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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2화 (62/774)

62화. 작전을 시작하지 (2)

“크, 좋네요.”

“예에, 뭐.”

“공자님도 한 잔 받으시지요.”

“감사히 받지요.”

“안주들이 담백하군요. 식당에서 바로 받아서 오신 건가요?”

“앵화한테 요리하라 시킬 순 없잖습니까.”

“어머, 왜요?”

“엥? 당연하지 않습니까. 혼자서 그 많은 음식을 어찌 만들어요?”

“환희원에서 나온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살림에 능해요. 당연히 요리도 잘하죠. 한 사람이 아니라 열 사람 먹을 식사도 척척 만들어 낸다고요.”

“……?”

“모르고 계셨어요?”

“상상도 못 했는데.”

애초에 앵화한테 요리를 시킨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는 역시 마교의 삼공자보다 자유를 꿈꾸는 암살자였던 것이다.

“뭐, 식당 음식도 맛있는데 굳이 만들라고 할 필요 있겠습니까.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허리 휘어지는 것보단 끼니때마다 다녀오는 게 낫지.”

“그렇군요.”

소연심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르단 말이지.’

그에게는 고위층 권력자들이 흔히들 갖고 있는 으스댐이 없었다. 대화하다 보면 신교의 평교도와 얘기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공자님.”

“말씀하십쇼.”

소연심이 눈을 끔뻑였다.

“여우가 좀 컸네요?”

“아, 역시 소 원주가 보기에도 그렇지요? 이놈이 요새 밥을 얼마나 많이 처먹는지 모릅니다.”

제 얘기를 하는 줄 아는지 금호가 갸르릉 하는 소리를 냈다. 서량이 투덜거리며 고기 한 조각을 던져 주었다.

일어나서 먹기 귀찮았는지 금호는 앞발로 슬슬 고기를 끌어왔다.

“여전히 귀엽네요.”

“그건 그렇죠.”

“근데 신기하네요? 여우인데 발톱이 고양이처럼 날 서 있어요.”

“딱히 갈려 나갈 일이 없어서 그런 거겠죠.”

고양이, 표범, 호랑이 등 고양잇과 동물들과 달리 갯과 동물들은 발톱이 뭉툭하다. 그래서 사냥 수단이 이빨밖에 없다.

대신 고양잇과 동물들보다 치악력이 좋고 체력이 강해 먼 거리도 쉬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건 금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기와는 달리 게을러서 잘 달리지도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답니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 인사 겸, 현재 교내에서 제일 유명한 분과 놀아 보기도 할 겸 찾아왔지요.”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모르고 계셨나요?”

“아니 일단 소 원주가 저한테 감사할 일이 뭐가 있답니까? 그리고 유명해요? 제가요?”

“정말 모르고 계셨나 보군요.”

소연심이 피식 웃었다. 땡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보는 서량의 얼굴은 순수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람, 진짜 독특하다니까.

“교내 마인들이 가장 기피하던 광기의 화신, 광마대주를 손쉽게 제압한 사람.

위엄만으로 진마대주를 굴복시키고 형법당을 뒤집어 놓았으며 사공자를 화려하게 거꾸러트린 마인. 심지어 형법당주에게 칼까지 휘둘렀다죠?”

“……그렇긴 한데, 뭐 이런저런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었네요.”

“광마대주, 그리고 형법당주. 이 두 사람은 평교도들이 가장 기피하는 사람들이죠. 굳이 말하자면 광마대주는 역병이고 형법당주는 자연재해랄까요.”

그렇게 말하니 두 사람이 좀 불쌍하다.

“역병과 재해, 게다가 본교 최고 신분까지도 쓰러트리셨어요. 유명해지지 않는 게 이상하죠.”

“그렇습니까.”

“네.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공자님은 교내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고 계세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내 멋대로 행동해도 모두가 수긍할 만큼 존재감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겠다!

그가 바랐던 상황이긴 하다. 그러다가 교외로 휙 나가 버리면 최상이겠지.

애초에 쥐죽은 듯 지내다가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니 존재감을 키워서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벌써부터 불안해할 필요 없지.’

