 거요. 이년 얼굴이 떡이 된 건 내가 힘 조절을 못 해서고.”

“……예?”

“설마하니 이년이 정말로 날 죽이려 들었을 거라 생각했소? 아무리 미쳤어도 이년 역시 교도(敎徒)인데 교주의 제자를 살해하려 해? 상식적으로 말이 되오?”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당신이 생각해도 그렇지?”

“물론 그렇습니다. 하나 사건의 정황과 자미루주 등 증인들의 발언을 참고해 보면…….”

순간 서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변화는 실로 놀라우리만치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위홍련조차 움찔할 정도였으니 당원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그 사람들하고 대면이라도 해야 되나?”

“…….”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래? 당신, 혹시 이년한테 돈 떼어먹힌 거라도 있어?”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뭐야? 내 말이 그렇게 신뢰가 안 가나?”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것이……!”

“내가 우스워?”

당당하던 당원의 눈이 썩은 생선 눈깔이 되기까지는 차 한 모금 마실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위홍련마저 순간적으로 당원을 측은하게 여길 정도였다.

회생 후, 이전보다 상당히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삼공자는 삼공자다. 희대의 폭군이라 불리던 성정이 어디로 가겠는가.

당원이 떨리는 입술을 떼려고 할 때,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그러면 형법당주라도 불러와. 당주에게 직접 말할 테니까.”

“……!”

“저 문으로 나가면 되지? 나가서 왼쪽이었나?”

널 죽여 버리겠다는 엄포보다 더 무서운 협박에 당원이 후다닥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광마대주 위홍련을 무죄 방면토록 하겠습니다!”

도끼눈으로 당원을 노려보던 서량이 곧바로 눈에 힘을 풀었다.

“킁, 조금 흥분했군.”

“…….”

“미안하오. 내가 한번 꼭지 돌면 좀 막 나가는 면이 있어서.”

“송구하옵니다!”

“그놈의 송구는 별……. 뭐, 앞으로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 정돈 하십시다.”

“영광이옵니다!”

서량이 힐끔 위홍련을 내려다보았다.

“술 좋아하냐?”

“…….”

“좋아하는 것 같군. 시간 날 때 건너와, 한잔하게. 우리 시녀 귀찮을 테니까 안주는 직접 만들어 오고.”

서량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 당원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홀로 남아 복잡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던 그녀가 눈을 감았다.

* * *

“도대체 광마대주는 왜 그런 것일까요?”

“미친년이 미친 짓 한 거지, 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동필이 본 위홍련은 미쳤다는 말조차 아까울 만큼 제대로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아무리 삼공자가 툭툭 건드렸다 해도 신교의 교도라면 그리 막 나갈 수가 없다.

“뭔가 노리는 게 있었던 것일까요?”

“심심했나 보지.”

마동필이 서량을 힐끔거렸다.

금호의 턱을 긁어 주며, 서량이 물었다.

“뭐냐, 그 불손한 눈빛은?”

“아, 아닙니다!”

“궁금하냐?”

“예?”

“그년이 왜 형법당으로 가서 자수했는지 궁금하냐고.”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로군요.”

“당연하지. 광마대주라는 직책을 마작으로 땄겠어, 설마? 대가리 굴릴 줄 모르면 아무리 강해도 한 단체의 장(長)이 될 순 없어.”

“그렇긴 합니다만…… 하면, 위 대주가 왜 자수를 했던 것입니까?”

“왜긴 왜겠어, 살려고 그런 거지.”

“예?!”

살려고 자수를 했다고? 그게 말이 되나?

“왜? 그년하고는 안 어울리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건 어울리고 자시고 따질 상황이 아니야. 그년도 나름대로 판돈을 걸어 본 거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걔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예?”

“넷째한테 돈 받아먹은 사실이 나한테 까발려졌어. 약속은 약속인지라 내 말대로 불어 버릴 순 없지. 대원들한테도 골고루 나눠준 것 같은데 그놈들까지 엮이게 할 순 없을 거 아냐. 그년 성격상 차라리 혀를 깨물었을 거다.”

