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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48화 (48/774)

48화. 지옥문이 열리다 (2)

“없어?!”

“그, 그렇습니다!”

“왜 없어? 왜 없어,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광이 이마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사람의 허리가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자세였다.

서량이 포효했다.

“이 새끼들아! 아무리 대주 명령이라도 그렇지, 너희 대주가 어디서 뭘 하는지 확인한 새끼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으아아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폭발했다.

차광은 물론 광마대원들 모두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눈앞의 청년이 누군가? 신교에서도 가장 신분이 높다는 교주의 제자, 그것도 존경하는 대주를 손쉽게 만신창이로 만든 폭군이 아닌가.

미친 악귀라고 악명이 자자한 그들이었지만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상 이렇게 보니, 삼공자라고 딱히 정상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자고로 미친놈이 얼마나 미친지는 미친놈이 알아보는 법.

그들은 지금 삼공자를 자극했다간 지옥 훈련이 아름답다 느낄 만큼 제대로 작살날 것임을 깨달았다.

“그…….”

서량이 고개를 홱 돌렸다.

“뭐!”

광마대원 중 하나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혹시…… 술 드시러 가지 않았을까요……?”

“개새꺄! 술은 뭔 빌어먹을 놈의 술이야! 이 시국에 술이 술술 넘어가? 미쳤어?”

대주가 미치긴 했죠.

광마대원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 말을 감히 뱉을 수 없었다.

만약 서량이 위홍련더러 술 마시러 가라고 했던 것까지 알았다면 더더욱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삼공자님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될 테니까.

“그, 그렇다면 혹시 진마대로 간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걔가 진마대로 갔으면 진즉에 옆 동네에서 난리가 났을 거 아냐! 너네 싸움박질 소리 들었어? 느꼈어? 맡았어?!”

“……공자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요.”

서량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내가 미쳤지! 내가 돈 거야! 그 요망하기 짝이 없는 년의 어딜 믿고 일을 맡겼냐고, 내가!”

이제는 분노를 넘어 자책의 영역까지 도달했다.

광마대원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꽤나 위험한 상태라는 걸.

“저기…….”

“또 뭐!”

광마대원이 목을 움츠렸다. 정말이지 자신을 노려보는 삼공자님의 눈빛이 너무너무 살벌했다.

“그래도 진마대로 가 보시는 것이…….”

“너 나랑 싸울래?”

“아,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럼 뭐야! 나한테 시비 트냐? 죽고 싶어? 머리뼈를 이백삼십 개쯤으로 쪼개 줄까?!”

“그, 그런 게 아니라…… 저희 대주를 찾기 힘드시다면 진마대주를 찾는 방향으로 초점을…….”

“시불 놈아! 결국 그게 그거…….”

순간 서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뭐야? 이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인 생각이다. 말하자면 발상의 전환 아닌가?

“너! 이름이 뭐야?”

“워, 원우라고 합니다.”

“이 쓰애끼! 원우! 이름 기억한다! 고마워, 인마!”

서량은 원우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쓰다듬어 준 후 재빨리 신법을 펼쳤다.

그렇게 폭풍 같은 광기만 남겨 놓은 채 그는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져 갔다.

“…….”

광마대에 묘한 침묵이 찾아왔다.

차광이 힐끔 원우를 바라보았다.

“너, 제법이다?”

“아닙니다, 부대주님.”

“아니긴. 덕분에 살았다, 야.”

“그리고 뭐…… 저희도 재미 좀 봐야죠.”

“재미? 뭔 재미?”

“삼공자님께선 저희 대주님 찾으시러 여기까지 오신 거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야 삼공자님 무서운 줄 아니까 고개 바짝 숙이고 있었지만 진마대 놈들은 그걸 모를 거 아니에요.”

“……어?”

“안 그래도 그놈들 재수 없었잖습니까. 그쪽에 재앙신 한번 강림시켜 보죠.”

차광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너!”

“예, 부대주님.”

“잘했어, 인마.”

“감사합니다.”

* * *

콰드득!

멀쩡하던 벽까지 부수고 튕겨 나온 위홍련이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낮게 잡은 자세가 연신 휘청이는 것이 다리에 힘이 쑥 빠진 듯했다.

“헉! 헉헉!”

토해 내는 숨결에 비릿한 피 냄새가 묻어 나왔다.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축 늘어진 왼쪽 팔은 부러졌는지 덜렁거리고 있었다.

