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66화 (66/774)

66화. 냄새를 맡은 자들 (1)

쾅!

활짝 열린 대문으로 위홍련이 들어왔다.

“공자님! 나 왔어요! 술이나…… 엥?”

그녀가 눈을 끔뻑였다.

“아, 청소 중이었나?”

“…….”

“새삼스레 왜 그리 놀라?”

“딸꾹.”

앵화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에 든 빗자루까지 달달 떨리는 걸 보니 보통 놀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위홍련이 입맛을 다셨다.

“공자님은 어디 계셔?”

“…….”

“이봐, 시녀!”

“네, 넵!”

“공자님 어디 계시냐고. 얼레? 왜 인기척이 안 느껴지지? 지금 여기 안 계신가?”

놀란 건 둘째다. 앵화는 상대의 무례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주 제자의 거처에 이리 함부로 들어오다니? 미리 기별을 한 것도 아니고, 하물며 대문을 두들기지도 않았다.

“공자님께선…… 지금 안 계신데요……?”

“그걸 누가 몰라? 인기척이 안 느껴진다고 했잖아!”

“……딸꾹.”

“딸꾹질 그만하고 말해 봐. 공자님 어디 계셔?”

“수, 수련하러 가셨어요.”

“수련? 뭔 수련?”

“저도 잘은…….”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시벌, 유난도 그런 유난이 없네. 안 그래도 강하면서 또 틀어박혀서 수련을 한다고? 참 나.”

앵화는 고민했다. 공자님을 향한 무례에 욕이라도 한 사발 날려 줘야 할지, 아니면 이 빗자루로 머리통이라도 한 대 때려 줘야 할지.

우둑.

야무지게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위홍련이 앵화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네?”

“공자님 오시면 광마대주가 왔었다고 전해. 알겠냐?”

“…….”

“알겠냐고. 왜 대답이 없…… 엥?”

풀썩.

앵화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너무 놀라서 상대가 광마대주라는 사실이 그제야 떠오른 것이다.

위홍련이 얼굴을 찌푸렸다.

“가지가지 한다. 그 양반은 시녀를 둬도 이렇게 희한한 녀석을 뒀대?”

그녀는 투덜거리며 앵화를 방으로 옮겼다. 어찌 되었든 땅에 쓰러진 채로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서량의 침상에 앵화를 대충 던져 둔 위홍련은 손을 탁탁 털고 나왔다.

그때, 그녀의 눈에 칼 한 자루가 보였다.

‘엥?’

벽에 비스듬히 놓인 넉 자 길이의 도. 분명 서량이 쓰던 칼이었다.

“이 양반 봐라? 수련한다면서 칼을 놓고 가?”

흐음.

뚫어져라 칼을 바라보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주먹질 연습하러 갔나 보지. 젠장! 간만에 시간 나서 찾아왔더니만.”

위홍련은 연신 투덜거리며 거처를 나섰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아랫놈들 수련이나 시키면서 구경 삼아 한잔할 생각이었다.

아마 그녀가 반 시진만 더 빨리 왔다면 서량으로서도 제법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자기도 같이 수련하자면서 아득바득 쫓아왔을 게 분명하니까.

그 시각, 환희원의 수송대는 내전과 외전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 * *

두두두.

마차의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선 교내에서 속도를 내지 않는다. 특히나 내전은 신의 궁전이 있는 곳.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정숙할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환희원에서 내전과 외전의 경계까지 가는 데도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느리군.’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큰 탓인지 유독 느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서량은 자신의 얼굴이 상기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물론 죽립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기에 볼 사람도 없었다.

‘드디어 가는 건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마차에 타기 전까지는 앵화도 눈에 밟히고 마동필도 눈에 밟혔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

그가 한참 창가를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서량이 주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화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앉은 자세였지만 무척이나 공손해 보이는 몸짓이었다.

“삼공자님이신 줄 모르고 소녀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원주한테 들었소?”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언제 무례했다고?”

“첫날을 말함입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당신들은 참 별것도 아닌 일 갖고 무례했다느니, 송구하다느니 난리를 피우더군.”

“…….”

“괜찮으니까 잊어버리쇼. 신경도 안 쓰고 있었소. 오히려 무턱대고 방에 들어간 내가 미안해해야지.”

“감당키 힘든 말씀이옵니다.”

감당하든가 말든가.

서량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는 길에 몸 상태를 봐준다는 약속은 지킬 테지만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도 바빴다.

‘이게 얼마 만이냐?’

천마신교 삼공자의 몸으로 깨어나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서량에겐 무려 십 년은 된 것 같았던 일 년 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나가는 외출이 아니라 ‘잘하면’ 영원한 탈출까지도 가능하다.

‘환희원주에게는 미안하지만 뭐.’

어쩌겠어? 결국 세상이라는 건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무가치한 법이다.

내가 살아야 세상도 있는 법, 일일이 미안해하다가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서량이 두 손을 삭삭 비볐다.

‘목적지가 강서 인근이라고 했지?’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입꼬리가 올라간 지는 오래였고 목 뒤가 시큰거렸으며 몸 여기저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순간적으로 오줌까지 찔끔 나올 뻔했다.

‘일단 행선지는 나쁘지 않아.’

강서성에는 그의 안가(安家)가 두 채나 있다.

물론 둘 다 광동성의 인접 지역과는 상당히 떨어진 지역이었다.

남부로 이동할수록 마도 무림의 영역과 가까워지는지라 그 이상 남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단히 멀지도 않았다. 지금 실력이면 인접 지역에서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리면 얼추 도착할 수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공자님.”

“엥? 왜 그러시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옵니다. 공자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평생 입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소. 난 그저 방법을 알고 있었을 뿐이고, 그 방법으로 당신을 살린 건 소 원주니까.”

