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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7화 (47/774)

47화. 지옥문이 열리다 (1)

‘빌어먹을! 빌어먹을!’

내가 미쳤지. 살풀이 후 제법 친분이 생겼다고 방심한 내가 병신이었어.

무식한 속도로 쏘아지던 서량이 재빨리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악귀의 석상을 가운데로 두고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다. 여기가 바로 중앙 광장으로, 내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서량이 눈을 감고 기감을 확장했다.

하지만…….

“젠장! 이걸로 어떻게 알아?!”

내전의 너비는 어지간한 마을 서너 개를 합친 것만큼이나 컸다. 아무리 무공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해도 이 넓은 구역에서 기감만으로 위홍련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진마대주를 직접 찾아가겠다고? 그렇다면 혼자선 무리야. 분명 애들을 풀었겠지?’

그럼 일단 광마대로 가 봐야 하나? 어? 근데 광마대는 어디에 있지?

‘아냐! 그 빌어먹을 사고뭉치도 어떻게든 한판 하고 싶은 생각에 몸이 달았다고. 애들 시킬 생각도 못 하고 지가 직접 빨빨거리며 찾으러 다녔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진마대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일단 거기부터 찾아가서 난동을 피웠을 테니까.

‘……아니지. 만약 거기서 난동을 부렸다면 미약하게나마 투기(鬪氣)가 느껴졌을 거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이백이 넘는 조직이다. 단체로 마기를 발산해 냈다면 분명 자신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역시 광마대원들부터 볶아 봐야 하나? 설마…….’

서량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 흥분한 와중에 유인한답시고 주루에 있진 않을 거고.’

그때, 멀리서 마동필이 뛰어왔다.

“헉헉! 공자님!”

서량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이제야 따라잡은 그였다. 고죽림에서 연마된 강철 같은 체력으로도 숨이 턱에 차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서량이 외쳤다.

“동필아! 광마대가 어디냐?!”

“과, 광마대 말씀이십니까? 저기 동북쪽으로 가시다 보면 내전 부대 집결 표식이 있습니다. 거기 표지를 읽으시면…….”

“내가 광마대로 갈 테니까, 넌 인근 주루들부터 싹 뒤져 봐!”

“예?!”

“닥치고 얼른 움직여!”

“아, 예!”

파아아앙!

마동필보다 먼저 움직인 서량의 얼굴이 다급함에 잔뜩 일그러졌다.

‘너 이년! 진짜로 주루에서 낚시하고 있었으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거야!’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미루는 아닐 거라는 거다. 상식이 있다면 또 거기 가서 낚싯대를 흔들진 않겠지.

“동필아! 자미루는 놔두고 다른 주루부터 돌아! 알았냐아아?!”

“명을 받듭니다아아!”

* * *

“이렇게 일대일로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지?”

까드드드득!

검과 검이 기괴한 마찰음을 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 맞붙은 두 자루의 검이 희미하게 떨려 왔다.

송경이 으르렁거렸다.

“위. 홍. 련.”

“그 빌어먹을 입 냄새는 여전하구먼.”

퍼엉!

위홍련이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송경도 마찬가지였다.

우우우웅!

송경의 장검에 강력한 마기가 실렸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 검이 사정없이 떨려 왔다. 일순간 뿜어지는 마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돈 받아 처먹은 자리에선 어떻게 참았을꼬? 날 그리 죽이고 싶어서.”

“닥쳐라!”

퍼어엉!

그 짧은 거리에서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쳐 돌진한다.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는 광기의 돌격.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송경답지 않은 공격에서 그가 얼마나 위홍련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클!”

짧은 비웃음과 함께 위홍련도 마주 돌진했다.

콰아앙!

두 자루 검이 부딪치며 귀청을 떨어 울리는 폭음을 만들었다.

보통 여인의 무공은 사내의 무공보다 섬세하고 표홀하기 마련이다.

