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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0화 (60/774)

60화. 폭군도 영웅이 될 수 있다 (5)

쩝쩝쩝.

“…….”

우걱우걱.

“…….”

“꺼억! 야, 거기 그것 좀 줘 봐라. 그거 오리고기냐?”

“……뭔지도 모르고 달라고 하신 겁니까?”

“때깔이 곱잖아. 됐으니까 내놔 봐. 배고파 뒈지시겠다.”

“아, 예.”

“술도 하나 시키고.”

“한 병으로 되겠습니까? 대여섯 병 시키겠습니다.”

“그러든가.”

온갖 음식을 입으로 쓸어 담는 서량의 모습은 그야말로 구도자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식욕으로 눈이 뒤집힌 사람이 경건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위홍련은 처음 알았다.

떨떠름한 얼굴로 서량의 잔을 채워 준 그녀가 물었다.

“공자님. 이제 적당히 드셨으면 말 좀 해 주시죠?”

“적당히 못 먹었는데.”

“…….”

“그거, 채소볶음도 줘.”

“여기요.”

장정 다섯이 배불리 먹을 음식들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이각도 채 되지 않았다.

“끄억! 휴, 이제 살겠다.”

“형법당에서 밥 안 줬습니까?”

“줬지. 맛대가리 없는 쉰밥에 말라붙은 나물 쪼가리.”

“예에?! 그래도 삼공자신데 그런 밥을 줬다고요?”

“수감된 죄수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잖아? 삼공자라고 특혜를 받으면 안 되지.”

“그놈들한테 좋은 인상을 받지도 않으셨으면서 용케 그런 말을 하십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서량이 냅다 술을 털어 넣곤 입 안을 몇 번 헹구다 넘겼다.

그 독한 술로 입을 헹군 후에 마시다니 참 별스러운 사람도 다 있다. 위홍련이 질렸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마동필이 물었다.

“하면, 더 이상 형법당에서도 공자님을 건드리진 못하겠군요.”

“그런 셈이지. 사실 뭐 건드릴 것도 없어. 위 대주와 진마대주 건도 결국 나랑 홍위문 싸움에 연루된 것뿐이니까.”

“다행입니다.”

“다행이고 자시고 할 것 없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냐. 이번에야 편히 지나갔지만, 다음에 얽힐 땐 어찌 될지 모르지.”

위홍련은 새삼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게 맞나?’

삼공자는 아직 이십 대 초중반이라 하였다.

실력과 안목이 나이 따라가는 건 아니라지만 삼공자는 좀 심하다. 그간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간간이 보여 주는 모습이 어지간한 노강호 뺨을 쳤다.

한마디로.

‘애늙은이.’

다 큰 성인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말도 없다.

속으로 서량에 대해 생각하던 위홍련이 움찔했다.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서량의 시선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위 대주.”

“네?”

“뭐 해? 나 잔 비었어. 따라 줘.”

“쳇, 직접 따라 드시면 되잖아요.”

“그럴 거면 왜 계속 따라 주고 있었냐?”

“제가 그랬나요?”

“됐다. 너도 한잔할래?”

“좋죠.”

그녀의 잔을 채워 주려던 서량이 멈칫했다.

“그나저나 너 왜 여기 있냐? 너 일 안 하냐?”

“뭐, 상부에서 따로 명령이 내려오진 않았으니까요. 대기 상태입니다.”

“대기 중에 술을 마셔도 돼?”

“요 정도는 간에 기별도 안 가요. 아시면서, 뭘.”

“잘하는 짓이다, 광마대주씩이나 되는 년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잔은 또 꽉꽉 눌러 채운다. 위홍련은 따라 줄 거면서 괜히 그러신다고 투덜거렸다.

마동필이 물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것입니까?”

“어, 일단은.”

“사공자 측에서나 상부에서는…….”

“홍위문은 병신이 되었으니 움직일 수도 없고, 상부에서도 후보들끼리의 싸움은 쉬쉬하는 분위기니 별일 없겠지.”

서량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왠지 모르게 피로가 묻어 나오는 얼굴이었다.

“일단락된 거다, 당분간은.”

“고생하셨습니다.”

“어, 이번엔 고생 좀 한 것 같다.”

싸운 것도 싸운 거지만 심력 소모가 은근히 심하다.

