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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1화 (101/774)

101화. 신(神)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 (1)

“지영현…… 삼남이었다니.”

예상외의 인물에 소연심은 아연실색했다.

고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장남인 지강현이 범인인 줄 알았소. 그 외는 생각지도 못했지.”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군요.”

“무엇을 말이오?”

“당주께서는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죠? 지강현이 진범이었다는 것을.”

고구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흔적을 보았기 때문이오.”

“흔적이요?”

“그렇소.”

“어떤 흔적을 말함이죠? 무공인가요?”

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인을 처형하고 난 후, 나는 왠지 찝찝함을 느꼈소.

사건의 정황과 몇몇 증거는 처형당한 마인이 범인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이유 모를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소.”

“위화감?”

“그렇소. 그리고 그 위화감은 재수사를 하게 만들었소. 물론 재수사는 극비리에 진행되었지.”

“그래서 흔적을 발견했나요?”

“그렇소.”

“……어떤?”

“본교의 마인들은 기본적으로 전투 훈련을 받지. 당연히 인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은 필수요.

하지만 내공심법만 꾸준히 익혀 온 마인의 소행이라기엔 믿을 수 없이 참혹했소.”

고구가 소연심을 힐끔거렸다.

“하나같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 소 원주도 당시 한 구는 봤을 것 아니오?”

소연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봤죠.”

“범인이 광기에 휩싸여 시신들을 참혹하게 다뤘을 가능성? 물론 있소.

하지만 그 정도로 미친놈이 일곱 구나 되는 시신마다 똑같은 흔적을, 그것도 같은 자리에 남겨 놓지는 않을 것 아니오.”

고구가 제 뒤통수를 두드렸다.

“바로 뇌호혈이었소. 시신들 전부 뇌호혈이 완벽하게 관통되어 있었소.

목이 부러지고 살점이 갈려 검시(檢屍)를 전문으로 하는 자들도 쉬이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 뇌호혈이 마검가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죠?”

“검영지(劍影指)요.”

소연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영지…… 마검가의 적통에게만 전수된다는 그 검영지 말인가요? 지법(指法)인?”

“그렇소. 뇌호혈을 관통한 흔적은 분명 마검가의 검영지였소.”

“……!”

“사건이 벌어진 시기에 마검가주는 본교에 없었소. 재작년 파순제에는 가주의 네 자식만 참여했지. 그나마도 축제를 즐기기 위함이었지만.”

“그래서 알 수 있었군요. 검영지는 어지간한 재능으로도 십 년은 연마해야 겨우 써먹을 수 있는 절학이니까.”

“그렇소.”

잠시 말을 멈춘 고구가 재차 입을 열었다.

“당시에 검영지를 쓸 수 있었던 자는 오직 하나, 지강현뿐이오.”

“…….”

“혹시나 해서 지강현이 아닌 다른 자식들도 검영지를 쓸 수 있는지 조사해 보았소. 아니더군.

검영지는 십수 년 전 후계로 낙점된 지강현에게, 그리고 일 년 전 차남에게 전수되었소. 그 외에 검영지를 전수한 적통은 한 명도 없소.”

고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 조사가 잘못됐던 모양이오. 범인은 장남이 아니라 삼남이었어. 또 애먼 사람을 잡을 뻔했군.”

가만히 고구를 바라보던 소연심도 마주 한숨을 쉬었다.

아직 고구에 대한 감정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구도 그간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끝을 향해 나아가니 다행이죠.”

“아니오. 지영현을 잡아 가둔 후에 우리는 증거들을 찾아야만 하오. 습격을 당했다는 마동필의 증언은 별 효력이 없소.”

“어차피 배수의 진을 쳤어요.”

“배수의 진을 쳤지만…… 어떤 식으로 증거를 찾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소. 일단은 심문부터 해 봐야겠지.”

대화를 멈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싸움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붉고 푸른 기세를 피워 올리는 두 마인이 격정의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 * *

퍼어어엉!

지영현의 몸이 다시 한번 훨훨 날아갔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나 그렇군.”

폭산경을 정통으로 맞고도 지영현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내상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내력으로 내가중수법에 대한 방비가 가능하다지만 저렇게까지 멀쩡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

“피부만 단단한 게 아니다, 이거지?”

