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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6화 (56/774)

56화. 폭군도 영웅이 될 수 있다 (1)

피유우우웅!!

사람이 허공을 가로질러 달려오는데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홍위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미친!’

서량의 쇄도는 그야말로 폭풍 같았다.

일찍이 본 적이 드물었던 속도요, 신법이다. 그리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어느 방위로나 꺾을 수 있을 듯한 자유로움이 엿보이고, 뿜어지는 기세는 불처럼 거셌다.

목표 대상들이 옷자락 한 번 보지 못한 채 죽어 나갔다는 살왕의 경신술, 구천축지신보(九天縮地神步)가 펼쳐진 것이다.

다급해진 홍위문이 서둘러 장력을 터트렸다.

퍼퍼퍼펑!

시야에 보이는 전방의 대부분이 장영(掌影)으로 뒤덮인다. 창졸지간 펼쳐 낸 무공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대처였다.

서량의 마안이 번뜩였다.

쾅!

“크윽!”

홍위문의 몸이 다시 한번 뒤로 밀려 나갔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은 여전했으나 풍성한 소맷자락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미친놈! 진심으로 공격했다고?!’

제천기(提天技)의 수공 강벽수.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격에 홍위문의 장법을 허물어트린 서량의 손이 어느새 주먹으로 변했다. 넘쳐흐르는 힘을 압축시켜 쇠뭉치처럼 만든 것이다.

쿠웅!

서량이 진각을 밟으며 그대로 주먹을 밀어 넣었다. 목표 지점은 홍위문의 명치였다.

바위도 으스러트릴 일권을 사람의 명치를 향해 휘두른다. 필살(必殺)의 의지가 없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 할 일격이었다.

‘이익!’

콰앙!

뒤로, 그리고 또 뒤로.

연신 후방으로 물러나기만 한 홍위문의 몰골은 잠깐 새에 무척이나 피폐해져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 살초는 막았지만 무리하게 기공을 운용한 탓에 내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 두세 호흡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텐데.

‘절대로 틈을 주지 않을 놈이다! 어서 후속타를 대비…….’

순간 홍위문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놀랍게도 바로 후속타를 날릴 거라 생각했던 서량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

왜? 이 잠깐의 틈이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이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때, 서량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수공(手功)을 위시한 전반적인 백타술은 확실히 몸에 익었어. 하지만 예상대로 깔끔함을 잃었군.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점검을 해 보기로 하고…….”

“……!”

“한 번 칼을 뽑아 볼까? 아냐, 제어할 자신은 있지만 자칫 전투가 격해지면 엄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 응?”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아, 호흡 다 골랐냐?”

“……뭐 하자는 거지?”

“기다려 줄 만큼 기다려 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네가 와 봐라.”

후우웅.

홍위문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감히 날 상대로 제 무공을 점검해?

푸스스스!

사왕마공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며 자색으로 물든 동공에서 요사스러운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후욱!

어디선가 역한 뱀 비린내가 풍겨 오는 것 같았다.

관절이 으스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콰드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홍위문의 손가락이 길고 굵어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은 본래의 색을 잃고 시커멓게 물들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거참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공일세그려. 그러니 기습 한 번에 손도 못 쓰고 밀려나는 거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 환장을 하였구나!”

“어차피 죽일 생각이라며, 이 개새끼야. 그럼 내가 후환거리 될 게 분명한 놈을 얌전히 보내 줘야 되냐?”

정말이지 여기서까지 막 나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홍위문이 차가운 비소를 머금었다. 자색의 동공이 눈에 띄게 커지면서 기괴하고 사악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정당방위라고 생각해도 되겠군. 차라리 고맙다.”

“내가 더 고맙지. 얌전히 술자리에 응해 줬으니.”

쿠르르릉!

암영마기가 집약된 오른손에서 시뻘건 번개가 휘몰아쳤다.

불꽃이 아니라 번개다. 이전의 그가 보여 주던 기공(氣功)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대화는 이제 그만. 준비 다 끝났으면 시원하게 들어와 봐.”

스스스!

듣는 이로 하여금 괜한 섬뜩함을 유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뱀이 땅을 기어가며 내는 소음이다. 마침내 홍위문이 움직인 것이다.