애초에 이런 복잡한 분란에 취약한 그였다. 한 놈을 정해 죽어라 두들겨 패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머리에 쥐가 다 날 지경이었다.

“너희도 고생했다. 괜히 나 때문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위홍련이 오리 다리를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죠. 아직 내상도 다 안 나았는데.”

마동필이 비난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홍련이 중간에서 했던 짓을 생각하면 빈말로도 저따위 말을 해선 안 되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래, 고생했지. 어찌 되었든 네 덕에 그놈까지 차례로 때려잡을 수 있었던 거니까.”

“헤헤. 역시 공자님께선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자, 이제 끝이다.”

느닷없는 말에 두 남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량이 탁자를 짚고 일어났다.

“이런저런 일도 대충 끝났으니까 이제 각자 조직으로 돌아가도록 해. 위 대주도 그렇고, 특히 동필이는 너무 나랑 붙어 있었어.”

“……예?”

“네가 그냥 호법이냐? 일반 조원도 아니고 삼 조장씩이나 되잖아. 현장으로 복귀해야지.”

“아…….”

“그리고 위 대주.”

위홍련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도 빨빨거리면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대장 노릇 똑바로 해.”

“그리 말씀 안 하셔도 전 똑바로 하고 있거든요.”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예전처럼.”

“…….”

“얼추 다 먹었으니까 이만 들어간다. 앵화가 걱정할라.”

그 말을 끝으로 서량이 계단으로 내려가 버리자, 오 층에는 마동필과 위홍련 두 사람만이 남았다.

“…….”

얼마간의 묘한 침묵을 깨고 위홍련이 투덜거리며 잔을 들었다.

“진짜 정나미 없는 분이시네. 꼭 저리 냉정하게 끊어 내셔야 하나.”

딱히 관계를 끊자는 건 아니었지만, 이만 본업으로 돌아가란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서너 잔을 더 비운 위홍련이 기어이 속내를 비쳤다.

“쳇, 섭섭하게 말이야. 그래도 같이 난장 친 의리가 있는 건데 너무하시지.”

하긴 삼공자님의 말씀이 아니어도 결국 그리될 일이긴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삼공자님 나름의 배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괜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업에 열중하라는.

위홍련이 마동필에게 말했다.

“안 그래, 마…….”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동필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뚝뚝했다. 하지만 위홍련은 왠지 그에게 쉽게 말을 걸기 힘들었다.

물끄러미 마동필을 보던 그녀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술도 좀 남았는데 한잔할래?”

“…….”

“이봐.”

“…….”

“안 마시려면 말고.”

“주시오.”

“응? 마셔?”

마동필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위홍련은 입맛을 다시며 그의 잔을 채웠다.

그렇게 대화 없는 순배가 세 번 돌았다.

슬그머니 마동필의 눈치를 보던 위홍련이 입을 열었다.

“섭섭하냐?”

“그런 거 아니오.”

“그런데 왜 표정이 다 찌그러져 가냐?”

“……그냥.”

마동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근래 들어 유독 한숨이 잦았다.

“그냥 기분이 그렇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말이다. 하물며 자신과는 달리 마동필은 거의 일 년을 삼공자와 붙어 있지 않았나.

위홍련이 다시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다 그렇다고 하더라. 뭐, 기분이야 거지 같을 순 있지만 어쩌겠냐? 명분이 없는데.”

“…….”

“오다가다 또 만나게 되겠지. 어디 가시는 것도 아니고.”

그때였다.

“우와아아!!”

“신교불패! 만마앙복! 삼공자님을 뵙…….”

“이 새끼들아! 조용히 해! 삼공자님 지나가시잖아!”

“어어?! 야! 거기 비켜! 공자님 길 막지 말라고!”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잠시 후.

우당탕탕!

엄청난 속도로 올라온 서량이 숨을 몰아쉬었다.

두 사람은 더더욱 놀랐다. 서량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헉헉!”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던 서량이 창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오, 좋아! 저기다!”

냅다 창가로 달려가던 그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술 작작 처먹고 들어가! 책임감들이 그리 없어서야 쓰겠…….”

쿠쿠쿵! 다다다다!

“크흡! 저 새끼들이?!”

서량이 창을 활짝 열곤 그대로 몸을 날렸다.

“헉! 공자님?!”

피이이잉!

한 마리 새처럼 허공을 날던 서량이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콰앙!

놀란 마동필이 창가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자님!!”

