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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1화 (41/774)

41화. 머리는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굴리는 거야 (5)

쪼르르르.

잔을 채우는 영롱한 액체가 그윽한 향을 풍겼다.

위홍련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따르다 마십니까?”

“주는 대로 받아 처마셔. 따라 주는 것만도 영광이라 생각해라.”

“…….”

“따라 봐.”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위홍련이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유치한 짓은 안 하는군.”

“답례입니다.”

“답례? 무슨 답례?”

“…….”

“아, 네 모가지 멀쩡히 붙어 있게 해 준 답례?”

“…….”

“답지 않게 무게 잡기는.”

서량이 그대로 잔을 비우자 뒤이어 위홍련도 잔을 비웠다.

두 사람 사이에는 조촐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서량의 말마따나 그녀는 정말로 안주를 챙겨 온 것이다.

서량이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마동필이 뒷짐을 진 채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위홍련에게 착 고정되어 있었다.

“동필이는 안 마시냐?”

“저는 괜찮습니다.”

“안 마실 거면 각 잡고 있지 말고 들어가서 쉬지 그래?”

“안 됩니다.”

“잉?”

“혹시라도 광마대주가 날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반드시 제가 막겠습니까.”

위홍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꽤나 흉악해 보이는 미소였다.

“너 정도가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마동필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바위처럼 굴강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기만 바빴다.

위홍련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주제도 모르는 놈을 수하로 삼으셨습니다, 공자님.”

“왜? 저 친구가 너보다 못할 것 같아서?”

“저 광마대줍니다.”

“알아, 이년아.”

“호법원의 조장 따위한테 질 실력은 아닌데요.”

서량이 킬킬 웃으며 위홍련의 잔을 채워 주었다.

“삼 조장이다. 그리고 빠르게 성장 중이지.”

“그래서 건방을 떨었군요. 근래에 괜찮은 무공이라도 몇 수 익힌 모양입니다.”

“너야말로 너무 건방 떠는 거 아니냐? 지금 네 몸 상태면 동필이가 확실히 우위라고 보는데 말이야.”

입술을 씰룩이던 위홍련이 그대로 잔을 비워 버렸다.

서량이 재차 그녀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나저나 안주가 이게 뭐냐?”

“왜 그러시는지요?”

“향이 너무 강하잖아.”

“익숙해지면 이만큼 맛난 것들도 없습니다.”

“하여튼 사회성 무지하게 떨어지는구만. 술 푸러 왔으면 상대방 생각도 좀 해라, 알겠어?”

위홍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저 돈 없는데요.”

“누가 돈 내놓으래? 손 내놔 봐.”

“예?”

“손 내놔 보라고.”

“왜……?”

“이제 와서 내가 널 두들겨 패기라도 하겠냐? 아니면 뭔 수작이라도 부릴 것 같아? 내놓으라면 좀 내놔라, 이 지지리도 말 안 듣는 것아.”

위홍련의 입술이 다시 씰룩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가 손을 툭 내밀었다.

“음.”

그녀의 맥문을 쥔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나 때문에 얻은 내상은 아닌 것 같은데.”

“몸 상태 때문에 그러셨습니가?”

“그럼 깍지라도 끼려고 그런 줄 알았어? 미쳐 가지고, 이게.”

“…….”

“음, 타격으로 인한 내상은 아닌 것 같고. 아하? 독방의 한기(寒氣) 때문이구만.”

“…….”

우우우웅.

위홍련의 눈이 흔들렸다.

말도 없이 맥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마기의 농도가 실로 굉장했다.

시뻘건 화염이라도 된 듯 훅훅 치고 들어오는데 순간적으로 팔뚝이 다 타 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스르르륵.

오장육부 곳곳에 침투한 한기들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암영진마공이 열양공(熱陽功)이라 보다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위홍련의 안색이 한결 편안해지자 서량이 그녀의 맥문에서 손을 떼었다.

“병자랑 술 마시는 취미 없다.”

“감사하단 말은 안 하겠습니다.”

“너 같은 또라이한테 감사 인사 기대할 멍청한 놈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어?”

“…….”

“술이나 마셔.”

말없이 연신 잔만 비우던 도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서량이었다.