“크아아악!”

지영현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그렇게 당했음에도 뿜어내는 마기가 여전히 강렬했다. 위홍련의 말마따나 무한의 내공을 갖기라도 한 것 같았다.

‘저거 완전히 미쳤는데?’

낮에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는 분명 이지가 살아 있는, 멀쩡한 청년이었다.

한데 지금 저 모습은 뭔가? 광기가 골수까지 들어찬 광마(狂魔)나 다름없어 보였다.

‘됐어, 궁금한 건 나중이다. 일단 제압부터 하고 보자.’

서량이 용린도를 휘둘렀다.

까아아앙!

귀를 파고들어 뇌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지영현이 다시 뒤로 밀려 나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힘을 주어 버텼는지 이전처럼 훨훨 날아가진 않는다.

그때, 서량이 용린도를 역수로 쥐어 땅에 내리꽂았다.

콰직!

도병 위에 두 손을 올려놓는 서량.

후욱!

일순 그의 마기가 달라졌다. 구유마공의 완전 개방, 지옥문의 일 층인 지저옥관귀문식(地底獄官鬼門式)을 펼친 것이다.

“크르르.”

돌변한 상대의 기도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지영현의 자세가 확 낮아졌다.

어느새 용린도를 손에서 놓은 서량이 등허리에서 유성쌍도를 뽑아 들었다.

차아아앙!

그 어떤 보검보도를 뽑아도 이처럼 시원한 발도(拔刀) 소리가 나진 않을 것이다. 청색과 홍색, 청홍의 삭풍이란 이명이 붙은 쌍도가 강렬한 예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푹! 푹!

날카로운 기세를 자랑하던 것이 무색하게 쌍도 두 자루 역시 땅에 박혔다. 위치는 용린도의 좌우였다.

우두둑.

서량이 주먹을 들었다.

“지옥풍으로 안 되면 아예 지쳐 쓰러질 때까지 두드려 팰 수밖에.”

인화도법의 일 장 육연지옥풍.

지옥의 바람이란 초식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해서 제압하려 했지만 그게 불가능했다. 거기서 더 힘을 줘 버리면 필시 지영현의 팔다리 중 하나는 날아갈 것이다.

이 장인 종극무간도부터는 말할 것도 없다. 삼 장으로 갈 것도 없이, 이 장을 펼치는 순간 지영현은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삼차전이라고 하긴 뭐하군. 준비됐으면 이만 들어와 봐.”

검지를 까딱거리는 서량.

이지를 상실한 것 같은데도 용케 도발을 알아차린다. 지영현이 괴성을 지르며 서량에게 돌진했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수도 일격.

사아아악!

지영현의 눈이 커졌다. 사선으로 갈라져야 할 서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큼직한 손 하나가 그의 뒤통수를 잡았다.

콰아앙!

지영현의 얼굴이 그대로 땅에 파묻혔다.

“힘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인데 어째 기술은 어린애들 목검 휘두르는 수준이냐? 너무 단순하잖아, 인마.”

콰드드득!

머리를 잡고 반 장이나 땅을 갈며 나아간 서량이 돌연 그를 집어 들고는 그대로 내던졌다.

콰앙!

거센 충돌음과 함께 용린도가 휘청거렸다. 서량이 용린도의 도배를 향해 지영현을 던진 것이다.

연달아 가해지는 거대한 충격에 지영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와중에 좀 더럽혀진 걸 제외하곤 얼굴은 멀쩡했다.

서량이 달려나갔다.

파아아악!

순식간에 지영현의 코앞까지 도달한 서량.

깜짝 놀란 지영현이 그를 향해 맨주먹을 휘둘렀다. 검기를 피워 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투우웅!

지영현의 팔이 뒤로 홱 꺾였다.

퍼억!

그의 고개가 위로 홱 젖혀졌다.

터억!

“흐음, 그랬구만.”

지영현의 목을 잡은 서량이 싸늘한 얼굴로 주먹을 들었다.

“어떻게 그런 잠재력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만, 네 안의 그 거대한 힘이 신체의 강도와 반응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주고 있었군.