위홍련의 눈이 흔들렸다.

오 층 높이에서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심지어 발 디딜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걸로는 끝나진 않을 것이다.

“괜찮…….”

“끄아아악!”

두 사람이 입을 떡 벌렸다.

다리 하나로 폴짝폴짝 뛰는 서량의 모습은 제법 희극적이었다. 코피가 터지고 몸 여기저기 긁힌 상처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무척이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시, 시발! 다리 병신 될 뻔했네!”

구천축지신보로 연마된 하체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신체의 내구도가 아닌 순발력과 탈력(脫力) 덕분에 살았다.

물론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내구력이긴 했지만.

서량이 위를 올려다보며 둘에게 삿대질을 해 댔다.

“너희!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서량이 화양루를 벗어났다. 절뚝거리면서도 용케 신법을 펼치는데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멍하니 서량을 바라보던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위홍련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김새네. 그지?”

“그렇소.”

“그나저나 갑자기 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오 층으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내전의 마인들이었다. 각자 다른 생김새만큼이나 소속도 다른 자들이었지만 흥분으로 물든 표정만큼은 모두가 비슷했다.

“뭐야? 공자님 어디 가셨어?!”

“설마 창가로?”

“허억! 진짜?”

“괴, 굉장하군. 형법당주와 한바탕하셨다더니 과연 성격만큼이나 대단한 무공이시다!”

“크흑! 꼭 따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왁자지껄, 시끌벅적. 그야말로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멀뚱히 그들을 보던 위홍련이 가까이 있는 마인을 붙잡고 물었다.

“어이.”

“뭐요!”

상대가 광마대주임을 몰랐던 마인의 실수였다. 하지만 워낙 흥분해 있기에 위홍련도 그것을 책잡지 않았다.

“왜들 그래? 삼공자님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

“문제? 문제라니! 무슨 그런 흉한 소리를 하는 거요?!”

위홍련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그럼 왜들 그렇게 난리야?”

“삼공자께서 형법당주에게 한칼을 날리셨다 하지 않소!”

“그게 왜…….”

순간 위홍련은 입을 떡 벌렸다. 이제야 이 단순무식한 놈들이 왜 난리를 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호법원과 달리 형법당은 교내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형법당에 잘못 걸리면 없는 죄도 추가되어 옥살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골 정신 투철한 마인들도 형법당원들 앞에선 눈을 깔고 다녀야 했다. 한데 삼공자께선 그 무섭고 재수 없는 형법당주에게 칼질까지 했다지 않는가.

‘이런 웃기지도 않은 놈들. 고작 그런 이유로…….’

어처구니가 없어진 그녀는 순간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화통하기도 하시지! 그래, 저게 바로 마인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정파 좀팽이들처럼 설설 기고만 다녔냐고?!”

“크, 앞으로 삼공자님의 행보가 기대되는군.”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삼공자가 단순히 악명이 자자한 형법당주에게 칼을 날려서가 아니라, 사공자와의 화끈한 생사결과 그 이후의 과정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었다.

서량이 사공자와 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진즉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터진 화려한 싸움과 서량의 배포 넘치는 행보에 그들이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다름 아닌 삼공자님이신데.’

후보들이 지나가면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들은 그 당연한 예법조차 잊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흥분시키는가. 왜 이렇게까지 열광하게 하는가.

‘그만큼 작금의 신교가 엄격하고 강력한 규율로 속박되어 있다는 뜻인가.’

정파나 정사지간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천마신교였다.

마도 무림의 제일 덕목은 호탕함이며, 화끈하지 못하면 마인이 아니다. 교의 성장을 위해 도입한 엄격한 규율은 마인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방이 막힌 길을 이번에 서량이 시원하게 뚫어 버린 것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후보들의 싸움을 보던 그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서량은 형법당주에게 칼을 날렸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신교의 꽉 막힌 엄격함에 일침을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마인들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위홍련이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절뚝거리며 달려나가던 서량이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 씨.”

“왜 그러시오?”

“아직도 섭섭하냐?”

“그렇소.”

마동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시간 되면 이놈들이랑 술이나 한잔하자. 공자님의 영웅담을 듣고 싶어서 난리가 난 것 같은데 말야.”

“하지만 조직으로 귀환해야…….”

“그럼 넌 빠지든가.”

“…….”

“빠져?”

“딱 한 시진만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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