파악!

접근해 오는 움직임이 부드러우면서도 몹시 빨랐다. 그러면서 절묘한 순간에 날아올라 손을 휘두르는데, 마치 독사가 먹잇감을 공격하는 방식과 흡사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파바바박!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열댓 번을 부딪쳤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공방이었다.

삭!

서량이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홍위문의 공격을 버티기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상대의 무공을 제대로 봐 두기 위함이자, 보법을 몸에 붙이기 위함이었다.

‘이놈!’

홍위문의 경지는 상대의 의도를 읽지 못할 만큼 낮지 않았다.

후웅.

새카만 손톱 끝에서 자색의 기류가 번져 나왔다.

동시에 텁텁하면서도 어딘가 달큰한 냄새가 흘렀다. 낙엽이 썩으면서 풍기는 냄새였다.

‘그 여유를 박살 내 주마.’

홍위문이 손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사왕마공으로 펼치는 적사가 최고의 절기, 흑골사영수(黑骨蛇影手)였다.

서량이 마주 손을 휘둘렀다.

까아아앙!

손과 손이 부딪치는데 철제 병장기들끼리 부딪치는 것 같은 금속성이 울렸다.

파바바박!

허공으로 비산하는 자색 진기의 파편.

‘역시 안 통하나.’

흑골사영수는 그 자체로 강호일절의 무공이다.

하지만 이 무공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악랄한 사독(蛇毒)에 있었다.

즉각 반응이 오는 독은 아니지만 해독하기가 힘든 신경독이다. 체내 주입량이 많지 않은 데다 흔적까지 남지 않아서 누군가를 암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

어지간한 고수들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독. 바로 그 자색의 사독이 서량의 마기에 흩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해. 이놈의 마기는 상당한 양강기공이다. 어지간한 독 따위는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스스스스.

이전보다 배는 빠르게 움직인 홍위문이 어느새 서량의 후방을 점했다.

너무나도 부드러워 결을 읽기가 힘들다. 서량은 그의 보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다르긴 달라.’

저 나이에 이 정도 수준의 보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만 봐도 괜히 이천상의 제자가 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잉!

순간 목 뒤가 시큰거렸다. 홍위문의 살기가 노리는 방향이 정확하게 읽혔다.

파아아악!

홍위문의 다리가 서량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상단으로 올려 치는 대망아(大蟒牙)의 각법은 보법과 다르게 무척이나 직선적이고 강력했다. 보법과의 일치감도 대단했다.

부웅!

그러나 홍위문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교룡보법(蛟龍步法)에 이은 대망아의 연계기는 지금껏 실패한 적이 없었다. 당황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놀라웠다.

서량의 반격은 즉각적이었다.

파아아앙!

교룡보법은 공방 양쪽에서 균일한 성능을 발휘한다. 짧게 올려 친 서량의 장타(掌打)가 허무하게 빗나갔다.

이번에는 홍위문의 반격이 시작되는가?

퍼억! 파아앙!

홍위문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얼굴을 노린 장법을 팔뚝으로 튕겨 냄과 동시에 일권(一拳)이 들어온다. 방어와 회피, 둘 중 어떤 선택을 해도 놀라지 않았을 텐데 둘을 함께 감행할 줄이야.

퍼억!

‘큭!’

장타로 중심을 흔들어 놨는데도 가슴이 쇠망치에 맞은 것처럼 아파 왔다.

내상까진 아니지만 진기의 방어막이 흐트러진 것이 느껴졌다.

‘……?’

재차 교룡보법을 구사하던 홍위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좌측으로 이동 후 부드럽게 후방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길이 막혔다.

어느새 그의 이동로를 점하며 씨익 웃던 서량의 발이 움직였다.

빠각!

“흡!”

자존심 하나로 간신히 비명을 삼켰다. 홍위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주먹으로 강타당한 흉부에 발길질까지 허용했다. 어떻게든 끌어모은 마기 덕에 뼈가 부러지는 건 면했지만 내장이 뒤흔들렸다.

비칠거리던 홍위문이 고개를 들었다.

‘……!’

서량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기감에 잡히지도 않아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 홍위문이 사왕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때, 우측 후방에서 무서운 속도로 마기가 집약되는 게 느껴졌다.

