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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82화 (82/774)

82화. 바람이 불어오다 (2)

“공자님?”

“…….”

“…….”

“…….”

“저…… 공자님, 식사를 가져왔어요.”

“응, 거기 놔둬.”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침상에 누운 서량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처량하게 들렸다.

앵화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돌아오신 후부터 지금까지, 공자님은 한 끼도 드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염려가 안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모습까지 보여 주지 않으시니 쉽게 말도 못 걸겠다.

결국 오늘도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이따 치우러 올게요.”

드르륵.

앵화가 나갔음에도 서량은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창가에 앉아 한차례 늘어지게 하품을 한 금호가 슬금슬금 서량의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끼잉.」

“……저리 가서 놀아라.”

「앙!」

“…….”

「앙! 앙!」

“가서 놀라니까.”

「앙!」

금호가 앞발로 서량의 머리 부분을 꾹꾹 눌렀다. 제법 귀여운 모습이지만 왠지 모르게 서량을 질책하는 듯도 했다.

한참을 금호의 앞발에 농락당하던 서량이 스르륵 이불을 걷었다.

“아, 왜!”

「앙!」

금호가 침상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는 너 알아서 잘 먹잖아. 저기 네 몫도 차려졌네. 가서 먹어.”

「앙!」

“그놈 참 겁나 앙앙거리네.”

투덜거리던 서량이 이불을 완전히 걷어 내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만한 고수가 이틀 동안 굶었다고 몸에 이상이 생길 리는 없다. 다만 뭔가 고민이 많았는지 얼굴이 제법 홀쭉해져 있었다.

“자, 먹어라.”

삶은 고기를 내밀자 금호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씹어 댔다.

서량이 투덜거렸다.

“포효 한 방에 그 괴물들을 죄다 기절시킨 놈이 어째 이리 사람을 귀찮게 할꼬. 이제 어지간한 건 네가 알아서 해라. 알았어?”

금호는 서량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서량이 건네주는 고기만 열심히 받아먹을 뿐이었다.

서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알아듣는 거 다 알거든? 예전처럼 모른 척한다고 통할 줄 알아?”

금호의 귀가 살짝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참 나, 진짜 요물이라니까.”

서량이 턱을 괴곤 금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좋았는지 금호는 더욱 열심히 고기를 오물거렸다.

“그래도 그놈, 먹는 거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렇게 한참 고기를 씹던 금호가 혀로 입가를 싹 닦더니 앉아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

금호를 내려다보던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알았어. 안 그래도 이제 좀 움직이려 했다.”

살랑살랑.

금호가 서량의 팔꿈치로 다가와 벌러덩 누웠다. 씩씩거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많이 먹은 모양이었다.

검지로 금호의 배를 긁어 주며 서량은 생각에 잠겼다.

‘젠장, 별수 없지.’

확률이 높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외출이었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던 만큼 상심도 제법 컸다.

이왕이면 이 한 번의 외출로 영영 천마신교를 떠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시벌, 지부를 살펴? 정보를 모아? 길목을 기억에 담는다고? 개똥이다, 인마.”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동필에게 정일룡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 정보를 듣는 순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놈에 대한 증오와 깊이 쌓인 한(恨), 치밀어 오르는 살기와 분노를 다스리기에 바빴을 뿐이었다.

정일룡을 박살 낼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는 진심으로 속이 시원했고, 뿌듯함을 느꼈으며 응어리진 가슴 한구석이 뻥! 하고 뚫린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쪽팔리게 쓰러져서 짐짝 취급받아 가며 돌아왔단 말이야?”

서량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으으, 이 머저리 같은 새끼! 조금 나아졌나 싶었더니만 또 코앞만 보고 사고 쳤네!”

탈탈 뿜어지는 먼지에 금호가 기겁하여 몸을 말았다.

한참을 자책하던 서량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지금 와서 자학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 이미 배는 떠났는데 손 흔들어 봤자지.”

