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냄새를 맡은 자들 (2)
“빌어먹을!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는군. 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저 냄새나는 것들이랑 죽치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단주님.”
“왜.”
“그래도 연수를 맺은 조직인데 언사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
“뭐?”
“죄, 죄송합니다.”
“주제도 모르는 놈! 다시 그 똥내 나는 구덩이에 처박혀서 쥐 고기나 씹으면서 살고 싶으냐? 어디서 감히 언사에 신경을 쓰니 마니 헛소리를 해 대는 것이야.”
“…….”
“내가 왜 칼질도 변변찮은 널 부단주로 데려왔는지 잘 기억해라. 알겠느냐?”
“예.”
“됐으니까 술이나 가져와.”
“…….”
“왜? 임무 대기 중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규정 운운하고 싶은 게냐? 그렇게 규정을 잘 지키는 놈이 무슨 용기로 반란 모의까지 하셨나?”
“그것은…….”
“닥치고 술이나 가져와!”
고개를 꾸벅 숙인 중년 사내가 물러났다.
바위에 등을 기대앉은 초로인이 짜증 어린 눈으로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병신 같은 새끼. 지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날뛰니 반란 모의로 잡혀가기나 하는 게지.”
한참이나 투덜거리던 그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두운 숲에서 독한 혈향이 느껴졌다. 허겁지겁 뭔가를 뜯어먹는 소리가 무척 음산하게 들려왔다.
초로인의 얼굴에 혐오의 기색이 어렸다.
“누가 짐승새끼 아니랄까 봐 여기까지 와서도 지랄이군.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제 버릇 남 못 주는 게야.”
정말이지 진저리가 난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 천지였다.
그리고 이런 일에 자신을 직접 파견한 성(城)의 수뇌부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탈취? 웃기는군. 말이 탈취지 강도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을.’
화끈하기는커녕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이따위 임무에 배정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이 명령을 내린 수뇌부들의 목을 줄줄이 따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성문에 걸어 두고 싶었다.
‘흠.’
그나마 자신의 손에 강도를 당할 놈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다면 목에 칼이 떨어져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쪽 동네 놈들과 조우하는 게 얼추 십 년 만인가?’
그의 눈이 작은 초승달을 그렸다.
“제법 괜찮은 여흥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 * *
주화가 눈을 떴다.
서량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잘 잤소?”
우두둑!
그녀의 상체가 번개처럼 세워졌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허리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서량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러다 허리 나가면 소 원주한테 내가 타박받소.”
“고, 공자님?”
“왜 그러시오?”
주화가 당황해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석양이 진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제가 한나절이나 쓰러져 있었군요.”
“하루 더하시오.”
“……네?”
“하루하고도 한나절이었소.”
주화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나…….”
“억지로 재운 게 다행이었소. 입마에서 벗어나자마자 무리하게 움직였으니 몸이 그리 축났지.
심법의 수준이 높고 운공조식을 잘했다 해도 몸은 몸이오. 초절정고수 정도가 아니면 쉴 땐 쉬어 줘야 한다는 거지.”
“…….”
“뭐, 결과적으로 잘 쉬었으니 되었소.”
주화가 고개를 숙였다.
설마하니 자신의 몸이 그렇게나 축났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운공조식으로 몸을 보하기만 했지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실격이다.’
소생의 기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나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단순한 오만이었을까.
입마에서 벗어났으니 이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몸을 회복시키는 게 우선인 건 알았지만 정작 나 때문에 피해를 봤을 과거의 일만 생각했다.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한 주제에 누가 누굴…….’
주화의 얼굴에서 보이는 자책의 기미에 물끄러미 그녀를 보던 서량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배 안 고프시오?”
“네?”
“배 안 고프시냐고. 이틀 동안 누워만 있었으니 고플 만도 할 텐데.”
그 말을 듣자 허기가 졌다. 그제야 입술도 쩍쩍 마른 게 느껴졌다.
