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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1화 (51/774)

51화. 뒤가 찝찝한 건 못 참아 (1)

“쿨럭!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토해 낸 위홍련이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뭐야.’

양손을 들어 올린 채 웃고 있는 서량의 얼굴은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어떠한 위엄도, 살기도, 광기도 엿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전의 기파를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히 농도 짙은 마기가 아닌, 근본적으로 다른 이질감을 품고 있는 공포의 기운을. 저 원로원의 구대마존들이나 풍길 법한 극에 이른 마(極魔)의 숨결을 느꼈다.

‘뭐지, 저 인간?’

마가 극에 이르면 기(氣)가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경계에 선다. 내공심법으로 얻은 인위적인 후천지기(後天之氣)가 고차원적으로 탈바꿈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란 곧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기의 질이 변하면 자연스레 사람의 심신(心身)도 변화를 맞이한다. 그래서 극마에 이른 자들은 하나같이 인간을 초월한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서량은 극마에 이르지 못했다. 극마란 것이 단순히 마기의 질이 뛰어나다고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 조금 전의 그 기파는…….’

위홍련은 딱 한 번 그와 같은 기파를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구대마존 중 하나이자 그녀에게 최초로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걸 보여 준 절대강자.

서량의 기파는 바로 철검마존(鐵劍魔尊)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정말로 극마에 달했다고? 저 나이에?’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던 위홍련은 문득 전신을 활발하게 누비는 마기의 흐름을 느꼈다.

그녀의 안색이 홱 변했다.

‘마기의 질이 왜 상승했……?’

그녀가 서량을 바라보았다.

다가오는 흑조위들을 바라보며 헤벌쭉 웃고 있던 서량이 그녀의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대번에 도끼눈을 뜬 그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너, 저 가면 떠버리들 앞에서도 사고 치면 죽는다.”

위홍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새 서량 앞으로 다가온 흑조위 칠 위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에 가려져 있는데도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반나절 만에 또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네.”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설명?’

그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긴장한 얼굴로 흑조위들을 보는 마동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위홍련,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린 송경, 그리고 납검 후 도열해 있는 진마대원들.

더하여 불쌍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자미루와 수많은 전투의 흔적들까지.

‘이런 시끌벅적한 접전이 있었는데도 왜 진즉 오지 않고 이제야 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량을 보며 칠 위장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공자님.”

“잠깐 기다리쇼.”

우우웅.

서량이 천라육통식, 초신관을 운용했다.

순간 오감이 칼날처럼 예리해졌다. 안 그래도 밝았던 시야가 더욱 트였고 오만 냄새가 코를 찔러 왔으며, 극히 미세한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휘이이잉.

민감해진 촉각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흔적마저 읽어 낸 서량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것들 봐라?

‘진마대주 멱살 잡고 차근차근 날려 버릴까 싶었더니만, 이렇게 나오면 또 얘기가 다르지.’

홍위문은 똑똑한 녀석이다.

문제는 그의 똑똑함이 신교라는 세상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혀 다른 세상에서 굴러들어 온 서량에게 통할 머리가 아니었다.

“이보쇼, 가면 양반.”

“……흑조위 칠 위장이라 하옵니다.”

“그래, 칠 위장 양반.”

“말씀하십시오.”

“출동? 아니면 뭐, 출당? 그거 명령 누구한테 받았소?”

“아무리 삼공자님이시라고 해도 본당의 명령 체계에 관해서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형법당, 그중에서도 흑조위의 위세는 하늘을 찌른다. 상대가 삼공자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제압부터 하고 봤을 터였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누구한테 명을 받았는지가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하면 이제 자초지종을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아, 자초지종.”

“그렇습니다.”

“뭐 복잡할 거 있겠소? 늑대들 싸움에 끼어든 고양이 두 마리가 치고받은 거지.”

“……예?”

“내가 우리 넷째한테 회초리 좀 들까 싶었거든. 그런데 이놈이 숨어서 돌멩이를 날리는 거 아니겠어? 별수 있나, 일단 피하고 봐야지.”

“……!”

“나는 피했는데 멀뚱히 서 있던 위 대주가 대신 맞아 버렸군. 안타까운 일이야. 모르면 몰라도 아는데 가만 놔둘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거고.”

“그렇다면 공자님 말씀은…….”

“응, 위 대주는 잘못 없소. 진마대주가 칼 들고 찾아왔는데 죽이라고 얌전히 모가지 내밀고 있을 순 없잖소? 말하자면 정당방위지.”

칠 위장이 송경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놀란 송경이 입을 열려는 순간…….

번쩍!

서량의 눈에 마기가 스쳤다.

하늘까지 치솟는 극상의 마기로 영혼까지 뒤흔들린 게 불과 조금 전이다. 송경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칠 위장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송 대주. 삼공자님의 말씀이 사실이오?”

“…….”

“송 대주!”

“……사실이오.”

“……!”

“나, 나 역시 사공자님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오. 다른 건 모르오.”

“무슨 부탁 말이오.”

스륵.

송경의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서량의 형형한 안광을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리를 꽉 채운 것은 극 하나 만들어 보자며, 너의 죄를 최대한 감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다는 서량의 유혹 어린 협박이었다.

“그저…… 광마대주를 습격해 형법당으로 끌고 오라는 것이었소.”

“습격? 형법당?”

“그, 그렇소. 형법당으로 끌고 오면 당신께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셨소.”