안다. 아는데 마음이 참 께적지근하다.

사실 아쉬움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자학에 빠질 이유는 없었다.

담백하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일에 며칠씩이나 꽁해 있을 정도로 서량은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이틀 동안 침상에 누워 자학에 골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통제가 안 됐어.’

정일룡이라는 이런 석 자를 듣는 순간 눈도, 귀도 멀어 버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스스로가 섬뜩했다. 만날지 지나칠지도 모를 원수의 이름을 들었다고 며칠 동안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말하자면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 원수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앞선 것이다.

‘이런 식이어선 안 돼.’

설령 천마신교에서 몰래 빠져나간다 한들, 정상적인 강호 생활이 가능할까?

천마신교는 남부에 있지만 의천맹은 북부에 있다.

그의 중요 안가들 역시 북부에 있으며, 최종적으로 북쪽 새외로 빠져나가기 위해선 의천맹의 영역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모르쇠로 지나친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자신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원수의 이름만 들어도 즉각 반응해 버리는 이 분노를 조절할 수 있을까?

만약, 아주 만약에.

북부를 지나다가 의천맹주의 소식을 듣게 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퍼석!

탁자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탁자 끄트머리가 부서져 떨어졌다.

“……그때도 자유를 부르짖으며 무시할 순 없겠지.”

정일룡은 원수 중 하나지만 그의 목숨을 앗아 간 결정적인 주범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를 떠올려 보면 그놈보다 더 죽이고 싶은 놈들이 수십은 됐다.

부르르.

놈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자 마기가 출렁였다. 그 꿈틀대는 마기를 다스리기 위해 눈이 충혈될 정도로 힘을 기울여야 했다.

서량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그저 그리 살아왔을 뿐, 그의 성격은 살수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뭔가?

‘과거보다 나아지진 못할망정 퇴보하면 안 되지, 새꺄!’

마공을 익혀서 그랬을 수 있다. 아니, 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핑계일 뿐이다. 결국 육신과 감정을 움직이는 주체는 언제나 나다.

마공 때문에 이렇게까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니, 정말 크게 반성해야 할 문제였다.

꼬르르륵.

서량이 배를 내려다보았다. 몸을 돌돌 말고 있던 금호도 힐끔 서량을 바라보았다.

“……젠장, 그러면서 배는 또 고팠던 모양이구먼.”

하긴, 매끼에 서너 명 먹을 양을 거뜬히 해치우는 인간이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시지 않았나. 당연히 배가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젓가락을 든 서량이 순간 움찔했다.

차려진 음식의 대부분이 위에 부담이 적은 음식들이었다. 앵화의 걱정이 고스란히 투영된 밥상인 것이다.

속으로 앵화에게 사과하며, 서량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래, 지나간 일은 잊자. 어차피 장기적인 계획을 짜려고 했었잖아?’

양 볼이 볼록해질 정도로 음식을 쓸어 넣으면서, 와중에 눈빛만 진지하다. 희극과 진지함을 절묘하게 오가는 표정이었다.

‘이번 외출은 이렇게 생각하자. 작정하면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대로 수확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작정하고 나가려 드니까 생각보다 손쉽게 나가지 않았나.

서량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돼.’

소연심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국 상황을 그쪽으로 유도한 것은 자신이었다. 즉, 작정하기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신교를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앞으로 더 노력하자. 노력하면 언제나 길은 보일 거야.”

생각을 바꾸자 이렇게 마음이 편해진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자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이틀 만에 식사를 마친 서량이 연무장으로 나왔다.

마당 청소를 하던 앵화가 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고, 공자님?!”

“어, 청소하냐?”

“네, 네! 괜찮으신지요?”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괜히 시답잖은 고민에 빠져서는 앵화를 걱정케 했다니, 참 부끄러웠다.

“괜찮아. 걱정 많았지?”

“헤헤, 식사는 다 하셨나요?”

