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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71화 (71/774)

71화. 마귀가 나온 줄 모르고 문을 닫았다 (1)

“정리는 대충 끝났군. 이만 너희도 쉬어라.”

문후의 말에 오십여 명의 사내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따뜻한 지방이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제법 거셌다. 날이 좋아도 겨울은 겨울. 쉬기에 좋은 온도는 아니었다.

자리가 불편했는지 한 명의 사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문후에게 다가왔다.

“대주님.”

“왜?”

“대주님은 안 쉬십니까?”

“됐다. 청수문에서 이것저것 받아먹어서 그런지 속이 별로 안 좋아.”

대원이 투덜거렸다.

“좋으셨겠습니다. 청수문주 그 노친네, 엄청 호화롭게 산다고 들었는데.”

“도자기며 융단이며 왕 부럽지 않게 하고 살더군.”

“참나, 나 같았으면 그냥 거기서 떵떵거리고 살겠네. 뭣 하러 연줄 잡아서 맹에 들어오겠다고 대장로님을…….”

문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놈, 입조심하지 못해?”

“아, 죄송합니다.”

“벽에도 귀가 있다고 했다. 혹시라도 새어 나갈 말은 아예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라.”

대원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대장로님께선 언제쯤 오신다고 합니까?”

“이놈이 말 돌리기는.”

“진짜 궁금해서 그럽니다. 언제쯤 오시는지 알아야 쉬어도 편하게 쉴 거 아닙니까.”

“모르겠다. 얼추 반나절쯤 걸리겠지.”

“그렇게나 오래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잖느냐.”

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그런 곳을 혼자 가셔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청수문에도 대주님만 대동하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곳? 어딘 줄 알고 그리 말하느냐?”

“정확히는 모르죠. 하지만 뭐, 청수문 때와 비슷한 곳 아니겠습니까?”

문후가 고개를 저었다.

“대장로님 모친의 묘가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예? 그럼 대장로님께서 묘에 인사하러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그럼 뭔 줄 알았느냐?”

“……그냥 뭐.”

“몇 년 전부터 그러셨어. 바쁘다는 핑계로 모친 묘도 안 찾아간 불효자라고,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뵈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지.

대원이 의외라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대장로님께 그런 면이 있으셨군요.”

“이놈이?”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요망하게…….”

“대장로님은 대단하신 분이야. 우리 역시 출세의 끈이랍시고 대장로님 밑에 머물러 있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분도 찾기 힘들다.”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대장로님에 대한 얘기는 실수로라도 새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어쨌든 대장로님께 피해가 가면 우리의 출셋길에도 문제 생기는 거야. 알겠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가 제일 걱정된다, 이놈아.”

문후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원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됐고, 뭐 먹을 거 없냐?”

“청수문에서 뭐 많이 드셨다면서요? 속도 더부룩하다던 양반이 갑자기 왜?”

“화려하긴 했지. 짜고 느끼해서 많이 못 먹었을 뿐.”

“흐흐, 비싼 음식도 못 알아보시고 말이야. 대주님도 잘될 팔자는 아닌 것 같수.”

“이 새끼들이 정말?”

시시덕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때, 한 대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 저게 뭐지.”

“왜, 인마.”

“저기 광경이 이상한데요?”

“뭐가!”

“저거 나문가? 왜 나무들이 막 다 부서지고 그러지?”

“뭔 소리냐, 도대체?”

문후가 대원이 봤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강렬한 폭음이 울렸다.

퍼어어어엉!

공기가 찢어지다 못해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동시에 좌우로 우수수 쓰러지던 나무들이 잘게 부스러져 휘날렸다.

문후의 눈이 커졌다.

쐐애애애액!!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한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

무시무시한 속도에 머리카락이 뒤로 확 넘어간, 사람인지 뭔지 모를 누군가의 얼굴은 마귀처럼 흉악해 보였다.

심지어 그 마귀는 등 뒤에 제 키만 한 거도(巨刀)를 매고 있었다.

그 바로 뒤, 발치 언저리에서 황금빛 점이 명멸을 반복하며 따라왔다.

문후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모두 조심해!”

파악!

폭풍같이 쇄도하던 와중, 허공에서 한 차례 박차 오른다.

‘허공답보?!’

허공답보(虛空踏步), 능공허도(凌空虛道).

경신술의 최고 경지로 허공을 제 의지대로 걷는 것을 뜻한다.

허공에서 박차 오른 걸 보면 분명 허공답보인 듯한데, 너무 폭발적인 움직임이라 확신이 안 섰다.

저 높이 떠 있는 태양을 가리며 떠오른 의문의 마귀.

피이이잉!

금현(琴絃)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마귀가 등 뒤의 거도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화르르륵!

마귀의 전신에서 불그죽죽한 핏빛 마기의 번갯불이 뿜어지자 문후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피해라!”

