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마귀가 나온 줄 모르고 문을 닫았다 (3)
까아앙!
“제기랄!”
마동필의 입에서 흔치 않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연신 뒤로 물러나던 그가 일순간 몸을 돌리며 다리를 휘둘렀다.
퍼억!
발길질 한 방에 그 큰 늑대가 이 장이나 날아갔다. 범부가 보면 놀라움에 벌린 입을 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으르르.
몇 번 고개를 홰홰 저은 늑대가 다시 콧잔등을 일그러트렸다.
콰득!
발톱을 오므리니 땅에 쩌저적 금이 갔다. 핏빛 털이 점차 부풀어 오르니 덩치가 이전보다 한 배 반은 더 커진 것 같았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충격이 없다고?’
창졸지간 후려친 각법이지만 상당한 내력을 실은 공격이었다. 그 발길질에 당하고도 고작 몇 번 비틀거린 게 전부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까아아앙!
“으아악!”
호법 한 명이 거대한 늑대의 입에 물려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이빨에 상체를 꿰뚫린 호법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렸다.
주르륵 쏟아지는 피.
우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심장이 뚫리고 목뼈가 부러져서 죽은 것이다.
시체를 뱉은 늑대가 포효했다.
커어엉!
도저히 늑대의 울음소리라고 할 수 없다. 개가 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호랑이의 포효처럼 일대를 울렸다.
심지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파아아악!
재빨리 뛰어간 마동필이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그의 검이 늑대의 뒷다리 허벅지를 길게 베었다.
하지만 치명상이라고 볼 수 없다. 피는 제법 났지만 피육만 베인 것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늑대들의 움직임이 빨라서 이쪽에서도 속전(速戰)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검기를 형성할 찰나간의 시간도 아까워 내력과 순수한 검술로만 싸워야 했다.
그래도 이건 과하다. 바위조차 베는 그의 검에 베이고도 하체가 몽땅 잘려나가기는커녕 고작 피육에 상처를 입은 게 다였다.
파아악!
늑대의 반응도 눈부셨다. 위협을 하거나 노려보지도 않고 베인 순간 바로 대가리를 들이밀어 마동필을 물어뜯으려 했다.
‘빨라!’
거대한 늑대의 아가리 속 흉흉한 이빨이 보였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보검처럼 예리한 그 이빨에는 휘하 조원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마동필의 눈에 마기가 들끓었다.
콰앙!
품으로 파고들어 늑대를 허공으로 띄웠다.
쉽사리 선택하기 힘든 공략법이다. 고죽림에서 온갖 기괴한 귀물들과 싸워 본 마동필은 무리 중 가장 효과적으로 늑대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우우우웅!
마동필의 검에 선명한 마기가 몰려들었다. 속전이고 자시고 일단 놈들의 머릿수부터 줄여 놓을 생각이었다.
휘리리리릭!
휘몰아치는 돌풍과 함께 예리한 검기가 늑대를 향해 쏘아졌다. 늑대가 아무리 빨라도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퍼억!
늑대의 가슴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살초가 먹힌 것이다.
차갑고도 무거운 살기로 점철된 마동필의 눈빛.
‘미안하다.’
죽은 조원을 향한 당장의 애도는 짧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애도는 이 괴물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마동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일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마차를 중심으로 진을 친 수송대와 그들을 에워싼 호법원 삼 조가 늑대들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늑대들의 속도는 호법들의 신법보다 빨랐고 피부는 강철 같은 데다 흉포함은 광기에 물든 마인과 유사했다.
그러면서도 위험하다 싶으면 절묘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까지 사용했다.
‘늑대가 진을 형성해? 저런 전술을 익혔다고?’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다. 고죽림의 귀물들도 단체로 전술을 사용하진 않았다.
‘제길!’
하지만 마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한 늑대의 허점을 발견한 마동필이 자리를 박차려는 순간이었다.
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솔직하고도 악랄한 살기.
마동필이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특유의 묵직하고 압력이 강한 그만의 검격이었다.
퍼억!
그의 검이 늑대의 앞다리를 베고 지나갔다. 마치 도끼로 나무를 찍은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언제 여기…… 헉!”