“개, 개새끼! 반 고자 새끼가 고새 무공은 지랄 맞게 단련해 놨네.”

푸스스스.

부서진 벽을 통해 송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경 역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위홍련과 마찬가지로 왼팔이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는데, 탈골 정도는 더 심해 보였다.

츠츠츠츠츠.

그럼에도 살기는 여전하다. 불그죽죽한 눈으로 위홍련을 노려보는 눈에서 화포라도 뻥뻥 쏘아질 것 같았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로군.”

“……이년.”

“밤이 길면 꿈도 길어지는 법이다. 어서 모가지 이리 내. 함초롬하게 잘라서 내 방에다 박제해 줄 테니까.”

“네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서 기념일마다 장포처럼 걸쳐 입어 주마.”

“좆같은 변태 새끼.”

“개도 안 물어 갈 미친년.”

서로를 향한 욕설과 살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독해져만 갔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분노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기고 싶은 욕망이 증가하고, 이기고 싶다면 먼저 움직여선 안 된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드넓은 천하에서 비등한 무력을 갖춘 자를 찾기란 참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악연으로 얼룩졌을지언정 제법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후우!”

스르릉.

크게 숨을 몰아쉰 위홍련이 자세를 풀며 납검했다.

송경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항복 선언도 아니면서 검을 거둬? 뭐 하자는 짓이지?”

“뭐 하자는 짓이긴, 너 따위는 맨주먹으로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러는 거지.”

“……안 그래도 미친 것이 몇 대 맞더니만 더 미쳐 버렸구나.”

“난 누구처럼 병장기가 있어야만 큰소리칠 수 있는 머저리가 아니거든.”

“…….”

“뭐 해? 들어와. 널 위해서 친히 맨손으로 상대해 주겠다잖아.”

물끄러미 위홍련을 노려보던 송경이 아무렇게나 검을 던졌다.

파악!

날아간 검이 바위에 깊숙이 꽂혔다. 심각한 내외상과 상당한 내공 소모에도 아직 여력이 남은 모양이었다.

우두둑.

부러진 왼팔을 맞추고 마기로 경화(硬化)시켜 붙잡아 둔 그가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긴, 베거나 찔러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하지.”

“어? 검 안 들고 있어도 되겠어?”

“너 같은 건 발만 써도…….”

순간 송경이 몸을 웅크렸다.

빠각!!

주르륵 물러난 그의 몸이 벽에 부딪히며 덜컥 멎었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각법을 날린 위홍련이 호호호 웃어 댔다.

“요 정도는 쓰냐?”

“……이 치사한!”

“생사결에 치사고 나발이고가 어디 있어!”

퍼버버벅!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역시나 피하거나 흘려 내지 않는다. 빠르지만 정직하게 주고받는 난타전에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갔다.

콰콰쾅!

두 사람의 발이 점차 땅으로 파고들었다.

물러서지 않기 위해 연신 발을 굴러 대니 땅이 남아나질 않는다. 쩍쩍 금이 간 땅이 깨져 나가며 날카로운 돌 조각을 사방에 뿌려 댔다.

그렇게 몇 합이나 주고받았을까.

후욱!

사방을 짓누르는 강력한 마기.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의 주먹질이 멈추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마기의 농도가 꽤 대단했던 것이다.

“위 대주!”

파아악!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마동필이 달려왔다.

퉁퉁 부어서 외려 매끈해 보였던 송경의 얼굴이 찌그러진 돼지 오줌보처럼 일그러졌다.

“뭐야, 저 새끼는?”

“뭐긴, 새꺄.”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역시나 줄 그어진 돼지 오줌보 같은 모습이었다.

“지원군 납셨다!”

빠각!

송경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턱을 올려친 장타(掌打). 순간적으로 고개를 젖히지 않았다면 이번 일격으로 정신이 날아갔을 것이다.

동시에 위홍련도 물러났다. 송경이 턱을 맞자마자 발끝으로 복부를 후려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일타 일격을 교환한다. 두 사람의 무공이 빼고 더할 것 없는 동수(同手)임을 보여 주는 공격의 교환이었다.

“커헉!”

위홍련이 왈칵 피를 토했다.

“위 대주!”

사라락!

재빨리 옆에 도착한 마동필이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소?”

“으으…… 새꺄, 이게 괜찮은 걸로 보여?”

광마와 진마의 무공은 분명 동수다.

하지만 위홍련은 아직 일전에 입은 내상이 낫질 않았다. 애초에 불리한 조건에서 붙었다는 뜻이다.