“그래도…….”

“됐으니까 그만하시라.”

주화는 입을 합 다물었다. 서량의 말투에서 진심 어린 귀찮음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읽기 힘든 분이야.’

숨겨진 뭔가가 있다는 건 알겠다. 과거보다 지금의 삼공자님이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사람 성격이란 게 한두 번 본다고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삼공자님은 유독 모호했다.

두두두.

“…….”

마차가 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온통 침묵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엥?”

느닷없는 서량의 얼빠진 소리에 주화가 고개를 들었다.

죽립으로 가려진 눈. 하지만 언뜻 보아도 상당히 놀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뭐야?”

“공자님? 왜 그러시는지요?”

서량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의 감각은 온통 마차의 창가 너머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 어?’

이 익숙한 기도는 뭐지? 이 대책 없이 묵직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저 허연 기도는…….

‘설마…… 아니겠지?’

잠시 후.

“이번 수송대의 대장을 맡은 연이(蓮二)라 합니다.”

“삼 조장입니다. 목적지를 향한 길, 그리고 귀환까지 저희 호법 삼 조가 호위하겠습니다.”

“사흘 전에 공문을 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 바로 길을 열겠습니다.”

쿠구구궁!

거대한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외전으로 향하는 성문이 열리는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대화 소리도 들렸다. 성문이 열리면서 수성위사들이 마지막으로 허가권을 검사하는 것이다.

서량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뭐야? 삼 조장? 호법 삼 조?’

수송대를 원래 호법원에서 호위해 주는 거였어? 그럴 거면 왜 수송대가 필요해? 수송대 자체가 실력 좋은 마인들로 구성된 임시 조직이잖아?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하필 왜 동필이가?!”

“네?”

깜짝 놀란 서량이 주화를 바라보았다. 주화가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오. 그나저나 주 총관, 몸은 어떻소?”

“아, 괜찮습니다.”

“오늘 운기를 했소?”

“아침에 한 시진 정도 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합시다.”

“네, 네?!”

“에잇!”

서량이 재빨리 주화의 맥문을 쥐었다.

자연스럽기도 했지만 원체 빨라서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삼공자님의 손을 피한다는 것도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잠이 최고의 보약이라고 했소. 조금만 주무시오. 알겠지?”

“사, 삼공…….”

풀썩!

주화가 그대로 쓰러졌다. 마차가 워낙 넓어서 사람 한 명이 누워도 자리가 넉넉했다.

동시에 서량이 다급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은밀하게 진기를 끌어올렸다.

[야!]

화살처럼 쏘아지는 날카로운 전음에 마동필이 움찔했다.

‘음?’

뭐지, 이 익숙한 목소리는?

‘……공자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흠, 환청이라도 들린 건가.’

하기야 근래 수련이 너무 잦았다. 무(武)를 연성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잠도 안 자고 검을 휘둘렀으니까.

어제는 쉬긴 했지만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

“환희원 수송대 삼십일 명과 호법 삼 조 오십일 명, 총 팔십이 명의 확인이 끝났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수고하시오.”

두두두.

수많은 마차와 기마가 외전을 통과했다.

마동필이 마차들을 지나 최전방을 향해 말을 몰아가려던 그때였다.

[이 새꺄! 사람 말 씹냐?]

“헉!”

깜짝 놀란 마동필이 재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이번에도 환청인가? 아닌데? 이건 분명 삼공자님의 전음인데?

근데 도대체 어디서 전음을 날리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다. 공자님의 기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마지막 마차의 창가가 드르륵 열렸다.

[이 덜떨어진 놈이 어딜 그렇게 보고 있어? 여기야, 여기!]

[헉? 공자님?]

[그래, 인마!]

[고, 공자님이 여기 어떻게……? 설마 이번 수송대에 참가하신 겁니까?]

[……그런 셈이지. 근데 넌 뭐야? 호법원이 왜 수송대 호위를 하고 있어?]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문서상으론 공자님의 성함은 적혀 있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이 새끼가 사람이 묻는데 혼자 지랄은. 야, 인마! 왜 수송대 호위를 호법원에서 맡는 거냐고? 아니, 애초에 수송대를 왜 호위하는 거야?!]

[예? 아, 그게…… 파순제가 코앞이라 인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여…….]

서량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젠장할!’

인사도 안 하고 온 게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보니 눈앞이 깜깜하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는 이상 쉬운 도주는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공자님.]

[왜!]

[혹, 교주님께 비밀 임무라도 받으신 겁니까?]

직책이 없으니 임무랄 것도 없다. 교주님이 아니라면 누가 삼공자님께 외출을 허락하겠는가. 마동필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떨떠름했지만 서량은 대충 넘겼다.

[뭐…… 그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그, 그러셨군요.]

[어쨌든 간에 너, 여기 내가 있다는 거 이 사람들한테 알리면 안 된다. 알겠냐?]

[예? 하, 하지만…….]

[알리지 말라고 새꺄!]

마동필이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대답했다.

“아, 옙!”

순간 모두의 시선이 마동필에게 집중됐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재빨리 창가 밑으로 고개를 숙인 서량은 가슴을 쾅쾅 쳤다.

‘저 머저리 같은 놈!’

나중에 느닷없이 들키는 것보단 먼저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불렀더니 저 악랄할 정도로 순진한 반응은 뭐냐고!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했다. 설마하니 신교에서 가장 깊게 얽혔던 인연이 마지막에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설령 기회가 생겨도 홱 도망칠 수 없을 거 아니냐고!

“……시바, 인생 꼬인다, 꼬여.”

반 시진 후, 수송대와 호법 삼 조는 외전의 외곽 성문을 나왔다.

천마신교에서 일 년 동안 지옥을 맛보았던 서량이 전생 후, 최초로 출교(出敎)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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