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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96화 (96/774)

96화. 파순제(波旬祭)의 시작은 화려했다 (5)

쿠궁, 쿠궁.

붉은색 거체(巨體)에서 뿜어지는 위용은 실로 굉장했다.

전설상의 적토마가 이러할까. 산중 대호도 감히 덤벼들지 못할 압도적인 기백을 뽐내는 적마(赤馬)는 오연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탄 사람은, 그러한 적마에 어울릴 만한 품격을 갖춘 남자였다.

“……마검가주.”

지운회(池雲徊).

당대 마검가의 가주이자 마도의 검왕(劍王)이라 불리는 초고수의 등장이었다.

당당한 풍채와 멋들어지게 다듬은 수염, 서리 한 자락 내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보면 이제 갓 불혹을 넘은 듯했다.

하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육순에 가까웠다. 강력한 마공과 깊은 내공 덕에 나이보다 이십 년은 젊어 보이는 것이다.

후욱.

좌우로 갈라지는 마인들.

그들 모두가 마검가주의 등장에 숨을 죽였다.

단순히 거물이라서가 아니었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지운회의 기파가 실로 살인적이라, 어지간한 고수들조차 그 압박감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마동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굉장하구나.’

예전에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가까이서 본 마검가주의 무공은 충격적이었다. 초절정고수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은 당연했고,

그 위로 엄격한 예기와 흔들리지 않는 위엄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저 강하기만 한 자가 아니다. 만인을 다스려 본 패자(覇者)의 기질이 지운회에게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도 무림 최고라는 칠가의 가주구나. 과연 이 위용……! 오길 잘했어.’

같은 검객으로서 지운회의 기파는 마동필에게 굉장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순수하게 놀라기만 했을 그가, 이제는 저만한 고수를 보며 승부욕을 불태운다.

작지만 큰 변화.

앞으로 마동필이 나아가야 할 검객으로서의 숙명의 태동이었다.

그때, 지운회의 시선이 마동필에게로 향했다.

순간 지운회의 눈이 커졌다.

번쩍!

불을 뿜는 안광 속, 순수한 놀라움이 깃들었다. 이제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검객의 힘이 가문 내 장로들에 필적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운회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마동필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진범의 아비임을 떠나 자신을 알아봐 준 거물이었다. 이 정도 예를 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지운회가 지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 뒤를 향했다.

선두에 선 지운회의 십 보 뒤에 수많은 검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훤칠한 청년 둘과 백여 명의 검사들이 빈틈없이 열을 맞춰 걸어오는데 하나같이 굉장한 예기를 발산한다.

“마검가의 검향대(劍響隊)다!”

“마검 내 최강의 조직……!”

“엄청나다.”

“눈빛 좀 봐! 하나 같이 검귀(劍鬼)들이야.”

지난 몇 년간 파순제에 참가하지 않던 마검가가 이번 파순제에는 검향대까지 끌고 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좌중은 침묵을 지켰다. 왠지 모르게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 좌중을 내려다보는 지운회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스쳤다. 아직 외전이지만 이 정도면 신교에 힘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리고 마인들은.

이곳에서 벌어질 기가 막힌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사태를 일으킬 자의 최측근인 호위무사조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갈라진 길목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서량을 보며 마동필은 극도로 당황했다.

‘공자님? 공자님!’

소리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전음을 쓰는 것조차 잊었다.

‘음?’

지운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삼십 보 앞에서 당당히 선 한 명의 청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잘생긴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가로막은 청년의 육체를 보며 지운회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굉장한 몸이로군.”

육 척을 훌쩍 넘기는 신장에 완벽하게 잡힌 근골이 눈부시다.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필시 압축될 대로 압축된 근육으로 꽉 짜인 몸일 것이다.

‘본가에서도 저만큼 단련된 육체를 가진 자는 찾아볼 수 없다. 한데…….’

지운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 애매한 기도는?’

분명 내공을 익히긴 했다. 한데 느껴지는 기도가 어중간했다.

제법 강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생김새는 귀티가 흘렀지만 헐렁한 자세가 조금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명문의 가르침을 받은 무사는 결코 저리 허술하게 서지 않는다.

적어도 상대가 높은 신분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운회의 입에선 자연스레 하대가 흘러나왔다.

“자넨 누구인가?”

청년,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마검가주?”

“……?”

“그래, 맞구만. 반갑수다. 처음 뵙네.”

“…….”

“아, 내가 예전에 크게 다쳐서 과거의 기억을 꽤 잃었소.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는 없으니. 여하간 반갑소.”

뭐지, 이 기가 막힌 무례함은?

지운회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네만 자네가 지금 얼마나 큰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네.”

“무례라니? 내가 무슨 무례를 저질렀대?”

“말버릇이 고약한 청년이로다.”

“이유를 물었는데 냅다 고약하대.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이 간혹 보여 주는 모습인데?”

“…….”

“늙었소?”

이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도 참기가 힘들다.

물론 지운회는 이 정도 도발과 무례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선 검사들은 달랐다.

사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일순간 뿜어지는 검사 일백의 세찬 기파는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았다.

그 압도적인 예기에 좌우로 갈라져 있던 마인들이 웅성대며 더더욱 뒤로 물러났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늑대들이 털 세운다고 호랑이가 쫄겠나.”

“……!”

이번만큼은 지운회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다? 검향대의 기파 앞에서도?’

검향대가 최강이라 불리는 이유는 실력 이전에 그들이 진짜 검객이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검 하나에 목숨을 바친 검귀들. 그들이 작정하고 뿜어내는 기파는 제 실력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농도를 자아낸다.