“하면 아예 자수를 안 하는 방법도…….”

“안 하면? 자미루주랑 점소이들 입은 어떻게 막게? 그냥 다 죽여 없애 버릴까?”

“……아!”

“좋아,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자고. 하지만 그년은 단 하나의 위협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하나의 위협이라니요?”

“넷째.”

순간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나와 넷째 사이가 안 좋은 걸 그년도 알아. 당연히 자미루에서 접촉했다는 사실이 놈에게 들어가면 그년에게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

“……!”

“형법당에 수감되는 것 자체가 그년에겐 최고의 선택인 거야. 넷째도 건드릴 수 없고, 대원들도 피해 볼 일이 없지.”

“하지만 공자님에 대한 살인 미수와 불경죄는……?”

“그래서 날 부른 거 아냐.”

“공자님께서 이렇게 나오실 줄 그녀가 알았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공자님께서 어찌 나오실 줄도 모르는데 목숨을 걸었다는 겁니까?”

“어.”

“아니, 왜 그런 무모한 수를…….”

“그게 그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다.”

“……!”

“독하게, 지랄 맞게,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그래도 너무 과격한 도박이었습니다. 순전히 운에 맡긴 격이 아닙니까?”

“그게 왜 도박이야? 본전은 충분히 딴 승부 아니야?”

“본전이라 함은……?”

“어쨌든 지 새끼들은 지켰잖아?”

마동필이 탄성을 질렀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나왔다.

“독특하지만 그래도 지 새끼들은 끔찍하게 챙기는 년이야. 겉으로는 대책 없어 보이지만 머리를 멋으로 달고 다니는 건 아니란 말이지.”

“…….”

“뭐, 네 말마따나 상당히 과격하긴 하지만.”

마동필은 감탄 어린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대단하십니다.”

“엥? 뭐가?”

“들으면 쉽지만 막상 거기까지 파악해 내기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친해졌다 해도 삼공자에게 쉽게 할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마동필의 놀라움이 크다는 뜻이었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운이 좋았지. 성별도, 나이도 다르지만 대충 비슷하게 살아왔던 놈들을 알고 있거든.”

“예? 그게 누굽니까?”

“너, 그리고 나.”

“……!”

“보다 상식인처럼 보일 뿐, 한번 눈 돌아가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건 그년이나 우리나 똑같아.”

서량이 금호의 턱에서 손을 떼었다. 어느새 쌕쌕 잠에 빠져 있었다.

“결국 다 비슷한 거야, 사람이라는 건.”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나이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한 번씩 공자님께 노강호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심지어 워낙 자연스러운 탓에 그러려니 해 버린 지도 좀 되었다.

하나 지금은 또 달랐다. 강호의 경험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깊어 보였다. 혜안(慧眼)을 가진 성숙한 어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역시…….’

교주님께서 제자로 삼으실 만하구나.

내심 감탄을 넘은 감동한 마동필.

그때, 서량이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킬킬. 살려 줬으니 술은 그년더러 사라고 해야겠다.”

“……?”

“월급을 아주 탈탈 털어 버려야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깨달아 봐라, 이년아.”

마동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끄으응! 어쨌거나 오늘도 결국 이렇게 지나가는군.”

“아, 예.”

“너도 이만 건너가서 자라. 피곤했을 텐데.”

“내일 아침 다시 오겠습니다.”

“뭣 하러 와? 얼마 남지도 않은 휴가나 즐기시지.”

“그래도…….”

그때였다.

서량이 손을 들었다.

“동필아.”

“예, 공자님.”

“앵화 잔다. 주방에 가서 잔 좀 준비해라.”

“아, 약주 드시고 주무실 생각이십니까?”

“약주는 무슨.”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창가 너머 대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쾅! 쾅!

서량이 버럭 소리쳤다.

“문 부서진다, 이년아!”

투덜거리며 걸어간 그가 대문을 열었다.

열린 대문 너머에 큼직한 보따리를 든 위홍련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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