마동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후방을 점해 공격해 온 늑대는 조금 전, 그의 검기에 맞아 쓰러진 늑대였다.
가슴에선 피가 쏟아지고 혓바닥도 축 늘어져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벌했다.
‘안 죽었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분명 심장과 폐가 겹친 곳에 적중했는데?
「학! 학! 커헝!」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늑대가 다시 달려들었다. 진을 형성한 다른 늑대들과 달리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부상이 심해 보조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웅!
마동필이 마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푸욱!
늑대의 아가리를 피한 그가 목 뒤로 올라타 눈을 찔렀다.
풀썩!
부르르 떨던 늑대가 이내 쓰러졌다. 장검이 눈을 관통해 뇌까지 가른 것이다.
“후욱! 후욱!”
마동필의 호흡이 제법 거칠어졌다.
고작 늑대 한 마리를 없애는 데 절정고수라는 자신이 이렇게 지쳤다. 놀고 있을 틈이 없었다.
파아아악!
순식간에 전장의 한가운데로 돌진한 마동필의 귀에 강렬한 폭음이 들렸다.
「캐앵!」
삼 장이나 훨훨 날아 쓰러진 늑대의 몸은 허연 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당장의 전투는 불가능해 보였다.
‘주 총관!’
“헉헉!”
한차례 거친 호흡을 토해 낸 주화가 낭랑하게 외쳤다.
“수송대는 더 안쪽으로 붙어서 대기하세요!”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호위들에겐 상당히 매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마동필은 그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같은 마인이라도 합을 맞춰 보지 않은 사이라면 차라리 뒤로 빠져 주는 게 나으니까.
콰드득!
삼 조의 조원 두 명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주화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파아악!
순식간에 진의 공백을 채운 그녀가 쌍장을 휘둘렀다.
쩌엉!
빈틈을 향해 치고 들어가려던 늑대 두 마리가 얼굴에 살얼음이 낀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후웅!
그때, 하늘 높이 날아오른 마동필이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촤아아아악!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참격에 두 늑대의 목뼈가 갈라졌다.
목을 날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절반 정도 자르는 데 그쳤다. 죽기는 했지만 놀라운 건 매한가지였다.
“후욱!”
한순간 쏟아 낸 공력이 과했다. 마동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짧게 숨을 몰아쉰 그가 외쳤다.
“회천축진(廻天蓄陣)!”
파라라라락!
사십밖에 남지 않은 호법들이 이 열을 만들더니 각자 좌우로 회전했다. 크고 작은 바퀴들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모양새였다.
주화의 눈이 흔들렸다.
‘위험해.’
언뜻 보기에도 대단한 진법이라는 걸 알겠다. 저 진법을 마동필이 지금에야 발동한 이유는 명백했다.
끊임없이 빠르게 회전하며 적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아군의 빈틈을 막자면 필경 체력 소모가 극심할 터.
마동필도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합!”
퍼어엉!
전방의 늑대들이 뒤로 확 물러났다. 상천수의 경력을 비단처럼 퍼트려 대지에 격중시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빨리 후방으로 이동한 주화가 다시 한번 상천수를 뿌려 댔다.
퍼퍼펑!
사방을 돌아다니며 대지의 온도를 급강하시킨 주화.
시리도록 차가운 온도에 강력한 위력이다. 혈랑대 전부가 뒤로 물러나 으르렁거리기 바빴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율랑의 눈이 깊어졌다.
“제법이군.”
정일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처 능력이 상당하군. 전투 경험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의 눈은 주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노쇠했지만 맑은, 그러면서도 은은한 열망이 새어 나오는 눈빛은 탐욕으로 그득했다.
“혈랑대는 괜찮겠나? 시간 끌기밖에 안 되겠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할 텐데.”
“물론 괜찮소.”
우웅.
율랑의 눈이 파랗게 물들었다.
동시에 전방의 늑대들이 일제히 앞으로 뛰어들었다. 본능적으로 물러나야 하는 걸 알면서도 율랑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다.
