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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99화 (99/774)

99화. 신교의 무법자 (3)

그날 밤.

거처로 돌아온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앵화는 잘 놀고 있으려나.”

나흘 동안 휴가나 즐기라고 앵화를 환희원 별관에 보냈다.

앵화 역시 환희원 소속이라 원래대로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테지만 고위층 마인의 시녀들은 파순제라는 축제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 앵화한테 너무 무관심했군.’

무공 단련하랴, 마검가주 찔러 보랴,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앵화에게도 무공이나 가르쳐 줄까?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무공은 갖추는 게 좋겠지.’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처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언제나처럼 좋았다. 밤이라 어두웠지만 쏟아질 듯 반짝거리는 별들과 서늘한 빛을 뿌리는 달빛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웃으며 하늘을 보던 서량의 얼굴이 점차 찌그러졌다.

“……하여튼.”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그럴까. 새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된다.

“오지랖도 넓지. 다른 후계자들이 나섰어도 충분히 잘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을.”

새삼 제가 작살낸 홍위문이 떠올랐다.

홍위문이 아직 멀쩡했다면 고구는 이 일을 홍위문에게 먼저 부탁했을지도 몰랐다.

무공과 순간의 기지는 단연 최고지만 신교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에선 다른 후계자들에 한참이나 못 미친다. 서량은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이곳을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 자신의 꿈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게 더 효율적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몰랐다면 몰라도, 아는데 무시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암살자 출신 주제에 도리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이 문제는 다르다.

‘의협이 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사람은 되어야지.’

이 일은 바로 그런 일이었다. 사람이라면 이런 일로 부탁을 받았을 때, 도와주진 못하더라도 함께 분노해 줄 줄은 알아야 한다.

와중에 서량에겐 힘도 있었다. 당연히 도와야 했다.

서량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병신, 이래서야 네 꿈은 언제 이뤄 보겠냐?”

그때, 등 뒤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삼공자의 꿈은 무엇이오?”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듯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정 궁금하면 맞혀 보든가.”

팔짱을 낀 고구의 얼굴 좌측으로 달빛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았다.

“처음 삼공자와 대면했을 때 나는 생각했소.”

“뭘.”

“삼공자는 신교에 미련이 없다고.”

“…….”

“당신의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오. 나와는 별 상관도 없고. 하지만 이상했소. 그래도 교주님께서 직접 제자로 택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한 줌의 야망도 없을까?”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정파인 같은 소리를 하시는구려. 야망이 없다는 게 왜 과대평가요?”

“야망 같은 거 키우면 삶이 팍팍해져. 그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게 최고야.”

“하지만 당신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소. 그저 거절한다는 한마디만 하면 지금처럼 골치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냥 심심해서.”

“알고 있소? 삼공자는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나오.”

“좋은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군.”

“이래서 내가 그랬던 모양이오.”

“뭘?”

고구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삼공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 말이오.”

“시답지 않군.”

“무공이 강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아니오. 삼공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이유,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소.”

“…….”

“삼공자는 본교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맑은 웅덩이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그 웅덩이 전체가 오염되오. 사람도 그와 같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본교처럼 극단적인 곳으로 오게 되면 변해 버리고 마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하지만 삼공자는 달랐소. 본교의 누구보다도 존귀한 신분임에도 결코 본교와 섞이려 들지 않았지.”

날카롭군.

확실히 형법당주는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닌 모양이다. 흔들리지 않는 주관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보는 안목 역시 출중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불만이야?”

“삼공자의 꿈이 무엇인지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삼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나와 상관없소.

난 그저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만이오. 고로 아무런 불만이 없소.”

“잘 생각했어. 어쭙잖게 여기저기 들쑤시면 적만 많아지지.”

서량이 연무장에 철퍽 주저앉았다.

“아까 말했던 거 잊지 않았지? 동필이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잘 보고 있어. 나도 때 되면 움직일 거야.”

“…….”

“이만 돌아가. 혼자 있고 싶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마도 무림의 고위 인사들이 교주님께 인사를 올리는 날이오.

그리고 제사 이후, 마도 무림의 미래를 위한 대회의도 진행되오.”

“그래서 어쩌라고.”

“당연히 근래 벌어진 불유쾌한 사건들에 대한 보고도 낱낱이 올라가게 될 것이오.”

“…….”

“의천맹의 대장로가 죽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뤄질 것이오.”

순간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알고 있었나?”

“그렇소.”

“알고 있었다면 왜 진즉 날 잡아넣지 않았지? 허가 없이 교외로 나간 건 중죄 아니던가?”

“교주님이 그것을 원치 않으시니까.”

“…….”

“교주님께선 삼공자를 아끼시오. 이런 사태로 형법당에 잡아넣는 것을 좋아하진 않으실 것이오.”

“그렇다고 그러지 말란 말도 안 하실 텐데.”

“그 또한 맞소.”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고구였다.

“삼공자의 출교를 눈감아 준 것처럼, 내 잘못도 눈감아 줄 수 있겠소?”

“뭔 짓을 저질렀길래?”

“아직 저지르지 않았소.”

번쩍!

고구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지금 저질러 볼 참이오.”

파아아아악!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이미 고구는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빠르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형법당에서 단순히 서량의 무공을 받아 내려 했을 때와는 달리, 작정하고 무공을 개방한 고구의 움직임은 무시무시했다.

