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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74화 (74/774)

74화. 마귀가 나온 줄 모르고 문을 닫았다 (4)

“저 광경을 보아라.”

부르르.

곽사가 몸을 떨었다.

정일룡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참으로 얄궂지 않으냐? 사람 같지도 않은 짐승들이 진짜 짐승들에게 굴복하는 광경 말이다.”

“으으.”

“이 강호는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다.

불의를 참지 못해 검을 뽑아 일가족을 살린 협객, 뒤끝 없는 비무의 우정으로 말미암아 돛단배 위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낭만……

강호로 뛰어드는 모든 무사가 그러한 환상을 품고 있지.”

“…….”

“하지만 강호 역시 세상의 일면일 뿐이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 마교도들이 외쳐 대는 약육강식의 원칙대로 돌아가지.

결국 먹고 먹히는 짐승들의 규칙 아니던가.”

신선을 방불케 하는 정일룡의 미소는 그 고상한 외관만큼이나 깊고 깊은 어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사람도 결국엔 짐승이다. 물어 죽이든 속여 죽이든, 죽이고 또 죽여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뿐이야.”

정일룡이 곽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곽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보는 정일룡의 맑은 눈빛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짐승의 세상에 도덕과 규범은 무가치. 그저 한없이 높은 곳을 향해 아득바득 기어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난 이유 아니겠는고?”

정일룡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율랑에게 머리채를 잡힌 주화가 보였다.

“그리고 높은 곳에 앉은 자는, 낮은 곳에 거한 자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할 수 있지.”

씨익.

그동안 보여 주던 고상한 미소가 한없이 비틀어졌다. 멋들어진 외관에서 어찌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오늘은 참 여러모로 유쾌한 날이로군.”

새하얀 웃음 뒤, 세상이 악(惡)이라 외쳐 대는 마인보다 지독한 마귀의 욕망이 들끓는다.

궁극의 권좌를 원했지만 결국 더 강한 힘 앞에 뒤로 물러나 버린 패배자는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더 높이, 더 강하게, 더 우월하게.

아래를 보지 않고 오로지 하늘만을 바라보는 그의 등 뒤 저편에서, 폭발적인 살기를 둘러친 붉은 번갯불이 번뜩이고 있었다.

* * *

연이가 외쳤다.

“모두 멈춰라! 대기!”

크르릉.

마인들도, 늑대들도 공격을 멈추었다.

마인들은 그럴 수 있지만 늑대들의 공세가 멈춘 것은 의외였다. 율랑이 혈랑대를 멈춰 세운 것이다.

율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갔다.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여덟 마리나 당했다……. 확실히 부족하긴 하군.”

끼이잉.

늑대들이 저마다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율랑이 주화를 내려다보았다.

한쪽 뺨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곤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다만 흔들리는 눈빛에 드리워진 경악과 분노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율랑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퍼억!

“커헉!”

주화의 허리가 그대로 꺾였다. 무릎으로 다시 한번 복부를 가격당한 것이다.

“패자에게 어울리는 표정은 아니로군.”

연이가 이를 갈았다.

“이놈! 당장 그분을 놔드리지 못하겠느냐!”

율랑이 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연이는 다리에 힘이 쭉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무슨 놈의 눈빛이…….’

사람의 눈빛이 아니다. 그렇다고 짐승의 눈빛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전의 고위 인사분들에게서나 느꼈던 마안의 공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미지의 두려움을 선사하는 그 눈빛과 비슷했다.

우우웅.

연이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위협적인 맹수를 마주한 또 다른 짐승이 털을 곤두세우는 것 같았다.

율랑이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팔을 든 그가 연이를 가리켰다.

“죽어라.”

“뭐?”

그때, 정신을 차린 마동필이 외쳤다.

“피하……!”

콰드드득!

순식간에 뛰어든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연이의 목과 상체를 통째로 물어뜯었다.

콰득! 콰드득!

뼈째로 으스러트리는 무자비한 아가리. 연이의 눈에 그대로 빛이 사라졌다.

율랑이 냉정하게 말했다.

“네가 죽였으니 네 것이다. 깔끔하게 해치우도록.”

으드득!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람 하나를 통째로 씹어 삼킨다.

마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주화의 신분이 제일 높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대장은 연이였다.

그런 대장이 송아지만 한 늑대에게 뜯어 먹히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이럴 수가.’

연이는 고수였다. 비록 자신이나 주화보다 아래였지만 충분히 절정고수라 불릴 만한 마인이었다.

피하려면 분명 피할 수 있었다. 한데 왜 늑대가 덮치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때, 율랑이 마동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활약이 대단하더군. 네놈 손에 혈랑이 몇 마리나 죽었는지 모르겠어.”

“……!”

“늑대야 다시 키우면 된다지만, 그간 들인 공을 무시할 만큼 내 성격이 좋지를 못해서.”

움찔!

마동필은 전신 근육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율랑의 섬뜩한 눈과 마주치자마자 신경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심장 박동이 거세지고 손발이 차게 식었다.

‘저 눈!’

율랑은 대단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의 기파에 몸이 반응하는 게 아니었다. 눈빛, 저 괴이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 마주하는 상대의 육신을 보이지 않는 사슬로 동여매고 있는 것이다.

율랑이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마동필을 향해 뻗은 굵고 긴 손가락.

“너 역시 죽어라.”

쾅!

마동필이 질주했다.

다른 어디도 아닌 율랑을 향해서였다. 공격이 들어오기도 전에 이 무리의 대장을 죽이겠다는 의도였다.

