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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88화 (88/774)

88화. 성장하다 (3)

쾅!

거칠고도 시원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활짝 열렸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낭랑한 목소리.

“위홍련이 대령이오! 저 왔어요, 공자님!”

이제는 숫제 제집처럼 드나든다. 아마 마동필이 그 꼴을 봤다면 호되게 쏘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동필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파바바박!

연무장 곳곳을 밟아 가며 검을 휘두르는 마동필의 몸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반면 표정은 엄숙했고 뻗어 나가는 검결은 묵직했다. 그리 빨리 움직이면서 정작 구사하는 무공은 무겁다는 것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위홍련이 눈을 치떴다.

“으잉? 뭐야, 저거?”

파바박! 사아악!

허공을 가르는 검, 팔방을 휘도는 발걸음.

“저게 왜 여기서 검을 휘두르고 지랄이래? 멀쩡한 호법원 연무장 냅두고.”

그녀가 연무장 앞까지 걸어왔다.

칼질 그만하고 공자님 어디 계시는지나 말하라고 냅다 외치려던 순간.

위홍련의 걸음이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한 마동필의 모습은 눈이 부신 것이었다. 눈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집중이 깨질 것 같지 않았다.

“…….”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위홍련이 입맛을 쩍 다셨다.

“이건 뭐 건드리기 그렇구먼.”

광마대주의 불같은 성격이야 마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인이자 무인이었다. 저리도 수련에 열성을 쏟는 무인의 집중을 깨고 싶진 않았다.

일부러 소리를 죽여 가며 연무장을 빙 둘러 나온 위홍련의 눈에 앵화가 보였다.

“어이!”

“학!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 야, 그나저나 공자님은 또 어디로 가셨냐?”

여기가 제 안방이야, 뭐야?

앵화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며 말했다.

“마신궁으로 가셨는데요.”

“으잉?! 마신궁? 마신궁에는 왜?”

“그건 저도 잘…….”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젠장, 교주님을 뵈러 가신 건가? 직급도 없는 분이 어째 나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저기.”

“왜?”

잠시 망설이던 앵화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요……. 그…… 공자님께 너무 불손한…….”

“……?”

“……네에. 여하간 좀 그러네요.”

위홍련이 입을 쩍 벌리고 앵화를 바라보았다.

앵화는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앵화라고 어찌 광마대주의 악명을 들어 보지 못했겠는가.

하지만 그녀가 모시는 사람은 삼공자 서량이었다. 제 신분은 낮을지라도 공자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순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당당한 표정을 보던 위홍련이 침을 찍 뱉었다.

“젠장!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이거냐?”

“그게 아니라요…….”

“아, 됐어! 듣기 싫어!”

“넵!”

“쥐방울만 한 걸 쥐어박을 수도 없고 말이야. 내가 참아야지, 내가.”

가슴을 쾅쾅 치는 위홍련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앵화가 몸을 움츠렸다. 본능적으로 지금 그녀를 건드려선 안 된다고 느낀 것이다.

그때, 마동필이 걸어왔다.

“언제 왔소?”

“뭐야? 수련 끝났냐?”

“쉬는 시간이오. 반 각 후에 다시 시작할 거요.”

“염병을 하네. 야! 너는 왜 여기서 칼질하고 지랄이야? 호법원으로 가서 수련해! 여기가 무슨 지 안방인 줄 아나.”

마동필이 기가 찬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 왜 왔소?”

“몰라! 다 몰라! 지랄 맞게 모른다고! 시불,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왔으면 미안해서라도 며칠 콕 박혀서 기다려 주겠네.

정작 와 봤더니 싸가지 없는 쥐방울하고 괴상한 검이나 휘두르는…….”

순간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그녀의 눈은 마동필이 쥐고 있는 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보통 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야, 마 씨.”

“마동필이오.”

“너 그 검 뭐야? 어디서 났어?”

마동필이 헛기침을 했다.

“공자님께서 주셨소.”

“뭐? 그런 보물을 공자님이 선물로 줬다고? 너만?”

“……?”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마동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연무장을 향해 걸어갔다.

위홍련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내 거는 어디에 있냐고! 내 건 준비 안 해 두셨대? 야! 야, 이 새끼야! 사람 말하잖아!!”

청아하게까지 들리는 위홍련의 외침을 들으며 마동필은 미소 지었다.

‘……빨리 와 주세요, 공자님.’

저는 이 여자 감당 못 할 것 같습니다.

* * *

이천상의 말이 끝나자마자 칼을 쥔 것은 본능이었다.

아니, 그게 본능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무의식, 육감, 본능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어울렸다.

좌우지간 서량은 깨달았다.

이천상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칼을 내리칠 최적의 순간이라는 것을.

이천상이란 거인을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인지는 곧 이해요, 이해와 동시에 공격 본능이 솟구쳤다. 상황을 이해한 후 결심을 하고, 행동까지 이어지는 그 미세한 시간마저도 날려 버렸다.

말 그대로 번개다. 찰나의 순간마저 쪼갤 만큼 서량의 칼질은 빨랐다.

그리고 그 공격 본능이 한껏 실린 그의 일도(一刀)는, 지금껏 구사했던 어떤 칼질보다도 치명적이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헉헉!”

주르륵.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볼을 지나 턱에 맺혔다. 턱 끝까지 들어찬 숨에 시야가 흔들릴 정도였다.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와 찰나의 순간을 인지할 수 있는 초절정의 고수지만, 이번 일격은 근본부터가 달랐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 아니다. 모든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것도 아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휘두른 이번 일도에는 그의 혼(魂)이 담겨 있었다.