서량이 반사적으로 용린도를 쥐었다.

콰앙!

연무장에 거대한 도흔(刀痕)이 새겨졌다.

누구도 쉬이 피할 수 없는 일도였지만 고구는 무척이나 가볍게 피해 냈다. 순간적으로 우측으로 이동한 그가 일장을 내질렀다.

서량이 용린도의 도배를 세웠다.

퍼어엉!

그의 몸이 흔들렸다.

‘강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서량은 방어를 선택했다.

쐐애애애액!

허공으로 떠오른 고구가 서량의 정수리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날카로운 각법이다. 휘둘러지는 게 다리가 아니라 칼날 같았다.

용린도를 쥔 서량의 손목이 회전했다.

쩌어어엉!

고구의 몸이 더 높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용린도에서 뿜어지는 반탄력이 상상을 초월했던지라, 단순한 방어로는 힘을 흐트러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파아앙!

이천상의 무공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신법과 보법에 관한 한 서량은 틀림없는 천하제일이었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오른 서량이 다시 한번 용린도를 휘둘렀다.

구유인화도법의 일장, 육연지옥풍이었다.

쿠르르르릉!

도기의 폭풍이 몰아치는데 천둥소리가 울린다. 고구의 의복 여기저기가 마구 베였다.

양팔로 얼굴을 가린 고구, 벌어진 팔의 틈으로 그의 눈이 빛났다. 서량의 도법이 당시보다 훨씬 진보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퍼억!

서량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빈틈을 노린 고구의 권법은 막았으되 체공 시간이 확 줄어든 탓이었다.

하지만 서량도 당하기만 하진 않았다.

퍼어어엉!

고구의 몸이 호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권법을 막음과 동시에 제천기의 장법, 금라신장(錦羅神掌)의 일격을 먹여 준 것이다.

쿵!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파아아악!

두 사람의 움직이는 속도는 육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어느새 근접 거리까지 좁혀 든 두 사람이 각자의 절기를 아낌없이 펼쳐 냈다.

퍼퍼펑! 콰릉!

폭음이 사방을 울렸고, 비산하는 경력이 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카아아앙!

묵직한 용린도를 빳빳하게 일어선 연검(軟劍)이 막았다.

서른 배는 더 무거운 중도(重刀)를 반 관도 되지 않는 연검이 막아 낸 것이다다.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기사(奇事)였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꺼내셨나?”

“알고 있었소?”

“노려보는 눈깔이 보통 날카로웠어야지.”

“그러는 삼공자도 진짜 무공을 꺼내진 않았소이다.”

“말했잖아? 나에 대해 많이 알아선 안 될 것 같다고.”

의미를 알기 힘든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던 고구가 순간 연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터어엉!

두 사람이 각기 일 장 거리를 물러났다.

서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칼질이야, 이 야밤에? 일 진행하기 전에 사기라도 북돋아 주고 싶었어?”

“…….”

“어쨌든 칼부림은 그만하고 싶은 것 같군. 눈감아 줄 테니까 가서 긴장이나 타고 있어.”

서량이 용린도를 등에 멨다.

고구는 자신이 쥔 연검을 내려다보았다.

‘정검(正劍)이……?’

우우우웅.

진기를 주입하지 않으면 연검은 이리저리 휘어진다.

하지만 지금 그의 연검은 진기를 주입했는데도 힘을 잃고 휘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용린도가 뿜어내는 도압(刀壓)이 엄청났다는 뜻이었다.

고구가 허리춤에 연검을 둘렀다.

“왜 교주님께서 당신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알겠소.”

“알 게 뭐람.”

“삼공자.”

“아, 왜!”

“교주님을 조심하시오.”

서량이 멈칫했다.

고구의 낮은 목소리가 여울물처럼 돌고 돌아 그의 귀로 들어왔다.

“한없이 어두워서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너무나도 밝아서 사람의 눈으로는 온전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분.

가슴 시린 분노와 한이 극에 이르러 오히려 싸늘하게 굳어진, 그러나 언제라도 활화산처럼 터트리길 주저하지 않는 분.”

“…….”

“세상 모든 것이 유희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

지옥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보다가, 어느새 구름에 올라서서 지옥 밑을 내려다보게 된 분.”

꾸욱.

고구가 주먹을 쥐었다.

“교주님께선 바로 그런 분이라오.”

“하나도 못 알아듣겠군.”

“이해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소. 다만 혹시라도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의 이 말을 기억하길 바라겠소.”

고구가 몸을 돌렸다.

“선장은 삼공자요. 이번 일, 앞장서서 우릴 이끌어 주길 바라오.”

그 말을 끝으로 고구는 서량의 거처를 나섰다.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울적해 죽겠구만 정신 사납게 하고 있어.”

* * *

슥.

미약한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이 발하는 소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마동필이 눈을 떴다.

“왔는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한 명의 괴인이 환한 달빛을 등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동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공자님의 말씀이 맞았어. 정말로 당신이었군.”

푸른 안광을 토해 내며 마동필을 내려다보던 괴인이 천천히 한 손을 들었다.

우우우우웅!!

손끝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강력한 기파.

마동필이 묵왕검의 검병을 쥐었다.

차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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