콰르릉!

* * *

“음?”

정일룡이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오경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오?”

“……아닐세.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는가, 환청이 들리는 모양이야.”

오경화가 피식 웃었다.

“천하의 미염검선(美髥劍仙)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잖소.”

“허허, 이 늙은이를 그래도 사람 취급해 주는 이는 자네밖에 없군.”

“사람 취급이라니, 의천맹의 실세 중 실세인 분께서 엄살도 심하시오.”

“모르는 소리 말게. 요새 젊은이들이 다 자네 같은 줄 아는가? 어른에 대한 공경 따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하게 여기는 놈들 천지일세.”

“하하! 내 그래도 오십이 넘었거늘 젊은이라니? 뭐, 듣기에 나쁘진 않소.”

정일룡이 저 멀리 음영이 진 숲을 바라보았다.

덩치 큰 사내가 바위에 앉아 있었고, 그 뒤론 시뻘건 안광을 빛내는 ‘짐승’들이 수풀 여기저기에 엎드려 있었다.

“저들이 그 명성 자자한 야수들이로군.”

“명성 자자한 줄은 모르겠지만 그 야수들이 맞소.”

그때, 사내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일룡을 쳐다본 사내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스르륵.

사내의 몸에서 무형의 기파가 새어 나왔다. 동시에 훅 하고 노린내가 끼쳐 들었다. 육식 동물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노린내였다.

오경화가 짜증 어린 얼굴로 손을 휘둘렀다.

“냄새나는 것들.”

하지만 정일룡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물끄러미 사내를 바라보던 그가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는 이름이 어찌 되는가.”

“율랑(嵂狼).”

“율랑이라…… 과연.”

정일룡의 입에서 감탄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네가 야수궁주의 애제자라는 그 율랑이로군. 차기 궁주에 가장 가까운 둘 중 하나라던가?”

사내, 율랑의 눈에 푸른 광채가 일었다.

흰자위까지 침범한 푸른 눈 한가운데에 작고 검은 점 하나가 찍혀 있다. 마치 늑대의 눈을 보는 듯했다.

“새외의 무공은 중원 본토의 무학과 궤를 달리한다고 하였지. 엇비슷해 보여도 워낙 기괴하여 아차 하는 순간 한 수 위의 고수도 당한다고 하였어.”

“…….”

“자네를 보니 알겠네. 중원의 무공과 섞인 것 같지만 또한 전혀 다르군. 하물며 잠재되어 있는 그 기파(氣波)……

중원의 어지간한 절정고수들도 십 합을 버티기 힘들겠어.”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율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형형한 안광으로 정일룡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릴 뿐이었다.

오경화가 이죽거렸다.

“보셨소? 저놈들이 저렇소. 세상사 예의 따위는 하나도 모르는 놈들이지.”

“허허, 사는 세상이 다르거늘 이쪽 예의를 모른다 하여 마냥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일세.”

“대장로는 저놈한테 왜 그리 관대한 거요?”

“관대하다니?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인사 정도인 것을.”

“흥! 그나저나 용케 저놈이 누군지 알고 있구려.”

정일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 수밖에 없네. 새외사궁(塞外四宮)은 하나하나가 강호삼세에 모자람이 없는 단체들이야.

지금은 숨죽이고 있다지만 언제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모르는 이들을 파악해 두는 건 당연한 걸세.”

“나는 그게 왜 당연한지 모르겠소. 아군이라면 손을 잡고, 적이 되어 나타나면 깨 버리면 그뿐이지.”

“자네도 성질머리 좀 죽일 필요가 있네. 보다 높은 곳을 꿈꾼다면 말이야.”

오경화가 콧방귀를 뀌었다.

“일없소. 나는 평생 현역으로 살다가 죽을 거요. 물론 그만큼의 대우는 받고 싶지만.”

“허허.”

너털웃음으로 답한 정일룡이 천천히 상체를 수그렸다.

“어찌 되었든 가벼운 인사 대신으로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 지었으면 하네. 아무래도 우리, 시간이 그리 많진 않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로 반나절은 꽉 채울 분이 말은 잘하시오. 하지만 좋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는 동감하오.”

“그래, 그래. 그래서…….”

정일룡의 눈이 번뜩였다. 신선 같은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탐욕과 광기가 마구 뒤섞인 눈빛이었다.

“화신보옥(禍神寶玉)은 어디에 있는가?”

오경화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품을 두들겼다.

“내 품에 있소.”

“일단 거래부터 마무리 짓도록 하지. 이리 건네주게.”

“물건을 사시려면 그만한 돈이 있는지부터 보여 주셔야지 않소.”

“허허.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야박하기는.”

“나도 어쩔 수 없소. 이번에는 개인적인 거래가 아니라 상부에서 보낸 대행자 자격으로 온 거 아니오?”