콰아앙! 퍼어엉!

폭음과 함께 날아간 홍위문이 나무 한 그루를 박살 내며 쓰러졌다.

서량이 뻗은 손을 내리며 씨익 웃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제천기, 구천축지신보, 그리고 암영진마공의 조화가 완벽했다. 확신은 있었지만 실전에서 확인한 적은 없었는데, 이젠 자신을 가져도 될 것 같았다.

푸스스스!

박살 난 나무 파편들이 가루가 되었다.

천천히 일어나는 홍위문의 전신에서 선명한 자색 마기가 피어올랐다.

치이이익!

극도로 달아오른 사왕마공에 사독(蛇毒)의 핵(核)까지 발동되었다. 위험천만한 자색의 기류가 넘실거리며 일대를 죽음의 지역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독이라.’

살수들은 독에도 능통하다. 목표 대상을 죽이는 데에 독살 역시 탁월한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나야 문제 될 것 없지만.’

사라락.

넘실거리는 자색의 기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벌한 두 고수의 공방에 어느새 수많은 마인이 멀찍이서 웅성대고 있었다.

거리가 상당히 멀기에 충격파에 휘말릴 것 같진 않았지만 독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번쩍!

홍위문의 두 눈이 완전히 자색으로 물들었다. 흰자위가 자취를 감춘 두 눈은, 어떤 의미론 신비롭기까지 했다.

“하아…….”

나른한 날숨에도 보랏빛 연기가 묻어 나왔다.

뿜어지는 기세는 강철이요, 흘러넘치는 기파는 독랄하기 그지없다. 충천하는 마기가 극으로 치닫고, 완전히 개방된 사왕마공이 그와 완벽하게 일치되었다.

스르륵.

서서히 상체를 수그리는 홍위문.

네발 달린 맹수와 비슷한 자세를 취한 그의 눈이 서량에게 고정되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우측으로 걷는 서량, 목만 돌려 그의 위치를 확인하는 홍위문.

척.

서량의 걸음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좌측으로 완전히 꺾인 홍위문의 목도 멈추었다.

“…….”

대화 없는 침묵. 침묵뿐인 대화.

츄르릅!

좌우 양쪽으로 갈라진 홍위문의 혓바닥이 턱 밑을 훑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한 마리의 이무기를 보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서량이 서서히 자세를 낮추었다.

왼손은 요대에 걸린 칼집을 잡고 오른팔은 축 늘어트려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끝내 볼까?”

“캬앗!”

콰아앙!

속도가 배는 빨라졌다. 더 길어지고 단단해진 양손이 단번에 서량을 찢어발길 듯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동시에 서량의 좌측 엄지가 움직였다.

치리리링!

번개처럼 뽑힌 칼날에 시뻘건 번개가 둘러쳐졌다.

서량의 칼과 홍위문의 손이 그대로 부딪쳤다.

퍼엉!

* *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시끄럽다.”

“시끄럽다? 이 새끼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너, 나 알아? 아냐고, 인마!”

“더 이상 난동을 부리면 공무 집행 방해로 형량이 추가된다. 알고 있도록.”

“미친! 이미 뇌옥에서 삼십 년 썩을 걸 몇 년 더 추가된다고 뭐가 무섭겠냐, 개새꺄! 됐으니까 빨리 대외전주(對外殿主) 부르라고! 세상에 주범은 놔두고 종범만 때려잡는 법이 어디 있어? 심지어 난 몰랐다니까?!”

형법당으로 가는 길.

왁왁 소리를 질러 대는 오십 대 초로인과 무표정을 고수하는 형법당원들의 모습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초로인이 마구 외쳤다.

“이 시부랄 것들아! 난 죄 없다고!!”

콰아아앙!

“헉!”

초로인은 물론 형법당원들 역시 깜짝 놀라 폭음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뭐야?!”

건물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낸 두 고수가 허공에서 미친 듯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당원들의 좌장이 재빨리 외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당주님께 가서 흑조위의 출동 명령을 받아라! 용의자 이송은 내가 하겠다!”

안색이 창백해진 초로인이 두 고수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뭔 개판…….”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서량에게 꽂혀 있었다.

“……저 도법(刀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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