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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0화 (50/774)

50화. 지옥문이 열리다 (4)

덜컹!

한 당원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四) 부당주님!”

중년 사내, 금성주(金星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무슨 무례냐? 귀하신 분을 모시는 자리라 하였다. 어지간한 일은 너희끼리 처리하라 하였거늘.”

“큰일 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게야.”

“진마대의 진영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느닷없이 삼공자님께서 난입하여 부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홍위문의 눈이 반짝였다.

금성주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마의 진영? 삼공자가 부대 숙소에서 난리를 일으켰단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정보 출처는?”

“진마대원들이 직접 전한 정보입니다!”

금성주의 시선이 홍위문을 향했다.

홍위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어이 사고를 치는군요.”

“아무래도 움직여 봐야겠지요?”

아까 말했던 ‘목표’가 맞느냐는 뜻이었다.

홍위문이 웃으며 말했다.

“부당주님께서는 형법당의 열 부당주 중 한 분이십니다. 형법당의 방침이 명확하다면, 교내에서 분란이 일어났는데 가만히 두고 봐서는 아니 되겠지요. 뜻대로 하심이 옳은 줄 압니다.”

금성주가 당원에게 말했다.

“흑조위들을 파견해라! 삼공자님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

“흑조위 말씀이십니까?”

“그래. 분란에 끼어든 ‘모든’ 마인을 잡아들이도록! 신분에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삼공자까지도 형법당으로 끌고 가라는 의미가 내포된 명에 당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드리워졌다.

“명을 받듭니다!”

당원이 나가고 금성주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할까 싶었거늘, 일이 제법 쉬워질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말과 달리 홍위문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서량은 결코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쉬워져야지요.”

* * *

따악!

“끄아아아……악?”

위홍련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서량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달려오던 기세를 보면 죽어라 두들겨 팰 것 같았는데 결국 날린 건 딱밤 한 대였다.

“줄창 패 주려고 했더니만 다 죽어 가니 그것도 못 하겠네.”

“에?”

“에는 뭔 에야? 얼레? 이것 봐라?”

뭉클뭉클.

위홍련의 몸에서 줄기줄기 새어 나오는 기운은 누가 봐도 위험했다. 극심한 내외상을 입은 몸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농밀한 마기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서량이 혀를 찼다.

“잘한다, 잘해. 이러니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네가.”

“네?”

그가 위홍련의 이마에 손을 댔다.

위홍련이 움찔했다.

“긴장 풀어.”

우우우우웅!

순간 서량의 진기가 위홍련의 상단전을 통해 울컥울컥 쏟아져 들어갔다.

위홍련의 입이 딱 벌어졌다.

상단전을 통해 마기를 강제로 쑤셔 넣는다.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못하고, 가능해도 시도하기 꺼리는 좌도(左道)의 수법이었다.

‘안 돼! 잠깐만! 야, 이 미친놈아아!’

강제로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치 마혈을 짚인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엥?”

서량이 손을 털며 투덜거렸다.

“진짜 손 많이 간다, 너.”

“네?”

“언제까지 얼빠져 있을 거야, 인마! 당장 구석태기로 가서 몸이나 추슬러! 어휴, 이 사고뭉치를 믿고 내가 뭔 일을 하겠다고.”

위홍련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츠츠츠츠.

날뛰던 청현마공의 마기가 얌전해지고 개방된 원정지기가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치솟던 광기는 물론 격렬했던 분노마저도 확 사그라든 채였다.

뭐지? 어떻게 된 거야?

그녀가 얼이 빠져 입만 헤 벌리고 있을 때, 서량이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너 괜찮냐?”

“예?”

“괜찮냐고, 인마.”

“괘, 괜찮습니다.”

서량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마동필의 상태는 빈말로도 괜찮다 할 수준이 아니었다. 심각한 상처는 없었지만 가볍게 볼 상처 역시 없었다. 그런 상처가 무려 수십이었다.

‘제때 점혈을 하지 않았다면 과다 출혈로 빈사 상태에 빠졌겠군.’

그가 고개를 돌려 진마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움찔!

오십여 명에 달하는 진마대원들 전원이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동필아.”

“예, 공자님.”

“살초 자제했냐.”

“……그렇습니다.”

