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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70화 (70/774)

70화. 냄새를 맡은 자들 (5)

‘이럴 수가.’

가까이서 봤을 때도 참혹했지만 건물 잔해를 모두 치우자 드러난 광경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란 네 글자가 어울렸다.

‘대량의 피가 쏟아진 흔적이 많아. 단순한 전투로 죽은 게 아니라는 뜻이야.’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건물을 부수고 불을 붙였다. 이곳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너무 어중간하다.

‘제대로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면 이보다 훨씬 더 용의주도할 수 있었을 거야. 시체부터 건물 잔해까지 아예 없애 버릴 수도 있었겠지.’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미리 보냈던 척후조가 돌아오고, 다시 이곳까지 온 거리를 생각하면 결코 시간이 모자라지 않다.

신교의 마인들을 건드린 배짱이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흔적을 지우는 게 낫다는 것 정돈 알았을 것이다.

당연히 실수일 리는 없겠지.

‘결론은 둘.’

이 엉성한 흔적 자체가 미끼이거나, 어디로 도주해도 잡을 수 없을 만큼 확실한 목적지가 있거나.

사아아아악.

그녀의 손이 군데군데 금이 간 벽을 훑자 그 벽에 허연 서리가 끼었다.

월음마공의 상천수(霜天手)가 자연스레 발휘되었다. 겉뿐만이 아니라 속까지 스며든 한기가 벽의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주화가 얼어붙은 벽을 툭 건드렸다.

쿠르릉.

부서진 벽이 땅으로 꺼졌다.

‘역시 어설퍼. 기름도 여기저기 대충 뿌렸을 뿐이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 와중에도 주화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적어도 겉으론 그렇게 보였다.

물론 그녀라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주화는 당장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더 고민이었다.

“임시 대장.”

“예, 총관님.”

“가까운 지부에 연통을 보냈나요?”

“보냈습니다. 거리를 봤을 때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도착할 겁니다. 이후 본단까지 연락이 닿는 데에는 이틀이면 충분할 겁니다.”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 그렇다면 선조치 후보고의 형태로 처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일단 시신을 수습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한옆으로 나온 주화가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강서는 본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야.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당장 추적대부터 편성해 보냈을 것이다. 광동과 강서가 맞닿은 지역이니 상황을 더욱 확실하게 주시하려 하는 것이다.

‘급하게 움직이지 말자. 그럼 실수하게 돼.’

바람직한 사고였다. 폭급한 성정이었거나 공(功)에 눈이 먼 마인이었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팔짱을 낀 주화는 팔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곤 손을 풀었다.

‘아직 운용되고 있었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주화의 얼굴에 은근한 격정이 일었다.

‘벌써 이 정도…… 정말 빠르구나.’

서량의 치료는 단순히 피폐한 몸을 정상화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 도착하기 닷새 전부터 그녀는 월음마공을 본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운공을 하고 몸을 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월음마공에 필요한 한기를 뽑아 마기의 바탕을 세웠고, 그 마기의 양을 불려 단전의 삼 할 이상을 채웠다.

이전의 무력을 온전히 되찾기엔 아직 부족했지만 어지간한 고수와 맞서도 시간을 끌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했다.

‘내가 생각했던 기간은 한 달이었어. 아니, 한 달을 연성해도 지금 이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야.’

주화의 눈이 흔들렸다.

‘도대체 삼공자님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몸에 잔존하는 농도 짙은 마기의 흔적을 느꼈다.

극소량이었지만 원체 마기가 짙어서 월음마공이 허겁지겁 그 기운을 쫓아 활성화되었다.

공자님은 하루에 한 번씩 꼭 소량의 마기를 주입하여 월음마공의 부활을 부채질했다.

만약 그분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도 마차에 앉아 운공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공자님께선 마차에서 나오시지 않았다. 이 사태를 궁금해하실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잰걸음으로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퍼어어엉!!

엄청난 폭음이 후미의 마차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주화가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뿐 아니라 잔해를 정리하던 마인들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동필이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재빨리 신법을 펼친 주화가 마동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그게…….”

마동필이 마차의 문을 슬쩍 열어 보였다.

주화의 눈이 커졌다.

“……어, 어디로?”

마동필이 삼공자님인 줄 모를 것 같아 앞뒤 빼고 물은 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마동필이 주화에게 전음을 날렸다.

[삼공자님께선 잠시 주변을 둘러보겠다 하고 가셨소. 따라오지 말라는 엄명도 내리셨소.]

[……당신도 알고 있었나요?]

[그렇소. 고죽림에서 공자님을 모셨던 사람이 나니까.]

[뭐든 상관없어요. 어서 공자님을…….]

[안 되오.]

[그게 무슨 소리죠? 교내 수뇌부가 수행원도 없이 홀로 떠나셨어요! 심지어 이런 사태까지 일어났는데!]

막지 않고 뭐 했냐는 눈빛에 마동필이 한숨을 쉬었다.

“잔해를 정리하고, 북동쪽으로 오십 리쯤 가다 보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소.”

“……네?”

“그분께서 남기신 말은 그뿐이오. 적의 전력이 상당하니 접전은 최대한 피하란 말도 남기셨소.”

우웅.

주화의 손에서 허연 김이 일었다. 동시에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마동필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분의 뒤를 따르고 싶지만 수송대와 호법원이 받은 명령은…….”

“맞아요.”

“음?”

“우리가 받은 명령은 인계받을 물건을 싣고 본교로 귀환하는 것. 호법원의 임무는 수송대를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죠.”

“…….”

“그러니 전부 이동합니다.”

주화가 연이에게 외쳤다.