마도 무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무공의 차이가 아니라 남녀 신체의 차이였으며 사회가 만든 성격의 차이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위홍련은 독특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무공이란 상식을 정면으로 깨부순 그녀의 검법은 오히려 송경보다도 거세고 흉포했다. 정면 승부는 물론 난전(亂戰)에 특화된 광마대주다운 무공이었다.

송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쩌저저정! 쩌정!

허공에서 검이 부딪치길 수십 번.

번쩍거리는 광채가 태양처럼 강렬했다. 두 자루의 검이 부딪쳐 만들어 낸 충격파에 골목 벽 곳곳에 금이 가고 땅에서는 돌 부스러기가 튀어 올랐다.

우우웅.

위홍련의 동공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청현마공의 진정한 개방. 그녀의 독문병기인 포아검(包牙劍)에서 짙은 청색 광택이 돌았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받아 봐, 이 새끼야!”

콰르릉!

무지막지한 검기의 폭격에 송경의 몸이 사정없이 뒤로 물러났다.

몇 겹의 검기를 뭉쳐 쏘아 내는 기공 검식. 베거나 뚫는 것이 아니라 단순 파괴력만을 살려 목표 대상을 박살 내는 환수대검식(幻獸大劍式)이었다.

송경이 씨익 웃었다.

“좋아! 이 정도는 해야지!”

“센 척하지 마, 새꺄!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으면서!”

콰르릉!

이번에는 위홍련이 덜컥 뒤로 물러났다.

청현마공에 이은 환수대검식, 그리고 상천마력(霜天魔力)에 이은 설산귀검(雪山鬼劍)이었다.

위홍련의 마공과 검법이 실전에서 이 악물고 만들어 낸 절기라면, 송경의 상천무(霜天武)는 신교 정통의 마학으로 명성이 높은 무공이었다.

정순함으로는 상천무가 한 수 위고, 변칙과 살상에는 청현과 환수가 한 수 위다. 거기에 이룬 경지가 비슷하니 자연스레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발 좀 뒈져라!”

“너나 죽어, 시발 새끼야!”

퍼퍼퍼펑! 쩌어어엉!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검기(劍技)는 난폭해져만 갔다.

딱히 회피도, 받아치기도 없다. 미친 듯이 후려치기만 하는 난전에서 섬세함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투 자체가 서로에게 쌓인 분노를 증명하고 있다. 둘보다 한참 약한 무인들도 이토록 무모한 싸움은 벌이지 않는다. 이런 막 나가는 전투의 폐해를 알기 때문이다.

주르르륵.

위홍련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송경 역시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타격으로 인한 외상이 아니었다. 강력한 충격파를 감당하지 못해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두 사람의 의식은 오로지 하나, 상대의 완전한 말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푸화아악!

내상에 이은 외상이 터졌다. 송경의 가슴에 기다란 검상이 새겨졌다.

송경의 눈에 핏발이 섰다.

빠각!

위홍련의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갔다. 송경의 다리가 그녀의 얼굴을 걷어찬 것이다.

퍼어어억!

서로에게 내지른 주먹이 허공에서 정확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이 각기 삼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헉! 헉!”

“후욱! 후욱!”

격렬해진 호흡, 정돈되지 않은 기파.

그러나 살기와 광기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를 불려 간다. 짧았지만 워낙 격렬했던 전투에 마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뭐, 뭔 일이야?”

“억! 야, 조심해!”

콰직!

튀어 나간 돌덩이가 건물 벽에 박혔다.

“으헉! 죽을 뻔했다!”

“도대체 어떤 미친 새끼들이 이 시간에……!”

순간 위홍련과 송경의 눈이 번뜩였다.

퍼어어어엉!

건물 지붕 반쪽이 그대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검기를 날린 것이다.

“입들 안 닥쳐, 이 새끼들아!”

“죽고 싶지 않으면 대가리 집어넣어!”

마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연놈들이 어디서…….”

“야! 쉿! 닥쳐! 이리 와!”

“뭐야? 왜 그래?”

“과, 광마대주와 진마대주다!”