정일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그가 품에서 작은 금낭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네.”

“이게 ‘그거’요?”

“맞네. 미리 말하지만 이전 것보다 두 배는 더 질 좋은 물건일세. 가져다주면 만족할 게야.”

“용케 이런 걸 구하셨소.”

“내 이래 봬도 의천맹의 대장로 아닌가. 발품 좀 팔긴 했네만.”

금낭을 받은 오경화가 품에서 비슷한 크기의 금낭을 꺼내 들었다. 정일룡의 붉은 금낭과는 달리 푸른빛의 금낭이었다.

“고맙네.”

정일룡이 웃으며 금낭을 받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두 눈은 격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맹 내 정치력으로는 손에 꼽는다는 노회한 그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경화는 내심 의아했다.

‘화신보옥이라…… 저 구슬이 저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귀한 물건인 건 알지만 쓰임새를 모른다. 딱히 대단한 기운을 풍기는 것도, 그렇다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구슬도 아니지 않나.

궁금한 건 딱 질색이다. 오경화가 솔직하게 물었다.

“한데 그 구슬이 무엇이기에 이런 물건까지 건네주는 거요?”

“허허, 누군가에겐 썩은 나무토막밖에 안 되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방을 데우는 장작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그저 내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그렇구려.”

오경화가 입맛을 쩍 다셨다. 말해 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완곡히 돌려 말한다. 아마 끝까지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쪼잔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품에 금낭을 넣은 정일룡이 손뼉을 쳤다.

“자, 이걸로 일단 거래는 마무리가 되었구만.”

“그렇구려. 어떻게, 바로 가시려오?”

“마음 같아선 예전처럼 자네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 좀 하고 싶네만 많이 바빠서 말일세. 자네도 바쁘지 않나?”

“뭐, 그렇긴 하오만 술 몇 잔 나눌 시간 정돈 있소.”

“허허, 내가 보고 싶었던 게로군.”

오경화가 세상 귀찮다는 얼굴로 손을 저었다.

“본성(本城)이 좋기는 해도, 원체 재미없는 인간들만 한가득이라서 말이오. 대장로처럼 유쾌한 사람이 없소.”

“윗사람들이 섭섭해하겠네.”

“핫! 섭섭하기는. 그 시간에 지들 주둥이에 뭐가 들어오나 고민이나 해 대겠지. 어떻소? 이 기회에 철혈성으로 들어오는 건?”

“허! 내게 영입 제안을 하는 겐가?”

“뭐가 어때서 그러시오? 능력 있는 사람을 탐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오?”

“말이라도 고맙구먼.”

“그러지 말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그런데 말이야.”

“음?”

정일룡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내게 그런 제안을 할 만한 위치이던가? 그래 봤자 일개 단주에 불과하거늘.”

“흐음, 이거 또 말을 그렇게 삐딱하게 하면…….”

퍼어억!

오경화의 눈에 핏발이 섰다. 어느새 정일룡의 손이 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정일룡이 고개를 저었다.

“저승에 가서는 그 천방지축 같은 성격부터 고치게나.”

“커허어…….”

푸화아악!

손이 뽑히자 오경화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즉사한 것이다.

“헉!”

“다, 단주님?!”

정일룡이 뒤를 바라보았다.

“흠, 잔챙이들을 몇이나 데려왔을꼬.”

그가 율랑을 바라보았다.

“어떠신가? 이미 배불리 먹은 것 같긴 하네만, 저치들로 한 끼 더 해 보겠는가?”

놀랍게도 율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 * *

“모친 묘? 개소리.”

“커헉!”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진짜로 죽인다, 너.”

“쿨럭! 저, 저도 그렇게만 들었…… 제발…….”

물끄러미 문호를 보던 서량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풀썩.

문후를 마지막으로 오십 명의 대원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움찔!

피에 젖은 몸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서량이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덜덜 떨리는 손에는 마동필이 구해다 준 다섯 자 길이의 거도가 들려 있었다.

그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려 했다. 코에 끼쳐 들어오는 후끈한 피 냄새에 저도 모르게 쓰러진 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어진 것이다.

파지지지직!

운용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타오르는 암영마기.

‘흥, 이럴 줄 알았지.’

암영진마공이 진정되질 않았다. 닫힌 지저옥관귀문식이 제멋대로 개방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서량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시파, 이렇게 된 거 그놈까지만 족치고 가자.”

못해도 다리 하나 값은 받아 낼 것이다. 다른 몸으로 전생했는데도 그놈을 떠올리니 잘려 나간 오른 다리가 쑤셔 오는 것 같았다.

“딱 기다려라, 이 개자식아!”

우우웅.

두 발에 마기가 몰려든다 싶은 순간.

콰앙!

서량의 몸이 폭음을 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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