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79화 (79/774)

79화. 허무하다 (4)

“찾았습니다!”

수송대의 마인들이 커다란 상자들을 들고 왔다.

“도합 일곱 상자, 확인되었습니다!”

“내용물도 모두 무사합니다!”

스르륵.

주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운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물건을 찾았다고 하니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했다.

마동필의 부축을 받은 그녀가 일일이 물건들을 확인했다.

“다행이에요. 다 맞아요.”

주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하달된 명령은 완수한 셈이었다.

“물품들을 마차에 실으세요.”

수송대 마인들이 상자를 실었다. 몇 개 되지 않아서 마차 두 대에 전부 실을 수 있었다.

“주 총관, 조금 더 운기를 하시오.”

“네,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주화가 언덕 위를 힐끔거렸다.

“가 보세요.”

“……?”

“수색도 끝났으니 제 호법은 수송대 마인들에게 부탁하면 돼요. 삼 조장께선 공자님을 도우셔야 하잖아요.”

“……아마 내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으실 거요.”

“그래도 가세요.”

“…….”

“당신은 호법원의 조장이잖아요? 수송대의 호위를 맡았지만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에요. 그러니 본분에 맞는 일을 찾아가세요.”

가만히 주화를 보던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조심하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파아악!

마동필이 언덕 위로 내달렸다. 절벽에 가까운 수직이라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라지는 마동필의 뒷모습을 보던 주화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답답함이 묻어나는 한숨이었다.

‘실격이로구나.’

공자님을 위해 당신이라도 가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곳에 있는 모든 마인들을 보내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삼공자는 이곳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녀는 그것을 이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무사하실 거야.’

만약 삼공자님의 실력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설명이고 뭐고 일단 공자님의 생존이 우선이니까.

이래서 직급이 있는 사람들은 힘들다. 원하지 않아도 아랫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주화가 입을 열었다.

“마인들은 전원 집결하세요. 설명할 게 있습니다.”

* * *

까아아앙!

도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전과는 달리 무척 둔탁했다.

“크윽!”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정일룡.

“우웨엑!”

서량이 피를 토했다. 정작 공격을 감행한 그의 몸에도 충격이 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멈출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이 싸움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싸움이니까.

파악!

재차 달려나가는 서량.

구천축지신보를 펼치고는 있지만 특유의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내공의 대부분을 소모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랜만에 겪은 실전과 수십 년 만에 얻은 지독한 내상에 정일룡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부웅!

삼십 근 거도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머리털이 삐쭉 설 만큼 위협적이었다.

정일룡이 고개를 바짝 숙였다.

사라라락!

뭉텅이로 베여 날아간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아앙!

하단에서부터 올라가는 백학검.

내공을 제대로 싣지 못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백학검 자체가 흔치 않은 보검이었고, 백상검법 역시 정파십대검법 중 하나였으며 거기에 정일룡의 깨달음까지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공격은 서량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쾅!

“크윽!”

정일룡이 재차 비틀거렸다.

아무리 기기묘묘한 초식으로 공격해도 일도(一刀)를 막지 못한다.

상승의 무리인 둔도제검(鈍刀制劍), 일압다변(一壓多變)의 전형이었다.

느리고 둔한 칼이 빠르고 경쾌한 검을 제압하고, 단순한 움직임으로 다양한 변화를 억누른다는 무리를 서량은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어떻게…….’

퍼억!

정일룡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틈을 놓치지 않은 서량의 팔꿈치에 당한 것이다.

‘이 애송이 놈이 어떻게!’

둔도제검은 상승의 무리지만 그것을 깨우쳤다고 아무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었다.

정일룡은 초절정고수였다. 끝없이 펼쳐진 대륙에서도 결코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고수인 것이다.

실전을 겪은 지 오래고, 그만큼 당황도 했다지만 이제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후기지수 따위에게 당할 실력은 아니다. 하물며 둔도제검이라니?

환검(幻劍)의 최고봉인 백상검법은 속도가 빠르지만 힘과 예리함에선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일룡 정도의 실력자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넘치는 내력이 힘을 보태 줄 것이요, 깨달음이 예리함을 되살려 줄 것이다. 하물며 그에겐 백학검이란 보검까지 있었다.

그런 그의 무공을 오로지 삼십 근 중도 한 자루로 파훼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마 이 어린놈의 깨달음이 나를 상회한다고?!’

쩌어엉!

정일룡의 팔이 뒤로 획 넘어갔다.

이번에는 위험했다. 부딪침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어깨가 탈골될 뻔했다. 이미 호구(護具)가 찢어져서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다.

화아악!

서량이 다시 달려들었다.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린 얼굴. 코와 입 주변은 피범벅이 되었다. 식은땀으로 젖은 몸을 보자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놈의 두 눈만큼은 여전히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살기와 분노, 광기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로 들끓는 안광은 마주하기도 벅찼다.

정일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

퍼어억!

서량이 주춤했다. 정일룡의 주먹에 어깨를 맞은 것이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내가 바로 의천맹의……!”

빠각!

“크아아악!”

정일룡의 좌측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똑같은 주먹질이었는데도 그의 어깨는 부러져 버렸다.

근골의 차이가 아니었다. 서량은 정일룡을 죽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되,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정일룡은 그러지 못했다. 당황과 놀라움은 분노를 부추겼고, 그 분노가 전신을 보호해야 할 백학기의 기질을 하락시켰다.

신공과 마공의 차이였고, 실전의 익숙함 차이였으며 결정적으로 투쟁심의 차이였다.

서량이 재차 칼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정일룡이 연신 뒤로 물러났다. 찢어진 호구를 타고 피가 철철 나고 두 다리에는 점점 힘이 빠져나갔으며 상체 곳곳에 찢어진 상처가 났다.

