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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5화 (45/774)

45화. 대면 (3)

‘이야, 이거는…….’

위홍련은 은근한 눈으로 홍위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는 홍위문. 그러나 그의 흰자위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음, 위험하지 않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량에게 탈탈 털리고 있잖은가. 자신이었다면 앞뒤 안 가리고 칼부터 뽑아 휘둘렀을 것이다.

그게 바로 위홍련과 홍위문의 차이였고, 광기를 기반으로 살아온 사람과 정치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차이였다.

홍위문이 차갑게 읊조렸다.

“요사한 언사로 사람을 놀림감 만드는 데에 능하시구려. 하긴, 셋째 형은 항상 그랬었지.”

지금껏 나왔던 서량의 말을 부정함과 동시에 그를 비꼬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서량은 한 점 타격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천마신교에 일말의 정도 없다. 관계가 깊어져야 상대의 비꼼에 화라도 날 거 아닌가.

“긴말 않겠소. 오늘의 무례는 내 넓은 아량으로…….”

“얼마나 넓은 아량이기에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뒤에서 죽이려 들어? 이 옹졸한 놈아.”

순간 홍위문의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서량이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런 일을 언급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다음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거요.”

“내가? 굳이? 왜?”

“정말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 생각이시오?”

완곡한 표현이지만 홍위문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직접적 표현이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마다 회피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여러모로 옳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마인들의 지지를 받고 싶은 후계 후보로서 좋은 처신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안 되나?”

“……!”

“어차피 우리 후보들끼리 박 터지도록 싸우는 거 모르는 사람 있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피해 가야 할 주제라도 돼?”

순간 일대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차게 식었다.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홍위문이 입을 열었다.

“전쟁 선포라도 하려고 오신 게요?”

더 이상의 설득도, 모르는 척 잡아떼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대화가 좀 되는구만.”

“…….”

“전쟁 선포까지는 아니고, 따로 제안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

“정말 그럴 마음이었다면 진즉에 내 거처로 찾아오지 그러셨소?”

“윗사람이 집까지 찾아왔으면 아랫사람이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객당으로 기어 왔어야지. 나름 챙겨 준 예의를 걷어찬 건 너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홍위문도 할 말은 있었다.

“하는 꼴을 보니 예의를 그리 중시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오. 목적이 있었으면 그 무례한 성격대로 그냥 비집고 들어오지 않고 왜 없는 인내심까지 자아내며 기다리셨소?”

그에 대한 서량의 대답은 압권이었다.

“난동 좀 피워 보고 싶어서.”

“……!”

“어차피 네가 세월아 네월아 할 건 알고 있었어. 마침 특실로 안내도 해 줬겠다, 그 화려한 방에서 좋은 음식에 술이나 퍼마실 기회가 언제 또 있겠냐?”

“…….”

“반쯤 재미 삼아 널널하게 기다리고 있었지.”

홍위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빌어먹을 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할 말은?”

말이 짧아졌군.

슬쩍 주변을 둘러본 서량이 폭탄 발언을 터트렸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마무리 지어 보는 건 어때?”

“……?!”

“너도 대가리 아프게 뒤에서 꼼수 쓰는 거 별로잖아? 나한테 당한 것도 있으니 열도 받았을 테고.”

“지금 그 말은 설마…….”

서량이 칼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칼이다. 넌 뭐냐?”

비무든 생사결이든 이번 한판의 승부로 끝내자는 뜻.

홍위문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요?”

“넌 고작 장난이나 칠 상대한테 아까운 시간 써 가면서 공을 들이나 보지?”

“혹시 보는 사람 많다고 무리수를 던지는 거라면…….”

“사람들이 다 너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안 좋은 버릇이야, 그거.”

심드렁한 서량의 태도에 홍위문만이 아닌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뒤에서 헤벌쭉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꼴을 구경하던 위홍련조차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소.”

“뭘?”