신교 탈출이라는 대작전은 필연적으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한칼에 요리가 완성될 리 만무하다. 거대한 지도를 제작하려면 일단 그만한 크기의 종이부터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서량은 미소를 지었다. 하나하나 불안해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목표 대상 하나를 골로 보낼 때까지 초집중을 마다하지 않던 그때처럼 살아 보자.

“근데 원주께선 왜 저한테 고마워하십니까? 혹시 때려 주고 싶은 놈을 제가 대신 물 먹이기라도 했습니까?”

“그럴 리가요. 때려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든 때려 주죠.”

어련하시겠어.

“그때 공자님께서 주신 무공 구결이요.”

“아, 그거요?”

“네. 얼마 되진 않았지만 벌써부터 차도가 보이더군요. 무척이나 신비로운 무공이에요.”

서량은 상당히 놀랐다.

“벌써 차도가 보일 정도라고요?”

“네.”

“생각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난 사람인가 봅니다. 어지간한 감각으로는 불가능한데.”

“원체 뛰어난 아이예요. 공자님께서는 반년을 보셨지만 이 추세로 가면 석 달 안에 얼추 회복이 가능할 것 같아요.

물론 과거의 무공을 찾을 때까진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요.”

서량이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재인(才人)일 줄은 몰랐습니다. 원주께서 애 닳을 만하셨군요.”

“네, 제가 후계로 낙점한 아이거든요.”

“……!”

너무도 서슴없이 후계를 입에 담는다.

물끄러미 소연심을 보던 서량이 그녀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그런 거, 이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것도 없죠. 여기저기 떠벌릴 것도 아니지만요.”

“…….”

“어차피 제가 점찍은 후계가 있다고 해도 공자님께서는 별 관심도 두지 않으실 거잖아요?”

“뭐, 그렇긴 합니다만.”

한 조직의 수장에게 있어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후계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곧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위중하기까지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소연심 또한 그 때문에 평생 지켜 왔던 소신도 접고 홍위문과 거래를 할 뻔하지 않았던가.

소중한 사람이 있는 건 알아도 그게 후계인 줄은 몰랐다.

만약 서량이 이 사실을 퍼트리면 소연심은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환희원주를 견제하고 싶어 하는 조직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저를 그렇게나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수틀리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저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상황을 믿죠.”

소연심이 상큼하게 웃었다.

“그때의 상황, 그리고 지금의 상황. 공자님께선 어지간해선 저와 척질 일이 없을 것 같네요.”

“교내 최고 신분 앞에서 잘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걸 더 편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하여튼 잘 보신다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근데 말이죠, 아무리 통밥을 굴려도 고작 그런 이유로 원주께서 직접 찾아올 거란 생각은 안 드는데 말입니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저한테 뭐 바라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 짐작하는 분 앞에서 괜스레 의뭉을 떠는 건 원활한 대화를 포기하자는 거겠지요.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옳지.”

“…….”

“옳죠. 말씀하십쇼.”

“흠흠.”

잠시 목을 가다듬은 소연심이 시원하게 말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저의 거처로 하루에 한 번씩 와 주시겠어요?”

“…….”

“…….”

“음, 소 원주.”

“말씀하세요.”

“뭐랄까, 제가 힘에는 자신이 있지만 그런 쪽으로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에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시면서 그게 그건 줄 어떻게 아셨답니까. 근데 아닙니까?”

“절대요.”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별일 없으면 시간이야 남아돌긴 합니다만 왜 거처에 와 달라는 겁니까? 설명이 너무 부족한데요.”

“그 아이 때문에요.”

“…….”

“공자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확실히 그 아이의 성취가 빠르긴 빠른 모양이에요.”

“그렇지요. 보통은 그렇게 못 해요. 나야 하던 가락이 있으니까 빨랐지만.”

“하지만…… 그래도 느려요.”

서량이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후계를 얼마나 굴리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거 쉬운 무공 아니에요.

상당히 골 때리는 무공이라고요. 요 며칠 새에 차도를 봤다는 거 자체가 엄청난 건데?”

“그 아이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저도 알아요. 성취가 빠르다는 것도 알고요.”

다 아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순간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원주의 후계가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로군요.”

