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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95화 (95/774)

95화. 파순제(波旬祭)의 시작은 화려했다 (4)

강호에서 마귀 소굴이라 불리는 천마신교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분위기를 뽐냈다.

“거기! 거기 조심해!”

“으허억?!”

“허억, 대형 사고 칠 뻔했다……. 아니, 저거 철 기둥이 뭐가 저렇게 무거워?”

“이 새끼야! 철 기둥이 그럼 무거운 게 당연하지!”

“헤헤.”

외전 곳곳에는 거대한 무대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강호의 풍파를 이겨 내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기쁨을 준다는 유랑 극단들의 무대였다.

“으아아악! 뜨거워!”

“야야! 조심히 옮겨!”

“죽을 것 같아요!”

“저 새끼 저거 무공 배워서 얻다 써먹어? 솥 하나도 못 들어서야 쓰겠어?!”

“으드득! 숙수장님이 들어 봐요, 그럼!”

“저놈 새끼가? 넌 오늘 점심 없어!”

“헉? 치사하게 나오실 겁니까?”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재료와 요리를 나르느라 정신없는 각종 주루. 그리고 그 주루들엔 벌써부터 수많은 무인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동이 트기 시작할 때부터 왁자지껄했던 신교였다. 해가 뜨고 정오쯤이 되자 분위기는 가히 폭발적으로 변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위홍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신 사나운 것도 정도를 넘어가면 오히려 정감 넘치게 느껴지는 거였군. 세상에 아주 개미굴이 따로 없네.”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 마인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신교 소속 마인들뿐만이 아니라 전 마도 무림의 영향력 있는 마인들이 모여서 그러했다.

이처럼 외부인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시기에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쉬웠다. 혹시라도 그들이 사고를 치면 신교의 마인이 아닌 만큼 수습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오히려 의천맹이나 철혈성이 개최하는 연회보다도 사건 사고가 적은 게 파순제였다.

이유인즉, 이곳이 천마신교이기 때문이었다.

마도 무림의 총본산인 천마신교는 그 자체로 신성시되는 성지(聖地)였다.

오히려 사고를 치는 마인이 등장한다 싶으면 신교의 마인들이 파견되기도 전에 저희들끼리 해결해 버리는 경우도 파다했다.

하지만 치솟는 흥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

앞으로 나흘 동안 이곳 천마신교는 대륙 어느 곳보다도 활기찬 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언제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는 법.

“커헉!”

피를 토하며 질질 끌려가는 중년 사내의 몰골은 실로 참혹했다.

팔다리가 전부 부러졌고, 극심한 내상까지 입은 듯 사경을 헤매는 사내를 끌고 가는 것은 형법당의 당원들이었다.

“으잉? 저게 뭔 일이래?”

“철혈성에서 파견한 첩자라더군.”

“허! 그놈들 간도 크지. 용케 신교에 세작을 심으려 들었군.”

“저놈만이 아닐세. 의천맹에서 보낸 첩자도 벌써 둘이나 잡혔다네. 그 두 놈, 간이 부었는지 외전 성문이 열리자마자 맨 처음 입교하려 들었다더군.”

“미쳤군, 미쳤어.”

“이래서 정파 놈들은 안 되는 거야. 새끼들이 상도덕을 몰라요.”

“이러나저러나 신교 호법들만 생고생하게 생겼군.”

멀리서 그 말을 들은 위홍련이 키득거렸다.

“야, 마 씨. 넌 저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없냐? 안 찔려?”

“…….”

“나 같았으면 공자님께 양해 구하고 일손 보태러 갔다.

어이구, 매정하신 마 호위님. 공자님 옆에서 호의호식이나 하다니, 동료들이 알았다간 피눈물을 철철 흘리겠어.”

“내 임무는 공자님을 밀착 호위하는 것이오. 그 외에 다른 일은 모르오.”

“……싸늘한 새끼. 정나미 없는 새끼.”

“그나저나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거요?”

허리춤에 양손을 척 올린 위홍련이 배를 내밀어 보였다.

“할 거 없어서.”

마동필은 위홍련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기가 차는 것을 느꼈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것이 양파 같은 인간이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이 무저갱 같은 위인이다.