주화와 마동필이 재빨리 늑대들에게 검장(劍掌)을 휘둘렀다.
끼이익! 터어엉!
뛰어들던 늑대들이 그대로 몸을 뒤집곤 뒤로 물러났다.
폭발적으로 뛰어들었는데 물러나는 속도가 굉장하다. 발이 꼬여 쓰러진 대여섯 마리를 제외하곤 모두 안정적으로 후퇴했다.
동시에.
파아아악!
주화의 눈이 흔들렸다.
‘아뿔싸.’
기다렸다는 듯 후방의 늑대들이 허공을 날아 덮쳐 왔다.
딱히 방심한 것도 아니건만 간단한 전술에 당했다. 전방의 늑대들이 흘린 살기가 워낙 살벌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의 귀로 무뚝뚝하고도 빠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혼(斷魂).”
지이이이잉!!
검날을 타고 흐르는 막강한 힘의 파동.
주화보다 한 박자 먼저 후방 늑대들의 습격을 알아챈 마동필이 다급하게 비기(秘技)를 꺼내 든 것이다.
“귀천(歸天)!”
번쩍!
거대한 검기가 초승달을 그리며 늑대들에게 쏘아졌다.
푸화아악! 쾅!
늑대 네 마리가 그대로 양단되었다.
세 마리는 복부에 깊은 자상을 입었고 검기의 여파에 휩쓸린 두 마리는 좌우로 튕겨 날아갔다.
‘……!’
주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단하다.’
단 일격에 저 마물 넷을 가르고 셋에겐 치명상을 입혔다. 내전 생활을 하면서도 본 적이 드문 엄청난 검기공(劍氣功)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동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커헉!”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한 그의 안색은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격렬한 전투로 이미 내공 소모가 상당했다. 체력을 아껴도 모자랄 판에 내상을 감수하고 비기까지 뽑아 날린 것이다.
위이이잉.
마기가 거칠어지고 기도가 불안정해지며, 검객 특유의 예기가 대번에 뭉근해졌다.
“삼 조장!”
“나, 날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퍼어엉!
기회를 보고 뛰어든 늑대 하나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전력을 다한 상천수에 직격을 당한 것이다.
마동필이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늑대들을 죽일 비기가 있었음에도 그간 왜 가만히 있었는가?
바로 지금과 같은 사태가 무서워서였다. 만약 방금 주화가 막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도 늑대 밥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다. 마동필이 피를 튀기며 외쳤다.
“축진개공(蓄陣開攻)! 다 뛰어들어!”
위이이이잉! 철컥!
제자리를 회전하던 이 열의 호위들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수비 일변도에서 공격 일변도로 진법을 전환한다. 이젠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바꾼 것이다.
주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임무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법원의 조장이 진형을 포기하고 난전(亂戰)을 선언했다. 상황이 최악이란 뜻이었다.
“수송대도 싸워요! 단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합니다!”
연이가 외쳤다.
“전원 산개하라! 최대한 빨리 지부로 달려!”
우아아아아!
똘똘 뭉쳐 진형을 유지했던 마인들이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늑대들의 시야를 어지럽힘과 동시에 도주를 감행하는 것이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정일룡이 혀를 찼다.
“저치들이 재미없는 선택을 하는구먼.”
“…….”
“어떻게 하겠는가? 예상외로 놈들이 너무 날뛰는데. 게다가 혈랑들의 피해도 제법이고.”
“…….”
“마르고 시들었을지언정 저들은 마교도들일세. 마교를 정도 이상으로 자극하면 나름의 우환이…….”
파아아앙!
순간 율랑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어떻게든 체력을 끌어 올려 검을 휘두르려던 마동필은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살기에 검을 세웠다.
콰앙!
훨훨 날아간 마동필이 거목에 부딪혀 쓰러졌다.
“삼 조장! 헉?!”
퍼억!
주화가 피를 토했다. 복부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했군. 반응이 좋아.”
쫘아악!
뺨을 맞은 주화의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마혈까지 점한 율랑이 사방을 둘러보며 외쳤다.
“너희 상관이 산 채로 뜯어 먹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도주는 꿈도 꾸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