“크헉!”

그제야 두 사람의 정체를 안 마인들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지만 그거 한번 구경하려다가 인생을 끝장낼 순 없다.

그나마 깔끔하게 죽으면 다행이지, 두 사람에게 잘못 걸리면 산 채로 물고기 밥이 될 게 뻔했다.

호기심에 몰려오던 마인들이 바퀴벌레 흩어지듯 사사삭 사라졌다.

위홍련이 웃으며 입가의 피를 거칠게 닦았다.

“더 할 수 있겠냐?”

“내가 물을 말이다!”

“근데 이차전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왜? 벌써 숨차냐?”

“남은 한쪽 불알은 멀쩡하냐?”

“미친년아아!!”

퍼어어엉!

위홍련이 울컥 피를 토했다. 이번 일격은 실로 강력해서 대부분의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탓이었다.

우뚝!

하지만 정작 공격한 송경도 후속타를 이어 갈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왼손 중지가 뒤로 홱 꺾인 것이다.

날카롭게 올라오는 통증이 분노를 주춤거리게 했다. 그 한 번의 호흡으로 후속 공격을 막은 위홍련의 반사 신경은 가히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우두둑!

위홍련의 눈이 가늘어졌다. 송경이 이까지 드러내고 웃으면서 탈골된 중지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저게 얼마나 아픈지는 위홍련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증오가 너무 큰 나머지 고통도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콰지지지직!

무지막지한 돌진으로 한 몸이 된 두 사람이 건물 외벽을 깨부수고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보수 중인 자미루 일 층이었다.

그나마 공사 중이라 아무도 없는 게 천만다행이랄까.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검으로 찔러 오는데 위홍련은 용케도 그걸 다 피했다. 그야말로 신들린 반사 신경이었다.

송경의 눈에 희열이 떠올랐다.

‘됐어!’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하진 못했지만 확실하게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미세하게나마 자신이 우위를 점한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이런 날이!’

사공자는 분명 위홍련을 형법당으로 데려오라 하였다. 즉, 그 명령에는 위홍련의 생존이 전제된다.

그러나 송경은 그 명령 같지도 않은 명령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이 기회에 위홍련을 찢어 죽일 생각이었다.

“산 채로 육포를 만들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 줄……!”

그때였다.

별다른 기척도, 살기도 느끼지 못했지만 송경은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걸 느꼈다.

극도로 기분 나쁜 위기감, 그리고 공포.

‘이년 눈이……?’

수세에 몰리는 와중에도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운 눈빛.

아니, 오히려 잘됐다는 듯 쾌재를 부르짖는 눈빛에 가까웠다.

‘언젠가 한 번 봤던 그런 눈…….’

……아?

“컭!”

파아아악!

송경이 냅다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급하게 물러났는지 일 층 탁자와 의자 대여섯 개가 그대로 박살 났다.

“아쉽네.”

위홍련이 발끝을 까딱였다. 유연하게 쭉 편 다리가 송경의 머리께까지 올라와 있었다.

“짝이 안 맞는 것 같아서 아예 남은 하나도 퍼석 깨트려 주려고 했는데.”

“…….”

남자라면 노소를 불문하고 소름이 끼칠 그 공포스러운 말을 태연스레 내뱉는 위홍련의 모습은 신교에서 모시는 천마파순의 환상을 덧씌워 놓은 듯했다.

지이이이잉!

위홍련의 주먹에서 푸른 광채가 피어올랐다. 내공 소모가 상당했지만 목숨 걸고 싸우기에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푸스스스.

부서진 탁자 조각을 헤치고 일어난 송경의 눈은 더 이상 흰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넌 반드시 죽는다.”

분노가 극에 이르러 오히려 차분해진 모양새.

위홍련이 하얗게 웃었다.

“마저 터트려 주마.”

잠시의 침묵.

파아아악!

두 사람이 재차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전보다 몇 배는 더 흉포한 분위기 속, 두 전투 부대 수장들의 대결이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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