그런 표현으로밖에 딱히 설명이 되질 않았다.

폭발적인 일격에 근육이 떨려 왔지만 힘이 다 빠진 것도 아니요, 엄청난 내공을 일시에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단전은 멀쩡했다.

그럼에도 지쳤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지쳤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인 일격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했나?’

참격의 성공은 곧 이천상의 죽음이다. 이천상의 죽음은 천마신교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칼질이 이천상을 베었는지, 베지 못했는지만이 궁금할 뿐이었다.

스르륵.

부옇게 시야를 가리던 먼지가 걷히기도 전, 서량의 기감이 이천상의 기도를 포착했다.

이전과 한 점 다르지 않은 기도. 일체의 흔들림이 없는 그 강인한 존재감.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실패!’

파아악!

어떻게 뒤로 물러나 피했는지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공격만이 전부일 뿐이다.

부우웅!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서량의 칼이 다시 한번 이천상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흩어지는 먼지, 그 속에 드러나는 이천상의 얼굴.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기만 했다.

번쩍!

순간 서량의 칼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이 또한 의식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빛을 터트리며 떨어진 번개가 제멋대로 휘어져 꽂히는 것처럼, 그의 칼도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이천상을 사선으로 베어 갔다.

그곳이야말로 이천상의 유일무이한 약점이라는 걸 몸이 깨달은 것이다.

휘이이잉!

먼지구름이 사선으로 잘려 나갔다.

하지만 이천상은 베이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그 표정 그대로 서량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그의 눈빛은 미세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것은 서량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파아아아악!

양손으로 칼을 쥔 서량이 재차 돌진했다.

백타(白打)를 주고받기에도 짧은 거리에서 다시 한번 돌진하는 것은 몸통으로 들이받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구경하는 제삼자가 움찔할 정도로 역동적인 질주였다.

서량이 그대로 칼을 올려 쳤다.

땅에 떨어진 번개가 역으로 솟구치듯 승천하는 칼날이 당장이라도 이천상을 두 동강 낼 것 같았다.

부우우우웅!!

하지만 이번에도 이천상은 멀쩡했다.

최초의 일격, 그다음 빈틈을 노린 이격, 연달아서 친 삼격 모두가 빗나가 버렸다.

하나하나가 번개처럼 빠르고, 번개 이상의 위력을 담은 칼질이었음에도 이천상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스륵.

서량의 왼손이 움직였다.

빠르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 곧바로 제천기(提天技)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때였다.

움찔!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감각.

‘안 돼!’

파바바바박!

도병의 하단부를 쥐었던 손을 수도(手刀)로 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물러선다.

어찌나 빠르게 물러났는지 서량의 하의가 여기저기 찢어져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났다고 안심하진 않는다. 이천상에게 고정된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한 목적의식으로 빛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폐장에 들어찬 공기가 부족하다. 전신의 근육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량의 앞에, 여전히 이천상은 뒷짐을 진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서량을 바라보던 이천상이 아무렇게나 손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위를 떠다니던 먼지가 모조리 날아갔다.

“인상적이군.”

의미를 알기 힘든 말이었다.

“나는 가르침을 내려 주겠다고 하였지, 나를 베라고 말하지 않았다.”

순간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헉헉! 예?”

“…….”

“……아?”

이천상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첫 일격이 날아올 때, 내색은 안 했지만 그는 상당히 놀랐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칼질이 시작되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 행동 자체도 신선했지만, 요(要)는 최초의 빈틈을 서량이 정확하게 읽어 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가히 짐승과도 같았다.’

절대자에게도 빈틈은 있다. 다만 그 빈틈은 빈틈이 아니기도 하다.

이미 극에 이른 절대자에게는 더 이상 완벽과 빈틈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가 읽어 냈다는 것은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실력 이상의 안목? 감각?’

아니다. 그런 너절한 능력 같은 게 아니었다.

서량이 자신의 빈틈을 깨닫자마자 칼을 뽑아 날린 것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본능의 발현이었다.

“……오로지 죽음이란 개념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군.”

“예?”

“궁금한 게 있다.”

서량이 몸을 바로 세웠다.

천하의 이천상이 궁금한 게 있단다. 오늘 참 여러모로 놀라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넌 삼격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수공(手功)을 준비하고 있었지.”

찰나의 순간에 그걸 읽어 낸 게 더 신기하다.

“왜 멈추었지?”

“아, 그건…….”

서량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깃들었다.

사실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그 역시 서량이 손을 멈춘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극한으로 집중하면, 그렇게까지 예민해질 수 있다는 건가.’

단 세 번의 칼질이었지만 이천상 역시 간만에 흥이 올랐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자신이 펼쳐 낼 일장(一掌)에 서량이 어찌 반응할지.

그 마음을 품고 무공을 전개하려는 순간 서량이 물러나 버렸다.

‘알고 멈춘 게 아니야. 하면, 이 또한 본능인가.’

이천상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신통방통한 녀석이군.”

“……아, 예.”

“다음을 준비해라.”

“예?”

“한 수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너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 고로 난 네게 아직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리지 못했다.”

“……!”

이천상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을 전방으로 내민다. 그 여유로운 자세에 무한한 자유가 느껴졌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와라.”

꾸욱!

칼을 쥔 서량의 손에 굵은 핏줄이 드러났다.

가르침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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