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바람이 불어오다 (1)
“……해서 환희원 측 사망자는 임시 대장을 포함해 다섯, 호법 삼 조의 사망자는 스물둘. 총 사망자 스물일곱입니다.”
보고를 올리는 무담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나른한 얼굴로 창가를 바라보던 이천상이 툭 던지듯 물었다.
“어디라고?”
“격전지의 흔적과 마인들의 증언 및 보고를 토대로 유추해 본 결과 남만야수궁으로 추정됩니다.”
말은 추정이라 했지만 이천상은 야수궁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무담은 화가 나면 오히려 확실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감정에 휩쓸려 냉정을 잃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야수궁이 맞을 것이다. 덧붙여 무담은 현재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
“야수궁이라…….”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신경도 쓰지 않던 옆 동네 개새끼한테 물렸군.”
“…….”
“물건들은?”
“전부 되찾고 귀환했다 합니다.”
“됐네. 또 다른 보고 사항은 없나?”
“예.”
“알았네. 이만 돌아가게.”
천천히 절을 올린 무담이 공손한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무담이 나간 대전, 홀로 태사의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던 이천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셋째, 너냐?”
현재 신교는 별다른 강호 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천마신교라는 네 글자가 주는 공포는 여전히 강호를 휩쓸고 있었다.
그런 신교를 야수궁이 건드렸다. 아예 증거도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릴 힘이 없었다면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 조나 이 조도 아니고 호법원의 삼 조다. 삼 조원들이 절반 이상 살아 돌아왔다면 둘 중 하나다.
야수궁이 미쳐서 괜히 신교를 건드렸거나, 아니면 야수궁의 압도적인 전력을 방비할 만큼의 고수가 있었거나.
‘시랑의 요기(妖氣)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셋째가 몰래 나갔다 돌아온 모양이군.’
무심한 이천상의 눈에 은근한 흥미가 어렸다.
“재미난 녀석이야.”
교내 어떤 마인도 몰래 외출한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무담에게 달리 보고할 게 없냐고 물어본 것은, 혹시라도 녀석이 미리 보고했다면 적어도 그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셋째가 나간 걸 알았다면 진즉에 말했겠지만.
후우웅.
창가가 흔들렸다.
은근한 한기가 어린 바람에 피 냄새가 묻어 나오는 듯했다.
“간만에 한 잔 따라 줘야겠군.”
* * *
“죄송합니다, 원주님.”
소연심이 한숨을 쉬었다.
“어찌 네가 죄송하다 하느냐.”
“제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호법 삼 조가 스무 명이 넘게 죽었다. 그만큼 적들의 공세가 치명적이었다는 뜻이겠지.”
주화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소연심이 자신을 책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죄송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소연심이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정작 화를 내야 할 대상은 우리를 공격한 놈들 아니겠니. 게다가 너희는 임무를 완수했다.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은 벌이 아니라 위로야.”
“…….”
“그나저나 놀랍구나. 어찌 벌써 무공을 회복했단 말이냐?”
애써 말을 돌리려는 소연심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주화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두 삼공자님 덕분이에요. 사태가 벌어지기 전, 저는 거의 칠 할의 무공을 회복한 상태였습니다.”
“공자님의 능력이 참으로 신비하구나.”
말을 돌리려던 의도와는 별개로 소연심은 순수하게 놀랐다. 무력의 깊이와는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주화입마로 피폐해진 몸을 급속도로 정상화한다는 무공 자체가 신기했다.
요상결이 아무리 뛰어나 봤자 의술의 영역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건 상식 아니던가.
한데 서량은 그런 신비로운 무공을 알고 있는 건 물론이요, 열흘 만에 주화의 무공을 절반 넘게 회복시키기까지 했다.
‘도대체 삼공자는…….’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나름의 연을 맺었다는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판단이 안 설 정도였다.
“그리고…….”
“응?”
“공자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몰살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소연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겠지. 공자님의 무공도 대단하시고, 너의 무공도 큰 도움이 되었을 테니.”
“아니에요. 저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주화는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고했다.
소연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떨렸다.
“공자님께서 그런 괴물들을 모조리 처치하셨다고?”
“네.”
“팔십이 넘는 마인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든 괴물들을? 혼자서?”
“……그렇습니다.”
꾸욱.
소연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주화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하지만 너무 상식과 동떨어진 얘기라 쉽게 믿기가 힘들었다.
“그게 진짜라면…….”
“…….”
“공자님의 무공은, 이미 백팔마장(百八魔將)의 상위 열 명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로구나.”
교주를 제외한 신교의 최고수는 원로원의 구대마존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도 신교의 고수는 많았다.
단일 무력 집단이면서도 연맹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신교의 고수층이 워낙 두텁기 때문이었다.
백팔마장은 신교의 무력을 대표하는 선봉장이었다. 특히 그들 중 상위 열 명은 차기 구대마존의 자리를 노릴 준비가 된 초고수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무공이 현 구대마존과 동등한 수준이라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만큼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강자라는 뜻이었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 심지어 주화입마로 모든 무공을 상실했던 분이 일 년 만에 부활하여 그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인가?”