“당신 대원들이 아무 말도 안 하오?”

“아무 말? 할걸? 대신 내가 못 듣는 데서 하겠지. 듣는 데서 하면 그날로 인생 하직인 걸 모를 만큼 멍청한 놈들 아냐.”

“가끔은 당신의 그런 성격이 존경스럽기까지 하오.”

“거참 영광이로군. 근데 공자님은?”

“먹거리 사러 가셨소.”

“먹거리? 세상에나.”

마동필이 입맛을 다셨다.

“소소한 길거리 음식도 맛날 거라고 하셨소. 이 얼마나 소박하신 분이오?”

“왜 네가 대신 변명해 주는데?”

“변명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오.”

“지랄.”

“언사를 조심하시오.”

“공자님한테만 조심하면 됐지, 너한테까지 조심해야 되냐?”

“공자님한테도 조심하지 않으니까 문제요.”

“딱딱한 새끼. 하여튼 공자님은 왜 이런 고지식한 놈을 휘하에 둬 가지곤…….”

그때였다.

딱!

“크억!”

위홍련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어느새 그녀 뒤로 다가온 서량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딱딱하긴 네 뒤통수도 만만치 않은데? 이게 사람 없다고 뒷담화나 까? 뒈질래, 진짜?”

“크으윽! 뒤, 뒷담화 아니에요!”

“그럼 뭐야? 애교야? 칭찬이야? 찬양이야?”

“……끄응.”

“한 번만 더 걸려라, 아주.”

위홍련이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공자님은 진짜 너무하십니다. 왜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너야말로 너무한 거 아니냐? 내가 왜 이러는지 어떻게 너만 몰라? 머리는 장식으로 들고 다녀?”

“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

“…….”

“……죄송합니다.”

대차게 코웃음을 친 서량이 사 온 먹거리들을 두 사람 앞에 늘어놓았다.

“야, 이것들 한 번 먹어 봐. 꼬친데 오리고기도 끼고 돼지고기도 끼고 채소도 끼고 아주 난리다, 난리.”

서량이 하나를 들어 내밀자 마동필이 공손히 꼬치를 받았다. 반면 위홍련은 다소 떫은 표정이었다.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먹기 싫어? 싫음 내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그럼 뭐.”

“……어쩐지 되게 즐거워 보이시네요?”

오히려 서량이 놀랐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럼 너희는 안 즐겁냐? 축제잖아? 언제 또 이런 광경을 보겠어!”

매년 보는데요?

마동필은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잔뜩 흥이 오른 서량의 기분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입을 닫은 건 위홍련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녀는 마동필처럼 다정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맞기 싫어서였다.

서량이 두 사람을 잡아끌었다.

“빨리들 먹고 우리 공연 보러 가자!”

“고, 공연이요?”

“왜? 보기 싫어?”

두 사람이 합창하듯 외쳤다.

“보고 싶습니다!”

“좋아!”

신이 난 서량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평생 숨어서 사람 목이나 따던 그가 언제 이런 축제를 즐겨 보았겠는가. 멀리서나마 본 게 전부일 뿐, 그 속에서 화끈하게 즐겨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얌전히 서량의 뒤를 따르던 위홍련이 마동필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야, 마 씨.”

“마동필이오.”

“공자님, 신나셔도 너무 신나신 거 아냐? 원래 저런 양반이었나?”

“말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질 않는군.”

“시끄러우니까 빨랑 말해 봐.”

“……사실 나도 잘 모르겠소. 이렇게까지 흥이 오르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장난도 자주 치고 말투도 가볍지만 마동필에게 서량은 범접할 수 없는 고수라는 인상으로 꽉 차 있었다.

가끔 얼빠진 모습도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미로 받아들여졌고 화려한 먹성과 엄청난 주량도 호탕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의 서량은 뭔가 많이 달랐다. 꾸민 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하긴, 공자님께선 언제나 진실된 모습만 보여 주셨지.’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께도 이런 분위기가 한 번씩은 필요하셨던 게야.’

고죽림부터 시작해 얼마 전 야수궁과의 화려한 전투까지.

서량은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늘어지게 잤다고, 날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편히 쉬는 건 아니었다.