순간 칠 위장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알아서 처리하겠다? 뭘 알아서 처리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사공자인 홍위문이 형법당에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지금 그 말, 사실이오?”

“…….”

“송 대주! 사실이냐 묻지 않소!”

송경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도 없고 맥도 풀렸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가면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칠 위장의 눈빛이 극도로 싸늘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 직위 해제 정도로 무마되긴 힘들 거요.”

“뭐, 뭐라고?!”

“아무리 윗사람이라 해도 전투 부대의 대장이 사사로운 부탁으로 타 부대 대장을 습격했소. 가벼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라 생각한 거요?”

“……!”

“뇌옥에서 몇 년 썩을 각오는 하시오.”

송경이 다급한 얼굴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칠 위장 양반.”

“말씀하십시오, 공자님.”

“칼이 무슨 죄가 있겠소? 그걸 휘두른 놈이 잘못이지.”

송경을 두둔하는 말이었다.

칠 위장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송 대주는 칼이 아니라 엄연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한 부대를 이끄는 수장이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잖소.”

“참작의 여지는 있을지라도 무죄 방면은 불가능합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형법당은 과정보다 결과로 말하는 조직이며, 호법원과 함께 교법 수호의 일선에 선 집단입니다. 어떤 이유라도 행위가 낳은 결과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량의 얼굴에 음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형법당의 누구라도 칠 위장처럼 생각할 거라 자신하시오?”

“물론입니다.”

“당신을 지금에서야 보낸 윗사람도 그리 판단할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세상에 완벽한 조직은 없는 법이오. 조직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직의 명예보다 본인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칠 위장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의 의미심장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아, 어찌 되었든 간에 송 대주는 좀 봐줍시다.”

대놓고 말을 돌리는 서량이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과 여유가 대화의 흐름을 극히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송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서량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칠 위장이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불가합니다.”

“말했잖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거라고.”

“이미 저지른 죄는…….”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약점을 잡고 흔드는데 송 대주라도 별수 있었겠소?”

“예?”

칠 위장이 송경을 바라보았다. 반면 송경은 입을 쩍 벌리며 서량을 보았다.

서량은 헤벌쭉 미소 짓고 있었다. 푼수 끼가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눈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진마대주씩이나 되는 인간이 뭐가 아쉬워서 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겠소? 아무리 사공자라도 말이오.”

“…….”

“단순한 정치 비리라고 보기 힘들지. 진마대주는 바보가 아니오. 본인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유발하게 될지 본인도 모르진 않았을 거요.”

“그렇다면 공자님 말씀은, 사공자님께서 진마대주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약점을 쥐고 흔들었다는……?”

“바로 그거요.”

서량이 송경을 보며 물었다.

“맞지?”

“……!!”

“맞는 모양이군. 형법당으로 데리고 가서 그 부분도 잘 확인해 보시오.”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던 송경이 다급히 외쳤다.

“삼공자님!”

“왜?”

“야, 약속하신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공자님께서는 분명 제게…….”

“최대한 널 변호하겠다고 했어. 감면까지는 무리더라도 참작의 여지를 만들어 준다고 했지.”

“……!”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애쓰고 있잖아? 뭐야, 설마 내 예상이 틀린 거냐? 넷째한테 약점 잡힌 게 없는데도 그렇게 생난리를 친 거야?”

송경의 얼굴이 실로 볼만해졌다.

서량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송경의 눈엔 지옥에서 갓 기어 올라온 마귀처럼 보였다.

“그 약점이 어떤 약점인지는 내 알 바 아니지. 어찌 되었건 난 할 만큼 한 거잖아?”

“…….”

“약속은 지켰다. 잘해 봐라.”

일부러 칠 위장이 보는 앞에서 진실이란 진실은 죄다 꺼내 불었다. 송경이 마음을 달리 먹어도 이미 칠 위장이 들었으니 거짓 증언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할 얘기 다 했는데 이제 슬슬 이동합시다. 형법당으로 가면 되는 거요? 부탁인데 포승은 생략합시다. 난 피부가 약해서 쓸리면 아프다구.”

* * *

“지금쯤 모두 형법당으로 이송되었겠군요.”

“그럴 겁니다. 칠 위장 그 사람,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만큼 일 처리는 확실하니 상대가 삼공자라도 봐주진 않을 것입니다.”

“칠 위장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사람을 보내신 것 아닙니까?”

“하하! 하지만 쉽게 쓸 만한 인사는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부당한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해가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지요. 그런 벽창호 같은 면 때문에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졌습니다.”

“그러셨군요. 잘하셨습니다.”

말은 그리했지만 홍위문은 속으로 금성주를 비웃었다. 그런 벽창호들이야말로 수하로 삼았을 때 최후의 최후까지 충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금성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를 포섭할 능력이 없었을 뿐.

“그나저나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 잔을 마지막으로 이만 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날이 밝으면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만들어져 있을 것입니다.”

“든든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와라.”

콰드득! 퍽!

문밖에서 들리는 급박한 발걸음, 그리고 난동 소리.

금성주가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어떤 놈이 예서 시끄럽게…….”

쾅!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이내 흑조위들이 들이닥쳤다.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흑조위들의 선두에는 칠 위장만큼이나 깐깐하다는 십 위장(十衛長)이 서 있었다.

“자네는……?”

“십 위장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푸르륵.

십 위장의 손에 기다란 포승줄이 들렸다.

“두 분을 형법당으로 소환하라는 상부의 명령입니다. 가시지요.”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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