“그래서, 석방되자마자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쫄래쫄래 찾아온 이유가 뭐야?”

“술 한잔할 거면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묻잖아, 왜 쉬지도 않고 왔냐고.”

“그거야 제 마음…….”

“야.”

“…….”

“네가 여기 찾아오고 난 후로 말장난 외에 한 게 있다고 보냐?”

“…….”

“술도 적당히 마셨겠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할 말 있으면 말해.”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할 말 없는데 안주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고? 이 늦은 시간에?”

“아까도 말씀드렸듯 번거롭게 한 것에 대한 제 나름의 성의입니다.”

위홍련의 입에서 성의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녀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상대가 삼공자 정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말이었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네 마음이 그렇다면 술이나 마시도록 하지.”

“진짭니다.”

“알았다고.”

서량이 투덜거리며 잔을 비웠다.

마시는 내내 한 번도 젓가락을 들지 않은 그를 가만히 보던 위홍련이 물었다.

“안주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알았어?”

“다른 안주 가져올까요?”

……뭐지?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왜 그래?”

“예?”

“지금까지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대사가 튀어나온 것 같은데, 방금?”

“…….”

위홍련이 다시 한번 잔을 비웠다. 꽤 빠른 속도로 잔을 비우고 있음에도 딱히 취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염병, 진짜로 술만 축내러 왔을 줄이야. 어? 벌써 한 병 다 비웠네. 동필아! 두어 병 더 가져와 봐.”

마동필이 자리를 떴다. 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위홍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위홍련이 코웃음을 쳤다.

“정말이지 충성스럽기가 관우 저리 가라군요.”

“너도 좀 보고 배워라.”

“안 갑갑하십니까?”

“왜 갑갑하냐, 날 위해서 헌신해 주는 사람인데.”

“저 정도면 헌신을 넘어서 사랑 아닙니까?”

“또 나대지. 대가리 깬다.”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은 되시겠습니다.”

“염병하네. 내가 왜 동필이를 싸움에…….”

순간 말을 멈춘 서량이 눈을 빛냈다.

위홍련이 빈 병을 흔들어 보았다.

“조금 남았습니다. 따라 드리지요.”

“뭔 뜻이냐?”

“…….”

“의뭉 떨지 말고 말할 거면 확실하게 질러. 시간 아깝게 술만 축내지 말고.”

위홍련의 얼굴에 약간의 혼란이 깃들었다.

“……솔직히 고민 중입니다.”

“뭘.”

“제가 공자님께 이런 걸 말씀드려도 될지.”

“마음도 덜 다잡고 술부터 푸러 왔어? 아니 그보다, 그게 뭔 말이야?”

위홍련은 대답 없이 본인의 잔만 내려다보았다.

이번만큼은 서량도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이전처럼 무게만 잡는 게 아니라 진짜로 고민하는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마동필이 술병 두 개를 들고 왔다.

동시에 그의 눈빛도 돌변했다. 그 역시 방 안의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동필에게 술을 받은 서량이 위홍련의 잔을 채워 주었다.

위홍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비웠다. 그러자 서량이 다시 한번 그녀의 잔을 채웠다.

그렇게 연거푸 세 번이나 잔을 비워 낸 위홍련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놈 얼마나 믿으십니까?”

그녀가 턱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마동필이 있었다.

서량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몇 번이나 지켜 준 사이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마동필은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위홍련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쉽사리 나올 것 같지 않은 씁쓸한 미소였다.

“그건 참 부럽군요.”

“그래서 하려는 말은?”

“진마대주(眞魔隊主).”

“……뭐?”

“진마대주가 움직일 겁니다.”

진마대주.

내전 전투 부대 중 하나로 그 수준은 광마대와 동급이다.

악명에선 광마대가 우위에 있지만 진마대는 정통성이 있는 집단이었다.

천마신교가 최초로 세워질 때부터 존재해 왔던 역사 있는 부대. 당연히 그곳에 속한 마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서량이 눈을 반짝였다.

“그 자리에 진마대주도 있었단 말이로군.”

위홍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심이 준 최신 관계도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사실이다. 확실히 믿을 만한 문서이되 만능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놈이 왜 움직여?”