말은 안 하셨어도 신분 높은 사람만이 느끼는 긴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오셨을 것이다.

웃으며 서량을 바라보는 마동필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서량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공의 성장에서 오는 여유가 표정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 그 부드러운 미소를 위홍련은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이 새끼 설마?’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위홍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 씨.”

“왜 그러시오?”

“너…… 아니지?”

“뭐가 아니냔 말이오?”

“……아냐, 됐어.”

“싱거우시군.”

넌 너무 농밀해.

팔뚝에 돋은 소름을 사박사박 쓸어 낸 위홍련이 후다닥 서량에게로 뛰어갔다.

“공자님! 같이…….”

딱!

“으악! 또 왜 그러세요!”

“공자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여기에 공자가 한두 명인 줄 아세요? 입교한 마인들 중에 일공자, 이공자, 삼공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어? 그 생각은 못 해 봤는데?”

“…….”

“너 방금 속으로 욕했지?”

“꼬치 하나만 주세요.”

“나쁜 년. 이번엔 봐준다.”

그렇게 세 사람은 유랑극단이 공연하는 곳에 도착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강호에 흔히 떠도는 내용의 연극으로, 멸문한 가문에서 홀로 살아남은 핏줄이 숱한 역경을 헤쳐 나와 마침내 강호제일의 영웅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이나 야무졌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보는 모두가 숨소리도 죽여 가며 몰입했다.

극이 마지막에 이르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다음 편! 다음 편!”

“뭐야? 쟤들은 이걸로 끝이야?”

“다음 공연도 쟤들만 할까?”

서량이 숨을 몰아쉬었다.

“공연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겠구만? 대단해. 무공 말고 이렇게나 집중한 건 또 오랜만…… 잉?”

그가 눈을 끔뻑였다.

“너 왜 우냐?”

“…….”

“어이, 미친년.”

“어떤 씹쌔가……!”

“…….”

“죄송합니다.”

“됐고, 왜 우냐고?”

“네?”

위홍련이 눈가를 훔치자 눈물이 한가득 묻어 나왔다.

흘러내린 콧물도 입술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위홍련이 소매로 얼굴을 박박 닦았다.

“에잇! 시파, 쪽팔려 죽겠네.”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려던 서량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위홍련은 멸문한 호남의 명가, 위씨세가의 유일무이한 핏줄이었다.

그런 그녀가 입교한 후 내전 최연소 전투 부대 대장이 되었다. 왜 신교에 입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가문을 멸문시킨 것이 바로 천마신교니까.

서량이 위홍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끄러운지 연신 얼굴을 닦아 내고 있지만,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산다……라…….’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평소에 워낙 괄괄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 줘서 그렇지, 위홍련도 슬픔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위홍련의 어깨를 토닥였다.

“울고 싶은데 억지로 막지 마라.”

“…….”

“너 같은 미친년…… 아니, 또라이……도 아니고. 어쨌든 그 뭐랄까…… 인생이라는 게 참으로…….”

“됐거든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한 번도 슬피 우는 사람을 위로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불쑥 말했다.

“그래도 칼질 하난 기똥차게 잘하는 년으로 컸잖아? 그럼 됐지, 뭘.”

위홍련이 충격받은 얼굴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진짜 충격적이다.”

“엥?”

“흥! 됐어요! 꼬치 사 먹고 있을 테니까 한 편 더 보고 오든가 하세요!”

위홍련이 후다닥 자리를 떴다. 우는 게 부끄러워서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서량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

“동필아?”

“저는…… 입을 닫고 있겠습니다.”

서량이 입맛을 쩍 다셨다. 다시 생각해 보니 확실히 뜬금없는 말이긴 했다.

“젠장, 어쨌든 칼질 잘하는 건 맞잖아? 진짜 까다롭…… 응?”

마동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공자님?”

“…….”

“허험! 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번엔 좀 심하셨습니다.”

“동필아.”

“아, 물론 공자님께서 잘못하셨다는 뜻은 결코…….”

“왔다.”

“예?”

서량이 씨익 웃었다.

그는 저 멀리 외전의 성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린 성문 입구에서 휘날리는 거대한 깃발.

그 깃발에는 마검(魔劍)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범 새끼 가문 행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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