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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80화 (80/774)

80화. 허무하다 (5)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소.”

마동필의 얼굴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주화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아보죠. 지금은 일단 쉬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동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유를 알아보려 해도 당장 알 만한 수단이 없었다.

“몸은 어떠시오?”

“괜찮아요.”

확실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팔다리의 움직임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우니까.

다만 얼굴의 붓기는 아직 빠지지 않았다. 아무리 마공이 대단해도 반나절도 안 되어서 나을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출발은 언제 하실 생각이시오?”

“공자님께서 깨어나시면요.”

그렇지.

마동필이 후미의 마차를 바라보았다. 공자님께선 지금 저곳에서 요상약을 복용 후 운공 중이셨다.

‘휴우.’

정말이지 이번 작전은 면목 없는 일 천지였다. 공자님께서 저리 엉망이 되실 줄 알았다면 주화의 호법을 포기하고 달려갔으련만.

‘하지만…….’

역시나 감탄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자신을 필두로 한 모든 마인들이 언덕 위, 격전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언덕 곳곳의 새겨진 흔적들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무공을 구사해야 나올 수 있는 흔적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내전의 전투 부대 대장들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무공이다.

아니, 내전 내의 모든 조직을 통틀어 저런 격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인이 얼마나 될는지도 의문이었다.

‘공자님께서는 설마하니…….’

마동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벌써 그 영역으로 올라가신 것인가.’

초절정.

말이야 쉽게들 하지만 초절정고수라 불리는 이들의 위상은 엄청나다.

재능 있는 무사가 최고급의 무공을, 하루도 빠짐없이 수십 년 동안 고련(苦練)해도 운이 없으면 오를 수 없는 경지가 초절정의 영역이었다.

애초에 절정(絶頂)을 초월(超)했다는 말 자체가 이 경지의 난이도를 증명한다. 절정이란 곧 끝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그 끝마저도 초월했다는 것 아닌가.

‘공자님의 연배를 생각하면 이건…….’

서량의 나이는 이제 스물다섯 안팎.

이십 대 중반에 그러한 경지에 올랐다? 상식으로 설명될 영역이 아니었다.

‘부럽구나.’

마동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따라가고 싶다.’

질투 따위는 나지 않았다. 질투할 대상도 아니거니와, 그런 걸 느낄 만큼 모난 성격도 아닌 그였다.

다만 한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따라가고 싶었다. 따라잡을 순 없더라도, 서량의 뒷모습이 보이는 곳까지라도 도달해 보고 싶었다.

“저는 그런 관계를 잘 모르지만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마동필이 주화를 바라보았다.

주화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 같군요.”

“그게 무슨 말이오?”

“공자님을 보시는 거 아니었나요?”

마동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

“……그런 건 아니오.”

“네.”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오해하지 않아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요.”

“…….”

“공자님과 친분이 깊은 것처럼 보이네요.”

“친분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소. 그저 나는 공자님을 위해 애썼고, 공자님께선 그런 나를 과분하게도 좋게 평가해 주셨을 뿐이오.”

주화가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되었든 두 분의 사이는 각별해 보여요.”

“당치도 않소. 그리 말하면 내가 공자님께 너무 죄송해지잖소. 나는 그저 한 자루 칼이자 방패일 뿐이오.”

한결같이 딱딱하고 굳건한 사람.

주화가 마동필의 시선을 따라 마차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죠?”

“무슨 말이오?”

“공자님이요.”

“사람을 몇 마디 말로 정의할 수는 없소. 하물며 저토록 대단한 분이라면 더더욱.”

가만히 마차를 바라보던 주화가 입을 열었다. 왠지 입마에서 깬 이후 유독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생각과 함께.

“공자님께선 제 몸을 고쳐 주셨어요.”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마동필이 내막을 아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알아도 입에 담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 몸은 주화입마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 몸을 보름도 되지 않아 정상으로 돌려 주셨죠.”

“그랬군.”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저는 제 무공을 칠 할이나 복구했어요.”

“……!”

“오해하지 말아요, 온전한 제 능력이 아니니까. 공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예요.”

“음…….”

“삼 조장도 보았지요? 공자님께서 그 괴물들을 처치하는 광경.”

“……물론이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섬뜩해졌다.

동시에 뜨거워지기도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구원자처럼 나타난 공자님이 무시무시한 무공으로 늑대들을 일거에 휩쓸어 버리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었으니까.

그 안도감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 불어온 희망이란 이름의 바람은 모두의 가슴에 짜릿한 불씨를 던져 주었다.

“그보다 대단한 무공은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신묘한 무공을 본 적은 없어요.”

마동필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인상을 받았든 공자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 자체가 결례가 될 수 있소.”

“알아요. 알지만…….”

“…….”

“부럽군요.”

“부럽다니, 무엇이 말이오?”

“아니에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마동필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말을 걸고 싶진 않았다.

잠시의 침묵.

그 침묵을 걷어 낸 것은 주화였다.

“언제쯤 깨어나실 것 같으세요?”

“공자님 말이오?”

“네.”

“글쎄, 원체 능력이 출중하신 분이니 오래는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오. 다만 전신의 근육이 파열 직전까지 갔으니 아마 한나절은 족히…….”

