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폭군도 영웅이 될 수 있다 (4)
“뭐, 뭐라고?!”
마동필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수감되셨다고 했소.”
“아무리 형법당이라도 어떻게 삼공자님을 수감해?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은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고!”
“…….”
“설마 진짜 반란을?”
“절대 아니오.”
“그러면 왜!”
한숨을 쉰 마동필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위홍련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형법당주 그 새끼 미친 거 아냐? 후보들끼리 싸운 게 뭐가 이상하다고 수감까지 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상황이오.”
“뭐가 단순하지 않아? 후보들끼리 대권을 위해 치고받은 것만큼 단순한 이유가 또 어디 있다고?”
“싸움을 막으려던 형법당주에게 칼을 휘두르셨소.”
“……!”
“본교에서 최고로 존귀한 신분이라고는 하나 이번엔 경우가 다르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법당의 수장과 분란이 생겼으니까.”
“……시벌.”
신교의 형을 집행하는 형법당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상대가 교주의 제자라 한들 당주에게 칼을 휘둘렀으니 결코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게다가 보는 눈이 너무 많았소. 형법당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공자님을 수감할 수밖에 없었겠지.”
위홍련이 도끼눈을 떴다.
“이 새꺄! 넌 도대체 누구 편이냐?”
“뭐가 말이오?”
“그래서 형법당주가 잘했다는 거야?!”
“그를 이해한다고 했지 그의 편이라 말한 적은 없소.”
“말은 잘한다, 이 빌어먹을 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소. 형법당주가 어떻게 나올지, 공자님께서 어찌 대응하실지 알 수가 없단 말이오.”
마동필이 목소리에 점차 힘이 빠졌다.
“솔직히, 나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이를 바득바득 갈던 위홍련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녀 역시 달리 생각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적막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마동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위 대주는 여기 왜 온 거요?”
“뭐, 인마?”
“당장 오늘부터 광마대도 현장으로 복귀해야 하지 않소?”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와야 현장으로 가든 말든 하지. 아직까지 상부에서 별말이 없었어.”
“그럼 대기를 하지 왜…….”
“거 참, 말 많네. 왜? 난 여기 오면 안 되냐?”
“그건 아니지만…….”
“안 그래도 심사 복잡한데 들들 볶지 마라.”
한숨을 푹푹 쉬던 위홍련이 이내 야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역시 화끈하신 분이구만. 그 자리에서 사공자를 박살 내 놓다니, 과연.”
쉬쉬하고 있지만 사공자가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었다는 소문이 내전 곳곳으로 퍼지는 중이었다.
동시에 삼공자의 강력한 무위가 재조명되었다. 입마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입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무공에 마인들은 놀라워했다.
흥분, 그리고 불안.
삼공자의 무력은 마인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동시에 불안함도 안겨 주었다. 암암리에 행해지던 후보들의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쳇, 조금은 아쉽군.”
“뭐가 말이오?”
“삼공자님께서 워낙 화려하게 날뛰셨잖아.”
“말조심하시오.”
“됐고, 그 때문에 정작 소문이 나야 할 게 안 났어.”
“소문?”
“송경 말이야. 그 자식이 얼마나 개박살 났는지도 쫙쫙 퍼졌어야 했는데.”
“그게 중요하오?”
“나한텐 중요해.”
마동필이 혀를 찼다.
“진마대주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요? 둘 사이에 큰 문제라도 있었소?”
“없었으면 내가 왜 그렇게 걔를 싫어하겠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소?”
“나 대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대주들 모임이 있었거든. 그때 그놈이 나한테 군기 잡으려 들잖아. 열 받아서 확 불알 한쪽을 깨 버렸지.”
“……!”
“그때 이후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고. 잘못은 지가 먼저 했으면서.”
“…….”
“왜 그런 눈으로 보냐?”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이 시국에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위 대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 갑시다, 뭘 하려고 해도 밥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했소.”
“누가 그런 대가리에 밥만 든 발언으로 널 홀렸대?”
“삼공자님.”
* * *
“…….”
“……?”
“…….”
“들어왔으면 말을 하지 왜 멀뚱히 있어?”
“삼공자.”
“뭐.”
“도대체…….”
“아, 맞다. 그 전에 이것 좀 풀어 주지 않을래?”
서량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는 일전 위홍련이 차고 있던 금해철(禁海鐵)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손목이 시큰시큰해. 어차피 도주할 생각 없으니까 풀어 줘도 되지 않나 싶어.”
“삼공자께서는 지금 수감된 상태요. 수감이 되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나마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 당연히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소.”
콰득!
고구의 눈이 깊어졌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양손에 채워졌던 금해철의 수갑이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안 쪼개질 줄 알았는데 쪼개지네. 미안해, 망가트려서.”
금해철로 만들어진 수갑은 내공을 봉인한다.
수갑 사이를 연결한 쇠사슬조차 순도 높은 강철로 만들어져 봉인된 내공의 힘으로는 파괴할 수 없었다. 그런 금해철이 단번에 부서진 것이다.
“내공이 봉인되지 않았소?”
“봉인되었지.”
“한데 어떻게?”
“원래 힘이 장사야.”
말도 안 되는 농담이다. 외공(外功)만으로 일류의 경지에 도달한 외가고수도 부서트리기 힘든 물건이 이 수갑이다.
하나 서량은 수갑, 반지, 팔찌 등등 일시적으로 내공을 봉인하는 기물(奇物)에 통달해 있었다. 한눈에 내력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고수를 암살할 때 수도 없이 써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강제로 봉인을 해제하는 수법들도 알고 있다. 그런 서량에게 금해철갑은 조금 단단한 수갑에 불과했다.