하물며 하나도 아니고 백이다. 백 명의 검귀들이 발산하는 기파 앞에서도 멀쩡하다면, 이 청년의 무공이 못해도 절정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과연, 한 수가 있는 청년이었군. 어찌하여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한 수가 아니라 몇 수는 있지.”

“말장난은 사절일세. 지금까지의 무례는 관대하게 넘어가 줄 터이니 이만 물러…….”

“됐으니까 하나만 물어봅시다.”

“…….”

“아비로서, 자식의 파렴치한 범죄를 목도했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소?”

“…….”

“대답하기 어렵소?”

“쓸데없는 대화는 지양하는 주의라서 말일세.”

지운회가 한 손을 들었다.

“파순제의 첫날일세. 이번 무례도 덮어 둠세. 하니 이만 비켜 주시게.”

우우우우웅!

순간 지운회의 손끝에 강력한 마기가 집약되었다.

동시에 물러났던 마인들이 몇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 만큼 지독한 예기가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한 것이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과연.’

단순히 수검(手劍)을 만들어 기파를 증폭시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다. 실제로 검을 뽑았을 때 얼마나 강력한 무위를 자랑할지 기대되는 검사였다.

“기대 이상이긴 한데, 상상 이상은 아니로군.”

“……!”

“당신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소. 손장난은 그만하고 대답이나 빨리 해 보시오.”

지운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아무렇지도 않다? 검파수공(劍波手功) 앞에서도?’

검파수공은 맨손으로 검기를 피워 내는 무공이다.

하지만 실제로 검기를 휘두르진 않는다. 그 검기를 기파로 녹여 내 상대가 알아서 물러나게 하는 고차원적인 수법이었다.

지운회 정도의 경지라면 설령 절정고수라도 버티기 힘들어야 정상이다.

실제로 마동필은 한참 뒤에 서 있음에도 잔뜩 긴장해 검병에 손을 올려 두고 있었다.

‘왜? 어떻게?’

묵묵히 지운회를 올려다보던 서량.

이내 그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거참.”

스르륵.

천천히 올라가는 오른발.

순간 지운회의 얼굴에 급박함이 어렸다.

“피……!”

콰아아앙!

무지막지한 진각과 함께 땅이 쭉 갈라졌다.

히히히힝!

적마가 거센 울음을 토해 냈다. 태어난 후, 단 한 번도 겁을 집어먹지 않았던 적마도 땅이 갈라지는 천재지변 앞에선 별수 없었던 것이다.

파악!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 지운회가 서서히 하강했다.

순수한 내공으로 하강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이 또한 허공섭물에 비견될 만한 신기(神技)였다.

사락.

마침내 땅에 내려선 지운회의 눈에 살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감히 알량한 무공을 믿고 내게 공격을 가했단 말이냐?”

서량이 피식 웃었다.

“공격? 공격이라 치면 당신이 먼저 했잖아?”

“이놈!”

“그래서 똑같이 갚아 줬다. 어쨌든 내 몸은 안 건드렸으니 진각의 힘을 조절했지.”

서량이 턱으로 지운회의 옆을 가리켰다.

“봐 봐.”

살벌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지운회가 서량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흔들렸다.

‘……이럴 수가?’

땅이 갈라진 흔적은 적마의 발자국 바로 앞에서 딱 멈춰 있었다. 강력한 진동과 거센 폭음, 흉악한 기파에 속아 모두가 놀란 것일 뿐이었다.

지운회의 검파수공은 싸늘하고 날카로웠다. 반면 서량의 진각은 불같고 흉악했다.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한 경고의 정도는 비슷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 어린 청년이 이런 진기 조율을?’

차라리 이 갈라짐이 검향대까지 이르렀다면 덜 놀랐을 것이다. 생각보다 강하긴 했어도 진심으로 상대하면 충분히 제압 가능한 수준이었을 테니까.

오히려 의도한 만큼만 땅을 가른 이 한 수가 상대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병장기를 휘두른 것도 아니야. 그저 진각으로 피해의 여파까지 조절할 정도라면…….’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초절정고수!’

어쩌면 자신에 비해 크게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강자일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찌?’

많이 봐줘도 서른도 안 됐을 법한 외양 아닌가. 그 나이에 초절정이란 지고(至高)한 경지에 발을 들였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멍하니 서량을 바라보던 지운회.

그가 자세를 고쳤다.

“자네 정체가 뭐지?”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정체를 모르는 자의 질문에 답해 줄 의무 따위는 없다.”

“음? 아, 하긴 그도 그런가?”

“…….”

“그러네.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막무가내로 나가긴 했어.”

“말해라. 넌 누구냐?”

번쩍!

서량의 눈에 마기가 스쳤다.

그 강렬한 마안에 지운회는 물론 그 뒤에 선 두 청년, 그리고 검향대까지 모두가 전율을 느꼈다.

“적어도 네놈에게 그따위 불쾌한 언사를 받을 만한 신분은 아니지.”

그때, 마동필이 앞으로 나섰다.

스르르릉!

뽑혀 나오는 묵왕검이 태양 아래 찬란한 빛을 발했다.

콱!

이내 땅 깊숙이 꽂힌 묵왕검.

그리고 그 옆에 마동필이 무릎을 꿇었다.

“신교불패, 만마앙복! 신교의 삼공자님께 인사드립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서량이 악동처럼 히죽 웃어 댔다.

“그렇다는군.”

* * *

“지금?”

“그렇습니다. 현재 마검가주와 대치 중이라고 합니다.”

십수 년 만에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킨 고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가 터질지도 모른다. 교도들 모르게 당원들을 외전으로 파견해라. 지금 당장!”

“명을 받듭니다!”

고구가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검날이 양쪽에만 나 있는 게 아니었군.”

이런 식으로 먼저 나설 거란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서량의 즉흥적인 대응에 고구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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