서량이 마차 의자 밑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송대 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주먹밥과 육포요. 양껏 먹되 과하게는 취하지 마시오.”
“공자님께서는……?”
“아까 먹었소. 딱히 배고프지도 않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당신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데.”
주화가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왜 공자님께서 몰래 출교하고 싶어 하시는지를 몰랐다.
어지간하면 후계 후보들이 출교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생각은 잠시였다. 그녀는 굳이 거기까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응, 맛나게 드쇼.”
주화가 오물오물 주먹밥을 씹었다.
환자가 먹기 좋도록 이런저런 채소를 잘게 다져 만든 주먹밥이었다. 아마도 원주님께서 수송대 마인들에게 따로 명을 내려 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보면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라면 걱정은 했을지언정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진 못했을 테니까.
은혜에 감사하고 애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참 여러 가지로 부족함을 느끼는 그녀였다.
“다 먹었소?”
“네.”
“생각보다 양이 적소이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데.”
“아, 그럼 이것은 제가 놔두었다가…….”
“식량은 넉넉하다고 하오.”
“……다 먹도록 하겠습니다.”
“배부른 거 맞소?”
“네? 아…… 네.”
“그럼 그거 나 주쇼.”
주화가 의아한 얼굴로 서량에게 남은 밥을 건넸다. 딱히 배고프지도 않다면서 억지로 드시려는 건가?
서량이 입을 열었다.
“금호. 이리 나와라.”
스르륵.
주화가 움찔했다. 어느새 의자 밑에서 황금빛 털을 지닌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새끼 여우지만 다리가 제법 길쭉했다. 꼬리가 거의 몸통만큼 커서 무척 복슬복슬해 보였다.
냉큼 서량의 무릎에 올라온 금호가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서량이 금호에게 육포를 건네주었다.
“내 손가락도 씹어 댄 이빨이면 육포 정도야 쌀밥처럼 으깨 버릴 수 있겠지?”
합챱챱!
금호가 육포를 열심히 씹었다. 서량의 짐작대로 순식간에 육포를 씹어 삼켰다.
주화가 입을 떡 벌렸다.
“고, 공자님, 그 여우는……?”
“음? 아, 이 친구는 금호라고 하오.”
금호라.
이름 한 번 직관적으로 지었다. 금색 털을 지닌 여우라서 금호라니,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작명 감각 한번 괴악하다 싶었다.
금호가 육포 두 덩이를 순식간에 해치우자 서량은 주먹밥을 입에 갖다 대 주었다.
‘앗.’
여우한테 주먹밥을 줘도 되는 걸까? 거기에 채소도 들었는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냠냠!
한 입, 한 입 참 맛나게도 씹어 댄다.
맹수들도 한 번씩 풀을 뜯는다. 대개 속이 더부룩해서 토해 내려 할 때 씹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호는 아니었다. 그냥 밥과 채소 자체를 맛난 요리 먹듯이 잘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생명체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씹어 삼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꺽.
금호가 보란 듯이 트림을 하곤 서량 옆자리에 누웠다. 혀로 입을 닦아 내며 버둥거리는가 싶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놀고 싶으면 놀고. 네 팔자가 아주 상팔자다.”
“공자님.”
“음?”
“이 여우는…… 공자님께서 키우시는?”
“뭐, 키운다기보다는 알아서 따르더구만. 몇 번 먹이를 주다 보니 나도 정이 들어서 말이오.”
“그, 그렇군요.”
개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양이도 아니다. 세상에 여우를 키우는 사람은 처음 봤다.
흐뭇한 얼굴로 금호를 내려다보며 보따리를 정리하던 서량이 문득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을.’
신교를 나온 지 이틀째.
강서 인접 지역까지는 마차로 대략 열흘의 시간이 걸린다. 그중 이틀이 지났으니 이제 여드레 정도 남은 셈이다.
‘갑갑하네. 그냥 지금 이대로 튀어 볼까?’