“정말로 이럴 작정으로 예까지 찾아오신 게요?”

“그럼 어떻게 하냐? 겁먹었는지 부끄럼 타는지 우리 넷째는 꽁꽁 숨어서 나오지 않는걸. 난 잔대가리 굴리는 거 딱 질색이거든. 이기든 지든 결판을 보는 게 서로에게 속 시원하지 않겠어?”

이게 진정 삼공자란 신분을 가진 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인가.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홍위문의 얼굴에 점점 실망의 빛이 어렸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워낙 의외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 뭔가 노림수가 있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할 무모함에 이중 삼중의 함정이라도 판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저놈은 지금 진심이었다.

홍위문이 몸을 돌렸다.

“객당을 수습해라! 인부들을 불러 잔해부터 정리하도록! 한 달 안에 새 건물을 올려라!”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위엄이 그득했다.

아예 서량 일행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량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그에 대한 흥미도 긴장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동필이 눈살을 찌푸렸다. 위홍련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서량이 과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리 무시하다니.

홍위문이 재차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야! 당장 움직이지 못…….”

그때였다.

뭉클뭉클.

“……!!”

파아아악!

재빨리 몸을 돌린 홍위문이 자세를 낮추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왜?”

“…….”

“목 뒤가 시큰시큰하더냐?”

홍위문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순식간에 등이 축축해졌다.

마음 접고 거처로 돌아가려는 때, 호랑인지 늑대인지 모를 기괴한 짐승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짐승의 숨결. 훅 끼쳐 드는 노린내와 살기.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면 목숨이 날아갔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놈, 그래도 반응 하나는 일품이군. 단련을 잘했어.”

“……?”

“못된 약재에 중독이라도 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인데? 미세한 환각 성분이 섞인 약력으로 독투(獨鬪)의 효율을 높였어. 적사가의 방식이냐?”

“……!”

“역시 마도의 명문가. 무학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해.”

홍위문의 얼굴에 아무도 모르는 경악이 드리워졌다.

‘어떻게?’

그가 항상 연초를 피우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수련을 위해서였다.

독투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훈련이다. 가상의 상대를 세워 놓고 온갖 변수를 예측하여 대련, 이후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하여 체득한다.

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방식과 비슷했다. 경지에 이른 고수라면 손을 섞지 않아도 상대의 힘과 반응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적사가에서는 그 훈련의 효율을 약(藥)을 통해 극대화했다. 홍위문이 항상 피우던 연초는 바로 적사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환극초(幻克草)란 것이었다.

“뭐, 신선한 방식이긴 하다만…….”

스르릉.

서량이 다시 칼을 뽑았다.

일부러 사고를 치려던 이전과 달리 칼날에서 진한 살기가 배어 나왔다.

“그래 봤자 결국 상상력 놀음이지.”

“……!”

“공상 따위로 얻은 무공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

“…….”

“들어와 봐. 선수는 양보하지.”

지이이잉!

홍위문의 몸에서 진득한 자색의 마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자신의 비밀 중 하나를 들켰다는 놀라움, 그리고 상대의 도발이 이전과 달리 진중하다는 데에서 오는 위기감에 사왕마공이 절로 발동되고 있었다.

우두둑.

서량의 눈에 이채가 번득였다.

자신을 노려보며 점차 자세를 낮추는 홍위문의 손에 변화가 생겼다.

‘손톱…… 신기하군.’

홍위문의 손톱이 순간 뾰족하게 날이 섰다. 광택이 날 정도로 매끄러운 흑색으로 변한 건 덤이었다.

‘마공에 괴공(怪功)이 많다더니 역시.’

스륵.

서량이 홍위문에게 칼을 겨누었다. 동시에 서량의 몸에서 웅장한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위홍련의 눈이 커졌다.

‘신도합일이다.’