그러고도 남아돌아서 검기까지 뽑아낸 거야.”

자신에 육박하거나 많이 봐도 약간 위의 내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이놈이 품고 있는 내공은 못 해도 자신의 두 배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내공력만큼은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물론 진기의 집약도가 약하고 그마저도 제 것으로 온전히 녹여 내지 못해 가진 힘의 절반밖에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남아도는 내공으로 신체의 강도를 올리는 데에 주력한 모양이었다.

“뭐, 그럼 그거 다 소모할 때까지 패 주면 되지.”

퍼버버버벅!

서량의 두 주먹이 지영현의 전신을 강타했다.

파파파파팡!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가 번개처럼 빠르다. 주먹과 주먹이 교차하는 것조차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된다.

연타, 그리고 또 연타.

제천기 최속의 무공이라는 연환비폭권(連環飛瀑拳)이었다. 마치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전신 곳곳을 누비는 주먹에 지영현의 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위홍련이 입을 쩍 벌렸다. 찢어진 입술이 더욱 벌어졌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인지하지 못했다.

“뭐, 뭐야? 뭔 주먹이 저리 빨라?”

퍼버버버버벅!

숨 한 번 들이쉴 시간조차 주지 않고 친다. 힘을 버리고 속도를 살린 권법이라 한들, 짧은 순간 저리 많은 타격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퍼어억!

복부를 갈기는 시원한 한 방을 끝으로 연환비폭권이 멈추었다.

지영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요놈 봐라? 이제야 피부가 좀 물렁물렁해졌구만?”

터어엉!

빈틈을 노리고 기습한 지영현의 손짓은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수도를 흘리고 팔꿈치로 쇄골을 후려치니 한쪽 무릎까지 꿇었다.

서량이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꿇어도 된다고 하더냐?”

빠각!

지영현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오늘 그의 몸에서 처음으로 피가 났다. 어찌나 강하게 걷어차였는지 고개만 위로 젖혀진 게 아니라 꿇은 무릎까지 세워져 있었다.

“휴, 그래도 강철이 바위의 강도로 떨어지긴 했군.”

서량의 손이 지영현의 가슴에 닿았다.

투우우웅!

둔탁하게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지영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폭산경의 수법으로 내부의 진기를 흔들어 본 것이다.

“좋아, 단전도 울리고 있어! 몽실몽실한 구름이 될 때까지 가 보는 거다, 우리?”

“크르륵!”

“주둥이는 닫아 주시고.”

퍼어억!

혼신의 힘을 다한 주먹질에 또다시 피를 토해 내는 지영현.

그리고 다시 연환비폭권이 시작되었다.

퍼버버버벅!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소연심이 입을 쩍 벌렸다. 위홍련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저, 저게…….”

세상에 저런 무공이 어디 있어?

아니, 무공 이전에 이거 너무 무자비하지 않아? 사람 하날 벽에 세워 두곤 곤죽이 될 때까지 패고 있잖아!

심지어 그냥 벽이 아니라 칼날의 벽이다.

고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네?”

“범인이…… 순간 불쌍해 보였소.”

웃기지 말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차마 그 말을 뱉을 수 없었다. 소연심도 잠시나마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서량은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었다.

“흐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그간 내가 너무 피폐하게 살았었나?

이 손맛은…… 아니, 이 감정은 뭐랄까…….

“으하하하하!”

아주 그냥 속이 다 풀리네!

상대가 이성이 없는 괴물이요, 몸뚱이도 단단한 놈이라 생각하니 이것 참 치는 맛이 좋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이라도 붙잡아 두고 두들기고 싶었다.

“이 새끼! 잘 버텨야 한다아아!!”

퍼버버버버벅!

치고 치고 또 치고, 맞고 맞고 또 맞는다.

우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붉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느껴지는 무지막지한 희열에 마기가 절로 반응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눈까지 까뒤집고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는 서량. 그런 서량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남녀 할 것 없이 공포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까가가가가강!

“엥?”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그의 주먹이 용린도의 도배를 친 것이다.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지영현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음…….”

서량이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고구와 소연심이 있는 쪽이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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