율랑의 얼굴에 미약한 감탄이 일었다.

“훌륭해.”

쾅!

“컥!”

마동필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율랑에게 당한 게 아니었다. 어느새 다가온 혈랑대주의 꼬리에 맞아 튕겨 나간 것이다.

혈랑의 신체는 강철의 강도를 자랑한다. 그중 최고로 강하다는 혈랑대주의 꼬리로 맞았으니 쇳덩이로 후려쳐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울컥!

코와 입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심상치 않은 내상을 증명했다.

‘위험해.’

내출혈이 심하다. 얼마 남지 않은 진기는 마구 날뛰었고, 엉킨 근육과 부러진 갈비뼈에서 지독한 통증이 올라왔다.

전투 불능이다.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공격도 못 해 보고 죽을 것이 뻔했다.

“사, 삼 조장.”

주화의 입에서 신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율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먹잇감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양껏 배를…….”

“도망쳐!”

다시 한번 피를 토하며 주화가 외쳤다.

“다들 도망쳐요! 어서 이 사태를 지부에…….”

퍼어억!

주화의 말이 뚝 끊겼다. 연달아서 세 번씩이나 복부를 맞은 그녀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적당히 한다고 해도 율랑은 외공만으로 일류고수를 죽일 만큼 위험한 신체를 보유한 남자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것이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마동필이 쉰 목소리로 외쳤다.

“어, 어서 도주를……!”

삼 조의 조원들이 이를 악물었다.

조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마동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즉각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마동필이 눈에 밟혀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주할 수가 없었다.

스르르륵.

사방에서 에워싸는 혈랑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혈랑들 사이사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맹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 야산에 퍼져 있던 수십의 늑대 무리는 물론이요, 범 두 마리와 들개들까지 몰려왔다.

나타난 짐승들은 으르렁대지도 않았다. 하나같이 붉은 눈빛을 한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최면이라도 걸린 듯 멍하니 일행을 노려볼 뿐이었다.

짐승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짐승 같지 않은 모습. 새로이 나타난 저 짐승들이 오히려 혈랑대보다 더 섬뜩했다.

“이익!”

마인 하나가 이를 악물고 뛰었다. 혈랑과 혈랑 사이, 평범한 늑대들을 향해서였다.

“비켜라, 이것들아!”

퍼어억!

늑대 두 마리가 마인의 칼에 맞아 짓이겨졌다.

하지만.

덥썩!

막무가내로 덮쳐드는 늑대들이 마인의 팔다리를 물었다.

“으아아!”

몸을 회전하며 모조리 튕겨 내려는데, 놀랍게도 늑대들은 끝까지 마인을 물고 있었다. 평범한 늑대의 힘이 아니었다.

후욱.

어느새 마인의 뒤에 나타난 혈랑이 그의 머리통을 깨물었다.

콰득!

허무한 죽음이었다.

율랑이 미소를 지었다.

“산 채로 뜯겨 먹히는 것보다 차라리 그리 죽는 게 낫기야 하겠지.”

저항조차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황에서 좌중의 공포는 극한까지 치달았다.

풀썩.

율랑이 손을 놓자 주화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율랑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박꽃 같은 속살이 짐승의 본능을 자극했다.

“시간이 있었다면 날이 새도록 범한 후 죽였을 것이다.”

부르르.

주화가 독한 눈으로 율랑을 올려다보았다.

율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식사 시간이다!”

캬아앙! 커엉! 커엉!

세차게 포효한 짐승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마동필과 주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 * *

정일룡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이건 또 의외로군.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굴욕을 안겨 줄 줄 알았거늘.”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어차피 죽일 놈들이라지만 유희 정도는 즐길 줄 알았다.

주화를 보던 정일룡이 입맛을 다셨다.

“허기야, 냄새나는 마도의 계집년 따위를 품고 싶진 않았겠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끝난 것 같으니 움직일 채비를…… 음?”

정일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

손등의 털이 삐죽 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목덜미에 온통 소름이 돋았다. 반면 얼굴에는 피가 몰려서 후끈 열이 올랐다.

심상치 않은 전조. 이성으로 알아채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 기분은…….’

스륵!

화들짝 놀란 정일룡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지지지직!

저 멀리서부터 풍겨 나오는 위압적인 기파. 연신 번쩍거리는 광채는 살기와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차아앙!

정일룡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았다. 상대를 모르고 실력도 모르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살기의 방향이……?’

정일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다?!’

파아아악!

직선으로 쏘아져 들어오던 붉은 번갯불이 갑작스레 방향을 전환했다.

하늘 높은 곳으로 튀어 오른 번갯불.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 같았는데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면서도 살기는 끝까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정일룡의 시선이 번갯불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

사방에서 달려드는 핏빛 늑대들보다 훨씬 붉고 사나운 ‘무언가’가 땅으로 내려섰다.

콰아앙!

율랑은 물론 마동필, 주화 등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부서진 땅에서 자욱한 먼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먼지 너머에서 언뜻 붉은 광채가 명멸을 반복했다.

으르르르.

달려들던 늑대들이 제자리에 멈춰서 고개를 낮추었다. 이를 드러낸 늑대들의 눈에 경계심이 어렸다.

서서히 가라앉는 먼지.

그리고 그곳에 거대한 칼을 메고 있는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 서량이 혈랑보다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한 놈을 박살 내러 왔더니 치워야 할 쓰레기가 한 무더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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