“양념까지 다 핥아 먹었다.”

“제가 금방 가서 치울게요!”

“천천히 해.”

슥삭슥삭 눈부시게 마당을 쓸던 앵화가 헐레벌떡 움직였다. 급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얼굴은 밝았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언젠가 나갈 곳인데 너무 정 주는 거 아닐까?”

뭐, 어쩌겠어? 미리 정 끊고 살면 이곳 생활이 너무 팍팍해질 것 같은데.

게다가 이미 마음 깊이 들어온 녀석이다. 정이란 것이 끊는다고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도 아니잖은가.

“됐고, 몸이나 좀 풀자. 어우, 뻑뻑해.”

다리를 쭉쭉 늘리니 오도독 소리가 절로 난다. 이틀 동안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파앙!

뻗어내는 주먹, 휘두르는 발길질에 강한 힘이 깃들었다.

서량은 속으로 혀를 찼다.

‘딱딱한 거 봐라.’

파파파팡!

제천기는 훌륭한 무공이다. 살법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적절히 힘을 빼서 운용하면 몸을 푸는 데에 어떤 무공보다도 효과적이다.

반 각이 지나자 서량의 몸에서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일각이 지나 이각, 이각이 지나 반 시진에 접어들자 그의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세밀한 수련으로 넘어간 것이다.

살수로서, 혹은 마인으로서의 자세를 논할 때 서량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서량은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바로 언제나 무(武)를 좇을 수 있도록 심신(心身)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무공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도(武道)를 대하는 자세를 말함이다. 그런 걸 보면 천생 무인이었다.

“휴, 나쁘지 않군.”

몸이나 풀자고 시작한 수련은 한 시진이 지나서야 끝났다.

연무장에 대자로 누운 서량의 눈에 맑은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은 있군. 여하간 맑네.”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역시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땀 흘리는 것만 한 게 없었다.

‘그래, 이거야.’

내 미래도 저 하늘처럼 맑을 것이다. 불쾌한 과거가 머리채를 잡아끌어도 언제나 웃으면서 하늘을 보자. 그러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때였다.

“공자님.”

“어?”

서량이 벌떡 일어났다.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 마동필이었다.

“동필이냐?”

“예, 공자님.”

반가운 마음에 서량이 냅다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의 마동필이 서 있었다.

“너 업무 시간일 텐데 여긴 어쩐 일이야? 안 바쁘냐?”

“그것이…….”

“야, 마침 잘됐다. 방금 막 수련을 끝낸 참이었어. 슬슬 허기지는데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그 전에 공자님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 말씀 좋지. 뭔데?”

왠지 평소보다 더 밝아 보인다.

마음의 부담을 덜어 낸 마동필이 헛기침을 하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서량의 눈이 커졌다.

“뭐야? 병 도졌냐? 또 뭔 짓거리…….”

“신(臣) 마동필! 지금 이 시간부로 삼공자님의 개인 호위로서 성심을 다해 지켜 드릴 것을 천명합니다!”

“……?”

“…….”

“……개인 호위?”

“아, 그게 말입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서량에게 마동필이 사정을 설명했다.

“……하여, 당분간 제가 공자님의 호위가 되었습니다. 말이 당분간이지 아마 꽤 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목숨을 바쳐 지켜 드리겠습니다, 공자님.”

쿠르르르릉!!

맑기만 했던 하늘 저편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네가…… 개인 호위라고?”

“예? 아, 예. 앞으로 공자님의 거처에서 숙식하며 밀착 호위를 할 것입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키던?”

“일 조장에게 전달을 받았습니다만 외부 조직으로의 인사이동은 호법원의 소관이 아닌 만큼 상부에서…… 헉! 공자님?!”

마동필이 서둘러 서량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서량이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진 것이다.

서량이 구슬픈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았던 하늘이, 더 이상 맑아 보이지 않았다.

자유? 밀착 호위가 생겼는데 자유?

“……지랄 염병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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