꾸욱.
보따리를 쥔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참자, 참아. 아직 이곳은 광동성이고 천마신교의 영향력이 무지무지 강한 지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서는 물론이요, 복건이나 강서, 호남, 귀주, 운남 일대까지도 신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쳤다.
과거의 실력을 되찾았다면 모를까 지금의 실력으론 무조건 잡힌다.
아니, 설령 과거의 실력을 찾았다 해도 위험했다. 과거의 자신은 살왕이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마인이니까.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무공을 갖추거나, 아니면 모두가 깜빡 속을 만큼 기가 막힌 상황을 연출해 내 속이는 게 아니면 도주는 불가능하다.
‘일단 상황을 주시하자. 어차피 이번 한 번으로 자유가 될 생각은 없었잖아?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안 된다, 이놈아.’
수송대가 강서 지역으로 한 번에 가는 것도 아니다. 광동에 차려진 지부 중 두 군데를 들렀다 간다.
지부도 기왕 들르는 김에 슬쩍슬쩍 봐 둬야지.
지부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의 연락망은 얼마나 체계적인지, 작정하고 움직이면 얼마나 빨리 지역을 통제할 수 있는지 등등.
보통이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는 거고 제법 해볼 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면…….
“공자님.”
“응? 아, 불렀소?”
“…….”
“왜? 불렀으면 말을 하지.”
주화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이기에 용기를 냈다.
“혹, 수면은 어디서 취하시는…….”
“여기서 취하지 어디서 취하겠소.”
“…….”
“아, 그거 좀 불편할 수 있는 건가?”
“아, 아닙니다!”
주화는 크게 당황했다.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성인 데다가 심지어 신분도 높으니까. 자신도 자신이지만 삼공자님한테도 딱히 좋을 게 없는 악소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면전에 대고 불편하다고 하겠는가. 게다가 신이 점지한 제자라면 부담은 느낄지언정 기쁨에 겨워해야 마땅했다.
“미안하지만 불편해도 좀 참으시오. 어차피 당신 몸 상태도 계속 살펴야 하고.”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봤자 금방이오. 얼추 닷새쯤이면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일 테니까. 이후엔 내가 다른 데서 자든 하리다.”
“괘, 괜찮습니다, 공자님! 공자님께서 불편하시다면 제가 다른 곳에서 자면…….”
“그러니까 일일이 괜찮냐, 감사하다, 그런 거 물을 필요 없소. 난 워낙 무덤덤한 인간이라 별 신경도 안 쓰니까. 알겠소?”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럼 됐소.”
그때, 서량의 귀가 쫑긋거렸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쉬시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덜컹.
서량이 나간 뒤 마차 문을 닫으며 가볍게 한숨을 쉰 주화의 눈에 문득 맞은편 푹신한 의자에 누운 금호가 보였다.
“……넌 정말 편해 보이는구나.”
금호가 귀를 쫑긋거리다 나직이 입맛을 다셨다. 드러누운 자세엔 변함이 없었다.
주화가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상하게 피곤했다.
* * *
“오셨습니까, 공자님.”
“불렀냐.”
마동필이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감히 이러면 안 되는데 경망되게 공자님을 숲으로 불렀…….”
“제발.”
“예?”
“제발 너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다.”
“……?”
“됐고, 그래서 뭔 일이냐?”
그간 이동하면서 한 번도 마차 밖에 나오지 않으셨던 공자님이다. 말하자면 홍위문 사태 이후 처음 마주하는 건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공자님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마동필은 곧장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미리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부득불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그니까 뭘?”
마동필이 품에서 곱게 접은 서신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뭔데 그렇게 꽁꽁 숨겨…… 응?”
“…….”
“너, 이거 사실이야?”
“그렇습니다. 아마 상부에서 호법원을 딸려 보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고, 공자님?”
사아아악.
서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서량의 눈에서 섬뜩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의천맹의 대장로(大長老) 놈이 강서 남부에 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