“……과연 공자님께선 눈치가 빠르세요.”

“하기야 그게 아니면 소 원주 정도 되는 분이 청구사엽초를 구하려던 걸 홍위문 따위에게 들킬 일도 없었겠죠. 마음이 꽤 급하셨던 모양입니다.”

“정확해요.”

“그래서 저더러 원주가 점찍어 둔 후계의 회복을 도와달라는 겁니까?”

“네.”

서량이 물끄러미 소연심을 바라보았다.

소연심은 여전히 옅은 미소를 베어 물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거 안 좋군.’

환희원주는 충분히 누군가에게 부탁이란 걸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탁의 대상이 자신을 비롯한 후계 후보들이 되어선 안 된다. 환희원주가 후계 싸움에 개입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원주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소연심은 자존심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이 후보에게 이런 중대한 일을 부탁하다니?

‘나름의 위험을 감수한 거야. 즉,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를 보는 이 양반의 눈빛이 아주 재미없어지겠지.’

작은 부탁보다 큰 부탁이 무서운 이유다. 이행할 능력 때문이 아니라, 거절했을 때 돌아올 역풍이 어마어마하기에.

“꽤 고달파지실 수도 있을 텐데?”

앞뒤 다 자른 말이지만 소연심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위험하죠.”

“그런데도 제게 그런 부탁을 하십니까.”

“네.”

“…….”

“이건 그냥 개인적인 부탁일 뿐이에요. 누군가가 안다면 악소문이 날 수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이 공자님과 저, 둘뿐이라면 그럴 일도 없죠.”

“벽에도 귀가 있고 벼룩도 눈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바람이 안 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극히 ‘개인’적인 부탁이니까요.”

악소문이 나도 무마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이유라도 압시다. 왜 그렇게 급한 겁니까?”

“거기까지 아셔야 하나요?”

“여기까지 몰아붙인 분이 할 말이 아닌데요?”

줄곧 담담하던 소연심의 얼굴에 약간의 난처함이 깃들었다.

“죄송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긴 어렵겠네요. 다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젠장…….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정말 보통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확실한 것은 이 부탁을 거절하면 앞으로 신교 생활이 제법 고달파지리라는 것.

‘왜 하필 나냐…….’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이번 것도 거래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속 편하겠지요? 단순 부탁이면 마음에 짐이 될 테니까요.”

“그러면 오히려 감사하죠.”

“세상에, 저는 소 원주가 이렇게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듣기에 따라 심사가 복잡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소연심은 전혀 그런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파도가 몰아칠 때 고집부리고 전진하다간 배는 부서지고 선원들은 수장되죠. 파도에 몸을 맡길 때도 있어야 해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제 부탁을 들어, 아니 거래를 하시겠어요?”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어쩌겠습니까? 이번에 소 원주 덕을 제법 봤으니 수락할 수밖에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공자님.”

“어차피 나도 받는 게 있는 것을요.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수락하시는 걸로 알게요. 내일부터 바로 오실 수 있나요?”

“그럽시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구경만 하다간 치여 죽는 법이니까.”

“하면 공자님께서는 제게 달리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그게 문젭니다. 당장 생각나는 게 없거든요.”

고금제일의 무공을 구해 달라고 해 볼까? 아니면 신교에서 빼 달라고 해?

서량이 원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자유였다.

원하는 것이 확실한 이상 이런 거래 같지도 않은 거래에 응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바라는 건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거니까.

‘젠장, 외출이라도 가능하면 내 말이라도…….’

순간 서량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

“……?”

“……소 원주.”

“말씀하세요, 공자님.”

“우리 복되고 은혜로운 조직 환희원은 교내의 살림을 담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교내에 베푸실 물품들은 다 외부에서 조달해야 할 테고요.”

“네, 당연하죠.”

“받기만 합니까? 뭐 마중이라거나 그런 건 안 나가나요?”

“중요한 물품들의 경우 나가기도 하죠. 마침 보름 후에…….”

덥썩!

서량이 소연심의 두 손을 꽉 붙잡았다.

그의 두 눈이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우리 소중한 후계분의 회복, 보름 안에 끝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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