콰득! 콰드득!
손목에 남은 수갑까지 전부 뜯어 낸 서량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할 말은?”
“……내 제안에 분명 동의했던 것으로 기억하오.”
“제안? 협박이었겠지.”
“뭐든 말이오.”
“동의야 했지. 고백하자면 나도 이 난리까지 치고 싶진 않았어.”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이오?”
“제안이든 협박이든 중재자가 있었지. 나쁘지 않은 화해 방법이지만 제대로 화해하기 위해선 당사자들끼리의 합의가 필요한 법이 아니겠어?”
“그래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랬지. 걷어차더군. 당장은 아니어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은 덤이었다.”
“…….”
“난 뒤가 찝찝한 건 못 참아. 날 죽이겠다는 놈을 굳이 중재자의 협박 때문에 봐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삼공자께서 어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곤란해질 거라는 내 말은 진심이었소.”
“알아.”
“감당할 수 있겠소?”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재미있는 말이군. 내가 왜 그걸 감당해야 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소.”
“나는 당신의 제안을 빙자한 ‘협박’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협박을 한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거다.”
이유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형법당주로서든 고구라는 개인으로서든 당신은 교내에 분란이 터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래서 중재자가 되었던 거지. 맞나?”
“그렇소.”
“이제 분란 생길 일이 없어졌네?”
“……!”
“그렇잖아? 홍위문 그놈 최소한 몇 년은 누워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몸으로 나한테 도발이나 날릴 수 있겠어?”
고구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렇다. 그는 후보들이든 누구든, 분란으로 교내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란도 상대가 있어야 터지는 법이다. 서량이 홍위문을 회생 불능의 상태로 만든 순간, 그가 했던 제안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 분란을 만들 상대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신이 원하는 상황이 되었어. 근데 왜 이제 와서 감당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지?”
“…….”
“삼 위장인지 뭔지 그놈처럼, 댁도 교내 모든 마인들이 고개를 바짝 숙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인가?”
고구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만 풀어.”
“…….”
“당신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으면 수갑이 채워지기도 전에 뛰쳐나갔어. 삼공자 신분에 이만큼 인내해 줬으면 할 도리는 다한 거 아닌가 싶은데.”
“아까도 느꼈지만 상당한 능변이시오.”
“되는대로 주절거릴 뿐이야.”
“만약 내가 풀어 주지 않으면 어쩔 생각이시오?”
“풀어 주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어?”
“궁금해서 그러는 거요.”
“쓸데없는 가정으로 대화 길게 빼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군.”
“…….”
“이만 나가 봐도 되겠나?”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고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예의주시할 것이오.”
“주시는 하되 앞길은 막지 마시라. 난 형법당과 척지고 싶은 생각 없어.”
“자신만만하시군. 당신은 아직 후계자로 내정되지 않았소. 그저 후보일 뿐이지.”
“어쩌라고.”
“내가 작정하면…….”
“그래, 내가 작정하면 소문으로 당신 하나 묻어 버리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아. 그러니까 서로 얌전히 갈 길 가자고.”
“그게 무슨 말이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법당이든 호법원이든 나름의 엄격한 기준이 있는 자가 맡아야 잘 돌아가지 않겠나? 그런 조직의 수장이 실은 암중에서 삼공자를 협박했다는 소문이 나면 당신도 제법 피곤해질 텐데?”
“…….”
“형법당에 대한 마인들의 공포와 껄끄러움을 생각하면 그다지 어려운 작업도 아니라 생각해.”
“치졸하시군.”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간부 놀이를 할 거면 엄한 사람 건드리지 말고 아랫놈들이나 휘어잡아.”
“…….”
“간다. 앞으로 자주 볼 일 없으면 좋겠네.”
* * *
저 멀리 휘적휘적 걸어가는 서량의 뒷모습을 보며 고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쉬어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려운 사람이군.”
그리고 위험한 사람이다. 앞으로 자주 볼 일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왠지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삼 위장이 걸어왔다.
“피해 지역 일차 복구는 완료되었습니다.”
“수고했다.”
“……당주님.”
“더 보고할 것이 있나?”
삼 위장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삼공자를 저리 보내도 되겠습니까?”
“…….”
“당주님께 칼까지 휘두른 자입니다.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교내 기강의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엮을 수 있습니다.”
“제법 애를 써야겠지만 그럴 수 있긴 하지.”
“한데 왜 보내 주셨습니까?”
“애를 써야 할 이유라도 있나?”
“하지만…….”
고구가 고개를 돌려 삼 위장을 바라보았다.
순간 삼 위장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자신을 보는 고구의 눈빛이 무척이나 차가웠던 것이다.
“너의 행동은 빨랐지만 언사와 대처는 경솔했다. 인정하느냐?”
“……죄송합니다.”
“상대가 삼공자든 누구든 절대로 책잡히지 마라. 그런 언사 하나하나가 모여 불만을 만들고, 불만이 쌓이면 규칙을 무시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심지어 삼공자의 발언은 나름의 타당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석 달 감봉에 처하겠다. 이번 기회를 토대로 한층 성장하도록.”
“감사합니다.”
허리를 깊이 숙인 삼 위장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고구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삼공자는 어느새 새까만 점이 되어 있었다.
‘삼공자.’
그는 더 이상 삼공자의 언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삼공자의 무공에 대해서였다.
‘마도 무공보다 지독하고 흉악했지만…… 분명 그 도법은 정파의 것이다.’
고구의 얼굴에 아무도 모를 심란함이 드러났다.
‘설마 나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