“시신을 수습하고 곧바로 움직입니다!”

마인들이 급하게 움직였다. 확실한 명령이 내려온 이상 이젠 신속하게 움직일 일만 남았다.

덜컹.

흔들리는 마차 문.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금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 *

“후우.”

오경화가 고개를 저었다.

“이젠 기다릴 일만 남았군. 이봐!”

“예, 단주님.”

“술이나 가져와.”

곽사가 고개를 숙이곤 재빨리 움직였다.

이제는 제법 빠릿빠릿해진 것 같아 마음에 든다. 히죽 웃던 오경화는 문득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자신의 머리를 뒤덮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뭐야?”

“…….”

“뭐냐고 묻지 않느냐!”

날카로운 호통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오경화 앞에 선 사내는 실로 무시무시한 덩치의 소유자였다. 키는 능히 팔 척에 이를 듯했고, 좌우로 떡 벌어진 가슴과 어깨는 강철을 연상케 할 만큼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날이 추운데도 어깨부터 팔이 전부 드러난 의상을 입었다. 호피로 만들어진 상의와 웅피로 만든 하의가 지독한 야성미를 자아냈다.

박력 넘치는 몸과 달리 그의 얼굴은 제법 멀끔했다. 수염은 전부 밀었고 두 눈은 심연처럼 깊었다. 다만 눈썹도 밀었기에 조금은 험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거한의 입이 열렸다.

“먹이가 필요하오.”

“……뭐?”

“아이들을 먹일 먹이가 필요하오. 단원들을 시켜서 공수해 오시오.”

오경화의 볼이 떨렸다.

“네놈, 지금 내게 명령하는 것이냐?”

“명령이 아니라 요구요.”

“네깟 놈들에게 줄 먹이 따위 없다. 너희 먹이는 너희가 알아서 취하도록!”

사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이번 협업에서 귀하의 단(團)이 우리의 먹이를 책임진다고 하였소. 약속을 지키시오.”

“미친! 네놈들이 지금까지 처먹은 양을 생각해라! 하물며 조금 전엔 시체까지 뜯어먹지 않았더냐!”

“우린 그저 요구할 뿐이오. 먹이가 더 필요하오.”

웅얼거리는 낮은 목소리는 묘하게 어눌하게 들렸다.

사아아악.

오경화에게서 살기가 뿜어졌다.

동시에 그를 내려다보던 사내의 눈빛도 돌변했다.

으르르릉.

사내의 등 뒤, 시커먼 어둠이 눌어붙은 곳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쌍의 시뻘건 눈빛들은 그 자체로 위압이요, 협박이었다.

“약속을 파기하시겠소?”

스륵.

사내의 두툼한 아랫입술 위로,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송곳니가 슬쩍 드러났다.

살기 넘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오경화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암, 너희 개돼지만도 못한 짐승 놈들 배는 채워 줘야지. 상부에서 약속까지 했다는데 말이야. 그렇지?”

“좋소.”

“가서 기다려라. 배 터지도록 마련해 주마.”

사내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의 등을 노려보던 오경화가 손목을 돌렸다.

우두둑. 우두두둑.

살심이 묻어나는 행동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래, 많이들 먹어 둬라.’

세상 모든 임무에서 희생이란 불가피한 요소다. 어차피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보고는 자신을 거치지 않고선 올라갈 수 없다.

‘이 일이 끝나고 난 후, 너희 축생들을 모조리 묻어 주마.’

만약 오경화가 등을 돌린 사내의 얼굴을 봤다면,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사내는 얼굴을 귀신처럼 일그러트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고도 살기 한 점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잠시 후, 오경화 휘하의 부하들이 십여 마리의 사슴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콰드득! 우적우적.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사슴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덩치 큰 사내는 한옆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밥맛 떨어지는군.”

오경화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어.’

철혈성은 지금도 막강하다. 굳이 다른 조직과 연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의천맹도, 저 빌어먹을 마교 놈들도 왜 철혈성을 건드리지 않겠는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바꿔 말하자면 철혈성의 힘은 의천맹과 마교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호삼세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니지.’

오경화의 눈이 반짝였다.

‘저 야만스러운 놈들이랑 연수를 해? 그럴 리가 없지. 아마 써먹고 버릴 용도겠지.’

말이 연수지 그저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오경화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약 그게 아닌, 대등한 위치에서의 협업이라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평생 철혈성 소속으로 산 자존심이 갈가리 찢어질 것이다.

‘말이 남만야수궁(南蠻野獸宮)이지 결국 사람도 뭣도 아닌 짐승들일 뿐이다.’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이들과의 동행, 거기에 기다림까지 추가가 되자 말도 못 하게 짜증이 났다.

술병 하나를 전부 비워 버린 오경화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그때였다.

“나를 기다리셨는가.”

저 멀리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한 사람.

덩치 큰 사내의 눈에 기광이 번지고, 한참 사슴을 뜯어먹던 짐승들이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빈 병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오경화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왜 이렇게 늦었소?”

“볼일이 있어서 말일세. 그래도 아주 늦은 건 아니니 화 풀게나.”

오경화가 비릿하게 웃었다.

“볼일은 무슨. 어느 병신 같은 문파에 가서 뇌물 몇 점 꼭꼭 씹어 잡수느라 늦으셨겠지.”

“나이가 들수록 이것저것 잘 챙겨 먹으라 했네.”

“너무 많이 드시면 탈 나오. 아시잖소?”

“내 나이 일흔이 넘었으나 위장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다네.”

모습을 드러낸 하얀 수염의 노인, 정일룡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철위단주(鐵威團主).”

“오랜만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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