“왜? 상처를 보니 저 자식들은 앞뒤 안 가리고 덤빈 것 같은데.”

“저들은 진마대 소속 마인들입니다. 호법원의 삼 조장이 칼을 겨눠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서량이 무감한 눈으로 마동필을 주시했다.

마동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위홍련이 악을 질렀을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관계가 다르고 말의 무게가 다르니,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고지식한 그라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서량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놈 참, 볼 때마다 한 번씩 의외의 구석이 있단 말이야.”

“……예?”

“똑똑한 놈들은 고지식할 필요가 없고, 고지식한 놈들은 똑똑하기가 어려워. 하지만 넌 고지식한 주제에 머리가 없는 녀석도 아니란 말이지.”

“…….”

“신념과 아집은 달라. 신념은 개인의 피해로 끝낼 수 있지만 아집은 남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만약 내가 더 늦게 왔다면 너희는 무사치 못했을 거야. 인정하냐?”

“……그렇습니다.”

“너 때문에 저 정신 나간 자식도 죽을 뻔했군. 그렇지?”

사실 위홍련이 나서서 난장을 치지 않았다면 이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마동필은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자신 때문에 복잡하게 돌아갔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반성의 이유는 충분했다.

“저의 불찰입니다.”

“그래. 알면 되었…….”

“불찰임은 알지만, 만약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생기면 저는 제 소신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서량의 눈이 커졌다.

“그걸 아집이라고 인정하는데도?”

“아집 있는 사람으로 죽을지언정 같은 교도에게 칼을 겨눌 수는 없습니다. 물론…….”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호오.”

“반성은 진심입니다. 다만 저에게도 무엇이 옳은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알겠다며 수긍하는 척하는 것은, 도리어 공자님께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런 소신의 진심을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주의 제자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마동필이 굳이 제 속내를 내보이는 것은, 그만큼 서량과 깊은 정을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서량이 피식 웃었다.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다시 한번 진마대원들을 돌아본 서량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놈을 어찌해야 할까.”

저놈‘들’이 아니었다. 그는 진마대원들이 아니라 송경 한 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서량이 진마대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진마대원들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어렸다. 마동필은 이 청년더러 ‘공자님’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교주의 제자분들 중 한 분이 분명하지만 그게 확실하지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수장은 송경이었다. 진마대원들이 촤르륵 넓게 퍼지며 서량의 접근에 대비했다.

그때, 마동필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치솟았다.

치이이익!

타오르는 분노의 마기. 살기마저 엿보일 만큼 부글부글 끓는 강렬한 기운이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칼을 뽑아 겨누느냐! 당장 삼공자님께 예를 취하지 못하겠는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진마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혹시나 싶었거늘 정말로 상대가 교주님의 제자분이었던 것이다.

그때, 송경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증명……해 보아라.”

“뭣이?”

“삼공자님이라 말은 했지만 저분이 진정 삼공자신지 누가 알겠느냐.”

마동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을 향해 창칼을 휘두르는 거야 백번 봐줄 수 있지만 공자님 면전에서 저따위 말을 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감히……!”

송경이 버럭 외쳤다.

“너야말로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느냐! 내가 바로 진마대주니라! 호법원의 조장 따위가 가벼이 여길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그야말로 짐승의 포효와 같았다.

사실 초조하기로는 송경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데 상대가 삼공자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설령 긴가민가하다 한들, 어느 간 큰 놈이 신교 내에서 삼공자를 사칭하겠는가.

‘빌어먹을!’

그러나 그는 생짜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사공자 홍위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탓이었다.

더하여 삼공자는 위홍련과 나름의 친분이 있는 듯했다. 미쳐 날뛰는 위홍련을 진정시킨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위홍련에 대한 분노가 삼공자인 서량에게도 옮겨 간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공자가 뒤를 봐주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그냥 고개를 숙이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렇다. 사실 다른 이유들은 상관없었다.

결국 그놈의 자존심이 그를 필요 이상으로 흥분케 했고, 선을 지키지 못하게 했다.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당장 저 오만방자한 놈들을 잡아 꿇리지 않……!”

“증명해 주면 되냐?”

“……?”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마동필에게 보여 주던 미소와는 극심한 온도 차를 보이는 써늘한 미소였다.