완벽한 몸 상태로 생사결에 임하는 강호인은 없다. 그러나 몸 상태를 생각하면 확실히 독기는 위홍련이 송경보다 한 수 위였다.

마동필이 혀를 찼다.

“그러니까 올 때까지 기다리지 왜 나서서 죽사발이 되었소?”

“이 새끼가. 그럼 저 자식 낯짝이 보이는데 참으라고?”

“낯짝이 보인 게 아니라 낯짝을 찾아서 간 거 아니오?”

“…….”

“고생했소.”

위홍련이 작게 투덜거렸다.

대충 들어 보니 ‘넌 누구한테 한 번이라도 뜨거워 본 적 있는 개새끼였느냐.’ ‘싸늘한 새끼.’ ‘정신적 고자.’ 등등 듣는 이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그때, 송경이 말했다.

“넌 뭐야?”

마동필이 포권을 취했다.

“호법원 삼 조장 마동필이라 하오.”

상대에 대한 나름의 예를 갖춘다.

아무리 내전 전투 부대 수장이라도 마주 예를 갖추어야 함이 옳다. 호법원의 조장이란 위치는 그리 가벼운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한 쌍 아니랄까 봐 송경 또한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는 소인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호법원이고 나발이고 간에 꺼져! 어디서 감히 싸움 도중 난입이냐!”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그 역시 굳이 예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

“길게 말 않겠소. 이만 무릎을 꿇으시오.”

“뭣이?!”

“꿇으라 했소. 곧 삼공자님께서 오실…….”

퍼어어엉!

마동필의 주춤했다.

어느새 반쯤 꺼내 든 장검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송경의 권풍(拳風)을 막은 부분이었다.

“입방정을 떨 만한 실력은 있구나.”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꿇으시오.”

“……감히!”

송경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부러진 왼팔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걸 보아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 듯했다.

파파파파팡!

쏟아지는 권풍과 장력.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퍼퍼퍼펑!

빠르진 않지만 무겁고 강력한 검격이 송경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처억!

심지어 거기서 한 발 더 간다. 마동필의 검첨이 어느새 송경의 가슴께 한 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송경의 볼이 파르르 떨려 왔다.

“날 봐줬어?”

마동필이 냉담하게 말했다.

“꿇으시오.”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야! 냅둬! 저 새끼 내 거라고!”

사아아아악.

끝이다, 싶은 순간에 다시 한번 더 솟구치는 살기가 인상적이다. 송경은 거의 살기의 화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좋다.”

“꿇으시…….”

쾅!

마동필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눈앞에서 터트린 장력. 송경 역시 무리를 했는지 피를 왈칵 쏟아 냈다. 덜덜 떨리는 두 다리를 보니 서 있기도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송경이 무리해서 장력을 터트린 이유가 있었다.

치이이이익! 펑!

품에서 꺼낸 작은 원통. 하늘 높이 올라간 적색 불꽃이 몇 번 흔들거리더니 푹 꺼졌다.

마동필이 한숨을 쉬었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군.”

“저 새끼 저거 원래 저래. 근본이 치사한 새끼거든.”

“이제 어떻게 할 거요? 지원군 불렀는데.”

“우리 쪽 지원군은?”

“…….”

“왜? 안 오셔?”

“다 당신 때문이잖소!”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소릴 질러?”

“혹시라도 살아나면 조심하시오. 당신 공자님한테 신나게 얻어터질 거요.”

“흥! 개소리.”

두 사람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투닥거릴 때, 송경이 차갑게 말했다.

“너, 호법원 조장은 오는 놈들이나 상대해. 너! 이 개 같은 년 당장 앞으로 튀어나와!”

“니가 먼저 들어와, 새꺄! 쫄리냐?!”

“이년!”

……상황은 꽤나 지저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각 진마대.

“죄, 죄송…….”

“죄송이고 나발이고 이거 뭐야? 왜 오십 명이나 비어? 어디 갔어?”

“대주님과 함께…….”

“어?”

그때,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시뻘건 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량이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거참 곱다.”

하지만 진마대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헛? 당장 움직여! 당장!”

“대주님의 부름…….”

“헉! 야! 입 안 닥…….”

그때, 서량이 입 닥치라 말하려던 대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뭐라고?”

“커헙!”

“진마대주 저기 있냐?”

“…….”

“오호라.”

서량의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개새끼, 너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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