손이, 관절이, 피부가 이 압도적인 도압(刀壓)을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백상검법의 투로도 흔들렸고, 그럴수록 그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량이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압!!”

콰앙!

폭음과 함께 백학검이 뒤로 날아가 거목에 깔끔하게 박혔다.

백학검을 날려 버린 서량은 곧바로 거도를 놓았다. 근육이 한계에 이르른 탓에 더 이상 칼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정일룡이 이를 악물며 오른발을 차올렸다.

하지만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시야를 차단하는 그림자를 보았다.

빠각!

“커헉!”

정일룡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넘어진 그의 얼굴은 실로 참혹했다. 코뼈가 으깨진 건 물론이요, 안구와 한쪽 광대뼈가 푹 내려앉아 버렸다.

뿐인가? 그의 옆으로 부러진 앞니 네 개가 땅을 뒹굴고 있었다.

“미…… 미친!”

발음도 제대로 안 된다. 아니, 말을 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경악성을 내지른 이유는 상대의 공격이 너무 야만적이어서였다.

‘박치기를!’

철두공(鐵頭功)이라고 해서 이마를 단련하여 두부(頭部)로 상대를 공격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삼류 파락호들 정도다. 진짜 고수는 인체의 온갖 급소가 집중된 머리를 써서 공격할 시도 자체를 안 한다.

서량은 헐떡거리면서도 용케 씨익 웃고 있었다. 정일룡의 피로 젖은 그의 얼굴은 마귀처럼 흉악해 보였다.

“허억! 허억! 새끼, 꼴좋다.”

피 섞인 침을 탁 뱉은 서량이 정일룡의 무릎을 냅다 찍어 버렸다.

콰득!

“끄아아악!”

무릎이 박살 난 정일룡이 비명을 질렀다.

단순히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라 관절을 으스러트려 연골까지 찢었다. 무공을 회복해도 평생 한쪽 다리는 못 쓰게 될 것이다.

“헉헉! 개새끼! 헉헉!”

다른 다리도 부러트리려던 서량의 몸이 일순 기우뚱했다.

“어? 어?”

털썩!

“끄으응!”

서량이 이를 악물었다. 정일룡을 죽이기 위해 미쳐 날뛰는 와중에 몸이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암영마기의 회복력이 없었다면 지금쯤 전신 근육이 파열되었을 것이다.

“커헉! 헉헉! 너, 너 이 새끼 조금만 기다려! 헉헉! 생으로 사지를 잘라 줄 거야!!”

악을 질러 대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살심이 장난이 아니다.

정일룡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앞도 제대로 안 보이고 다리 하나도 망가졌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저 미친놈이 일어나면 자신은 정말로 죽은 목숨인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애초에 이리 싸워선 안 될 놈이었다. 그는 냅다 엎드렸다.

“크르륵.”

입에서 절로 피거품이 일었다. 의천맹으로 입맹한 이후, 아니 무공에 입문한 이후 단 한 번도 이만큼 다쳐 본 적이 없었다.

고통에 몸이 마비되고, 공포에 머리가 굳어 버렸다. 그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허둥거렸다.

서량이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가 어딜 튀려고…… 끄으윽!”

지독한 고통이었다. 몸 전체가 불에 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통 따위에게 질쏘냐.

눈앞에 원수 중 하나가 버둥거리며 땅을 기고 있다.

얼른 일어나서 담가 버리란 말이다!

‘젠장!’

안 된다.

고통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이상 움직이다간 얼마 남지 않은 마기가 역류해서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고 자신만 입마에 걸려서 골골댄다면 억울해서 어찌 살까. 서량은 이를 아득바득 갈며 정일룡을 노려보았다.

그때, 정일룡이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한쪽 눈이 망가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상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서량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자신을 보는 정일룡의 외눈에 분노와 공포가 한가득이었다. 그 눈을 보자 하얗게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던 놈의 과거가 떠올랐다.

“……죽인다!”

끼이이익!

억지로 닫혔던 암영진마공이 재차 개방되었다.

이번만큼은 의도한 게 아니었다. 한계를 돌파한 분노가 마공을 자극했고, 자극된 마공이 그 감정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읽어 낸 것이다.

이 감정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끔찍하게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공이 ‘이해’한 것이다.

콰득!

땅을 짚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서량의 몸을 세웠다.

치이이익! 투툭!

몸에서 희뿌연 연기가 일었다. 동시에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지저옥관귀문식이 멋대로 펼쳐졌지만 그 지옥문을 열어 둘 마기가 충분치 않았다.

자연 마공은 그 상태를 유지키 위해 생명력의 근원인 원정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일룡은 상대의 집요함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놈!’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본 적도 없는 자에게 무슨 원한이 그리 깊다고 원정까지 건드려 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단 말인가?

서량이 고개를 들어 정일룡을 노려보았다.

몸도, 내공도, 그 무엇도 성치 않은 놈의 살기가 이전보다 배는 더 증폭되어 있었다.

“으으.”

정일룡이 미친 듯이 땅을 기었다. 그래 봤자 거북이가 기어가는 속도였지만, 멈추면 죽는다는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파악! 콰득!

“크아아악!”

순식간에 다가와 부러진 다리를 또 밟아 버린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정일룡이 거품을 물었다.

주르륵.

연신 쏟아지는 코피.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서량의 표정은 개운함으로 가득했다.

오히려 정수리까지 솟은 분노가 쏟아지는 피를 타고 흘러 완화되는 듯했다.

그때, 마동필이 등장했다.

“공자님!”

서량이 씨익 웃었다. 마동필이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그러게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그가 냉정하게 다리를 들었다.

그의 발이 노리는 곳은 바로 정일룡의 목이었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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