자미루에서 보았던 그때의 경지. 아마 마주하는 홍위문의 눈엔 더 이상 서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휘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살기가 요동치고 올라오는 한기가 분노를 부채질한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천마신교 역사에 몇 없을, 후계 후보들끼리의 정면 승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멈추십시오!”

쿠구궁!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곳으로부터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그만! 그만하십시오!”

급하면서도 절도 있는 걸음걸이가 인상적이다. 무려 삼십여 명에 달하는 흑색 무복의 고수들이 칼날 같은 기세를 피우며 등장했다.

“삼공자님께선 칼을 거두십시오! 사공자님! 사공자님께서도 물러나십시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시커먼 놈들은?

그때, 위홍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기에 가까운 광기를 피워 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형법당 흑조위(黑照衛)!”

교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분란이 생길 시 형법당에서 파견하는 일당백의 고수들이다. 신교의 마인들이 강호에서 공포의 악귀로 알려져 있다면, 형법당의 흑조위들은 마인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서량의 눈이 빛났다.

‘흑조위? 형법당의 진압조!’

자자한 악명만큼이나 실력도 최고라 알려진 이들답게 한 명, 한 명의 무공이 위홍련 못지않았다.

독특하게도 그들은 모두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두 눈만 뻥 뚫려서 공허해 보이는 백색 가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묘한 공포를 자아내게 했다.

흑조위 중 한 명, 가면 좌측 눈가에 붉은 점이 새겨진 위사가 두 사람의 중앙으로 걸어왔다.

“형법당 흑조위, 칠 위장(七衛長)입니다.”

신교 최고 신분을 지닌 두 사람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흑조위의 권한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칠위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멈추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완곡한 권유였지만 목소리에 실린 위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긴장한 눈으로 서량을 보던 홍위문이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회.’

흑조위를 부른 건 다름 아닌 신회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조사 중간에 형법당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칠위장이 객당 소속 마인들에게 외쳤다.

“속히 주변을 정리하시오!”

깜짝 놀란 마인들이 흩어졌다. 그들의 상전인 사공자와는 또 다른 공포를 주는 이들이 흑조위였다. 하물며 위장(衛長)급까지 출동했다면 이곳은 더 이상 자신들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가만히 홍위문을 보던 서량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좋은 수하를 두었구나.”

“…….”

“수하 덕에 건진 목숨, 앞으로 간수 잘하고 다니도록.”

탁!

절도 있게 납도한 서량이 몸을 돌렸다.

“위 대주, 마 조장. 이만 가지.”

“아, 예!”

서량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 마동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위홍련은 등을 돌려 짧게 으르렁거렸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홍위문이었다.

“배포 넘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실망입니다그려.”

홍위문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칠 위장이 나섰다.

“광마대주도 이만 나가시오. 거처로 돌아가 자숙하길 권고드리겠소.”

위홍련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달리 말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짧고 과격한 사건이 유야무야 마무리되었다.

신회가 헐레벌떡 홍위문에게 다가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신회.”

“예, 공자님.”

“지금 당장 진마대주를 불러.”

홍위문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제대로 한판 붙어 보자는데 더 이상 빼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 * *

“썩을! 같은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었던 게 다 부끄럽네! 나 같았음 쪽팔려서라도 먼저 주먹부터 날렸겠다! 어휴.”

위홍련이 연신 투덜거렸다.

마인에게 자존심은 목숨과 같은 것. 방금 같은 상황에서까지 참는다면 그건 마인이 아니다. 즉, 위홍련에게 홍위문은 더 이상 마인이 아니었다.

마동필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싸움이 커지지 않아서.”

“뭔 소리야?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게 무슨…….”

“그 새끼 눈깔 못 봤어? 밑에 것들 다 보고 있는 데에서 그런 모욕을 당했잖아. 모르긴 몰라도 울화에 염통이 콱콱 막혔을 거다.”

서량이 빙긋 웃었다.

“진마대 쪽 움직임 확인해. 오늘이든 내일이든, 이른 시일 내로 반드시 움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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