“진마대주는 여우 같은 놈입니다. 본인에게 해가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지요.”

“유독 몸을 사린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그런 놈이 갑자기 움직여? 뭐 얻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건가?”

“저요.”

“……?”

“그렇게나 몸을 사리는 놈이 앞뒤 생각 없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바로 저 때문이지요.”

“왜? 그놈이 널 좋아하기라도 하냐? 거 취향 독특하네.”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이가 극도로 안 좋다는 뜻.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사이가 됐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궁금한 건 그놈이 굳이 지금 움직일…….”

“…….”

“설마 그놈, 넷째한테 확실히 붙은 거냐?”

“정확히는 사공자한테 덜미를 잡힌 것 같습니다.”

“그게 뭔데?”

“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고요. 다만 워낙 그놈하고 부딪치다 보니까 이젠 얼굴만 봐도 아는 게 있습니다. 그놈, 분명 사공자한테 약점을 잡혔습니다.”

“즉 네 말은, 움직이는 건 진마대주지만 그놈을 휘두르는 건 넷째라는 말이로군.”

“결과적으로 사공자가 움직이는 겁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걸 나한테 알려 주는 이유는?”

“답례입니다.”

“…….”

“그리고 공자님하고는 손을 잡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어차피 공자님께서도 사공자를 조지고 싶으신 것 같은데요?”

마동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뚱한 말투는 그렇다 쳐도 감히 공자님을 떠보다니,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여자 아닌가.

하지만 서량의 미소는 여전히 밝았다.

그가 위홍련의 잔을 채워 주었다.

“한시적으로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 뭐 이런 거냐?”

“싫다면 빠지셔도 됩니다. 저 혼자서도 지금까지 잘 싸워 왔으니까요.”

“미안하지만 나도 재미있는 걸 보고도 그냥 넘기는 성격은 못 돼서. 게다가 너, 이 기회에 악의 고리를 팍 끊어 버리고 싶은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잔을 들었다.

“너, 진마대주 확실히 맡을 수 있겠어?”

“공자님께서 사공자 거꾸러트리기 전에 제대로 잡아 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냥 놔두기 찝찝했는데 잘됐죠, 뭐.”

“패기 하나는 마음에 든다.”

찌잉!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잔을 비운 서량이 마동필을 보며 씩 웃었다.

“녹촉 처음 봤을 때 기억난다고 했지?”

“……예.”

“코앞에서 일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본무대는 따로 있었네. 너도 한 다리 낄래?”

“물론입니다.”

서량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잔 하나 더 가져와.”

* * *

“서량의 거처로 갔다고?”

“그렇습니다.”

홍위문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여러모로 상식 밖이야. 진짜 자수하나 싶었더니 뜬금없이 살인 미수? 심지어 나는 건드리지도 않고 말이지.”

“의리를 지킨 것 아니겠습니까.”

“더하여 대원들도 지킨 거지. 은근히 그런 부분에서 확실하니까.”

신회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게 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긴 하나, 광마대주가 그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그런데도 삼공자를 걸고넘어지며 형법당에 자수를 했다면…… 역시 삼공자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 애초에 서량 그놈의 증언으로 무죄 방면이 된 거니까 말이야. 미리 말을 맞추지 않으면 그러기도 힘들어.”

“한데 어차피 풀려날 거라면 굳이…….”

“대원들도 살리고 자미루 쪽도 걸린 거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아! 그렇다면 광마대주에겐 형법당이야말로 모든 위협에서 가장 안전한 지점이 되었겠군요.”

“그래. 다만 그 거래가 어떤 건지 모른다는 건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홍위문이 머리를 긁적였다.

“유추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뭐든 확실한 게 없다는 게 문제군.”

“…….”

“이럴 때는 괜찮은 장난감으로 쿡쿡 쑤셔 보는 게 제일이겠지.”

신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마대주를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확실하잖아? 그 인간이 광마대주 들쑤셔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것저것 따져 봤자 시간만 잡아먹고 얻는 건 없어.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 움직여야 할 때다.”

홍위문이 곰방대에 연초를 채웠다.

연초의 색은 이전보다 더 짙은 보랏빛이었다.

“진마대주에게 연통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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