“내가 삼공자라는 걸 증명하면 되는 거냐고.”

“……!”

“그래. 딴에는 옳은 말이지. 너희가 언제 봤다고 나를 삼공자라 생각하겠어? 혹시라도 이게 공갈이면 엄한 놈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되는 거고, 나중에 그걸 알게 되면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마인에게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 되겠지.”

“그…….”

“하지만 내게는 달리 삼공자임을 증명할 만한 수단이 없는데.”

그때였다.

바로 그때부터 서량의 분위기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푸스스스.

발밑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불그죽죽한 마기가 대지를 잠식해 들어갔다.

쿠르릉. 쿠르르릉.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하늘에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쿠구궁!

태산처럼 거대한 녹슨 철제 대문이 천천히 열리는 듯했다.

철컹! 철컹!

거대한 쇠사슬에 칭칭 묶여 몇 치 열리지도 않는 문.

아직은 마공의 성취가 높지 않아 쇠사슬도 묶여 있고, 녹도 벗겨지지 않은 낡은 지옥문은 그저 그 정도에서 멈췄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에 있는 마인들에게, 진짜 마(魔)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에는 그 정도 개문(開門)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번쩍!

송경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마대원들의 눈이 몽롱해지고,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심상치 않은 마기의 파동을 느낀 위홍련은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화르르륵!

화려하게 타오르는 적색의 마기. 불길하게 넘실거리는 핏빛 기류.

암영진마공의 진정한 개방, 지저옥관귀문식(地底獄官鬼門式)이 처음으로 그 악랄함을 세상에 드러냈다.

쿵!

한 발자국 움직인 게 전부임에도 마치 거인이 움직인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서량의 입이 열렸다.

“다시 말해 봐.”

훅.

그가 뱉어 내는 숨결을 따라 희미한 적색 안개가 퍼지는 듯했다.

“내가 누구지?”

컹! 우우우우!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멀리 떨어진 언덕.

그곳에서 오색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는 한 여우가 거세게 울부짖었다.

붉게 물들었던 서량의 안광에 어느샌가 떠오른 요사스러운 황금빛 광채가 명멸을 반복했다.

“말해라! 내가 누구냐!”

번쩍!

“쿠웨에엑!”

오십 명의 진마대원들 모두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딱히 공격한 게 아님에도 토혈을 하며 기절한다.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진짜 마인의 기파가 모두를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주르륵.

송경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을 떡 벌리고는 멍하니 서량을 보기만 하는 송경.

우두둑! 우두둑!

어떻게 뼈를 맞추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어긋난 다리뼈를 마기로 조절해 끼워 맞춘 그가 비틀거리며 서량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무릎을 꿇었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바라는 대답은 그게 아니야. 내 질문에 답이나 해.”

서량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내가 누구냐?”

“으으.”

“누구냐고 물었다!”

송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삼공자님이십니다!”

푸확! 소리와 함께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햇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기의 폭풍이 무시무시한 압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귀인께서는 삼공자님이 분명하십니다! 보, 본교의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

“소인이 오만하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를!”

서량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나를 삼공자로 인정한다는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당연하옵니다!”

“그런 내 앞에서 증명해 보라며 떼를 쓴 네놈의 잘못은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

“……죽여 주시옵소서.”

“…….”

“죽여 주시옵소서!”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마구 외쳐 대는 송경의 얼굴은 이미 시체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훅.

그때, 서량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마주하는 두 사람.

순간 송경은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냉큼 고개를 돌리고 싶은, 하지만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는 황금빛 마안(魔眼)의 유혹.

“죽이지 않으마.”

“아아!”

“죽이지 않는 대신.”

서량이 씨익 웃었다. 송곳니가 유달리 도드라져 보이는 웃음이었다.

“너, 나랑 극(劇) 하나만 짜 보자.”

“예, 예?!”

“…….”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서량이 그의 귀에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가 송경에게 무슨 말을 속삭이는지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잠시 후.

“멈추시오!”

저 멀리서 흑색 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오? 시기적절하게들 찾아왔군.”

안 왔으면 찾아가려고 했는데 말이지.

가뿐하게 몸을 일으킨 서량이 헤벌쭉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항복.”

“……?”

“맘대로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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