스스로 중얼거린 말에 소연심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게 가능한가?’
뒤에서 누군가가 지원을 해 줘도 불가능하다. 설령 삼공자가 불세출의 천재라도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가능하다.’
소연심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유일하게 그걸 가능케 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아니 한 분 알고 있다.
‘……교주님.’
천마 이천상.
당대 신교의 정점인 그분께서 직접 나서신 거라면, 그분께서 삼공자의 무공을 강제로 끌어올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말로 교주님께서 개입하신 거라면?’
만약 그렇다면…… 차기 후계자는 이미 낙점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주님?”
퍼뜩 놀란 소연심이 주화를 바라보았다.
무뚝뚝한 주화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감돌았다.
“괜찮으신지요?”
“응, 괜찮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소연심이 주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여로에 지쳤을 터인데 같이 식사라도 하자꾸나.”
“네, 원주님.”
주화를 데리고 들어가는 소연심.
그녀의 얼굴에 언뜻 결심의 기색이 드러났다.
‘조만간 다시 한번 뵈어야겠어.’
* * *
“그랬구먼.”
이군성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어떤가? 달리 다친 곳은 없는가?”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내상을 완전히 다스리지 못했는지 기도가 조금 불안정했다.
“속명단을 썼음에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 위험했던 모양이군.”
“아, 속명단은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으응?”
마동필이 사정을 설명하자 이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구먼. 이따 퇴실할 때 한 알 받아 가게. 금방 좋아질 걸세.”
“괜찮습니다, 조장님.”
“고집부리지 말고 받아 가게.”
“……예.”
이군성이 슬쩍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 연무장에서 임무를 할당받지 않은 호법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 중이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는다는 말과 같네.”
“…….”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일세. 우리는 언제나 지키는 자들이야. 그래서 고달프지. 아마 죽음에 가까운 무인들이 바로 호위무사일 게야.”
“…….”
“하나 호위무사 역시 한 명의 사람이요, 누군가의 동료 아니겠나.”
이군성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그들을 위해 울어 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데, 정작 우리는 또 다른 이들을 지키러 가기 위해 오늘도 칼을 갈아야 하는군.”
“죄송합니다.”
“…….”
“제 실력이 부족하여 조원들을…….”
“자네는 분명 사죄해야 하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호위조를 맡은 조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네.”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군성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전히 창가로 시선을 고정한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일각이 지나서였다.
“차라리 윗선에서 어찌 보든, 나와 일 조가 갔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물론 이런 후회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
“자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지 말게. 자네의 책임감과 임무 수행 능력, 그리고 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조장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을 걸세.”
“그저 면목이 없을 따름입니다.”
이군성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한숨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사망자들의 유족들에게는 내가 직접 방문하겠네.”
“아닙니다, 조장님. 제 조원들이니 제가 직접…….”
“이것은 호법원주님께 내가 따로 보고해 둔 사항일세.”
마동필이 입술을 깨물었다.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자신인데 정작 그 책임의 일부를 선배가 진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군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마음 쓸 필요 없네. 자네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내가 가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걸세.
임무를 중간에서 조정한 사람이 나이니 책임도 내가 져야지.”
위로도, 비꼬는 것도 아니다. 이군성은 정말로 이 사태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동필 역시 그것을 알기에 더욱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분했다. 삼공자님이 모든 것을 해결한 걸 보고 혼란을 느꼈던 때처럼 지금도 자신의 부족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안 되네.”
마동필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안 된다니? 무슨 뜻일까?
“나는 자네에게 원주 대행으로서 벌을 내릴 생각일세. 그 벌을 마치기 전까지 자네는 당분간 호법원의 일에서 손을 떼게.”
“……!”
“아마도 제법 긴 시간이 될 걸세.”
마동필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달게 받겠습니다.”
“좋네. 이왕지사 자리가 이리되었으니 바로 처리토록 하지.”
이군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법원 삼 조장 마동필은 이 시간 이후, 무기한 정직에 처한다.”
정직될 거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기한일 줄은 몰랐다.
조금은 놀랐지만 마동필은 수긍했다.
조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 호위 대상을 확실히 보호하지 못한 죄다. 무기한 정직이 아니라 조장직에서 물러나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정직 처리가 된 마동필에게 원주 대행으로서 밀명(密命)을 내린다. 이 밀명이 완수되기 전까지 마동필은 호법원의 조장으로 재임될 수 없다.”
“…….”
“지금 이 시간부로 마동필을 삼공자님의 개인 호위로 발탁한다.”
깜짝 놀란 마동필이 이군성을 올려다보았다.
“정직 기간이 무기한인 것처럼 밀명의 이행 기간 역시 무기한인바, 마동필은 이전과 같은 불상사가 없도록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
“조, 조장님!”
“이상, 삼 조장 마동필에 대한 징계 처분 내용을 마친다.”
“…….”
“가시게. 본교의 마인으로서 감히 공자님께 바라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분께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게.”
마동필의 눈이 잘게 떨렸다.
이군성이 미소를 지었다.
“반드시 돌아와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