그때, 마차 안에서 다소 힘 빠진 음성이 들려왔다.

“한나절은 염병.”

덜컹!

마차 문이 열리고 서량이 내렸다. 그 뒤를 금호가 쫄래쫄래 따르고 있었다.

“공자님!”

놀란 두 사람이 서량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서량의 안색은 아직도 창백했다. 내력을 수습하지 못해 불안정해진 마기가 조금씩 일렁거리는 데다가 힘이 없어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마동필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새꺄, 네 눈깔에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죄, 죄송합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죄송할 것도 많다. 너는 어디 다친 데 없고?”

“저는…… 괜찮습니다.”

“잉? 뭐야, 괜찮다면서 낯짝이 왜 그 모양이야? 실연이라도 당했냐?”

당황한 마동필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낄낄, 여전히 놀리는 맛이 있군.”

“공자님, 다시 안으로 드셔서 운공을 하심이 어떠십니까? 아직 거동이 불편해 보이십니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쓰읍!”

“……죄송합니다.”

“움직일 만하니까 나온 거야. 일도 다 끝났는데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이거, 겨드랑이에 팔도 좀 치워라. 갑갑해 죽겠다.”

마동필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서량의 고집이 얼마나 쇠심줄 같은지 알기 때문이었다.

부축한 팔을 놓자 서량이 잠시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바로 세웠다. 힘들기는 해도 움직이는 데에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여어, 주 총관.”

극심한 내외상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던 인간치고는 너무 빠른 회복이었다. 놀라서 멍하니 서량을 보던 주화가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죽여 주십시오, 공자님.”

“이 양반은 또 뭐래.”

“저희가 불민하여 공자님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서량이 질렸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도대체 무슨 폐를 끼쳤다고 죽여 달란 거요?”

“……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고 이만 일어나시오. 참 나, 사람 속 시끄럽게 하는 건 마인들 특징인가?”

정작 지도 마인이면서, 라는 간 큰 발언을 두 사람이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서량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놈 시체, 어디다 버렸어?”

마음 같아선 사지를 자르고 온갖 고문을 쏟아부은 후 골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대번에 목을 부러트렸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분풀이 때문에 또다시 주화입마에 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동필이 침착하게 말했다.

“붉은 늑대 사체들 인근에 함께 버려두었습니다. 혹시 몰라 의복을 포함해 소지품들은 모조리 수거했습니다.”

“그래?”

“예.”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라지게 맑은 하늘 저편에서 붉은 석양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잘했다.”

마동필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언뜻 보았을 때는 속이 시원해 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왠지 모를 씁쓸함도 묻어 나온다. 심사가 복잡하신 모양이었다.

“동필아.”

“예, 공자님.”

“넌 어지간하면 누군가에게 원한 품고 살지 말아라.”

“예?”

“화내지 말란 말도 안 하고, 싫어하지 말란 말도 안 한다. 다만 그런 감정들은 빨리 풀고 잊어버려.”

서량이 고소를 머금었다.

“나처럼 꽁하게 품고 살다가는 인생 피곤해진다.”

“…….”

“뭐, 그냥 흘려들어도 돼. 너도 워낙 주관이 뚜렷한 놈이니까.”

“아닙니다, 공자님. 공자님의 말씀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지랄.”

서량이 애써 지어 낸 밝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건은 다 찾았냐?”

“예. 그리고 저…… 음,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도 포박해 두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안 봐. 내 볼일은 다 끝났어.”

“알겠습니다. 하면 지금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지부에 들러서 쉬고 가시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좋지. 가서 맛난 음식 먹고 푹신한 침대서 좀 쉬자고.”

서량이 쾌활하게 외쳤다.

“자, 다시 돌아가…….”

순간 그의 표정이 멍해졌다.

마동필은 서량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한 채 크게 외쳤다.

“주 총관! 이만 출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삼 조 전원 이동 준비하라! 지부로 이동할 것이다!”

“존명!”

우렁찬 대답에 깜짝 놀란 서량이 헐레벌떡 마동필을 붙잡았다.

“동필아! 동필아!”

“예? 하명하실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내가…….”

서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동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공자님!”

“가만히 생각을 해 봤는데, 내가 볼 일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거…….”

순간 서량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동시에 코에서 피가 쭉 흘렀다.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뭐야, 시벌?!’

마동필이 서둘러 서량을 부축했다.

“안 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겠습니다.”

“쿨럭! 아니야! 그게…….”

“지부에는 실력 좋은 의원들이 상시 대기 중입니다. 차라리 의원에게 진찰을 받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새……!”

“주 총관! 어서, 어서 준비하시오! 공자님의 상세가 악화되었소!”

주화가 재빨리 대답했다.

“수송대 전원, 마차로 오르세요! 쉬지 않고 달릴 겁니다!”

서량의 얼굴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머리가 핑 돌고 사지에 힘이 다 빠졌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안가로 가야 해! 안가 한 번 들르자! 안가! 제발 안가!’

마동필이 서량을 마차 안에 눕혔다.

서량의 시야가 점차 어두워졌다.

‘나 안 가!!’

덜컥!

마차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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